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루비니 교수 "미국 증시 오른다고? 그건 바보들의 랠리야"

"겨울이 끝났다고? 천만의 말씀, 죽은 고양이도 바닥에 떨어지면 한번은 튀어오르지."

미국 증시가 연일 급등해 바닥 탈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우울한 예언을 계속 적중시켰던 누리엘 루비니(Roubini) 뉴욕대 교수가 또다시 독설(毒舌)을 퍼붓고 있다. 최근 주가 상승에 대해 이른바 '바보들의 베어마켓 랠리(bear market sucker's rally)', '죽은 고양이의 반등(dead cat bounce)'이라는 표현을 쓰며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뉴욕증시 상승세는 경제위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입이 딱 벌어진다. 다우존스지수(DIJA)는 지난 10일부터 18일까지 1주일(7거래일) 만에 무려 14.4%나 치솟았다. 미운오리였던 금융주는 백조로 탈바꿈했다. 씨티그룹은 이 기간 193%(1.05→3.08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05%(3.75→7.67달러)란 눈부신 상승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보너스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AIG의 상승률은 300%(0.35→1.38달러)에 육박한다.


미 증시에선 '약세장이 끝나가는 신호'라는 낙관론자들의 합창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금융 정보 사이트 'RGE모니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이번 현상은 '베어마켓 랠리(약세장에서의 일시적 반등)'일 뿐이며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데자뷰(de ja vu)'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작년에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가 공격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이번과 비슷한 랠리가 6번이나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베어스턴스 파산(3월)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구제(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9월) ▲AIG 구제금융(9월) ▲미 정부의 TARP 발표(10월) ▲G7 금융 안정 공동성명 발표(10월) 직후에도 주가가 반짝 상승했다가 다시 고꾸라졌다는 것이다.〈그래픽 참조

루비니 교수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 증시 낙관론이 '부정확하고, 너무 일찍 나왔고, 과장됐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작년 4분기 미국과 유로존(각각 -6%), 일본(-12%) 등의 GDP성장률(연율 기준)을 보면 도무지 긍정적인 경기지표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첫째 이유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통화·재정 부양책도 신속한 경기 회복을 담보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기 부양자금 8000억달러 중 올해 집행될 금액은 2000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 절반은 효과가 불투명한 감세(減稅)로 그 효과가 여름이면 끝난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통상 경기 침체가 끝나기 6~9개월 전(前)이 증시의 바닥이라고 하는데, 세계 경제가 'U'자형보다 'L'자형 침체로 가고 있어 언제 바닥이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금융주의 경우 부실 자산에 대한 시가평가(mark to market)를 하면 규모를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실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지금의 베어마켓 랠리를 즐겨라. 하지만 타이태닉호가 다음 빙산과 충돌하기 전에 빨리 구명보트로 옮겨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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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에 집중 … 테이블 다섯개 22년째 고수”

한식당 ‘전원’에서 배우는 ‘스몰캡’ 경영

이상재 | 제101호 | 20090215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서울 장충동에 있는 한식당 ‘전원’ 앞에 선 문분선 사장. 같은 음식이지만 ‘색다른 포인트’로 차별화해 20년 넘게 알토란 같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우량 중소기업을 ‘스몰캡’이라고 부른다. 스몰캡은 시가총액 1000억원 이하 기업으로 대개 오너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면서 암팡지게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조그마한 한식당 ‘전원’도 스몰캡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1988년 문을 연 이 식당은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도 보름은 기다려야 그 깊은 맛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음식 솜씨만 일품인 게 아니라 ‘경영 솜씨’도 일품이다.

