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오늘 페북에 올렸던 글 *


달리 공포의 중2가 아니다.
이 녀석들이 무서워서 북이 도발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더니..

중2 아들놈이 어제 저녁 제 엄마와 머리를 깍고 들어왔다.
좀 시원하게 깍고 왔는데.. 내 아들이지만 훤하게 잘 생겼다.
소지섭이는 저리 가라다.
그 동안 온통 덥수룩하니 덮은데다 이마까지 가리고 다니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얼굴을 좀 드러내 놓으니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 불만인 모양이다. 볼멘 얼굴이 불퉁하다.
지 나름대로 화장실에서 어떻게 손을 보고(?) 왔는 데도 영 아닌가 보다.
지 엄마에게 푸념을 해댄다.
오늘 가지 말자고 했더니.. 엄마가 깔끔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해서 그런다는 둥..
엄마는 엄마대로 억울해서 소리 높여 대꾸를 하고..
바깥의 거실이 한참 동안 시끄럽다.

나이에 비해 제법 속이 올찬 놈이라 이런 일로 신경쓰게 한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따라 유독 생억지를 부려댄다.
못들은 척 하고는 있었지만 속이 슬슬 끓어오른다.
내 급한 성질에 당장이라도 나가서 호통을 쳐 찍소리 못하게 눌러놓고 싶다.
하지만 들은 이야기가 있어 꾹 참는다.
저 때는 골프공과 같아서 좀 힘이 들어가면 악성 슬라이스가 되어 OB가 나버린다는..

좀 조용해지고 나서 아들에게 가서 말했다.

.. 살다보면 항상 문제를 만나게 된다.
모든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해결할 수 없는 일.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해결하면 되니 이제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좀 마음은 편치 않겠지만 어쩌겠냐.아무리 화를 내고 용을 써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쏟는 건 어리석지 않냐?
그게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다. ..

이렇게 말을 해도 대답은 여전히 삐딱하고 퉁명스럽다.
좀더 확실히 알아듣게 뭐라 좀 물리적인 가르침을 더 줘야 하나 짧은 시간 고민하다.. 이 녀석의 반응이 두려워서 참고 물러난다.

10여분 내 할 일 하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옆에 와서 헤헤거리고 부비고 장난을 친다.
짜슥이.. 에궁.. 참..

참길 잘했다.또 한 번 배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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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제사의 이관과 증조할아버지의 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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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병신년)에 모든 제사를 서울로 이관했다. 이관을 고하는 절차는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간략히 그 취지를 언급한 축문을 독축하는 것으로 이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장남으로써의 유기된 직무를 드디어 넘겨가져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근 20년 가까이를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제사를 맡아왔다. 제수씨의 수고를 더는 만큼 우리 부부의 심적 부담도 많이 가벼워졌다. 지차 입장에서 어른들 수발하며 4대 봉제사에 정성을 다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수씨의 후덕한 마음 씀씀이와 그동안의 노고는 내 평생의 고마운 마음의 빚이 될 것이다. 

제사를 이관하고 나니 매 기일마다 아버지는 서울 나들이를 하셔야 했다. 동생 가족은 아무래도 업이 있으니 부득이 윗대 제사는 참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버지는 거의 빠지지 않고 혼자서 올라오신다. 

첫 해에는 매 제사날이 오면 아침 일찍 그 제사의 어른을 모신 산소에 들렀다 오셨다. 여쭈어보니 제사가 서울로 옮겼졌음을 산소에서 다시 고하고, 조상님들께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린다고 하신다. 보통 정성스런 마음이 아니다.

**
설 다음 날 집에 있던 제사 용품들을 모두 챙겨서 서울로 옮겼다. 그 중에는 대를 이어 내려온 낡은 궤짝도 함께 가져왔다. 그 궤짝 안에는 별 게 다 들어 있었다. 대부분은 내 한문 실력으로는 읽어내기가 어렵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증조부님이 쓰시던 필갑이었다.
필갑의 뒷면을 보니 임인년에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임인년은 1902년과 1962년이 해당하는데, 일제 때의 호적등본도 들어있는 걸 보면, 적어도 1902년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1902년이라면 무려 117년이나 된 것이다.

