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習_아테나이칼럼/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9.03.24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2. 2019.02.23 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3. 2018.12.21 아버지의 컴퓨터
  4. 2018.12.16 아들의 고장난 의자
  5. 2018.10.21 모호함의 미학 (2)

* 2014년 오늘 페북에 올렸던 글 *


달리 공포의 중2가 아니다.
이 녀석들이 무서워서 북이 도발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더니..

중2 아들놈이 어제 저녁 제 엄마와 머리를 깍고 들어왔다.
좀 시원하게 깍고 왔는데.. 내 아들이지만 훤하게 잘 생겼다.
소지섭이는 저리 가라다.
그 동안 온통 덥수룩하니 덮은데다 이마까지 가리고 다니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얼굴을 좀 드러내 놓으니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 불만인 모양이다. 볼멘 얼굴이 불퉁하다.
지 나름대로 화장실에서 어떻게 손을 보고(?) 왔는 데도 영 아닌가 보다.
지 엄마에게 푸념을 해댄다.
오늘 가지 말자고 했더니.. 엄마가 깔끔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해서 그런다는 둥..
엄마는 엄마대로 억울해서 소리 높여 대꾸를 하고..
바깥의 거실이 한참 동안 시끄럽다.

나이에 비해 제법 속이 올찬 놈이라 이런 일로 신경쓰게 한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따라 유독 생억지를 부려댄다.
못들은 척 하고는 있었지만 속이 슬슬 끓어오른다.
내 급한 성질에 당장이라도 나가서 호통을 쳐 찍소리 못하게 눌러놓고 싶다.
하지만 들은 이야기가 있어 꾹 참는다.
저 때는 골프공과 같아서 좀 힘이 들어가면 악성 슬라이스가 되어 OB가 나버린다는..

좀 조용해지고 나서 아들에게 가서 말했다.

.. 살다보면 항상 문제를 만나게 된다.
모든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해결할 수 없는 일.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해결하면 되니 이제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좀 마음은 편치 않겠지만 어쩌겠냐.아무리 화를 내고 용을 써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쏟는 건 어리석지 않냐?
그게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다. ..

이렇게 말을 해도 대답은 여전히 삐딱하고 퉁명스럽다.
좀더 확실히 알아듣게 뭐라 좀 물리적인 가르침을 더 줘야 하나 짧은 시간 고민하다.. 이 녀석의 반응이 두려워서 참고 물러난다.

10여분 내 할 일 하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옆에 와서 헤헤거리고 부비고 장난을 친다.
짜슥이.. 에궁.. 참..

참길 잘했다.또 한 번 배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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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
2016년(병신년)에 모든 제사를 서울로 이관했다. 이관을 고하는 절차는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간략히 그 취지를 언급한 축문을 독축하는 것으로 이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장남으로써의 유기된 직무를 드디어 넘겨가져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근 20년 가까이를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제사를 맡아왔다. 제수씨의 수고를 더는 만큼 우리 부부의 심적 부담도 많이 가벼워졌다. 지차 입장에서 어른들 수발하며 4대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수씨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와 그동안의 노고는 내 평생의 고마운 마음의 빚이 될 것이다. 

제사를 이관하고 나니 매 기일마다 아버지는 서울 나들이를 하셔야 했다. 동생 가족은 아무래도 업이 있으니 부득이 윗대 제사는 참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버지는 거의 빠지지 않고 혼자서 올라오신다. 

첫 해에는 매 제사날이 오면 아침 일찍 그 제사의 어른을 모신 산소에 들렀다 오셨다. 여쭈어보니 제사가 서울로 옮겼졌음을 산소에서 다시 고하고, 조상님들께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린다고 하신다. 보통 정성스런 마음이 아니다.

**
설 다음 날 집에 있던 제사 용품들을 모두 챙겨서 서울로 옮겼다. 그 중에는 대를 이어 내려온 낡은 궤짝도 함께 가져왔다. 그 궤짝 안에는 별 게 다 들어 있었다. 대부분은 내 한문 실력으로는 읽어내기가 어렵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증조부님이 쓰시던 필갑이었다.
필갑의 뒷면을 보니 임인년에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임인년은 1902년과 1962년이 해당하는데, 일제 때의 호적등본도 들어있는 걸 보면, 적어도 1902년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1902년이라면 무려 117년이나 된 것이다.

