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여행]

#스무번째이야기#(마무리)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5박7일의 비교적 짧은 여행이었지만,
오랫동안 동경해왔었기에, 두번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라고 여겨져 주저없이 참가했다.
그래서 여행 기간 동안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않고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듣고 더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기록을 했다.

"여행은 동경이나 일탈이 아니다.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가듯"
이번 여행을 이끌어주신 김상근 교수의 말씀이다.

간절히 원했고, 정말 평소에 존경해마지 않던 최고 고수의 인도를 받아 다녔던 만큼, 평생의 어느 여행보다 묵직한 지식과 찐한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마무리 정리가 필요하다.

1. Why
내가 그리스 여행을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은, 짧게는 5년전 변리사회지에 아테나여신과 관련된 칼럼을 쓰면서부터였다.
이때 칼럼 제목을 [아테나이칼럼]이라 하고, 10여차례 회지에 글을 실었다. 그 때 글을 쓰면서도 뭔가 공허했다. 단지 그저 책으로만 얻은 지식에 기초한 작업이고 인터넷에서 뒤져 얻은 사진들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얄팍한 통찰적 관점을 얹으려니, 마치 거짓 뉴스를 작성하는 것 같아 영 편하지가 않았다. 남의 사진을 가져다 내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명색이 지식재산권 전문가라는 사람으로서 편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에 대한 동경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에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고전읽기반에 들었던 적이 있다. 책을 마음대로 사볼 형편이 되지 못했던 그 시절에 고전읽기 활동은 나에게 너무도 활홀한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그 때 그리스신화와 아라비안나이트 등에 흠뻑 빠졌고 그 계기로 나이가 들어서도 수시로 다시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변리사가 되고 시간이 흐르자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특허제도와 전략, 핵심역량 구축 등과 같은 내용에 대해 강의를 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주제의 특성상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를 그리스신화나 중국 고사를 섞어 강의의 재미를 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다시 그리스고전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5년쯤 전에 내 인생 버킷리스트 1번으로 그리스 여행을 정해두고, 비싼 카메라를 사고 그 사용법을 배웠다. 혼자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 거다. 그런데 막연히 혼자 떠나려니 충분히 효율적으로 다녀올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망설이는 중에, 만권만리의 프로그램 안내를 받았다.
안내를 보는 순간, 이 여행은 나를 위해 기획된 것이다. 라고 무릅을 쳤다.
그리고 비싼 비용 등을 이유로 혼자만 다녀오라고 버티는 아내도 열심히 설득하여 함께 가기로 했다. 결혼 30주년기념과 생일 기념 등을 그때 때맞춰 삐치는 바람에 부실하게 보낸 찜찜함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노릴 겸..

2. How
세리시이오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만든 온오프라인 교육 기관이다. 내가 여기에 가입한 지는 20년 가까이 되었을 걸로 생각된다. 오프 강의를 들을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주로 온라인 강의만을 듣고 있다.
40살 이후에 여러 기관의 교육을 받아보았는데, 그 중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은 곳으로는 경영자독서모임(MBS)과 세계경영연구원(IGM)이 있다. MBS는 20년 이상 관계를 맺었었고, IGM도 7~8년 이상 이런저런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리시이오만 유지하고 있다. 방대한 컨텐츠, 풍부한 새로운 지식, 편리한 접근성 등이 가장 낫다.
그러다 세리시이오가 작년에 만권만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기에, 첫 프로그램인 장강 한시기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함께 한 그 여행은 다른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기회들은 함께 하지 못했다. 집안 제사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 일정 중에 제사가 끼여있으면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이번 6번째 프로그램은 그것도 내가 고대하던 여행을 참여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다.

이 여행를 절대 놓칠 수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 여행을 이끄는 김상근 교수 때문이다. 이 분은 명강사가 득실거리는 세리시이오 내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사이다, 이 분의 강의 때문에 어릴 때부터 관심을 이어왔던 그리스신화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었다.
김상근 교수의 강의는 물론 쉴새없이 풀어놓은 해박한 지식도 놀랍지만, 강약와 완급을 조절하며 듣는 사람들의 긴장을 요리하기에 강의에 대한 몰입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적절한 유머와 핀센트로 찍어내는 듯한 통찰적 핵심의 가르침은 매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도 유감없이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여행은 내 평생의 버킷리스트 1번을 거행하기 위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시스템과 최고의 안내자가 나선 것이다.