“사위에게도 따뜻한 밥 못 해줘”
경남 진해가 고향인 문분선(62·여) 사장은 처음엔 현재의 식당 자리에서 ‘멋’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옷 만드는 손맛도 좋지만 음식 만드는 손맛이 더 좋다”고 권유해 업종 전환을 결심했다. 간판도 없이 5개의 식탁을 들여놓고 알음알음 손님을 받다가 “이름도 없는 식당이 어딨냐”는 핀잔을 받고 90년에야 ‘전원(田園)’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왜 이름을 ‘전원’으로 지었는지는 좁다란 계단을 따라 다락방 같은 2층에 올라가면 바로 알 수 있다. 이곳 테라스는 봄부터 가을까지 금낭화·마거리트·들국화가 번갈아 꽃을 피우며 도심 속 전원을 연출한다. 이 테라스 옆자리를 차지하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전원에는 따로 차림표도 없다. 그냥 점심 3만원, 저녁 10만원을 받는다. 스무 가지가 넘는 음식은 ‘주인 마음대로’다. 봄이면 도다리가, 가을이면 전어가 고향인 진해에서 직송된다. 문 사장은 “제철 음식이 가장 좋다. 요즘은 굴과 가오리 회, 두릅이 제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흔한 육류는 없다. 쇠고기를 찾는 손님이 있으면 “고기 전문점에 가시라”고 응대한다. 평소 문 사장이 육류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단다. “잘할 수 있는 것만 정성스럽게 내놓으면 된다”는 소신에서다.

심지어 그는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데 불안해서 전화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문 사장은 “내가 한 가지밖에 집중을 못해서…. 어떨 때는 전화소리도 안 들린다”며 작게 웃었다.

이뿐이 아니다. 단골손님이 아니면 저녁 예약을 받지 않을 때도 있다. 왜 이렇게 배짱을 부리느냐고 묻자 “에이 (식당이) 좁고 초라한데…”라며 얼버무리려고 한다.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자 이내 “손님이 격(格)이 있어야 식당도 격이 산다. 10년, 20년 단골이 전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손님 중에 어느 분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더군요. 돈 거래할 때 그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저도 비슷해요. (무턱대고 손님을 받으면) 매출이 올라갈지 모르지만 자칫 10년 단골을 놓칠 수도 있잖아요(웃음).”

문 사장은 좋은 음식점 주인이 갖춰야 할 첫 번째 ‘투자’ 덕목으로 건강을 꼽았다. 건강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음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문 사장은 “몸이 아프면 으레 입맛부터 잃기 마련이다. 그러면 당연히 음식의 간을 보기 싫어진다”며 “이러면 어떻게 음식을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헬스클럽에서 시작한다. 길 건너편 앰배서더 호텔에서 오전 6시부터 1시간가량 달리기를 한 다음 시장으로 달려간다.

그는 하루 두 차례 장을 본다. 오전에는 인근 남대문시장·중부시장에 나가 싱싱한 채소와 밑반찬거리를 고른다. 오후 3시30분쯤 되면 지하철을 타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으로 간다. 그는 “장안을 다 다녀봤는데 여기 생선이 가장 좋더라”고 칭찬했다.

분점 내자는 제언에 “아휴”라고만
전원의 상차림은 여느 음식점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하나같이 ‘차별화된 사연’이 있다. 깻잎은 양념을 해서 두 번 끓인 젓국으로 간을 했다. 그래서 간장 양념보다 맛이 깊다.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는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우려낸 다음 물기를 빼고 굽는다. 그래서 더 담백하다. 미역은 부산 기장에서 올라오는데 멸치젓갈을 찍어먹도록 권한다. 그래야 바다 향을 느낄 수 있단다. 흔히 먹는 반찬 종류지만 맛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마포에 살던 문 사장네가 장충동 식당 근처로 이사온 것은 김치 때문이다. 김치는 바로 썰어 식탁에 올려야 맛이 사는데 마포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음식점에서 1분 거리 떨어진 곳으로 집을 옮기고 김치냉장고도 여덟 개 장만했다. 손님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그의 가족은 스무 가지 넘게 올라오는 정식 요리를 제대로 맛볼 기회가 없단다. 일을 마치고 나면 힘이 다 풀려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어서다. 문 사장은 “밥을 사먹이기만 해 사위에게 특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원의 식탁은 지금도 다섯 개다. 저녁에는 ‘어지간하면’ 한 팀만 받는다. ‘식당을 넓힐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아들 손창범(36)씨가 운영하는 파스타 전문점 ‘라 깜빠냐’로 기자 일행을 안내했다(라 깜빠냐는 이탈리아어로 전원을 가리킨다). 전원과 바짝 붙어 있는 이곳은 달랑 의자 네 개가 주방을 보고 일렬로 앉게 돼 있다. 문 사장은 “그래도 예약 잡으려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전원은 넓은 바다 같다”며 싱긋 웃기만 했다.

