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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5 호곡장론 _ 박지원

호곡장론(好哭場論)


연암() 박지원()



*
'호곡장(
好哭場)'은 ‘목놓아 울어보기 좋은 곳’이라는 뜻.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문집 '연암집(燕巖集)' 제11권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도강록(渡江錄)' 7월 8일자 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신을 수행하여 청나라의 수도 연경으로 가면서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느낀 충격적인 감회를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이런 울음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어미 뱃속에 있다가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 나오면서 거짓없이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
英雄善泣 美人多淚(영웅선읍 미인다루)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영웅은 울어야 할 때와 장소를 잘 안다는 뜻이다.
울지 않아야 영웅이 아니라,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는 울 수 있어야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울음은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칠정(情,  )이 극에 이르게 되면 참된 울음이 나오게 되는 것이며, 영웅이 되려면 이러한 진실한 감정을 숨김 없이 표출할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눈물이 없는 여인은 미인이 될 수 없다. 눈물은 공감능력이기 때문이다.



* 전문을 옮겨 본다.

초파일 갑신(甲申), 맑다.

정사(正使) 박명원과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산기슭 한 줄기를 돌아서니,

태복(泰卜)이 몸을 굽히고 말 앞으로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리로 아뢰었다. "백탑(白塔)이 나타났습니다." 태복은 정 진사(鄭進士)의 말을 맡은 하인이다.

산기슭에 가려 백탑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홀연 검은 덩어리 하나가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목놓아 울어보기 좋은 곳(好哭場)이로다. 가히 울어 볼 만하구나."

정 진사가 말했다. "천지 간에 이렇게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목놓아 울 생각을 하다니

무슨 말씀이오?"

내가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고 합니다(英雄善泣 美人多淚).

그런 울음은 불과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에 굴러떨어질 뿐이지요. 쇠나 돌에서 나온 듯이 천지를 가득 채우는 소리는 아직 들어 보진 못했소. 사람들은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欲) 중에서 '슬픔(哀)'만이 울음을 내는 줄

알았지,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는 줄은 모릅니다.

기쁨(喜)이 극에 이르면 울고, 노여움(怒)이 극에 이르면 울고,

즐거움(樂)이 극에 이르면 울고, 사랑(愛)이 극에 이르면 울고,

미움(惡)이 극에 이르면 울고, 욕심(欲)이 극에 이르면 웁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그것을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지요. 울음은 천지(天地)에 있어서의 우레에 비할 수 있는 것이니, 지극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 이것이 이치에 맞는다면,

웃음과 어찌 다르다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살면서 여러 감정을 만나더라도 그 지극한 경지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히 늘어놓고는 그 중에서 '슬픔'에게만 울음을 부여하였지요. 그러니 사람이 죽어 상을 치룰 때 억지로라도 곡소리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진실된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엉켜서 감히 터져나오지 못합니다. 저 가생(賈生, 한나라의 가의 賈誼)는 자기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하여

갑자기 선실(宣室, 궁전)을 향하여 한번 크게 소리내어 울부짖었으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정 진사가 말했다.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 바탕

울고자 하는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情)'이라 해야 할까요?"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시요.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어떤 '정'을 느꼈겠습니까? 처음에는 명암을 보고,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 있으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일인데

슬프거나 노여워할 까닭이 없지요.

그 '정(情)'은 응당 즐겁고 웃어야 할 것이지만, 도리어 하염없이 울어젖히니 서러움과 한스러움이 가슴 가득합니다. 누가 말하기를,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니, 사는 중간에 허물, 환란, 근심, 걱정 속에 파뭍혀 살아야 하는 지라, 아이는 그 탄생을 후회하며 미리 스스로 자신을 조문(弔問)하여 운다고 합니다. 이는 결코 갓난아이의 본 마음이 아니지요. 아이가 어미 태속에 있을 때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팔을 펴고 다리를 뻗을 수 있어

마음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니 갓난아이를 본받아야만 거짓으로 지어내지 않은 소리를 낼 수 있지요. 비로봉(금강산) 정상에 올라 동해를 굽어보는 곳이 호곡장 하나가 될만하고,

장연(황해도)의 금사(金砂) 해변에 가면 호곡장이 호곡장이 될만하고,

오늘 요동 벌판에 이르러 여기로부터 산해관 일천이백 리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옛날의 비와 지금의 구름이 이 속에서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호곡장이 될 만하오."

* 原文


初八日甲申晴/與正使同轎渡三流河/朝飯於冷井/行十餘里/轉出一派山脚/泰卜忽鞠躬過馬首/伏地高聲曰/白塔現身謁矣/泰卜者鄭進士馬頭也/山脚猶遮不見白塔/趣鞭行不數十步/脫山脚/眼光勒勒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五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只得頂天踏地而行矣/立馬四顧不覺擧手加額/曰好哭場可以哭矣/鄭進士曰/遇此天地間大眼界/忽復思哭何也/余曰唯唯否否/千古英雄善泣美人多淚/然不過數行無聲眼水轉落襟前/未聞聲滿天地若出金石/人但知七情之中惟哀發哭/不知七情都可以哭/喜極則可以哭矣/怒極則可以哭矣/樂極則可以哭矣/愛極則可以哭矣/惡極則可以哭矣/欲極則可以哭矣/宣暢壹鬱莫疾於聲/哭在天地可比雷霆/至情所發/發能中理/與笑何異/人生情會未嘗經此極至之處而巧排七情配哀以哭/由是死喪之際/始乃勉强叫喚喉苦等子/而眞個七情所感至聲眞音/按住忍抑蘊鬱於天地之間而莫之敢宣也/彼賈生者/未得其場忍住不耐忽向宣室一聲長號/安得無致人驚怪哉/鄭曰/今此哭場如彼其廣/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余曰: “問之赤子. 赤子初生, 所感何情? 初見日月, 次見父母, 親戚滿前, 莫不歡悅 如此喜樂, 至老無雙, 理無哀怒, 情應樂笑, 乃反無限啼叫, 忿恨弸中 將謂人生神聖愚凡, 一例崩殂 中間尤咎, 患憂百端, 兒悔其生, 先自哭弔 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故當法嬰兒, 聲無假做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行長淵金沙, 可作一場 今臨遼野, 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