3. Where
그리스는 참 특이한 나라다.
고대 그리스와 신화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이후의 문명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수긍이 갔다.

고대 그리스는 BC 5세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들이 융성하여 정치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BC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불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루면서 쇠퇴하기 시작하고,
BC 4세기 초반부터는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때부터 약 300년간을 헬레니즘 시대라 부른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광활한 영토에 그리스문화를 널리 전파했던 시기이다.
그러다 BC146년부터는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고 BC27년에는 완전히 로마에 편입된다. 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지배는 1453년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 1830년까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슬람의 영향을 받는다.
오스만 투르크가 멸망한 후, 드디어 1832년에 그리스왕국의 형태로 독립을 하지만, 크림 전쟁, 발칸 전쟁을 치루고, 내부적으로도 불안한 정치상황을 거듭하다가, 1981년에 되어서야 지금과 같은 민주국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지배를 제외하더라도 약 2천년을 로마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아왔다.
2천년을 타국의 합병되어 지배를 받고도 언어, 종교 및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통할 정도이다.

현재 인구는 1천만명이 약간 넘고,
GDP는 1931억불. 세계 50위. (우리나라는 1조4981불, 세계 12위).
그리스 정교 98%.

그리스의 주변 지도

4. When

일정표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아테네에서 3박, 올림피아와 델피에서 각 1박.
4. What
평생에 경험하기 힘든 보람있는 여행이었다.
2천년 이전의 찬란한 문명을 충분히 눈으로 확인하고,
명강사의 강의를 귀로 들으며,
맛있는 음식과 와인들로
시각, 청각, 미각이 모두 행복했었다.
그리고 머리와 가슴도 지식과 감동으로 묵직하고 뿌듯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몇 가지 깨달은 점을 정리해보면,
- 화려한 과거 역사는 과거에 불과하다.
그리스는 이제 옛날을 회상하며 그 추억으로 삶을 유지하는 노인과 같다.
-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그리스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요? 라고 물었더니,. 김상근교수는 르네상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라든 개인이든 근본으로 되돌아가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노력을 끊없이 하여야 한다.
- 리더는 신의 생각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던 도중 아레스파고스 언덕에서 김상근 교수가 하신 말씀.

5. 기타
- 세리시이오의 명실상부한 잘짜여진 시스템과 담당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최고였다.
그리고 김상근 교수님의 열정과 통찰력 역시 너무도 감동적이었고 무엇하나 꼬투리 잡을 수 없는 천의무봉이었다.
- 운영 상의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면, 참가자들을 위한 Ice Breaking, 서로를 좀더 알 수 있도록 하는 배려, 마지막에 소감 등을 한마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이다.
- 이제 다시 한번 혼자서 갔다와야겠다.
좀더 구석구석을 파헤칠 기회를 갖고 싶다.


[고대그리스]

고대그리스문명..

- BC4~5세기에 번성했던 그리스 문명은 로마제국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근대 서양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 세계 최초로 시행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겨우 185년간 유지되었다.
- 고대 아테네의 인구 중 40~80%는 노예였다.
- BC4~5세기 그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했다.
- 당시의 스포츠는 나체로 행해졌다.
- 고대 그리스에서 7살이 되면 그리스에서는 학교를 가고 스파르타에서는 병영에 들어갔다.
- 학교란 뜻의 'School'은 고대 그리스어의 "자유 시간"에서 왔다.
-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및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의 발견은 지금도 수학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BC3세기 사모스 섬의 아리스타르쿠스가 주장하였다.
- 최초의 알파벳은 BC8세기 경에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가 페니키아 문자를 차용하여 그들의 언어에 맞도록 만든 것이다.
- 배심원단의 통상적인 규모는 500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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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제1부 _ 프롤로그(170703)
[그리스여행] 제2부 _ 여행 첫째날(170704)
[그리스여행] 제3부 _ 여행 둘째날(170705)
[그리스여행] 제4부 _ 여행 셋째날(170706)
[그리스여행] 제5부 _ 여행 넷째날(170706)
[그리스여행] 제6부 _ 헤라클레스와 황금사과
[그리스여행] 제7부 _ 승마술, 다섯째 날(0707)
[그리스여행] 제8부 _ 리쿠르고스 이야기
[그리스여행] 제9부 _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스여행] 제10부 _ 미케네 문명, 케로스 섬
[그리스여행] 제11부 _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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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열아홉번째이야기#