“얼마 전 한 유명 호텔에서 분점을 내자고 하더군요. ‘아휴’라고만 했어요. 제 손으로 지지고 볶지 않으면 절대로 안 합니다. (직영 음식점이) 두 개, 세 개 되면 아무래도 제 손이 가기 힘들 테고, 맛을 잃게 되겠지요. 그러면 다 잃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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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규모 블랙마켓’vs ‘닌텐도 뺨치는 블루오션’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의 명암

나현철 | 제101호 | 20090215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거래 참여자 최소 500만 명. 한 달 평균 거래량 130만 건. 건당 거래 가격은 몇천원부터 천만원대까지. 연간 거래 규모는 1조원대. 국내 게임 아이템 시장 얘기다.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나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말한다. 시장이 커지면서 한 해 중개 수수료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는 회사도 생겨났다. 하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쪽에선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고 사행성을 조장하니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외친다. 다른 쪽에선 한국이 만든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며 잘 육성하자고 맞선다. 불황에 뜨는 산업인 온라인 게임과 함께 급속히 성장한 아이템 시장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속히 확대되는 시장
지난해 12월 한 게임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1000만원이 넘는 매물이 올랐다. 국내 대표적 온라인 게임 ‘리니지2’에 쓰이는 이 아이템은 일반인이 1년을 꼬박 투자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었다. 하루 만에 서너 명의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고, 이틀 뒤 실제 거래가 이뤄졌다. “온라인 게임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성주’ 캐릭터(온라인상의 가상인물)의 경우 5~6년 전 3000만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시장은 이미 무시하지 못할 규모로 성장했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중개 사이트의 거래액만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엔 게이머끼리 직거래하거나,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 고스톱·포커 등 사행성 보드 게임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거래량까지 합하면 시장 규모가 지난해 1조5000억원가량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아이템매니아와 아이템베이 등 ‘빅2’로 꼽히는 중개 사이트엔 5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두 사이트의 한 달 평균 거래량만 130만 건이다.

평균 거래가는 4만3000~6만5000원이지만 인기 높은 일부 아이템은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개 사이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거래된 아이템 중 가장 고가인 것은 1250만원짜리 ‘리니지 2’의 ‘16드라포커’와 ‘+17엔젤’이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단박에 최고 레벨에 오를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이 밖에도 대여섯 가지 아이템이 3~4%의 수수료와 세금을 부담하고 온라인에서 10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높은 레벨의 캐릭터를 가진 게이머가 자신의 권리(계정)를 파는 경우도 적지 않다. 리니지, R2온라인, 카발온라인 등 최상급 계정은 900만원 이상에 매매된다.

‘사이버 장난감’인 아이템이 고가에 사고 팔릴 수 있는 건 온라인 게임의 구조 때문이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중접속역할분담게임(MMORPG)은 가상 공간에 다수의 게이머가 접속해 마법사나 전사·요정 등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게이머보다 우위에 서려면 게임 머니를 얻을 수 있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가상 공간을 많이 돌아다녀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1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리니지’의 경우 사이버머니로 ‘100만 아덴’을 모으려면 하루 8시간씩 꼬박 일주일이 필요하지만 이 정도론 다른 게이머와 경쟁하기에 어림도 없다. 게임사들이 유료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있지만, 기본적인 무기나 방어장비뿐이다. 이를 뛰어넘는 성능 좋은 아이템은 시간을 들여 직접 만들도록 설정돼 있다. 시간이 남는 사람과 돈이 넉넉한 사람 간에 거래가 발생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시장의 탄생이다.