그 속에는 소화7년 작은 아버지의 국민학교 졸업장도 있고,  소화11년에 할아버지가 매입한 선산의 매도증서도 있다. 
그리고 나의 대학 1학년 때 성적표도 있다. 행정우편으로 보내온 것을 아버지가 귀한 서류라고 생각하고 넣어두신 모양이다. 성적 내용은 내가 필기로 기입한 것이다. 세월은 이토록 흘렀지만 부끄러운 성적은 조금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

가락국기 필사본도 들어 있다. 신유년이라 표시된 걸 보니.. 1921년이나 1861년의 것인 듯하다.

틈이 날 때마다 필갑 속의 자료들을 하나씩 해독해보아야겠다.


**

또 한가지 의미있는 책자가 들어있다.

혼례 서간문 서식, 상례나 제사의 서식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책자는 내가 어릴 때부터 축문을 쓸 때 항상 참고해왔는데, 이번에 내용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니 약 100페이지에 이르는 매우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대부분 지금은 쓰일 일이 없는 내용들이지만, 나름 격식을 차려 서신을 써야 할 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내용 중에는 구황장생법도 들어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식량을 부족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지혜를 담은 내용이다. 찬찬히 공부해볼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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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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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제사에 참례하신다. 그렇게 참례하시고 나서 올라 오신 김에 며칠 머물다 가시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서울 집이 편치 않으신지 대체로 파제 날에 바로 내려가신다. 하지만 여름에 사흘 간격을 두고 있는 제사 때에는 부득이 며칠을 지내ㅅ히게 된다. 

작년에 그 제사 때 올라 오시는 데 모시러 갔더니 가져오신 여행용 가방이 평소보다 묵직하다. 보통 거의 빈 가방을 가지고 오셔서, 그 가방에 참례하지 못한 동생 식구들이 음복할 수 있도록 제사 음식을 담아 가져가신다. 이 묵직한 게 뭔지 궁금하다.

- 뭐가 들었는데 이렇게 무겁습니꺼?

"컴퓨터다"

- 컴퓨터를 뭣하러 가져오셨습니꺼? 여기도 좋은 거 있는데예.

"그걸로는 주식거래 못한다. 이걸로만 된다."

아하~ 인증서가 깔려 있어서 그러시는거다.
아버지께서 주식 거래를 해오신게 근 20년은 된 듯하다. 그렇다 하도 70세 전후에 주식을 시작하신 거다. 그러다 컴퓨터를 한 대 설치해달라고 해서 몇년 전에 노트북을 한 대 설치해드렸더니, 상당 시간을 주식거래에 매달리셨다. 간혹 대화를 나누다 보면 투자하신 개별 기업들의 내역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계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모든 개미 투자자가 그렇듯 별 재미는 못보셨다. 가끔 주식 때문에 화를 내시는 것을 보면 때로는 적잖은 손해를 보기도 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어떤 활동보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당히 무리하지 않고 하시라고만 잔소리하여 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아흔에 이른 노인네가 컴퓨터로 직접 주식거래를 하신다는 사실이.

**
아버지는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이 다 그렇듯 교육을 정규적으로 받아보시지 않으셨다. 일제 시대에 국민학교를 9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월반으로 들어가 3년 정도 다닌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사사하였고, 할머니가 아버지 7살 때 돌아가셔서 그 후 진례의 외가에 가서 외삼촌이 붙여주신 독선생으로부터 국민학교 과정을 과외로 배운 뒤에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학습 능력은 대단하신듯하다. 워낙 여러번 자랑을 하셨기에 훤히 외우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전쟁 중에 입대를 하셨는데, 고향 사람의 도움으로 운전병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운전병은 보병에 비해 생존율이 높았다고 한다. 거기다 보직을 잘받아서, 화천 지역에서 고지에 보급품을 올려보내는 케이블카 운전을 하게 되어 더욱 안전하고 끗발 좋은 군대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정비병 교육생으로 발탁되었고, 거기서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허박사'라는 별칭을 받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육해공군 정비병 대회에 선수로 발탁되신 듯하다. 그 교육과 시합을 위해 고향인 김해 공병학교에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으니, 대단한 군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3군 전체에서 1등을 하셨고, 그 부상으로 손목시계가 주어졌는데, 인솔 장교에게 빼앗아 가버린 것을 지금도 분하게 여기신다.

아버지는 이 자랑을 종종 하셨다. 너무 자랑스러워 하시기에, 어릴 때는 가끔 못믿겠다는 듯이 어깃장을 놓아보기도 했었다. 상장이나 증거가 있느냐, 누가 증언해줄 수 있느냐는 둥..