고대 그리스의 문명 개관

- 그리스 문명의 기원은 미케네 문명이다.
크레타(미노아) 문명이 미케네 이전에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지만, 이집트 문명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스 예술사에서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미케네와 크레타 문명 이전에 트로이 문명도 크게 융성하였고 미케네에 미친 영향이 컸지만, 이 역시 그리스 본토의 문명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 문명은 미케네를 그 출발점으로 잡는다.
김상근 교수는 그리스 문명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 미케네 시기 : BC1600 ~ BC1200 '퀴클롭스 양식'
* 암흑기 : BC1200 ~ BC900
* 기하학문양기 : BC900 ~ BC700
* 동방기(Orientalizing) : 이집트와 근동의 영향. '다이달로스 양식'
* 상고기(Archaic) : BC800 ~ BC480 : 기하학 무늬 대신 사람이 나타남.
작품에 미소가 많이 나타남. 흑상토기->적상토기
* 고전기(Classic) : BC510 ~ BC323(알렉산더 사망)


- 박물관에서 본 케로스섬(본토와 크레타 섬 사이의 닉소스 섬 가까이)의 BC2600~2300년 경 예술품은, 그리스 본토의 문명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대 미술 작품이라 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같은 파격적인 절제가 놀랍다. 근 5천년 전에 저런 감각적인 조각이 가능하다니.. 내가 농담삼아 외계인의 모습이 아닐까 라고 묻기도 했다.
<하프를 켜는 남자> _ 케로스 섬
이 프라이팬 비슷한 것은 그 용도가 명료하지 않다. 거울이나 조리도구였을 것으로.


- 미케네 문명은 하인리히 슐리이만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는 이미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한 바 있었고, 미케네에서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 등을 발굴하여 미케네 문명을 세상에 알렸다.
슐리이만은 처음 발굴했을 때 흥분하여 죠지1세에게 아가멤논 등의 무덤을 발견하였다고 다음 내용의 전보를 쳤다.
그런데 거기서 발견된 부장품들은 아가멤논이 참전했던 트로이전쟁보다 300년은 더 이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케네 유적지의 건축양식을 퀴클롭스 양식이라 부른다고 한다.
퀴클롭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의 꾀에 의해 눈을 멀게된 퀴클롭스는 돌을 던져 오디세우스의 배를 침몰시키려 한다. 이처럼 '퀴클롭스 양식은 돌을 엉성하게 쌓아올린 건축구조를 의미한다.
아트레우스(아가멤논의 아버지)의 보물창고 입구
미케네 성 입구
성문과 성문 위의 사자상
원형무덤

- 청동기에 머물러 있던 미케네 문명은 1200년 경 바다를 건너온 철기문명에 의해 짓밟혀 사라진다.
그후 항아리 부장품들은 대체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기하학 문양의 시대(Geometric Period)라 부른다,
이어서 사람의 문양이 항아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의 사람 모습은 넓은 어깨와 굵은 넓적다리가 특징이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입고 있던 누더기를 샅에다 매고
크고 당당한 넓적다리와 넓은 어깨와 가슴과 억센 팔을 드러냈다."
_ <오디세이아> 18월
당시의 미적 기준을 알 수 있다.

- 그 이후의 작품들..
BC530년 경 제작한 크로이소스 상

매우 감성적인 묘비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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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제6부 _ 헤라클레스와 황금사과
[그리스여행] 제7부 _ 승마술, 다섯째 날(0707)
[그리스여행] 제8부 _ 리쿠르고스 이야기
[그리스여행] 제9부 _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스여행] 제10부 _ 미케네 문명, 케로스 섬
[그리스여행] 제11부 _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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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열일곱번째이야기#

소크라테스

그리스를 이야기할 때 소크라테스가 빠질 수 없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고, 플라톤 등의 스승이다.

-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사형당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할 당시의 감옥은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 있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와 주차장을 지나 숲길을 2~3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감옥은 보잘 것 없는 바위 동굴로 되어있고 입구가 철창으로 가려져 있다.