공생 또는 기생
게임 아이템은 홀로 설 수 있는 시장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기반이 필요하다. 게임 개발사들이 아이템 거래 시장을 ‘기생시장’으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아이템 거래 규모가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절반 안팎으로 커졌다는 점도 이들의 불만을 키운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장이 선다. 더 많이 모이면 애초 정해진 장터 밖에도 하나둘 노점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온라인 게임 시장과 게임 아이템 시장의 관계가 꼭 이렇다.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될수록 아이템 거래도 활발해진다. 재미삼아 노점상 구경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듯, 아이템 시장의 활성화가 게임 시장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게임산업개발원이 2007년 온라인 게임과 아이템 거래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니 ‘리니지’ ‘R2온라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등 주요 게임 모두에서 아이템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게임 이용자와 이용시간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아이템 유통업계는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온라인 게임이 특히 활성화한 한국에서 시작된 사업모델인 만큼 위축보다는 활성화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한다.

양쪽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무색하게 온라인 게임 시장이 쑥쑥 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코리안 클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온라임 게임 이용자는 16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노소를 통틀어 3명당 1명꼴로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인터넷 이용자의 51%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온라인 게임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통계도 있다. 경기 침체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게 분명하다. 주진석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실업률이 1% 늘어나면 게임 이용시간은 0.7%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게임산업진흥원은 2008년 23% 성장한 온라인 게임 시장이 올해에도 20%대의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매한 법률이 논란 키워
양자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건 모호한 법률이다. 게임 아이템이 누구의 것인지부터 분명치 않다. 게임사는 지적재산권에 비춰 분명히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창작의 결과가 아니라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논리다. 아이템 유통업계와 이용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쓴 게이머들의 권리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개발사의 지재권과 게이머의 양도권을 함께 인정하는 쪽이다. 개인 간 아이템 거래를 인정하면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사고 팔거나 직업적으로 아이템 매매를 하는 행위, 사행성 보드게임(고스톱·포커)의 사이버 머니를 매매하는 행위 등엔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9일 온라인에서 유명 게임사이트의 포커 게임에 사용되는 사이버 머니 2경원어치를 사고 팔아 3억원가량의 차익을 챙긴 설모(42)씨 등 3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계가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아이템을 사는 사람은 해킹 등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인지 알기 어렵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장물을 일반인이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직업적인 거래’를 금지하는 법규와 국세청의 과세 정책도 서로 부닥친다. 국세청은 최근 온라인 벼룩시장인 오픈 마켓이 활성화되자 ‘연간 600만원 이상의 물품을 판매하려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과세 근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지만, ‘사업자 등록을 하면 직업적으로 하는 게 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1년에 몇 건, 어느 정도의 금액을 거래해야 ‘직업적’이 되는지도 분명치 않다

정해상(법행정학) 위덕대 교수는 “소유권은 없지만 이용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아이템이 상가 권리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는 불충분한 상태”라며 “사이버화가 진행될수록 이 같은 신종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논란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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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초밥처럼 ‘다양한 변주’ 가능하죠”

해외 진출 노리는 GNS델리 이재훈 사장

서경호 | 제105호 | 20090314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올리브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GNS델리의 이재훈(32·사진) 사장은 올해 상반기 중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 1월 말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음식박람회에 올리브 떡볶이의 주 메뉴인 ‘고추장 떡볶이’와 ‘궁중 떡볶이’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데 고무된 것이다. 이 회사는 ‘BBQ치킨’으로 잘 알려진 제너시스BBQ의 자회사다. 이 사장은 초밥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주목한다. 요리하기 편하고, 배합식초 등 핵심 소스가 있으며, 재료만 바꾸면 다양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초밥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흔히 한국 음식은 ‘손맛’이라고들 하지요. 이 말을 뒤집으면 요리하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고 표준화하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비빔밥·갈비·김치 같은 대표 음식도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떡볶이는 다릅니다. 떡과 소스만 바꾸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지요. 떡과 섞이는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가 떡볶이의 단점으로 꼽는 것은 떡 자체의 질감이다. 미국과 유럽 사람은 ‘끈적거리는(sticky)’ 떡의 질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떡의 질감을 외국인 입맛에 맞게 바꿔야 한다. 지난주 문을 연 떡볶이연구소도 이 문제를 연구과제 중 하나로 정했다. 또 다른 방법은 신메뉴를 개발해 질감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 사장이 떡 튀김을 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떡에 튀김가루를 입혀 튀기면 끈적거리는 느낌이 덜할 뿐만 아니라 소스를 더 많이 묻힐 수 있단다.