그 속에는 소화7년 작은 아버지의 국민학교 졸업장도 있고,  소화11년에 할아버지가 매입한 선산의 매도증서도 있다. 
그리고 나의 대학 1학년 때 성적표도 있다. 행정우편으로 보내온 것을 아버지가 귀한 서류라고 생각하고 넣어두신 모양이다. 성적 내용은 내가 필기로 기입한 것이다. 세월은 이토록 흘렀지만 부끄러운 성적은 조금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

가락국기 필사본도 들어 있다. 신유년이라 표시된 걸 보니.. 1921년이나 1861년의 것인 듯하다.

틈이 날 때마다 필갑 속의 자료들을 하나씩 해독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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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의미있는 책자가 들어있다.

혼례 서간문 서식, 상례나 제사의 서식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책자는 내가 어릴 때부터 축문을 쓸 때 항상 참고해왔는데, 이번에 내용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니 약 100페이지에 이르는 매우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대부분 지금은 쓰일 일이 없는 내용들이지만, 나름 격식을 차려 서신을 써야 할 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내용 중에는 구황장생법도 들어있다.
어려웠던 시절에 식량을 부족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지혜를 담은 내용이다. 찬찬히 공부해볼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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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버지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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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제사에 참례하신다. 그렇게 참례하시고 나서 올라 오신 김에 며칠 머물다 가시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서울 집이 편치 않으신지 대체로 파제 날에 바로 내려가신다. 하지만 여름에 사흘 간격을 두고 있는 제사 때에는 부득이 며칠을 지내ㅅ히게 된다. 

작년에 그 제사 때 올라 오시는 데 모시러 갔더니 가져오신 여행용 가방이 평소보다 묵직하다. 보통 거의 빈 가방을 가지고 오셔서, 그 가방에 참례하지 못한 동생 식구들이 음복할 수 있도록 제사 음식을 담아 가져가신다. 이 묵직한 게 뭔지 궁금하다.

- 뭐가 들었는데 이렇게 무겁습니꺼?

"컴퓨터다"

- 컴퓨터를 뭣하러 가져오셨습니꺼? 여기도 좋은 거 있는데예.

"그걸로는 주식거래 못한다. 이걸로만 된다."

아하~ 인증서가 깔려 있어서 그러시는거다.
아버지께서 주식 거래를 해오신게 근 20년은 된 듯하다. 그렇다 하도 70세 전후에 주식을 시작하신 거다. 그러다 컴퓨터를 한 대 설치해달라고 해서 몇년 전에 노트북을 한 대 설치해드렸더니, 상당 시간을 주식거래에 매달리셨다. 간혹 대화를 나누다 보면 투자하신 개별 기업들의 내역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계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모든 개미 투자자가 그렇듯 별 재미는 못보셨다. 가끔 주식 때문에 화를 내시는 것을 보면 때로는 적잖은 손해를 보기도 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어떤 활동보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당히 무리하지 않고 하시라고만 잔소리하여 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아흔에 이른 노인네가 컴퓨터로 직접 주식거래를 하신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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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이 다 그렇듯 교육을 정규적으로 받아보시지 않으셨다. 일제 시대에 국민학교를 9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월반으로 들어가 3년 정도 다닌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사사하였고, 할머니가 아버지 7살 때 돌아가셔서 그 후 진례의 외가에 가서 외삼촌이 붙여주신 독선생으로부터 국민학교 과정을 과외로 배운 뒤에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학습 능력은 대단하신듯하다. 워낙 여러번 자랑을 하셨기에 훤히 외우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전쟁 중에 입대를 하셨는데, 고향 사람의 도움으로 운전병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운전병은 보병에 비해 생존율이 높았다고 한다. 거기다 보직을 잘받아서, 화천 지역에서 고지에 보급품을 올려보내는 케이블카 운전을 하게 되어 더욱 안전하고 끗발 좋은 군대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정비병 교육생으로 발탁되었고, 거기서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허박사'라는 별칭을 받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육해공군 정비병 대회에 선수로 발탁되신 듯하다. 그 교육과 시합을 위해 고향인 김해 공병학교에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으니, 대단한 군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3군 전체에서 1등을 하셨고, 그 부상으로 손목시계가 주어졌는데, 인솔 장교에게 빼앗아 가버린 것을 지금도 분하게 여기신다.

아버지는 이 자랑을 종종 하셨다. 너무 자랑스러워 하시기에, 어릴 때는 가끔 못믿겠다는 듯이 어깃장을 놓아보기도 했었다. 상장이나 증거가 있느냐, 누가 증언해줄 수 있느냐는 둥..