- 소크라테스는 왜 죽게 되었을까?
그의 죄목은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왜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되었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소크라테스의 추종자 중 카이레폰이라는 사람이 있다. 카이레폰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 갔다. 신전에서 그는 쓸데없이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를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 신탁은 예상 밖으로 "없다"라고 답을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신탁을 맏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고, 더욱이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어떤 의도로 그런 답을 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질문과 대화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이 똑똑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 자신은 적어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묻고 다니는 과정에 사람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그들을 원한을 사게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언도받고, 최후의 진술을 한다.
그 최후의 진술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억울해하며 아테네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아테네인들이 자신을 처형하였다는 이유로 후대에 비난받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고는 그는 의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하였다.
플라톤은 대화편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소크라테스는 문답과 대화를 통해 귀납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문답식 진리 도출 방법을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 부르며, 그렇게 진리의 탄생과정을 도와준다고 하여 '산파술'(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였음)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문답식 '아이러니' 진리도출 방법은 사람들의 자본심을 극도로 자극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무지한 상태로 상정하고 상대를 지식이 충만한 자로 상정한 다음, 문답을 통해 상대의 무지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최고의 가르침은 뭐니 해도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데 있다.
그래서 잘 알려진 것이 "너 자신을 알라"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격언으로서, 크로노소스가 델피 신전에서 신탁을 받은 말이기도 한데, 소크라테스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아래의 미술작품에 그려진 것과 같은 멋진 감옥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_자크 루이 다비드
이 그림은 주변의 친구와 제자들은 비통에 빠져있지만, 소크라테스 본인은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영혼의 불명을 차분하게 설명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변화의 비결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과거와 싸우는 데 쏟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데 쏟는 것이다. _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로 유명하다.
그녀는 어느 날 돈을 벌어오지 않는 소크라테스에게 화가 나서, 그의 머리에 오물을 부은 적도 있다. (이 그림은 Blommendael 작)
그래서 나온 말.

"결혼은 어떻든 하는 게 좋다.
착한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니 좋고,
악처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좋다."


[그리스여행]

#열여덟번째이야기#

플라톤

- 플라톤 아카데미아
둘째날 마라톤에서 돌아오는 길에 플라톤 아카데미아의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그저 돌 조각 몇 개가 여기저기 흩으져 있는 썰렁한 폐허에 불과했다.
이런 곳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아마도 우리가 최초일 것이라고 교수님과 가이드가 말한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것으로 인해 큰 정신적인 충격과 상실감에 아테네를 떠나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이집트 등을 여행하고 많은 사상을 접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테네 외곽에 최초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여기서 청년들을 가르치고 저술활동을 하며 생을 마무리하였다.

플라톤의 저서는 총 30편이 넘으며, 대부분 대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론, 라이돈, 국가, 법률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 "욕망"
김상근 교수는 마지막날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 강의하였다.
그 첫머리에 '욕망'에 관한 대화 내용을 소개해주었는데 인상적인 내용이라 여기 옮겨본다.

소크라테스는 플레마르코스의 집에서 그의 부친인 케팔로스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 소크라테스 : "그대는 지금 시인들이 '노년의 문턱이라고 말하는 그런 연세가 되신 만큼, 나는 무엇보다 그대의 심경이 어떠하신지 듣고 싶어요. 산다는 것이 힘드신가요?"
- 케팔로스 옹
"어떤 사람이 시인 소포클레스에게
'선생, 그대의 성생활은 어떠시오? 아직도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소포클레스님은,
'예끼 이 사람아. 그런말 말게나, 나는 그것에서 벗어난 게 얼마나 기쁜지 물라. 꼭 미쳐서 날뛰는 포악한 주인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네.'
라고 대답을 하시더군요.
욕망들이 한풀 꺾이어 귀찮게 조르기를 멈추면, 소포클레스님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미쳐 날뛰는 수많은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말이 되지요.
소크라테스 선생. 사람 됨됨이가 반듯하고 자족을 할 줄 알면, 노년도 가벼운 짐에 불과하다오.
그렇지 않으면 노년 뿐만 아니라 젊음도 견디기가 힘들다오."
아카데미아 유적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관한 김상근 교수의 강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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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제1부 _ 프롤로그(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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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제8부 _ 리쿠르고스 이야기
[그리스여행] 제9부 _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스여행] 제10부 _ 미케네 문명, 케로스 섬
[그리스여행] 제11부 _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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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열여섯번째이야기#

리쿠르고스와 델피의 신탁

델피의 아폴론 산전과 관련하여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바로 '리쿠르고스'의 이야기이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입법자로서,
스파르타를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로 그 기초를 확고히 다진 사람이다.
그는 스파르타식 교육, 집단 식사, 집단 결혼 등을 도입하였고, 특히 금 대신 철로 화폐를 만들어 부의 축적을 어렵게 하였다.
너무 엄격한 법제도의 추진으로 특히 귀족들의 많은 반발을 사고, 암살의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를 암살하려다 눈을 멀게한 청년을 포용하여 측근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자신의 뜻에 대한 반발이 끊이지 않자,
법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신탁을 받아오겠다고 하고 델피로 떠난다.
떠나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스파르타의 법을 절대로 바꾸지 말라"

그런데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델피에서 자살을 한 것이다.