이 사장은 올리브 떡볶이를 비롯해 올리브 돈까스, U9(우동·초밥), 델리아띠(커피·샌드위치) 등 4개의 소자본 창업 브랜드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96학번인 그는 휴학 중이던 2003년 부산대 앞에서 800만원으로 5㎡(1.5평)짜리 테이크아웃 초밥 전문점 ‘스시990’을 열어 성공했다. 사업 시작 1년 반 만에 100개 가맹점을 확보했다. 2007년엔 전국 매장 300개, 가맹점 매출 100억원의 프랜차이즈로 키웠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의 제의로 2007년 제너시스에 합류한 그는 사업에 바빠 아직 대학 졸업을 미뤄두고 있다. 



길거리 음식에 140억 투입 …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떡볶이의 과거·현재·미래

서경호 | 제105호 | 20090314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11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서 ‘떡볶이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인 ‘떡볶이’와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을 연상시키는 ‘연구소’의 결합은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떡볶이연구소는 떡볶이의 세계화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목표로 출범했다. 사단법인 한국쌀가공식품협회의 부설기관으로 설립됐다. 떡볶이가 올 들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부상한 것이다. 중앙SUNDAY가 떡볶이의 과거·현재·미래를 짚어봤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떡볶이를 먹었을까.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1592년) 이전에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견이 있지만 고추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맵지 않은 궁중떡볶이에서 유래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에 따르면 떡볶이는 궁중음식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궁중떡볶이는 궁중에서 왕이 드시던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고기와 함께 채소를 곁들여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음식이었다. 고추가 없던 시절이어서 생나물·마른나물·쇠고기에 간장을 넣고 볶아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떡복이를 떠올리면 된다. 고추가 들어온 뒤 조선 중기의 증보 산림경제(1766년)에 최초로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8세기 이전까지는 간장 양념만 하는 맵지 않은 떡볶이를 주로 먹었다는 얘기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한다. 윤 소장은 “당시 기록으로 볼 때 떡볶이는 원래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의 한 종류였다”며 “만드는 법도 떡찜 조리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매운맛 본격 등장은 1950년대 이후
떡볶이의 주류가 간장 떡볶이에서 현재의 고추장 떡볶이로 변한 시점 역시 정확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이용한 매운 떡볶이가 자리 잡은 시기를 19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궁중과 양반집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 이때라서다. 매운 떡볶이는 고추장과 설탕·물엿을 이용해 매운맛과 단맛을 강하게 낸다.

서울의 대표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떡과 고추장 소스, 라면 사리, 어묵 등을 넣고 손님이 직접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의 원조이자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광고 카피로도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집’이 유명하다. 70년대 들어 신당동에 떡볶이집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떡볶이 골목이 조성됐다. 당시 떡볶이는 연탄불로 조리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라고 한다. 70년대 중반 떡볶이 집 한 곳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DJ를 고용해 인기를 끌면서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는 DJ 문화가 퍼졌다. ‘몇 번 테이블에 라면 사리 하나 추가~’ 따위로 가끔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우스꽝스러운 DJ의 멘트가 여기서 나왔다. 가수 DJ DOC의 노래 ‘허리케인 박’에 나오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찾아간 곳은/찾아간 곳은/신당동 떡볶이집”이라는 가사에 나올 정도로 신당동의 즉석 떡볶이는 한 시대의 문화코드였다.
 