아버지의 이 자랑은 내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비록 증거도 증언도 없지만, 나라도 여기에 기록해두어야 언젠가 누군가는 아버지의 그 대단한 자랑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
지나고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학습능력은 정말 대단하셨던 것 같다.
주식거래를 70세가 넘어서 시작하셨고, 컴퓨터를 다루시는 것도 80세가 훨씬 넘어서 배우셨다. 최근까지 경매물건을 경락받으신다고 여기저기 다니시곤 한다. 그외에도 새로이 뭔가를 시작하거나 배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셨다. 새로운 농사 기법을 적용하거나 평생 다루어본 적이 없는 작물을 심어 갖은 고생을 다하기도 했다. 요즘 내 친구들이 자주 쓰는 꼰대어 '이 나이에..'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배움과 도전을 멈출 때 비로소 늙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 번도 늙어보시지 않으셨다. 지금도 웬간해서는 아들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걸음이 불편하고 숨이 차도 손수 다니시며 일을 챙기신다.  

아버지의 이 덕목의 유전자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 삶은 그 유전자에 빚진 바 크다. 그리고 내가 아들에게 꼭 물려주어야 할 빚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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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고장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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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 기숙사를 나오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학교로 데리러 갔다. 고등학교 시절 근 3년을 오로지 거기서 지냈으니 이사 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리 조금씩 갖다 날라서 많이 줄어있긴 했지만 아직도 남은 짐이 제법 있다고 한다.

3학년들이 있는 층에 올라가보니 먼저 나간 애들의 버린 짐(나중에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이 산더미 같다. 교복 등 옷이 대부분이고, 책, 선풍기, 스탠드, 청소용 밀대 등 다양하다. 집에 가져가서 그대로 잘 쓸 수 있을텐데 요즘 애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른다고 혀를 차며 아들 방으로 갔다. 큰 여행용 가방 2개에 쓰던 물건이 가득 차있고, 이불 보따리와 잡동사니를 담은 작지 않은 상자와 바구니 너댓 개, 거기다 의자가 두 개나 된다. 승용차에 다 실어질지 걱정이 된다. 

아들이 의자 하나는 버리고 가자고 한다. 버리자는 의자를 보니 입학할 때 단체로 구입한 듀오백형 의자이다. 동일한 모델을 사무실에서도 쓰고 있는데, 허리받침이 있어 오래 앉아 있어도 자세를 바르게 유지할 수 있어 좋다. 얼핏 보니 역시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다. 등받이의 잡아주는 나사 빠져 달아나 등받이가 덜렁거리고, 시트에는 뭘 쏟았는지 지저분하다. 차에 실을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니 정말 버리고 가야 하나 싶다. 

그런데 나사가 없는 것은 구해서 채우면 되고, 더러운 것은 씻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건이 아직 쓸만한데 버리는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아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물건을 어찌 가벼이 쓰레기로 버릴 수가 있나. 집사람도 집이나 사무실에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웬간하면 그러자고 아들 편을 들었지만, 일단 실어보자고 우겨서 애를 써보았다. 근데 아무리 요령을 부려보아도 다른 물건은 다 실렸는데 딱 그 의자 하나가 들어가질 못한다. 그 와중에 손가락은 어딘가에 걸려서 피가 흐르고 있다. 식구들의 짜증스런 표정이 눈으로 보지않아도 바늘로 찌르듯 느껴진다.

포기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지. 아버지가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들에게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지. 

그 참에 아들이 의자의 일부를 분리했다. 그리고 두 의자의 다리와 다리를 서로 얽어서 포개 보았더니 차의 뒷좌석 한쪽에 절묘하게 실어진다. 그 옆자리는 좌석도 좁고, 다리도 내려 놓을 수 없어 적잖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그런대로 참고 앉아갈 수는 있겠다. 그렇게 고장난 의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은 거 잘 한 거 같지?"
오는 길에 아들에게 슬쩍 물으니, 아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춘추전국시대 2대 패자(覇者)인 진문공(晉文公)은 19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정권을 잡는다. 그 오랜 고난의 망명 생활은 호언, 조쇠, 개자추, 위주, 선진 등과 같은 여러 충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 이제 황하를 건너기만 하면 진나라 땅이다. 호숙(壺叔)이 그동안 망명생활에서 쓰던 낡고 망가진 물건들을 일일이 배에 싣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진문공은 껄껄 웃으며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내가 오늘 진나라로 들어가면 진수성찬을 마음껏 먹을텐데, 이따위 쓰레기같은 물건들은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
吾今日入晉為君, 玉食一方, 要這些殘敝之物何用?" 喝教拋棄於岸, 不留一些)

