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랑캐의 바지를 입고자 하오
조무령왕(趙武靈王)의 호복기사(胡服騎射)


혁신에 의해 리더와 팔로워가 구분된다.
(Innovation distinguishes between a leader and a follower.)
_ 스티브 잡스



*
모든 조직은 생존과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혁신을 필요로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성공한 혁신은 그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조직은 도태된다. 그래서 혁신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사명이며, 리더의 역량이 그 성공 여부를 가른다. 하지만 혁신은 고통스러운 변화이다. 누구도 변화의 고통을 기꺼이 따르려 하지 않기에 그 성공은 언제 어디서나 지난하고 그래서 리더의 역할에 더욱 의존한다.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통찰력과 리더십이다. 통찰력은 조직에 변화가 필요한 때임을 인식하고 올바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타이밍과 방향이 어긋난 변화는 혁신이 아니라 그저 허망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적절한 변화의 때와 방향이 정해졌으면 모든 조직원들을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통찰력과 리더십은 반드시 짝을 이루어야 한다. 리더십 없는 통찰력은 이룸이 없고, 통찰력 없는 리더십은 위태롭다.

*

2300년전에 군사강국을 갈구하여 강력한 혁신을 꿈꾼 군주가 있었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무령왕(趙 武靈王, BC 340년 ~ BC 295년)이 그이다. 당시 중국은 전국 7웅(雄)이라 불리는 (진). (초), (연), (제), (한), (위) 및 (조) 일곱 나라가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다. 그 중 조나라는 중원의 북쪽 지역에 위치하여 있어, 북쪽의 흉노와 연나라의 위협에 항상 드러나 있었고, 그외의 방위에서도 진나라와 한나라 등 강대국들과 생존을 위협하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 강한 군대가 있어야 함을 절실히 인식한 조무령왕은 나라가 변하여야 할 방향을 내심으로 정하고 어느날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강력한 군대의 보호가 없으면 사직은 망할 수밖에 없소. 어찌하면 좋겠소?
무릇 세상에 이름을 높이고자 하면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쳐야할 때가 있는 법이오.
나는 호복(胡服)을 입고자 하오."
(
無彊兵之救, 是亡社稷, 柰何? 夫有高世之名, 必有遺俗之累. 吾欲胡服.
_
司馬遷 史記 趙世家)

 

*

호복(胡服)은 '오랑캐의 바지'이다.
그런데 이 '오랑캐 바지'(호복)를 입는 것
이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당시 중국 남성의 복식은 의상(衣裳)이었다. 의상은 저고리(衣)와 치마(裳)를 가리킨다. 남성의 치마 저고리 복식은 중원 문화의 자존심인 반면, 오랑캐 바지는 야만의 상징이었다.

중원의 나라들에서는 전쟁의 기본 단위가 병차(兵車, 병거)로 이루어져 있었다. 병차는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던 전차와 유사하다. 네 필의 말이 끄는 병차에는 마부에 해당하는 어자(御者), 활을 든 차좌(車左) 및 창을 든 차우(車右)로 이루어진 3명의 전투조가 탑승한다. 그리고 병차 한 대에는 갑옷입은 무사인 갑사, 보병, 치중 등 약 30명이 뒤따르며, 이 부대 단위를 1승(乘)이라 불렀다. 천승지국, 만승지국은 병차의 대수가 1천대 혹은 1만대에 이름을 가리키니까, 그로부터 그 시대 제후국들의 병력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중원의 병차 시스템은 위엄과 품위를 앞세우고 온정과 의리가 남아있던 수백년 간의 춘추시대에는 별 불편없이 지속되어 왔었지만, 전쟁이 잦아지고 침략과 살육이 더 치열해진 전국시대에 와서는 실전에서 그 비효율성이 큰 취약점들이 드러났다. 바퀴 달린 수레인 병차는 평탄하고 길이 잘 정비된 평지에서의 전투에 최적화된 것이기에, 산악 등의 비평지전에서는 기동성을 발휘할 수 없었고, 말과 병차를 유지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었다. 특히 개별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북방의 적족이나 융족들과의 전투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병차(兵車)의 구성>


개별 전사들이 각자의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북방 오랭캐의 전투방식에는 중원의 치마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치마가 아닌 바지 즉 호복(胡服)을 입었다. 호복을 입고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것을 호복기사(胡服騎射)라 한다. 호복기사의 모습은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수렵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호복기사
(胡服騎射)는 그 기동성과 전투력에 있어서 병차에 비할 바 없이 탁월하였고, 또 경제적이었다. 중원 북방의 나라들은 북방 오랑캐의 호복기사에 전투가 있을 때마다 번번히 애를 먹었다.

