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과연 죽음을 슬퍼하고
나는 과연 삶을 기뻐하고 있는가?


열자(列子) 여행 중에 길에서 밥을 먹다가

백년 쯤 묵은 해골을 보게 되었다.
쑥대를 뽑아 해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와 그대만이 알지.
온전한 죽음도 없고 온전한 삶도 없다는 것을.

그대는 과연 죽음을 슬퍼하고 있고,
나는 과연 삶을 기뻐하고 있는가?"


列子行食於道 從見百歲髑攓蓬而指之曰
"唯予與汝知而未嘗死,未嘗生也。若果養乎? 予果歡乎?"
_ 장자(莊子) 지락(至樂)편



**
죽은 자는 죽었으니 죽음의 슬픔을 모르고,
산 자는 삶이 버거우니 살아있음을 누리지 못한다.

죽은 자가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고,
산 자는 삶을 즐기지 못하니,
죽었어도 진정한 죽음이 아니고,
살았어도 진정한 삶이 아니다.


**

만물은 모두 '기(幾)'에서 생겨나와 '기(幾)'로 되돌아간다

위 해골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 모든 만물(種)에는 기(幾, 기미/조짐)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기(幾)'는 조건에 따라 다양한 생명체가 된다. 물을 만나면 물때가 되고, 물과 흙을 함께 만나면 이끼가 되고, 언덕에서는 질경이가 되고 거름 속에서는 알뿌리가 된다. 이것은 다시 굼벵이, 나비, 귀뚜라미, 새 등을 거쳐 나중에는 표범과 말을 만들고, 사람까지도 생성된다. 사람 또한 결국에는 '기(幾)'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만물은 모두 '기(幾)'에서 생겨나와 '기(幾)'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種有幾, 得水則爲, 得水土之際 則爲鼃蠙之衣, 生於陵屯 則爲陵舃, 陵舃得鬱棲則爲烏足. 烏足之根 爲蠐螬, 其葉爲胡蝶. 胡蝶胥也 化而爲蟲, 生於竈下, 其狀若脫, 其名爲鴝掇. 鴝掇千日爲鳥, 其名爲乾餘骨. 乾餘骨之沫爲斯彌, 斯彌爲食醯. 頤輅生乎食醯. 黃軦生乎九猷. 瞀芮生乎腐蠸. 羊奚比乎不箰, 久竹生靑寧. 靑寧生程, 程生馬, 馬生人, 人又反入於機. 萬物皆出於機, 皆入於機.


**
장자가 '온전한 죽음도 없고 온전한 삶도 없다(未嘗死 未嘗生)'고 한 것은 만물이 '기(幾)'라는 원소에서 나와 다시 이 '기(幾)'로 되돌아가는 무한 순환의 고리 속에 있어 잠시 그 존재가 어떤 모습을 가졌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을 슬퍼할 이유도 없고 이 삶을 기뻐할 이유도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주머니가 작으면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길을 수 없다.


褚小者不可以懷大(저소자불가이회대)

綆短者不可以汲深(경단자불가이급심)
_ 장자(莊子) 지락(至樂)편



안연(顔淵)이 동쪽의 제(齊)나라로 가려하자, 공자는 걱정스런 얼굴을 하였다. 이에 자공(子貢)이 자리에서 내려와 물었다. 

"제자가 감히 여쭙습니다. 안회(안연)가 동쪽의 제나라로 가려하는데, 선생께서 걱정하시는 듯한데 어떤 까닭이 있으신가요?"


공자가 답하였다.
"좋은 질문이다. 옛날 관자(管子)가 한 말씀 중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주머니가 작으면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길을 수 없다.'(
褚小者不可以懷大,綆短者不可以汲深)


이 말은, 인간의 명(命)은 정해진 바가 있고(
命有所成), 형(形)도 그에 어울리는 바가 있는 법(形有所適)이어서, 누가 덜어내거나 더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안회가 제나라 왕에게 요(堯). 순(舜), 황제(黃帝)의 도를 말하고, 거기다가 수인(燧人)씨, 신농(神農)씨의 말까지 보태게 되면, 제나라 왕은 속으로 스스로에게서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할 것이며, 얻지 못하면 의혹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의혹을 가지면 안회를 죽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顔淵東之齊,孔子有憂色,子貢下席而問曰:小子敢問,回東之齊,夫子有憂色,何邪?