그 말을 들은 호언(狐偃)은 진문공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이 세 가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신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신하는 군주를 존귀하게 하고 어진 신하는 군주를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신이 불초하여 공자를 오록에서 곤경에 빠트렸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조나라와 위나라의 군주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공자께서 취한 틈을 타 제나라 성을 빠져나와서 공자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지난 번에는 공자께서 나그네로 떠도는 중이라 감히 물러나겠다고 아뢰지 못하였으나, 이제 진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은 수년간 분주히 돌아다녔기에 넋이 놀라 끊어질 지경이고, 심력도 또한 다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그릇이나 깨진 사발과 같아 다시 상에 올릴 수 없고, 해진 돗자리나 구멍난 가림막과 같아서 다시 펼 수가 없습니다

신이 머물러도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신이 떠나도 전혀 잃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臣聞 '聖臣能使其君尊賢臣能使其君安.' 今臣不肖使公子困於五鹿一罪也受曹衛二君之慢二罪也乘醉出公子於齊城致觸公子之怒三罪也向以公子尚在羈旅臣不敢辭今入晉矣臣奔走數年驚魂幾絕心力並耗譬之餘籩殘豆不可再陳敝席破帷不可再設留臣無益去臣無損臣是以求去耳!")

이 말을 들은 진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호숙에게 일러 버렸던 물건들을 다시 싣게 하였다.


**
부귀하게 되었다고 빈천하던 시절의 물건을 가벼이 여긴다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호언(狐偃)은 그 점을 우려하여 진문공에게 에둘러 간언하였고, 진문공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고 반성한 것이다.

비슷한 가르침으로 이런 말이 있다.

交 忘(빈천지교 불가망)
妻 堂(조강지처 불하당)

가난하고 천하였을 때의 교우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어려움을 함께 한 아내는
결코 내보내어서는 아니된다.
_ 후한서(書) 송홍전(傳)


**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진 것에 자족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을
성공이라 하고
가진 것을 원하는 것을
행복이라 한다
_ 데일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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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모호함의 미학


..
내가 변리사로서 첫 실무를 시작했던 그 사무소의 대표 변리사는 군산 출신이셨다. 그 지방 출신답게 불특정 대명사인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가끔 내 자리에 어슬렁어슬렁 오셔서는 뜬금없이,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처음에는 질문하시는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어느 사건 말씀인가요?'라고 되묻기도 하고, 어떤 땐 최근에 함께 협의하였던 사건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라 여기고 그 사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상세히 보고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 그 질문에는 별 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별 일 없지?' 혹은 '열심히 하고 있는가?' 정도의 인사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좀 익숙해진 후에는 대화가 매우 순조로워졌다.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하고 있는가?"
"예. 거시기는.. 별 거시기 없습니다."

이런 희안한 우리 대화를 듣는 주변의 팀원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 '황산벌'에서 이문식의 '기시기' 관련 코메디 연기는 압권이었다. 신라의 첨자가 염탐해온 백제군들의 대화는 모두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나니, 제대로 염탐은 했으되 아무 것도 알게 된 게 없었다. 

'거시기'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의미한다. 때론 그 모호함이 참 유용하다. 그 모호함 속에는 항상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 단순한 말문을 트는 인사이거나, 정서적 공감에 대한 확인이거나, 난감한 구체적인 상황을 우회하기 위해서이거나..


**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각자 적잖은 농사를 지으셨다. 항상 여러 일꾼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두 분의 일꾼 다루는 방식이 판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식에 불만이 많으셨고, 항상 작은아버지의 방식을 부러워하셨다.

