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상장(敎學相長) 효학반(斅學半)

_ 禮記 學記篇



비록 좋은 요리가 있다 하더라도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알 수 없고,


비록 지극한 도(道)가 있다 한들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은 점을 알 수 없다.

그러니 배우고 나서야 부족함을 알게 되고,

가르쳐보고 나서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알고 나면 스스로를 되돌아볼 줄 알게 되고

어려움을 알고 나면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가르침은 배움의 절반이라 했으니,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리라.

_ 예기 학기편


雖有佳肴 不食不知其旨也

雖有至道 不學不知其善也

是故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知不足然後能自反也

知困然後能自强也

故曰敎學相長說命曰 斅學半

其此之謂乎

_ 禮記 學記篇



**

學然後 知不足(학연후 지부족)      배워야만 자신의 모자람을 알며,
敎然後 知困(교연후 지곤)
     가르쳐 보아야만 어려움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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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학반(斅學半)

가르침(斅)은 배움(學)의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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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열(傅說)

[부열()은 중국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이다. 그는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룬 사람이다. 다음은 그가 군주에게 ‘학()’에 대해서 훈고()하는 내용의 말이다. 은나라의 재상 부열이 말했다. 

“모든 일을 배움에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 자기 몸을 수양할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지면 아무것도 안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에 힘쓰고,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간다. 또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할 수 있게 된다.”] _ [네이버 지식백과] 효학반 [斅學半] (두산백과)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일을 도모하는 자는 이해의 모든 사정을..
 _ 의사자(議事者)와 임사자(任事者) _ 채근담

일을 도모하는 자는
몸을 일 밖에 두어
이해(
利害)모든 사정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일을 맡은 자는 
몸을 일 속에 두어
이해(
利害)에 대한 생각을
마땅히 잊어야 한다.
議事者 身在事外 宜悉利害之情
任事者 身居事中 當忘利害之慮
_ 菜根譚 제1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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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이해(利害)'를 여하히 조절할 것인가?
당면의 '일'의 결과가 자신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이해'에 관련이 있을 때, '일'에 관계한 사람은 어떤 입장을 취하여야 할 것인가?
채근담은 일을 도모하거나 일을 실행함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위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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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그 결과가 가져올 이해득실을 미리 가늠하여야 한다.
만약 누구에게 이익이 된다면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그 일로부터 벗어난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익과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든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일을 맡아서 진행하는 자는 그 일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 일이 자신 혹은 누군가에게 어떤 이익과 손해가 주어질 것인지를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그런 생각은 일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맡은 사람은 자신을 일 속에 몰입시켜,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해관계로부터 격리시켜야만 공정하게 처리된 일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몸을 일 속에 두라'는 말은, 외부의 소리에 영향을 받아서는 아니됨을 가르친다. 
'일'을 방패나 보호벽으로 삼아, 외부에서 들려오는 온갖 이해관계의 소리를 철저히 차단하여, 당초의 뜻에 따른 일의 추진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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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보노(Cui bono)?"

'이익을 보는 자 누구인가?'("to whom is it a benefit?")
혹은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가는가?'
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범죄의 용의자를 찾아낼 때 많이 쓰이는 말로서, 범죄 등의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해 이익을 보게 되는 자 즉 '쿠이보노(Cui Bono)'를 상정해보면, 그 이슈의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범죄 등에 있어 숨은 동기를 가진 자, 이익을 입거나 손해를 면하게 되는 자..

이 말은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인 키케로(Cicero)가 어느 변론 연설에서 인용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
로마의 부호 로스키우스가 살해당한 사건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용의자였던 피살자의 아들 로스키우스2세를 변호하였다. 대충 이런 말이다.