아버지의 이 자랑은 내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비록 증거도 증언도 없지만, 나라도 여기에 기록해두어야 언젠가 누군가는 아버지의 그 대단한 자랑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
지나고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학습능력은 정말 대단하셨던 것 같다.
주식거래를 70세가 넘어서 시작하셨고, 컴퓨터를 다루시는 것도 80세가 훨씬 넘어서 배우셨다. 최근까지 경매물건을 경락받으신다고 여기저기 다니시곤 한다. 그외에도 새로이 뭔가를 시작하거나 배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셨다. 새로운 농사 기법을 적용하거나 평생 다루어본 적이 없는 작물을 심어 갖은 고생을 다하기도 했다. 요즘 내 친구들이 자주 쓰는 꼰대어 '이 나이에..'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배움과 도전을 멈출 때 비로소 늙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 번도 늙어보시지 않으셨다. 지금도 웬간해서는 아들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걸음이 불편하고 숨이 차도 손수 다니시며 일을 챙기신다.  

아버지의 이 덕목의 유전자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 삶은 그 유전자에 빚진 바 크다. 그리고 내가 아들에게 꼭 물려주어야 할 빚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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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4차산업혁명의 파도, 막을 것인가, 즐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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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어느 저녁은 울산 시내에서 행사를 마치고 울산역으로 가서 고속철로 서울로 복귀하는 동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택시가 파업이다. 난감하였다. 부득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디서 타고 얼마나 걸리는지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하여 체크하느라 행사 내내 신경을 써야했다.

택시의 파업은 공유차 카풀의 등장에 생업의 위협을 느낀 택시 기사들이 집단행동이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응당한 이유가 있다. 카풀은 택시업계에 치명적인 변수가 될 것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그들의 삶의 길인 도로를 막고 그들의 밥줄인 승객의 발을 묶고,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을 던지며, 이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
1800년대 초 증기기관과 방직기계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과거의 수공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숙련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깍이게 되었다. 특히 영국 직물공업지대인 노팅엄에서 노동자들은 실업과 생활고의 원인이 기계의 탓이라 주장하며 방직기 등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을 러다이트(Luddite Movement) 운동이라 부른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이 생존의 운동은 안타깝게도 정부가 자본가들에 의한 가혹한 탄압에 의해 오래지 않아 진압되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는 항상 그에 대한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할 때에도 그러했다. 자동차라는 괴물을 만난 기존의 마차산업과 마부들의 저항은 무척이나 거세었다. 그들은 직물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큰 조직력을 가지고 영국 정부와 의회를 압박하여,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s, 1865년 제정, 1896년 폐지)라는 희안한 법을 제정하게 하였다. 

적기조례는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6.4km이하로 제한하고, 최소한 3명의 승무원이 있어야 하며, 특히 그 중에서 조수는 자동차의 60야드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걸어가며 마차의 통행을 보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터무니 없는 법은 30년간 유지되면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유럽에서 가장 뒤처지게 만들었다.

택시업계의 저항은 이 시대의 '러다이트 운동'이고, 이 시대의 '적기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과 적기조례를 설명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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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의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카풀'은 '공유경제'의 한 모습이다. '공유경제'는 소유한 자와 필요로 하는 자를 연결하여 양측 모두에게 소유의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이다. 카카오택시 카풀은 택시업계의 저항으로 서비스를 중단하였지만, 우리나라 내에서만도 '타다', '그린카', '쏘카' 등의 카풀 혹은 카셰어링 서비스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우버,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의 그랩 등이 택시계의 '공유경제' 모델이다.