스파르타의 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리더의 선택인 것이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스파르타는 오랫동안 그리스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리쿠르고스의 생몰연대는 명확치 않다. 다만 스파르타가 역사에 나타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가 BC600년 경이므로, 그의 활동시기는 BC7~8세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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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 제5부 _ 여행 넷째날(170706)
[그리스여행] 제6부 _ 헤라클레스와 황금사과
[그리스여행] 제7부 _ 승마술, 다섯째 날(0707)
[그리스여행] 제8부 _ 리쿠르고스 이야기
[그리스여행] 제9부 _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스여행] 제10부 _ 미케네 문명, 케로스 섬
[그리스여행] 제11부 _ 에필로그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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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피 마을 산택
- 크세노폰의 '승마술'
- 심야 파티


[그리스여행]

#열네번째이야기#

- 델피에서는 아말리아 호텔에 묵었다.
산골 호텔 답지 않게 규모도 크고 음식과 경치 모두 좋았다.

- 아침에 일어나서 델피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사람들이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마을을 내무사열 취하듯 돌아다녔다.
시간이 정체된 둣한 정말 조용하고 좀 나른한 마을이다. 한번쯤은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 관광객들을 위한 작은 가게나 호텔들이 있다.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그리스신화를 적잖이 경험할 수 있다.

* 피티아 : 고대에 델피 인근에서 주기적으로 거행되던 올림픽에 버금가는 운동경기. 주로 전차 경주.
* 시빌라 : 무녀의 일반 명칭.
* 레토 : 티탄족으로서 제우스와 결혼하여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낳음.
* 아이올로스 : 바람의 신. 오디세우스가 귀향할 때 나쁜 바람을 자루에 가두고 순풍만 보내주어 귀향을 도왔음.
* 파르나소스 : 델피가 있는 산의 이름.
* 헤르메스 : 전령의 신. 비즈니스와 도둑의 신이기도 함.
* 디오니소스 : 술의 신. 로마신화의 박카스.
* 조르바 :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이름. 안소니퀸 주연의 영화가 유명하다.

추가로..
* 메넬라오스 : 그 맛있는 양고기를 제공받은 미케네의 식당 이름. 트로이전쟁 당시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동생이며 스파르타의 왕.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빼앗긴 것이 트로이전쟁의 발단이 됨
* 다프네 : 아테네에서 두번째 저녁을 먹은 곳으로 안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식당. 다프네는 숲의 요정입니다. 아폴론과 언쟁이 있었던 에로스가 아폴론에게는 사랑의 황금화살을, 다프네에게는 미움의 납화살을 쏩니다. 그래서 아폴론은 다프네를 사랑하여 미친듯이 쫒아가고, 다프네는 그 아폴론이 싫어서 죽기살기로 달아납니다. 그렇게 쫒고쫒기다 다프네는 급기야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모습을 바꿔어 숩겨달라고.. 그렇게하여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아폴론은 그녀를 그리며 월계관을 쓰게 되고, 그로 인해 월계관의 풍습이 생겼습니다.
* 오이로파 : 올림피아에서 하루 묵었던 호텔의 이름. 오이로파는 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엎혀 납치된 비운의 처녀로서,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크레타의 왕 미노스를 낳는다. 이 오이로파에게서 유럽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아말리아 호텔 전경입니다. 뒤의 돌산은 파르나소스산.
호텔에서 내려다본 전경. 저 멀리 이오니아해가 보이고, 들판은 거의 모두가 올리브나무입니다.
아스발트 틈새에서 나온 넝쿨이 난간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그 끈질긴 생명력이란..