장수 길거리 음식의 으뜸
떡볶이가 대중화된 이유는 무엇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 때문이다. 조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조리법이 간단해 길거리에서 요리하기도 쉽다. 한국 어디를 가든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길거리 음식으로서 생명력도 길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박남수 팀장은 “떡볶이와 어묵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생존해온 길거리 음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길거리 음식은 요란하게 뜨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박 팀장은 “수년 전 중국 만두인 딤섬이나 일본에서 인기 있는 단밤을 파는 노점이 등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2~3년 전부터 프랜차이즈화
포장마차 음식에 머물던 떡볶이가 최근 몇 년 새 브랜드화하고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깨끗한 인테리어의 점포 안 메뉴로 바뀐 것은 물론 메뉴도 다양화했다. ‘자장 떡볶이’ ‘마늘 떡볶이’뿐만 아니라 떡 모양도 길죽한 것에서 별·돼지 모양까지 무척 다양해졌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2~3년 전부터 판매방식이 길거리 매장에서 카페 형태의 실내 점포로 바뀌면서 떡볶이가 위생적인 건강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떡볶이에 해물이나 등갈비 등을 추가한 ‘떡찜’도 1~2년 전 보급되기 시작했다. 가격이 분식집 떡볶이보다 비싸지만 푸짐하게 나오기 때문에 간식보다 한 끼 식사로 대접받는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떡볶이를 메뉴로 내놓고 있는 프랜차이즈업체는 아딸·해피궁·올리브떡볶이·디델리 등 33개며, 가맹점은 1100개 정도다. 지난해 기준으로 떡면(떡볶이용 떡) 시장은 2100억원 규모다. 쌀떡 시장(1532억원)이 밀가루떡 시장(552억원)보다 크다. 전체 떡면의 11%가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소비된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고급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정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런 곳에선 고추장보단 간장으로 양념한 궁중떡볶이가 많은 편이다. 고기와 버섯 등 비싼 재료를 넣어 가격은 1만원대 이상으로 비싸다. 떡볶이도 얼마든지 웰빙 트렌드에 맞춰 고급 건강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에 따라 케첩이나 후추·겨자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추가하는 양념 종류에 따라 치즈 떡볶이, 곱창 떡볶이, 자장 떡볶이 등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
 
세련된 마케팅으로 세계 겨냥
떡볶이를 영문표기법으로 표기하면 ‘Tteokbokki’다. 하지만 이 철자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렵다. 농식품부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선 보다 친숙한 영문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언어학자·요리전문가와 영어권·비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떡볶이의 국제 이름이 ‘Topokki’다. 농식품부 농산경영팀 윤재돈 주무관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Topoki’가 발음하기는 약간 쉬웠지만 떡볶이의 원래 발음 ‘떡뽀끼’와 비슷하고 발음할 때 된소리가 나와 힘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Topokki’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에게 이국적이면서도 강한 청각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Topokki’가 웹스터 등 외국의 주요 사전에 정식으로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떡볶이 축제도 연다. 농식품부와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28~29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떡볶이 축제가 정부 주최로 열릴 정도로 대접이 달라졌다. 농식품부는 올해 부터 5년간 떡볶이 생산개발·수출·해외홍보 3개 분야에 14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ㅠ>초밥·파스타처럼 성공할 수 있어
11일 떡볶이연구소 개소식에서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떡면이 공개됐다. 대부분 시판 중인 제품이지만 홍삼가루를 넣은 떡면 등 신개념의 제품도 있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이종규 상무는 “현재 떡면은 조직감(씹는 맛)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모양의 다양화를 꾀하는 수준”이라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쫄깃쫄깃한 정도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중국·일본 이외의 나라 사람은 쫄깃한 떡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떡볶이 메뉴의 규격화·표준화도 시급하다. 하영제 농식품부 2차관은 “흔히 한국 요리를 설명하면서 ‘소금 적당량’ ‘참기름 몇 방울’ 따위로 대충 말하는데, 외국인은 이런 조리법에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말했다. 매운맛 측정 기기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맛·신맛처럼 매운맛도 측정할 수 있어야 세계인의 입맛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효 떡볶기연구소장은 “떡면과 소스를 다양화하고 조리법을 표준화·매뉴얼화해 떡볶이를 이탈리아의 스파게티와 일본의 초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메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부품·정비업 30여년 … ‘완제기 꿈’ 날갯짓

대한항공의 부산 항공우주테크센터 가보니

부산=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 제106호 | 20090322 입력

 

대한항공 테크센터 정비사들이 군용기를 점검하고 있다. 왼쪽에 A-10 공격기, 오른쪽에 CH-53 헬기가 늘어서 있다.