이에 조무령왕은 강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는 중원 문화의 상징인 병차를 버리고 오랑캐의 습속인 호복기사(胡服騎射)를 채용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통찰한 것이다. 그래서 신하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나는 호복기사(胡服騎射)를
백성에게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틀림없이 과인에 대해 무어라 뒷말이 많을 것입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今吾將胡服騎射以敎百姓而世必議寡人柰何?)



*
호복기사(胡服騎射)에 대한 조정의 반발은 당연히 거세었다.
왕은 나라의 군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변화라고 여겨 복식과 전투방식을 혁신하고자 하였지만, 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의 신하들은 천박한 오랑캐 습속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랑스런 전통 문화를 고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대하였고, 심지어는 칭병하며 조정에 나오지를 않는 신하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무령왕은 신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조무령왕이 신하들을 설득하는 데 사용한 언어들의 예는 아래와 같다. 이들 말을 보면, 혁신 방향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강력한 추진 및 설득 의지를 절감할 수 있다. 

세상에 높은 공을 이룬 사람은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치는 짐을 져야 하며
홀로 지혜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합니다.
(有高世之功者 負遺俗之累 有獨智之慮者 任驁民之怨.)

지극한 덕을 논하는 사람은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이루는 자는 여러 사람과 도모하지 않습니다.
(論至德者 不和於俗 成大功者 不謀於衆)

어리석은 자는 일이 이루어져도 제대로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짐이 나타나기도 전에 그것을 봅니다.
(愚者闇成事 智者覩未形)

나라 다스림의 원칙은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정무 처리의 원칙은 명령이 이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을 밝히고자 할 때는
먼저 아랫사람부터 논의하여야 하고,
정책을 실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윗사람부터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制國有常 利民爲本 從政有經 令行爲上 明德先論於賤 而行政先信於貴)

무릇 옷이란 것은 입기에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라는 것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인들께서는
지역에 따라 그 편의에 따르고,
일에 따라 예를 제정함으로써,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나라는 부유하게 한 것입니다.
(夫服者 所以便用也 禮者 所以便事也.
聖人觀鄕而順宜, 因事而制禮 所以利其民而厚其國也) 

지금 숙부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풍속 그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풍속을 만드는 이치에 대한 것입니다.
(今叔之所言者俗也吾所言者所以制俗也)

현명함이라는 것은
변화와 더불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賢者與變俱) 

글로 말을 몰고자 하는 자는 말의 성정을 다 알지 못하며,
옛것으로 지금을 규제하려는 것은 일의 변화를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以書御者不尽馬之情, 以古制今者不達事之変)

옛법을 좇는 공만으로는 세상을 뛰어넘을 수 없고
옛날 가르침만을 본받아서는 현재를 규제하기에 부족하오.
(循法之功 不足以高世 法古之学 不足以制今)