孔子曰: 善哉汝問! 昔者管子有言,丘甚善之,曰: 褚小者不可以懷大,綆短者不可以汲深. 夫若是者,以爲命有所成而形有所適也,夫不可損益. 吾恐回與齊侯言堯舜黃帝之道,而重以燧人神農之言. 彼將內求於己而不得,不得則惑,人惑則死 _ 장자(莊子) 지락(至樂)편>




**
이 고사는 가르침이나 베품은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의 그릇을 맞게 행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도리어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깨우치는 말이다. 
경단급심(綆短汲深)이나 급심경단(汲深綆短)으로 혹은 그냥 경단(綆短, 두레박줄이 짧다)으로 줄여서 인용되기도 한다.



**
공자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진다.

"또 너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느냐? 옛날 바다 새가 노나라 가까이에 머물자, 노나라 왕은 이를 잡아들여 궁전에 모셔놓고, 구소(九韶, 순임금의 궁중 음악)를 연주하여 즐겁게 해주고, 태뢰(太牢, 나라 제사에 쓰는 고기)를 갖추어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지러워하며 근심에 차 슬퍼하였다.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 한 잔 마시지 않더니 사흘만에 죽어버렸다. 
이는 자신이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길렀기 때문이며,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다는 것은, 마땅히 깊은 숲에 둥지를 틀게 하여, 땅에서 노닐고 강과 호수에서 떠다니며 미꾸라니지 피라미를 잡아먹고 무리를 따라다니다 머물고, 스스로 자유로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 듣기 싫어하는데, 어찌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들리려 하였는가. 함지(
咸池, 요임금 때의 음악)나 구소(九韶)의 음악을 동정(洞庭)의 들판에서 연주를 한다면, 새는 그것을 듣고 날아가버릴 것이고 짐승은 듣고 달아날 것이며 물고기는 듣고 물속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사람들만이 그것을 듣고지 둘러싸고서 구경할 것이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살지만 사람은 물속에 있으면 죽는다. 그러니 물고기와 사람이 서로 다르듯이, 좋아하고 싫어함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인들은 사람의 능력을 한 가지로 보지 않고 각자의 일을 동일하게 보지 않았다. 명분은 실질에 맞추어야 하고(名止於實), 옳음은 타당함을 갖추어야 한다(義設於適). 이를 일컬어 조리에 막힘이 없어야 복을 지닐 수 있다(條達而福持)고 하는 것이다."

<且女獨不聞邪?昔者海鳥止於魯郊,魯侯御而觴之於廟,奏九韶以為樂,具太牢以為善。鳥乃眩視憂悲,不敢食一臠,不敢飲一杯,三日而死。此以己養養鳥也,非以鳥養養鳥也。夫以鳥養養鳥者,宜栖之深林,遊之壇陸,浮之江湖,食之鰍鰷,隨行列而止,委蛇而處。彼唯人言之惡聞,奚以夫譊譊為乎!咸池、九韶之樂,張之洞庭之野,鳥聞之而飛,獸聞之而走,魚聞之而下入,人卒聞之,相與還而觀之。魚處水而生,人處水而死,故必相與異,其好惡故異也。故先聖不一其能,不同其事。名止於實,義設於適,是之謂條達而福持>



**

편장막급(鞭長莫及 : 채찍이 짧아 미치지 못함)이라는 고사가 있다.


초장왕()의 침략을 받은 송(宋)나라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진경공()은 그 요청에 응하려 하였는데, 대부 백종()이 말리며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말채찍의 길이는 말의 배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으니 싸워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나 하늘을 거스를 수야 있겠습니까." _ 

이 편장막급(鞭長莫及)이라는 고사성어는 역량이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대처를 회피하여야 할 상황을 비유하는데 사용된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남을 아는 자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 밝다.