19일 오후 부산 김해공항에 맞붙어 있는 대한항공 항공우주테크센터. 73만㎡(약 22만 평)의 대지 위에 7층 건물 높이(20m 내외)의 대형 공장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1700여 명의 직원들이 국군·미군의 군용기와 민항기를 정비·개조하고, 수출용 항공기 부분품을 만드는 곳이다.

방금 정비를 마친 대한항공과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의 B747이 공장 격납고 앞에 나란히 서 있는 게 눈길을 끈다. 공장 안에 들어가 보니 F-15, F-16 전투기를 비롯해 A-10 공격기, UH-60 헬기 등 군용기 수십 대가 정비 중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사용하던 CH-53 헬기도 먼지를 뒤집어쓴채 정비를 받으러 들어와 있었다.

민항기 제조공장에선 미국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 B787에 들어갈 부분품 생산이 한창이다. 공장 안에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는 10여 명의 기술자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얇은 종이를 겹겹이 붙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종이가 아니라 B787의 몸체를 이룰 첨단 소재인 탄소섬유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기술자들은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탄소섬유는 특수 접착제를 이용해 최대 60여 겹까지 붙인다. 이어 비행기 구조물에 맞는 형태로 가공한 뒤 거대한 오븐에서 단단해질 때까지 굽는다. 6~8시간 동안 120~150도의 열을 가하면 공기가 팽창하며 탄소섬유를 강하게 압축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접착 효과가 크기 때문에 기존 항공기를 만들 때처럼 리벳(철판 고정용 굵은 못)을 쓸 필요가 없다.

테크센터의 김종하 상무는 “열팽창계수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으면 불량품이 되기 때문에 아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며 “고열에도 탄소섬유가 비틀리지 않는 기술을 자체 개발했으며, 특허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신 상무는 “알루미늄 소재를 쓰는 기존 항공기와 달리 탄소섬유를 쓰면 무게가 훨씬 가벼워 연료 소모가 줄어들고, 부식과 변형이 적어 항공기의 수명이 오래간다”며 “탄소섬유 비행기에선 가습기를 이용한 습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내 환경도 매우 쾌적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B787의 날개와 꼬리 등에 들어갈 6개의 핵심 부품을 제작해 보잉에 납품하고 있다. 세계 1100여 개 부품 공급처 가운데 기체 분야 최우수 공급처로 선정됐을 정도로 기술력과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 에어버스의 차세대 항공기 A350 프로젝트에도 화물칸 문 등을 제작, 공급한다. 말이 부품이지 큰 것은 가로·세로 길이가 3m씩 되는 대형 구조물이다. 2021년까지 확보한 해외 수출 주문 잔액은 13억5000만 달러(약 1조9000억원)에 달한다.

조항진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장(부사장)은 “대한항공은 보잉이 2005년 B787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참여해 자체 기술로 부분품 설계와 디자인을 제시했다”며 “대한항공의 항공기 제작 관련 기술 수준과 노하우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다”고 강조했다.
 
F-5 전투기 생산 경험도
테크센터의 연혁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항공은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항공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초창기에는 항공기 완제품 조립 생산에 집중했다. 헬기 500MD(군용)와 500D(민간용) 모델이 주력 제품이었다. 미국 전문업체 휴즈와 계약해 대량 생산 체제를 갖췄다. 박정희 대통령도 당시 테크센터를 찾아와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내 항공기 제조업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80년에는 최초의 국산 전투기 F-5E와 F-5F의 사업권자로 선정됐다. 미국 전투기 제작사인 노스럽과 계약하고 개발에 착수, 82년 9월 1호기를 공군에 납품했다. 이 사업으로 항공기 부품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얻어 전방·후방의 몸체를 포함한 3000여 개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다. 90년대 들어선 미국 시코르스키가 개발한 18인승 중형 헬기 UH-60의 생산에도 나섰다. 처음엔 조립생산으로 출발했지만 2, 3단계 사업을 거치면서 부품의 대부분을 국산화했다.