*
결국 조무령왕의 설득은 성공하였다. 
반대하던 신하들을 모두 적극적인 동참자로 만들었다. 조나라의 군제는 호복기사 체제로 개편되었고, 그 결과 왕이 원하던 강력한 국가가 구축되게 되었다.
그리고 호복기사는 조나라에 이어 중원의 다른 나라들도 속속 채용하여 더이상 오랑캐나 조나라만의 문화가 아닌 중원 전체의 문화로 정착되게 되었으며, 고구려에 까지 전파되어 무용총의 수렵도에 그 증거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호복기사 혁신의 성공은 전적으로 조무령왕의 탁월한 통찰력과 리더십에 기인한다. 조무령왕이 혁신을 이룬 이 고사에서 깨달을 수 있는 가르침 몇 가지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그는 혁신의 의미를 통찰하고 있었다.
혁신은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것이다.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수단은 내부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배워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외부의 문화는 적들의 것이었다.
조무령왕은 혁신의 방향을 적으로부터 배워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도 중원 문화가 천대하던 비천한 오랑캐의 습속이었다.
중원 문화인의 자존심 유지와 군사강국이라는 당면의 비전은 양랍할 수 없었다. 그 둘 사이에서 무척이나 고뇌하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예(禮)'와 같은 알량한 명분을 과감히 배제하고 국가의 생존을 위한 실리를 채택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옷이란 것은 입기에 편하기 위한 것이고예라는 것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혁신의 성공은 기존의 가치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자기 부정의 탈각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는 "옛을 좇는 공만으로는 세상을 뛰어넘을 수 없고, 옛날 가르침만을 본받아서는 현재를 규제하기에 부족하오."라고도 말하였다.

둘째, 그는 저항을 예측하고 감내하였다.
많은 리더들은 자신이 제안한 혁신의 방향을 모든 조직원이 박수치며 칭송하고 기꺼이 따를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착각은 대체로 실망과 좌절, 분노로 귀결되고 혁신의 노력은 포기의 거품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조무령왕은 강력한 저항이 실재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혁신은 전통을 불가피하게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것을 수호하고자하는 노력은 혁신에 대한 저항으로 맞서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높은 공을 이룬 사람은 물려받은 풍속에 누를 끼치는 짐을 져야 하며, 홀로 지혜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합니다."

셋째, 그는 끈질기면서도 효율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는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논리로서 혁신의 필요를 설파하였다. 강력한 절대권력을 가진 봉건 군주임에도 자신의 혁신 방향에 무조건 따르라고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끈질긴 인내심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논리적으로 이해시켜 끝내 모두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그들 모두에게 진정한 갈증을 느끼게 할 수 없다면, 그들을 아무리 냇가에 끌어다놓아도 물을 마시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효율적인 설득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덕을 베풀 때에는 아랫사람부터 챙겨야 하지만, 호복기사의 채택과 같은 정책의 실행은 고위 신하들부터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덕을 밝히고자 할 때는 먼저 아랫사람부터 논의하여야 하고정책을 실행하고자 할 때는 먼저 윗사람부터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_ 끝_


<양이 이끄는 사자의 무리보다
사자가 이끄는 양떼가 더 강하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분류없음2019.06.23 08:57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써 만물을 꿰뚫는다
_ 論語 里仁, 衛靈公篇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 貢),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그러지 않으십니까?”라고 답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아니다나는 하나로써 만물을 꿰뚫는다.” 

子曰 賜也 女以予 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_ <論語 衛靈公篇>


공자가 말하였다.
(參, ), 내 도는 하나로써 만물을 꿰뚫는다.
증자는 !”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방을 나가자 문인들이 증자에게 무슨 말씀인지 물었다.
증자가 대답했다.
“스승님의 도는 ()과 서()뿐이다.”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 曾子曰 唯
子出 門人 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_ <論語 里仁篇>



**
논어에서는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이인편(里仁篇)과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각각 등장한다.
공자는 같은 말을 증자와 자공에게 각각 하였지만 그 대답은 달랐다. 증자는 공자의 말을 즉시 알아들었지만, 자공은 그러질 못했다. 두 제자의 배움의 깊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하나로써 만물을 꿰뚫는다(一以貫之)'함은 하나의 이치(道, 원칙, 기준, 잣대)로 만물을 파악하고 대응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하나의 도(道)'가 만물의 존재 원리를 모두 아우르는 최상위의 가치를 포용하여야 할 것이다.

공자의 그것은 ()과 서()라고 증자가 증언하고 있다.

()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조합으로서, 지극하고도 변하지 않는 뜻을 가진 마음이라 할 것이다. 충(忠)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뜻을 올바르게 세워야 하고 또 그것이 쉬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단히 다잡아야 할 것이다.