남을 아는 자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 밝다.

남을 이기는 자 힘이 있고
스스로를 이기는 자 강하다.


知人者智(지인자지自知者明(자지자명)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自勝者强(자승자강)

_ 도덕경 제33


**
이와 유사한 말이 사기 상군열전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총명(聰明)'의 뜻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남의 거슬리는 말을 듣는 것을

()이라 하고,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하다고 한다.

순임금께서도 스스로를 낮추면
오히려 높아진다고 하셨다.


趙良曰,反聴之謂聡內視之謂明自勝之謂彊. 虞舜有言曰 自卑也尙矣
_史記 商君列傳


**

정신의학자 칼 융(Karl Jung)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바깥을 내다보는 자
꿈을 꾸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
깨어난다.
_칼 융



큰 꿈을 그리기 위해서는 널리 먼 바깥 세상에 밝아야 하고,
그 꿈을 실행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야 한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의 목표를 가졌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어떤 꿈도 실현하기 힘들 것이다.


** 자승자강(自勝者强).
스스로를 이기는 자 진정한 강자임에 틀림이 없다.


기업의 자승자강은 '자기 파괴적 혁신(Self-disruptive innovation)'을 가리킨다. '자기 파괴적 혁신'은 자신이 지금까지 구축한 핵심역량을 과감히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고통스럽고도 두려운 결단에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의 남들이 어떤 변화를 도모하는지 명료히 알아야 하고, 자신의 현재 위상을 정확히 파악한 위에 자신이 추구하는 비전이 확고히 정립되어 있을 필요가 있다. 즉 총(聰)과 명(明)에 제대로 기능하여야 한다.


**
필름회사인 코닥은 일찌기 
1970년 대에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였었다. 하지만 현재 필름 사업의 성공에 매몰되어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기술을 진화시키지 못하여, 자기파괴적 변신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 결과는 기업의 소멸이었다.  

The evolution of digital cameras,
from Kodak’s 1975 digital camera prototype to the iPhone


**
미쉐린과 GM이 새로운 개념의 타이어를 선보였다.
공기 주입이 필요없는 타이어이다. 공기가 없으니 펑크가 날 염려가 없다. 타이어 회사의 소득의 대부분은 펑크로 인한 교체 수요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눈앞의 소득을 과감히 포기하는 선택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지구와 고객의 이익을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 이 선택이 결국은 그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것으로 믿는다.

Road hazards are absorbed by the Uptis tire, eliminating about 200 million tires a year that...


**

등고거제(登高去梯).
높은 곳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등고거제는 자기파괴적 혁신 즉 자승자강의 최고 경지라 여겨진다. 스스로를 어찌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놓고 오로지 혁신을 통해서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설정하는 고도의 성취 전략이다.

ダイキンが冷媒「R32」の特許権不行使を宣言した理由

공조기기용 냉매 메이커인 다이킨은 지금까지 나온 냉매 중 가장 친환경적인 제품 'R32'의 특허권자이다. 다이킨은 2015년부터 이 특허를 공개하였다. 그동안 계약을 통해 무상으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이번에는 그런 계약 절차 조차도 없애버려 사실상 완전한 공개를 선언하였다. 

이러한 특허 공개를 통해 경쟁사들과 동등한 경쟁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몬 것이다. 자신들은 이제부터 AI 등 첨단 기법을 이용하여 더 환경 친화적인 냉매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한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2019. 07. 24 포스팅>