아버지는 성격이 곰꼼하신 분이라, 어떤 일이든 나름의 표준을 정하고 그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여 빈틈없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분이었다. 비닐 하우스를 지을 때에도 재료를 정확히 설계하고 재단하여 제자리에 어김없이 적용되도록 하셨고, 종이나 노끈 하나를 자르더라도 허투루 남거나 행여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 훌륭한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너무 여유없이 설계를 했다가 아까운 비닐 등 재료를 통째로 못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성정을 가진 분이시니, 일꾼들을 다룰 때에도 그랬다. 까다로운 당신의 방식을 사전에 세세히 전수하였고, 그들이 하는 일을 일일이 확인하셔야 직성이 풀리셨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도 주인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 신경 씀이 일하는 맛을 떨어뜨렸을 것이고 일의 효율에도 보탬이 될 리가 없었다. 특히나 곁에서 수발하는 어머니에게는 융통성 없는 숨막힘이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작은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대범하고 거친 편이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일 재주가 무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셨다. 그저 총괄적인 목표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막연히 일꾼들에게 맡겼다. 목표가 주어지면 일꾼들은 그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할당하고 일하는 방식도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그 일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스스로 일을 설계하고 시작하니, 충만한 성취동기를 가지고 즐겁고 효율적으로 일에 임하였을 것이다. 지시의 모호함은 자발성을 유발시키고, 자발성은 동기 부여와 성취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어릴 때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면 어쩐지 즐겁지가 않았다. 시시콜콜 시키는 대로만 하여야 하고, 시킨 대로 하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내 나름의 요령을 부렸다가는 호통이 떨어진다. 내가 일을 하면서도 내 일을 한다는 성취감이 없으니 일의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한 일이 잘 마무리 되면 그건 아버지가 시킨대로 한 결과이니 칭찬받을 이유도 없다. 아버지와의 일의 결과는 당연한 결과이거나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릴 때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세심함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복잡한 상황이나 민감한 기계장치에 관련하는 일에서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미묘한 사람의 심리를 고려한 세심함이 필요한 때가 있는가 하면, 디테일을 완전히 배제하고 큰 그림만을 가지고 모호하게 지시하여 내적 동기를 촉발시켜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모든 리더는 세심함과 모호함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덕목을 한 몸에 무장하여,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인간적 모습을 선택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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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가 되어 사무소를 개업하고 나니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일을 검수할 일이 내 일을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 업무의 특성상 오류가 허용되지 않으니 꼼꼼한 검수가 불가피하다. 워낙 다부지게 가르치니 한 때 우리 사무소는 변리사 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모든 메일과 문서 등의 작성에 있어 그 디테일에 집착하여 빈틈없이 검수한다. 내게 결재 올라온 서류에 칭찬은 없다. 가차없는 지적 사항들로 넘쳐난다. 최근에야 그 지적질 버릇을 좀 줄이긴 했지만 내 속의 '디테일의 악마'로 인해 그동안 적잖은 내상을 입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오래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실무 수습을 하였던 변리사를 얼마 전에 만났더니, 그 당시에 내가 지적해주었던 초안들을 아직 간직하고 가끔 들여다 본다고 한다. 낯이 화끈거렸다. 설마 내가 가르쳐준 것을 복습하기 위해 볼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지적질 투성이 초안을 다시 들여다 보았을까?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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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아들 방에서 모자 간의 대화가 좀 날카로워지더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내게까지 거슬리게 들려왔다. 대충 상황을 보니, 한참 정신 없을 고3 아들이 인터넷으로 딴 짓을 좀 하고 있었고, 그걸 본 아내는 더 빡세게 수험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이것저것 지적한 듯하다. 아들은 엄마의 지적하는 언어나 내용이 너무 불편하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말할 거 뭐 있냐고 반발하고 있다. 한참을 듣다가 둘다 불러서 잠시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아들의 태도를 중점으로 지적하며 어찌 풀리기는 했지만, 나는 사실 아내의 지적(질책) 방법이 영 마음에 불편하다. 그냥 '수험 준비 좀더 집중해서 노력해야지?' 정도로만 말하면 아들은 혼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지난 모의고사에서 어느 과목은 몇 등급이고 전체는 어떻게 되는데 지금 그런 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으면 결과가 어찌 되겠냐는 식으로 바늘로 찌르듯 콕콕 집어서 말하면, 설사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듣는 아이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설사 어찌 좀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촛불만큼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질책에 훅 꺼져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고3은 지금 한창 피말리게 경기를 하고 있는 라운딩 중의 골프 선수와 같다. 그런 선수에게는 그저 총괄적인 상위개념으로 간단히 말하는 게 좋다. 이렇게.. "아들아~ 잘 하고 있나?" 혹은 "힘들재? 쉬엄쉬엄해라~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거든.' 



..
그래서 이런 격언이 생각난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과도한 디테일은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망가뜨리는 악마가 될 수 있다. 악마는 그냥 디테일 속에 숨겨서 드러내지 말고, 그저 상위 개념만 언급하는 것이 평화와 사랑을 유지하는 최고의 지혜이다.

여하튼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우리 전라도 말 속의 '거시기'라는 표현이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여러분들~ 경기가 어려운 요즘 다들 거시기 하고 하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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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