.. 만약 로스키우스2세가 친부살해죄로 처형된다면, 누가 가장 이익을 볼까(Cui Bono)? 로스키우스가 죽은 후 그의 농장을 헐값에 차지한 크리소고누스일까? 아니면 증인으로 나와서 로스키우스2세가 그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증언한 사촌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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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보노(Cui Bono)'는 복잡한 이슈들을 좀더 간편하게 해석하고자할 때 판단의 잣대로서 널리 이용돤다.
예를 들어,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 조절,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 등과 같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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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단체나 조직의 특성을 파악할 때에도 이 말을 사용한다.
어떤 조직이 존재할 때, 그 조직 활동의 결과가 누구의 이익이 돌아가는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쿠이보노에 따라 조직의 특성을 분류해보면,
일반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익조직,
수혜자에게 베푸는 봉사조직,
친목단체 처럼 조직 구성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호혜조직,
소유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조직으로 나뉘어진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나라에는 네 개의 '벼리'(維)가 있다
(國有四維)

_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


제례의 축문(祝文)은 항상 '維'자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벼리 유'(維)로 읊는다. 
'벼리'는 사전에 보면 '그물 위쪽 코를 꿰어 놓은 .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라 풀고 있다, 즉, '벼리'는 그물의 모통이들에 묶은 그물줄이다. 사람들은 이 그물줄을 당기거나 풀어 그물을 조작한다.
그러고 보니 '維'자가 축문의 발어사(發語辭)로 쓰이게 된 연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벼리'를 통해 제관의 지극한 정성이 축문에 이어졌음을 상정할 수 있겠다.

'벼리( 維)'는 사람과 그물을 연결하여 사람의 통제를 그물에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벼리를 잃으면 그물도 잃는다. 그물은 오로지 벼리를 통해서만 그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수 있으니, 벼리를 놓친 그물은 그저 물을 오염시키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라에도 그 존재를 지켜주는 '벼리(維)'가 있다. 추시대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루게 한 명재상으로 관중(管仲)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는 네 가지 벼리가 있다.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멸망한다."

(國有四維 一維絕則傾 二維絕則危 三維絕則覆 四維絕則滅)
_ '管子' 牧民篇

관중은 그 네 가지 '벼리'를 '예의염치(禮義廉恥)'라 하였다.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義, 옳음)는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염(廉, 바름)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치(恥, 부끄러움)는 그릇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禮不踰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  踰는 넘을 유, 蔽는 덮을 폐, 枉는 굽을 왕)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禮義廉恥'
안두희에게 암살되기 1년 전 경고장(京橋莊)에서 쓰신 글이라고 한다.>



어느 시대이든 '벼리'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건강한 나라는 '벼리'가 제 기능을 다하기에, 예의염치(禮義廉恥)가 굳건히 살아 있어, 사람들은 절도와 옳음을 지키고, 잘못을 숨기지 않으며 그릇됨에 대해 부끄러움을 안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는 뻔뻔하게 나서는 사람 즉 파렴치(破廉恥)한 사람들이 더욱 득세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심한 분열과 혼란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극심한 대립 속에서도 흘러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면, '예의염치'에 약간 더 힘이 실리는 듯하여, 이 나라의 '벼리'가 아직 제법 제 기능을 잘 유지해주고 있다는 희망적인 징후들을 적잖이 본다.

**
관중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더하였다.

기울면 바로 잡을 수 있고
위태로우면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히면 바로 세울 수 있으나
멸망하면 다시 세울 수 없다.

 (傾可正也 危可安也 覆可起也 滅不可復錯也)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하나의 '벼리'도 끊어졌거나 끊어질 조짐이 없다.
그저 좀 흔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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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이 가르치는 네 '벼리'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국가에 한하지 않고 개인에게도 그래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기업에게는 어떻까?
내 임의로 그 의미를 부여해본다.

기업에게 있어,
예(禮)는 고객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고, 의(義)는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끝없는 도전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고객의 신의와 변화에 대한 도전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리고 염(廉)은 위기관리로 정의하여도 좋겠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모든 기업도 사고와 잘못을 피할 수 없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기업이 있는가 하면, 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여 기업 이미지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진시킨 기업도 있다.

끝으로 치(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 즉 기업의 윤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업의 본질이 이익의 추구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이익에만 집중한다면, 결국 그 기업은 그 경영을 지속하지 못한다.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기업 윤리이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해본다.


'기업에게는 네 가지 '벼리'가 있다.
이들을 기업의 '예의염치(禮義廉恥)'라 한다.
예()는 고객을 존중하는 것이고,
의(義, 옳음)는 변화를 추구하여 도전하는 것이며,
염(廉, 바름)은 위기를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고,
치(恥, 부끄러움)는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