방금 문상을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은 큰 누나의 시어머니이신데, 올해 95세라고 한다. 누나는 이 분의 셋째 며느리.
그 어른은 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바깥어른을 여의고, 근 65년 이상을 홀몸으로 대가족을 이끌어오시면서, 대농가에서 농사일을 도맡고 시아버지를 건사하면서 용같고 범같은 아들 다섯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덩실하게 키워내셨다. 지금 그 슬하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부, 손녀, 손서, 증손자 증손녀 등 대충 어림 잡아도 50명의 엄청난 대식구가 있다. 
내가 처음 본 인상은 정말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여장부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43년 전에 누나가 시집을 갔을 때, 나는 상객으로 따라가 그 분을 처음 뵈었다. 관심과 의욕으로 가득찬 눈빛과 날랜 몸움직임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가끔 생질에게 할머니 근황을 물어보면, 얼마전까지도 그 많은 손주나 증손주 이름을 하나 틀림없이 기억하시고, 명절 때면 못오는 녀석들이 누군지 일일이 챙기실 만큼 자손들에 대한 애정과 욕심은 조금도 줄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엽엽하셨던 분이 이제 그자손들을 당신의 품에서 풀어놓으셔야 한다.

상문을 하다보니 누나의 큰 동서이신 그 집안 맏며느님을 뵙게 되었다. 오래 전에 뵐 때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진다. 그 아들에게 물어보니 올해 여든이라고 한다.
여든이라.. 큰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겨우 15세 차이였네. 바깥 분보다 두세살 많으시다고 하니 당시 관행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근 60년, 즉 한 갑자를 15살 많은 홀 시어머니 아래에서 시집살이를 하신 셈이다. 
이 맏며느님은 왜소한 체구에 항상 조용하고 자기 주장이 없는 성격이셨다. 그래서 뵐 때마다 여장부인 시어머니 아래에서 힘든 시집살이에 할말 다 못하고 얼마나 속으로 삭히며 인고의 세월을 사셨을까 하고 안쓰럽게 여기곤 했었다.
이 어른도 여든이 되어서야 시집살이를 벗어나시게 된다.

고부 두 분의 삶이 가슴 아리게 그려지는 문상이다.

상념에 빠져 밥을 먹는 중에 갖 돌 지난 꼬맹이 한 놈이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다 내 식탁 가까이 와서 고추를 내놓고 종이컵에 쉬야를 하고 있다. 어른 밥상에서 볼 일을 보는 요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망인의 증손인 내 생질손 녀석이다.

저 증조모의 삶과 희생이 이 꼬맹이의 미래에 기름진 거름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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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마르시아스 예찬 (1/2)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가 있었다. 풍부히 차려진 연회장이었지만,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아테나는 그녀 특유의 지혜와 창의력을 발휘하여 연회를 더욱 즐겁게 하고 싶었다. 식탁에 버려진 사슴 뼈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피리를 만들었다. 피리 하나를 만들고나자문득 메두사가 죽을 때 들었던 아름다운 고음의 음율이 생각났다. 괴물 고르곤의 세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가 페르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고르곤 자매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가슴으로 토해내는 통곡의 고음 소리는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아테나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재현해보기 위해 고음용 피리를 하나 더 만들고, 두 피리를 더블 리드로 결합하였다. 더블 리드를 불면 고음과 저음의 두 피리가 서로 화음을 맞추어 지극히 아름다운 음율을 내었기에 아테나는 크게 만족하였다. 이 피리를 아울로스(Aulos)라 불렀다.

아테나는 그 아울로스를 연회에 모인 신들 앞에서 불었다. 아름다운 피리소리는 모든 신들을 감동시키고 연회의 즐거움을 더하였다. 그런데 유독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연주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서로 미모를 경쟁하던 여신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아테나는 개울물에 자신의 연주하는 모습을 비춰보았다. 아울로스를 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볼이 부풀어올랐고 그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보기싫게 일그러졌다. 그것이 다른 여신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아테나는 화가났다. 그래서 그녀는 아울로스를 인간 세계인 지상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경고를 덧붙였다. 

'누구든지 이 아울로스를 가져가 부는 자는
끔찍한 저주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울로스를 연주하는 아테나>

지상으로 버려진 아울로스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마르시아스(Marsyas)의 눈에 띄었다. 마르시아스는 사티로스(Satyros)의 일종이다. 사티로스는 반인반수(상체는 인간 하체는 염소)의 모습을 한 숲의 정령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본능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에 밝고 절제보다는 쾌락을 따랐기에, 술과 여자, 춤과 노래 등이 항상 함께 하는 디오니소스 신을 따라 다녔다.