'공유경제'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과 '한계비용 제로의 시대' 등에서 산업혁명에 따른 '한계비용 저감'과 '탈중앙화'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귀결될 경제 시스템이 될 것으로 강조하였다. 실제로 공유차량 시스템을 제공한 우버는 그 기업가치가 135조원으로서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에 이어 미국 스타트업의 2, 3위를 차지하는 기업가치 수십조원의 에어비앤비와 위워크도 모두 '공유' 시스템 회사이다. 에어비앤비는 숙소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서 방 한 칸 소유하고 있지 않은 호텔업이며, 위워크는 사무실 공간 한평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무실 임대회사이다. 이들 공유시스템 회사들의 폭발적 성장은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이처럼 4차산업혁명의 궁극적 모습은 필경 공유경제로 귀결될 것이다. 그것은 거센 파도와 같다. 그 파도는 누구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수많은 산업이 토종 업종 보호, 골목 상권 보호 등을 부르짓으며 저항하다가 결국은 장렬히 사라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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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2월5일은 기억해두어야 할 중요한 날이다.
'자율운전 택시'가 세계 최초로 운행을 개시한 날이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시에서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근 10년간 약 800만마일을 실주행 테스트하며 공들인 자율운전차로 실제 상업적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자율운전차 시대를 연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자율운전 택시는 미국에서부터 서서히 확산되어 어느날 우리 생활에까지 퍼질 것이고,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우리 삶에 익숙한 표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들어올까? 이제 그 날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자율운전차도 4차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구성요소이다. 이 자율운전차 역시 공유경제와 함께 택시업계에는 저항할 수 없는 파도가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율운전차에는 운전자가 필요없다. 

머잖아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택시 업계에게 있어서는, 카풀과 같은 '공유경제'의 파도는 멀미를 일으키는 파랑 정도라고 한다면, '자율운전차'의 파도는 쓰나미에 비견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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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참 묘한 산업 영역이다. 누가 의도하여 이런 판을 일부러 짜지는 않았겠지만, 관계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정부, 택시회사, 택시기사, 승객 모두 불만이 가득하다.
거기다 작금의 4차산업혁명이라는 시대 변화마저 이 산업에 우호적이지 못하다. 이 시대 변화가 그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으로 인해 모두가 다시 불편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불만의 무한사이클을 생성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택시업계의 불만 사이클을 해소하는 방책은 그 사이클의 내부에서는 결코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파도가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택시산업을 직접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것은 '카풀'이지만, 정작 그 본질은 '4차산업혁명'이다. 지금 저들은 '4차산업혁명'과 대적하고자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게임일까? 속도를 아주 조금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그들의 저항이 택시의 대안으로서 공유차량의 조기 등장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 택시업계의 갈등과 고통은 그들만의 것일까?
택시의 갈등은 이 시대의 변화로 인해 드러난 작은 증상일 뿐이다. 더 큰 증상은 제조업 등의 현장에서 이미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며 여러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을 비방하며 그 고통을 잠시나마 완화시켜보려 하지만, 지금 기업들을 엄습하는 불안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는 다들 공감하고 있다. 그건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라는 것을. 


**
파도는 멈추게 할 수 없다. 
거대한 파도가 닥치면, 누군가는 파도에 휩싸여 사라지고, 누군가는 파도에 올라 서핑을 타며 즐길 것이다.
지금까지 영위해오던 자신의 업에서 뭔가 버거운 위협이 느껴진다면, 온몸으로 저항하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파도일지 모른다. 이제 그 파도를 직시하여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타이밍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 파도의 에너지에 몸을 맡겨 새로운 게임을 즐길 전혀 다른 역량을 찾아 갖추어야 할 때이다.  

파도는 막지 못한다.
하지만 그 파도를 즐길 수는 있다.
파도를 즐기려면 서핑을 배워야 한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들의 고장난 의자


**
아들이 학교 기숙사를 나오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학교로 데리러 갔다. 고등학교 시절 근 3년을 오로지 거기서 지냈으니 이사 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리 조금씩 갖다 날라서 많이 줄어있긴 했지만 아직도 남은 짐이 제법 있다고 한다.

3학년들이 있는 층에 올라가보니 먼저 나간 애들의 버린 짐(나중에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이 산더미 같다. 교복 등 옷이 대부분이고, 책, 선풍기, 스탠드, 청소용 밀대 등 다양하다. 집에 가져가서 그대로 잘 쓸 수 있을텐데 요즘 애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른다고 혀를 차며 아들 방으로 갔다. 큰 여행용 가방 2개에 쓰던 물건이 가득 차있고, 이불 보따리와 잡동사니를 담은 작지 않은 상자와 바구니 너댓 개, 거기다 의자가 두 개나 된다. 승용차에 다 실어질지 걱정이 된다. 