서(恕)는 용서 혹은 관용을 의미한다. 서(恕)에 대해서는 논어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공(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
乎)"
공자가 답하였다.
"그것은 바로 '서(
)'이다(乎).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己欲 人)"
_ <論語 衛靈公篇>


** 기업의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업에게 있어 '일이관지(一以貫之)'는 핵심가치 혹은 비전에 따라 회사의 모든 프로세스가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상황을 가리킬 것이다.
기업의 도(道)는 바로 비전이기에, 모든 조직원들이 그 비전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전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작동되면 공자가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조직 내에서 
()과 서()가 구현되게 될 것이다.


** 변리사의 일의관지(一以貫之)

변리사들의 일은 실로 다양한 기술을 다룬다. 30년 이상을 이 일에 종사하면서도 아직도 처음 접하는 기술 분야가 적지 않다. 
그런데 변리사들은 대체로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만나더라도 잠시 설명을 듣고 나면 어느새 그 기술 내용을 상당한 수준으로 파악해버리고, 심지어는 설명한 엔지니어들도 깨닫지 못한 기술적 경지를 언급하기 한다. 변리사들의 그런 희한한 능력을 보고 크게 놀라는 엔지니어들도 적지않다. 물론 개인적인 전공, 경력 혹은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기술 파약 능력은 변리사들의 생존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변리사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될까?
그것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하나로서 만물을 꿰뚫는다(一以貫之)'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새로운 발명(기술)은 기본적으로 3가지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What)이며, 왜 개발하였고(Why),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이 세 가지 질문만 하면 파악되지 않는 기술이 없다. 그렇게 큰 틀의 요지를 파악하고 나면, 그외의 세부적인 부분의 이해는 매우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변리사들의 기본적인 소양은 일의관지(一以貫之)이며, 변리사가 만물을 꿰뚫어보는 하나의 만능 이치는 'Why, How, What'을 질문하는 것이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사대(事大)와 사소(事小), 필부지용(匹夫之勇)

맹자 양혜왕(孟子 梁惠王)편



제선왕(齊宣王)이 뭍기를, 

"이웃 나라와 교류하는 데 어떤 도리가 있습니까?"(交隣國有道乎?)하니,

맹자(孟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이'만이

큰 나라를 가지고서도 작은 나라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惟仁者 爲能 以大事小)

그래서 湯임금이 葛나라를 섬기고 문왕이 昆夷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지혜로운 이'(智者)만이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惟智者 爲能 以小事大).

그래서 太王이 훈육(獯鬻)을 섬기고 구천(勾踐)이 오나라를 섬겼던 것입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以大事小者)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것(樂天者)이며,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以小事大者)

하늘의 도리를 두려워하는 것(畏天者)입니다.

하늘의 도리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할 수 있으며(樂天者保天下),

하늘의 도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畏天者保其國)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했기에 지금까지 나라를 보전하고 있도다.'(畏天之威, 于時保之)라고 하였습니다."


齊宣王問曰 "交隣國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是故 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故太王事獯鬻, 勾踐事吳.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

[ *昆夷 : 서쪽 오랑캐, 太王 : 문왕의 조부인 고공단보(古公亶父), 獯鬻(훈육) : 북쪽이민족, 時 : 지금까지]

 


왕이 말했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과인은 흠이 있으니, 과인은 용맹한 것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작은 용기 좋아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王請無好小勇)

칼을 어루만지며(撫劍) 노려보면서(疾視) 말하기를,

'네가 감히 나를 당할 수 있겠느냐.'

라고 하면(彼惡敢當我哉),

이는 한낱 필부의 용기(필부지용, 匹夫之勇)에 불과합다.

겨우 한 사람을 대적할 수 있을 뿐입니다(敵一人者也)

왕께서는 큰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王請大之)

시경에 이르기를, '왕이 잠시 노하였음을 드러내어 군대를 정비함으로써 거(莒)나라를 막아 주나라의 복을 다지고 널리 천하의 기대에 부응하셨네.'라고 하였다.

이것이 문왕의 용기입니다. 문왕은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서경에 '하늘이 백성을 내시고 그들의 임금과 스승으로 나를 세우시면서 명하시기를 상제(上帝)를 도와서 천하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편안케 하라고 하시었다. 죄가 있는 자를 벌하고 죄가 없는 자를 편안케 하는 것은 오직 나의 책임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감히 하늘의 뜻을 무시하는 반역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천하를 횡행하는 것을 무왕은 부끄럽게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무왕의 용기입니다. 무왕도 또한 한번 성내셔서 천하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지금 왕께서도 한번 노하셔서

천하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실 수가 있으시다면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백성들은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지 않으실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民惟恐王之不好勇也)."