[그리스여행]

#열다섯번째이야기#

- "승마술에 관하여"
김상근 교수의 이번 여행 마지막 강의는 플라톤의 '국가'와 크세노폰의 '승마술'이었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모두 소크라테스의 제자들로서, 많은 저술을 남긴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잘 기억하고 있지는 못해도, 조금씩 주워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크세노폰의 승마술에 대해서는 생전 처음 강의를 들었다.
2500년 전에 쓴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통찰력으로 쓴 글이다. 그리고 경영자 등 리더들에게 가슴을 치는 인사이트를 준다.
기회가 나면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할 중요한 숙제로 꼽아두었다
기사 검색을 하니 이와 관련된 김상근 교수의 글이 있어 여기 첨부한다.

주요 내용만 간단히 요약하면,

- 이 책은 기수와 말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기수와 말의 관계는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와 같다.
- 인내력과 끈기가 있는 말을 선택해야 하고,
'난폭한 말'이나 '게으른 말'은 절대 선택하지 말라.
대부분의 부족한 부분은 훈련에 의해 개선될 수 있지만, 난폭함과 게으름은 교육에 의한 교정이 불가능하다.
- 원래부터 나쁜 말은 없다.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 말구유를 안전하게 설치하라(기본적인 권리를 보장).
-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탄지 말라.
말은 기수가 화난 것과 전투 중 긴장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예측불가한 행동을 할 수 있다.
- 기수가 동요하면 말도 동요한다.
- 말을 때리거나 완력으로 통제하려 하지 말라.
말은 자신에게 고통이 가해지는 것을 느끼면, 공포심에 빠져 돌발행동을 한다.
- 말을 때려야 할 때는, 마부 등 다른 사람을 시켜서 처벌하라.
- 말을 탈 때에는, "의자에 앉는 것처럼 앉지 말고, 마치 양쪽 다리를 벌리고 똑 바로 서있는 것처럼 앉아야 한다"
의자에 앉는 것처럼 걸터앉으면, 말은 무시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기수를 짐짝으로 간주한다.
- 말이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면, 기수가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직접 장애물을 건너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 말이 암말을 보는 등의 경우 자신을 뽐내려고 할 때, 최대한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해주라.
- 말에게 재갈 등의 통제를 가할 때, 말이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라.
사람이든 말이든 타의에 의해 강제된 상태에서는 언제나 반항적인 기질을 나타낸다.
- 적에게 노출되는 말의 머리, 넙적다리 등은 잘 보호해야 한다.
특히 말의 넓적다리는 기수의 넓적다리로 보호해야 한다.

김상근 교수는 이 강의를 다음 취지의 말로 마무리하였다.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부케팔로스라는 명마가 있었다.
명마가 알렉산더 대왕을 탁월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명마는 기수가 만드는 것이며,
대왕이 명마를 훈련시키듯 군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가 이끄는 군대는 세계 최강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 마지막 밤의 뒷풀이를 했다.
좀 특별한 파티였다.
델피 아폴론 신전의 뒷산은 거대한 바위봉우리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문외한이 보아도 뭔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특별한 곳이다. 그곳 사이에 해당하는 은밀한 장소를 교수님께서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우리를 인도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좀 쉬었다가 10시에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달빛은 무척 밝았고, 실로 오랫만에 그토록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험한 그 두개의 거대한 봉우리는 쏟아질듯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 했다.
와인이 준비되었고 누군가가 문어 요리를 주문해와서 멋진 파티가 되었다.
몇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그리고 우리를 한국에서부터 인솔한 가이드는 원래 가수활동을 하고 방송 츌연까지 한 사람이었단다. 그 양반 노래도 대여섯곡 듣고, 교수님의 기타와 노래실력까지 감상한 후 거의 12시가 되어 호텔로 돌아갔다.

우리에게도 너무도 특별한 경험이지만, 델피라는 이 지역도 수천년 내 이런 방문객들을 맞아본 적이 없으리라.




** 목록

[그리스여행] 제1부 _ 프롤로그(170703)
[그리스여행] 제2부 _ 여행 첫째날(170704)
[그리스여행] 제3부 _ 여행 둘째날(170705)
[그리스여행] 제4부 _ 여행 셋째날(170706)
[그리스여행] 제5부 _ 여행 넷째날(170706)
[그리스여행] 제6부 _ 헤라클레스와 황금사과
[그리스여행] 제7부 _ 승마술, 다섯째 날(0707)
[그리스여행] 제8부 _ 리쿠르고스 이야기
[그리스여행] 제9부 _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스여행] 제10부 _ 미케네 문명, 케로스 섬
[그리스여행] 제11부 _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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