아울로스를 손에 쥔 마르시아스는 그것이 피리의 일종임을 알고 입에 물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는 단번에 그 조화로운 음율에 매료되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음율을 만들어보았다.
고귀한 여신의 발명품으로서 천상의 신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던 아울로스가 천박한 동물적 본능을 가진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의 손에 들려 이제는 그의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아테나가 버린 아울로스를 줍는 마르시아스>


아울로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마르시아스는 음악에 대한 태생적 재능을 발휘하여 밤낮으로 연습하였다. 마르시아스의 동물적 본능과 결합된 아울로스의 신비한 음률은 특히 짐승들의 영혼을 홀려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마술피리는 이 마르시아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취월장으로 숙련된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실력은 널리 명성을 얻게 되고 이윽고 천상의 신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에 홀려모여든 토끼들>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 실력에 대한 마르시아스의 자부심은 자신감을 넘어 오만(Hubris)의 경지에 이른다. 그는 음악의 신인 아풀론에게 감히 도전하기로 한다. 아폴론은 그의 교만을 응징하기 위해 도전을 받아들였다. 아폴론이 사용하는 악기는 헤르메스로부터 얻은 '리라'라는 현악기였기에, 관악기와 현안기간의 치열한 연주 승부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승부가 가려지면 패자는 승자의 처분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런 승부에는 심판이 필요하다. 심판으로는 프리기아의 왕 마이다스(Midas)가 선정되었다. 마이다스는 손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가, 그로 인해 심대한 곤란을 겪고 자신의 탐욕을 깊이 뉘우친 후, 겨우 원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그 신화의 왕이다. 마이다스에게 황금의 능력을 부여하고 다시 원상복구시켜준 신은 디오니소스이다.
마이다스는 심판의 입장에서 양쪽의 음악을 골고루 들어보았지만,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중 누가 우월하지를 가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판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이다스는 아폴론의 미움을 샀다. 아폴론은 마이다스가 음악을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그의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그로 인해 마이다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처럼 연주 시합은 명쾌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양쪽의 연주가 어금버금한 상황을 거듭하자, 최종적으로 한판의 연주로 승부를 가리기로 하였다. 이 때 아폴론이 다소 억지스런 제안을 하였다. 각자의 악기를 거꾸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자고 한 것이다. 마르시아스는 그 말이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비할 바 없이 강한 올림포스 주신 중 하나인 아폴론의 말이었기에 그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였다. 결과는 마르시아스의 명백히 패배였다. 리라는 현악기이기에 거꾸로 잡고 연주하여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피리는 거꾸로 불기 자체가 불가능하고, 거기다 입으로 불어야 하기에 노래는 더더욱 부를 수 없다. 패배한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의 처분을 기다렸다.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연주 경쟁. 심판은 마이다스 왕. by Palma il Giovane>

 

아폴론이 내린 형벌은 너무도 가혹했다.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묶어두고 산채로 살가죽을 벗기도록 한 것이다. 감히 인간의 가죽을 쓰고 신의 음율을 흉내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르시아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한껏 비명을 질렀고, 그의 가족과 동료 사티로스들은 그 고통을 공감하면서 함께 아픔의 눈물을 흘렸다. 마르시아스가 흘린 피와 동료들이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은 마르시아스의 이름을 따서 마르시아스 강이라 불리웠다. 그 강은 대지를 흐르면서 널리 많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수많은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2/2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는 마르시아스>

Marsyas Flayed by the Order of Apollo (Charles André van Loo, ca. 1734-1735, oil on canvas)

<Giulio Carpioni (1613-1678)>

Apollo flaying Marsyas (Luca Giordano, 17th century, oil on canvas))

Apollo flaying Marsyas (Luca Giordano, 17th century, oil on canvas))

The Flaying of Marsyas (Titian, ca.1570-76, oil on canvas)

<나무에 묶인 마르시아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