王曰 大哉言矣 寡人有疾 寡人好勇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劍疾視曰 彼惡敢當我哉 此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詩云 王赫斯怒 爰整其旅 以遏徂莒 以篤周祜 以對于天下.

此文王之勇也 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 

書曰 天降下民 作之君 作之師 惟曰其助上帝寵之 四方有罪無罪惟我在 天下曷敢有越厥志?' 

一人衡行於天下 武王恥之 此武王之勇也. 

而武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民惟恐王之不好勇也.


[赫 : 드러내다, 크게 화를 내다. 斯 잠시, 爰 이에, 旅 군대, 遏 막다, 徂 막다]

[惡(어찌) 敢當我 어찌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



** 군자지용(君子之勇)과 소인지용(小人之勇)

자로가 물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의로움을 가장 숭상한다.
군자가 용기만 가지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게 되고,
소인이 용기만 가지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이 된다."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 - 논어, 양화 제23장-


** 호용질빈(好勇疾貧)

행동에 거침이 없으면서 구차함을 싫어하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남의 어질지 못함을 싫어함이 과도하여도
세상을 어지럽힌다.

子曰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_ 논어 泰伯편 


** 見義不爲 無勇也(견의불의 무용야)

자신의 귀신이 아님에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짓이고, 
옳은 일을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 . , . _ 논어 爲政편

(노나라 대부 계씨(氏)가 외람되이 태산에 제사를 지내려하자 계씨의 가신으로 있던 공자의 제자 염유(有)에게 그것을 못하게 하라고 했으나 그가 말리지 못한 일을 두고 공자가 한 말.)


** 暴虎馮河之勇(포호빙하지용)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려다가
죽어도 후회가 없다고 하는 자와는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함께 할 사람은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즐겨 도모
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사람이다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_ 논어 술이편, 자로와의 대화 중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하여
임무를 완수하는 능력이다.


**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것은 소인의 용기요(小人之勇), 죽음을 중히 여기고 굳건히 의(義)를 지키는 것은 군자의 용기다(君子之勇)-순자


**

설검(說劍)_ 천자의 검, 제후의 검, 서인의 검 _ 장자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선의후리(先義後利)
_ 통(通)한 자 남을 다스린다 _

_ 순자 영욕편(荀子 榮辱)


스스로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自知者 不怨人)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知命者 不怨天)

남을 원망하는 자는 궁(窮)하고
(怨人者 窮)
하늘을 원망하는 자는 뜻한 바(志)가 없다.
(怨天者 無志)

자신의 허물을 남에게 돌리니
어찌 잘못되었다 하지 않겠는가.

영화로움과 욕됨(榮辱)은 본 모습은
안위(安危)와 이해(利害)의 실체이다.

옳음(義)을 앞세우고 이로움(利)을 뒤로 하는 자는 영화롭고,
(先義而後利者榮)
이로움(利)을 앞세우고 옳음(義)을 뒤로 하는 자는 욕되게 되며,
(先利而後義者辱)

영화로운 자는 항상 통(通)하고(거침이 없고),
욕된 자는 항상 궁(窮)하다(막힘이 많다).

통(通)하는 자는 언제나 남을 다스리고,
(通者 常制人)
궁(窮)한 자는 언제나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
(窮者 常制於人)

이것이 영욕의 본 모습이다.


自知者 不怨人,知命者 不怨天;怨人者 窮,怨天者 無志。失之己,反之人,豈不迂乎哉!榮辱之大分,安危利害之常體:先義而後利者榮,先利而後義者辱;榮者常通,辱者常窮;通者常制人,窮者常制於人:是榮辱之大分也。_ 순자 영욕편(荀子 榮辱)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_ 주역

궁(窮)하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통(通)하며, 통(通)하면 오랫동안 지속(久)될 수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궁(窮)한 상태가 예견되면, 상황을 변화시켜 막힘을 해소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여야 하며, 그러면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