아들이 의자 하나는 버리고 가자고 한다. 버리자는 의자를 보니 입학할 때 단체로 구입한 듀오백형 의자이다. 동일한 모델을 사무실에서도 쓰고 있는데, 허리받침이 있어 오래 앉아 있어도 자세를 바르게 유지할 수 있어 좋다. 얼핏 보니 역시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다. 등받이의 잡아주는 나사 빠져 달아나 등받이가 덜렁거리고, 시트에는 뭘 쏟았는지 지저분하다. 차에 실을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니 정말 버리고 가야 하나 싶다. 

그런데 나사가 없는 것은 구해서 채우면 되고, 더러운 것은 씻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건이 아직 쓸만한데 버리는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아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물건을 어찌 가벼이 쓰레기로 버릴 수가 있나. 집사람도 집이나 사무실에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웬간하면 그러자고 아들 편을 들었지만, 일단 실어보자고 우겨서 애를 써보았다. 근데 아무리 요령을 부려보아도 다른 물건은 다 실렸는데 딱 그 의자 하나가 들어가질 못한다. 그 와중에 손가락은 어딘가에 걸려서 피가 흐르고 있다. 식구들의 짜증스런 표정이 눈으로 보지않아도 바늘로 찌르듯 느껴진다.

포기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지. 아버지가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들에게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지. 

그 참에 아들이 의자의 일부를 분리했다. 그리고 두 의자의 다리와 다리를 서로 얽어서 포개 보았더니 차의 뒷좌석 한쪽에 절묘하게 실어진다. 그 옆자리는 좌석도 좁고, 다리도 내려 놓을 수 없어 적잖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그런대로 참고 앉아갈 수는 있겠다. 그렇게 고장난 의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은 거 잘 한 거 같지?"
오는 길에 아들에게 슬쩍 물으니, 아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춘추전국시대 2대 패자(覇者)인 진문공(晉文公)은 19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정권을 잡는다. 그 오랜 고난의 망명 생활은 호언, 조쇠, 개자추, 위주, 선진 등과 같은 여러 충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 이제 황하를 건너기만 하면 진나라 땅이다. 호숙(壺叔)이 그동안 망명생활에서 쓰던 낡고 망가진 물건들을 일일이 배에 싣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진문공은 껄껄 웃으며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내가 오늘 진나라로 들어가면 진수성찬을 마음껏 먹을텐데, 이따위 쓰레기같은 물건들은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
吾今日入晉為君, 玉食一方, 要這些殘敝之物何用?" 喝教拋棄於岸, 不留一些)

그 말을 들은 호언(狐偃)은 진문공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이 세 가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신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신하는 군주를 존귀하게 하고 어진 신하는 군주를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신이 불초하여 공자를 오록에서 곤경에 빠트렸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조나라와 위나라의 군주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공자께서 취한 틈을 타 제나라 성을 빠져나와서 공자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지난 번에는 공자께서 나그네로 떠도는 중이라 감히 물러나겠다고 아뢰지 못하였으나, 이제 진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은 수년간 분주히 돌아다녔기에 넋이 놀라 끊어질 지경이고, 심력도 또한 다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그릇이나 깨진 사발과 같아 다시 상에 올릴 수 없고, 해진 돗자리나 구멍난 가림막과 같아서 다시 펼 수가 없습니다

신이 머물러도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신이 떠나도 전혀 잃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臣聞 '聖臣能使其君尊賢臣能使其君安.' 今臣不肖使公子困於五鹿一罪也受曹衛二君之慢二罪也乘醉出公子於齊城致觸公子之怒三罪也向以公子尚在羈旅臣不敢辭今入晉矣臣奔走數年驚魂幾絕心力並耗譬之餘籩殘豆不可再陳敝席破帷不可再設留臣無益去臣無損臣是以求去耳!")

이 말을 들은 진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호숙에게 일러 버렸던 물건들을 다시 싣게 하였다.


**
부귀하게 되었다고 빈천하던 시절의 물건을 가벼이 여긴다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호언(狐偃)은 그 점을 우려하여 진문공에게 에둘러 간언하였고, 진문공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고 반성한 것이다.

비슷한 가르침으로 이런 말이 있다.

交 忘(빈천지교 불가망)
妻 堂(조강지처 불하당)

가난하고 천하였을 때의 교우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어려움을 함께 한 아내는
결코 내보내어서는 아니된다.
_ 후한서(書) 송홍전(傳)


**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진 것에 자족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을
성공이라 하고
가진 것을 원하는 것을
행복이라 한다
_ 데일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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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문공(晉文公)과 한고조(漢高祖)의 논공행상(論功行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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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