항공기 생산은 군용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은 84~88년 초경량 민간 항공기 ‘창공 1~3호’를 개발했다. 이어 91년에는 200마력급 5인승 항공기 ‘창공91’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항공기의 개발·제작·품질인증까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 이뤄낸 것이다. 창공91은 3대가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대기오염 탐사 등에 쓰인다.

그동안 만든 헬기와 전투기만도 500여 대에 달할 정도로 활발했던 대한항공의 항공기 제조업은 97년 외환위기로 시련을 맞게 된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가 주도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때문이다. 정부는 대우·삼성·현대그룹의 항공부문을 합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출범시킨 뒤 법을 만들어 KAI가 항공기 관련 방위산업 물량을 독점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군용기 제조 사업을 접어야 했다.

민항기 생산도 난관에 부닥쳤다. 국내 시장은 수요가 워낙 적고, 해외시장 개척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중국과 손잡고 100인승 규모의 민항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양국 정부의 정치적 문제로 없었던 일이 되기도 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무인 항공기와 50~100인승 규모의 중소형 민항기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70년대 개발된 500MD 헬기를 무인용으로 개조, 군사작전과 해양경찰의 해안 감시활동 등에 활용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김종하 상무는 “무인기 개조를 통한 500MD 헬기의 수명 연장 방안을 국방부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군용기 설계-개발-정비 일관화 추진
대한항공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KAI의 인수를 추진해왔다. 2003년에는 대우종합기계가 갖고 있는 KAI 지분(28.1%)을 1020억~1298억원에 사들이는 양해각서(MOU)까지 맺었다.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 2596만 주를 주당 최저 3930원에서 최고 5000원에 사되 실사를 통해 최종 가격을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대우종기가 실사와 상관없이 5000원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본계약이 무산됐다.

최근 대한항공은 다시 KAI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KAI 인수에) 당연히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함께 회의에 참석한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도 “지분 매각에 관심이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KAI 지분은 정부(산업은행)가 30.54%, 현대차·삼성·두산그룹이 각각 20.54%를 나눠 갖고 있다. 두산은 대우종기를 인수하면서 KAI의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항공기 제조업을 하는 업체는 대한항공과 KAI 2곳뿐이다. 하지만 군용기는 KAI가 설계·개발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정비·개조만 맡고 있을 뿐이다. 대한항공은 KAI를 인수하면 군용기의 설계에서 정비까지 일관공정을 갖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산업 합리화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산업은행이 갖고 있는 KAI 지분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산업은행과 두산그룹이 보유한 KAI 지분을 모두 사들인다면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KAI의 공동 대주주인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도 인수 후보자로 거론된다.

문제는 가격이다. 대한항공은 이미 한 차례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KAI의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KAI를 가져오면 항공우주 분야의 기술 개발과 경쟁력 향상에 시너지(상승) 효과가 기대된다”면서도 “그러나 가격이 맞지 않으면 무리해 인수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KAI는 2006년 경영 악화로 1100억원의 적자를 냈으나 산업은행이 나서 대규모 감자와 출자전환을 해 2007년 흑자로 돌아섰다. 반면 대한항공 항공우주 부문은 매년 견조한 실적을 올리며 회사 내 ‘효자 사업부’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고유가와 달러값 상승으로 여객·화물운송 부문에서 1364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항공우주 부문에선 284억원의 흑자를 냈다. 지난해 항공우주 부문 매출은 3776억원으로 전년보다 50% 늘었다. 대한항공이 KAI 인수에 대해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자신감을 보이는 배경이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