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9.04.29 16:30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


두루 들으면 밝아지고
치우쳐서 믿으면 어두어진다.

兼聽則明 偏信則暗

_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


당(唐) 태종(太宗)(626∼649) 때의 명 재상인 지낸 위징(魏徵)은 왕에게 직간(直諫)을 잘하였다. 태종은 위징에게 물었다.
"군주가 어떻게 하여야 일을 정확히 판단하여 밝게 처리하고 어떻게 하면 어두워지는가?"

위징이 답하였다.
"군주가 밝아지는 것은 여러 생각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어두워지는 것은 믿음이 치우치기 때문 때문입니다.(君所以明 兼聽也, 所以暗 偏信也)"


관자(管子) ‘군신편(君臣篇)’에도 유사한 말이 있다.
'나누어 들으면 들으면 어리석게 되지만, 모아서 들으면 지혜로워진다'
(別而聽之則愚 合而聽之則聖)'


<책을 한 권 밖에 읽지 않은 사람보다 위험한 사람은 없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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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9.04.21 07:34

'보는 방법'을 바꾸어라

보고(視) 살피고(觀) 헤아려라(察)


그 행하는 바를 보고,
그 까닭을 살피며,
좋아하는 바를 헤아려보라.

曰   
論語·爲政


**

위 글은 공자께서 사람됨을 평가하는 세 가지의 관찰 방법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視), 그 행동의 연유를 살피며(觀), 그가 좋아하거나 편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알면(察),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공자께서 언급한 시(視), 관(觀), 찰(察)이라는 세 가지 한자어는 모두 '보다'라는 공통의 뜻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자의 말씀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각 글자에 내포된 의미에 적잖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視)'가 단순히 눈을 통해 물리적으로 보는 '목격하다(see)'라는 의미라면, '관(觀)'은 눈으로 본 것을 분석적으로 보는 것, 즉 '관찰하다(observe)'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찰(察)'은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을 이해하거나 마음으로 헤아리는(understand, read)는 경지로 여겨진다. 

코난 도일의 추리물에서 주인공 셜록 홈즈가 그의 친구 왓슨에게 이렇게 말한다. "왓슨, 자네는 말일세. 언제나 보기만 하고 관찰은 하지 않는군."(As ever, Watson, you see but you don't observe.). 왓슨이 시(視)의 수준에 머물러 관(觀)의 경지를 이루지 못한 것을 셜록 홈즈가 지적한 것이다. 공자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관(觀)의 경지만으로도 부족하니 그를 넘어 찰(察)의 경지에까지 추구하라고 가르쳤을 법하다.

 


여하튼 매사를 파악하는 데에는, 눈과 같은 감각으로 보는 시(視)의 경지, 머리로 분석하여 살피는 관(觀)의 경지, 가슴으로 헤아려보는 찰(察)의  경지가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시(視)의 경지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관(觀)이나 찰(察)의 경지에 이르러서만 제대로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공자께서는 특히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이 세 가지 잣대를 모두 사용하도록 가르치셨다.


**

어찌 사람만 그러하겠는가. 기계나 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지금 돌아가는 현상을 보고서(
), 그 까닭을 살핀() 다음, 불편없이 편안하게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헤아려보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혹 그 상황에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있다면 최적의 해결책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발명 등 창의력의 비결도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방법을 달리하는 데 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을 이룬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았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그냥 흘려 버리는 것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시(視), 관(觀) 혹은 찰(察)하여 그들만의 기회를 집어낸다.


엘리베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어떤 해결책이 적절할 것인가.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물론 고속의 값비싼 모터를 채용하여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이 해결 방법은 눈이나 손발과 같은 감각에 의존한 매우 즉물적인 것으로서, 느리면 빠르게, 무거우면 가볍게, 크면 작게 하여 불편을 해소한다. 이러한 1차원의 감각적인 아이디어는 '시(視)'의 경지의 해결방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는 많은 문제가 이런 차원의 아이디어만으로도 해결되고 있다.

한편, 요즘의 많은 고층 건물에서는 고층용과 저층용으로 엘리베이터들을 구분하여 운행한다. 이렇게 하면 고층용 엘리베이트는 저층 영역을 건너뛰어 운행하므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절대 시간을 단축시켜 이용자들은 저속감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이 해결 방법은 특히 고층 이용자들이 속도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점을 분석적으로 파악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런 방법을 머리에 호소하는 '관(觀)'의 경지의 아이디어라 부를 수 있다. 인류에게 풍족한 기술 문명의 혜택을 안겨준 대부분의 발명은 이 '관(觀)'의 경지에 속한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엘리베이터 기업인 오티스는 매우 색다른 방법을 채용하였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저 엘리베이터 내부의 벽면에 거울을 부착한 것이다. 거울을 부착한 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의 속도에 대한 불평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왜 그랬을까? 오티스는 '저속감 불평'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이용자의 '저속감 불평'에 대한 정서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의 폐쇄된 좁은 공간에 있을 때 평소에 비해 시간이 훨씬 더 길게 느낀다는 점을 알아내고는, 폐쇄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줄여주기 위해 거울을 부착한 것이다. 이용자는 거울을 보며 폐쇄감을 완화하거나 잊을 수 있어 불평 해소에 너무도 만족스런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이용자의 내면적 욕구를 정확히 헤아려내는 아이디어는 가히 인간의 가슴에 호소하는 '찰(察)'의 경지라 할 것이다. 최근에 '행동심리학' 등에 기초한 이런 '찰(察)'의 발명들이 종종 눈에 띄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사안을 보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해결책 혹은 다른 발명이 도출될 수 있다.


**

그래서, 사물은 보는 방법에 따라 다른 사물이 된다.
즉, 보는 법을 바꾸면 사물은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

앞의 엘리베이터 사례에서 보자. 시(視)의 단계에서는 엘리베이터는 그저 승강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속감은 운행 속도를 높이는 것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관(觀)의 단계에서의 엘리베이터는 사람을 각각의 다른 층으로 이동시켜주는 수송 수단이다. 그래서 수송의 효율을 고려한다. 고층 영역과 저층 영역으로 나누어 운행하면 이용자의 대기시간과 주행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주므로, 굳이 속도를 높이지 않더라도 저속감을 상당부분 해소시킬 수 있다. 

'찰(察)'의 시각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무엇으로 보일까?
엘리베이터는 비록 짧은 시간 머물기는 하지만, 이용자가 실존하는 삶의 공간 혹은 환경이다. 그곳을 '인간의 삶'과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용자의 정서적 불편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명확히 헤아릴 수 있다. 이용자는 고속으로 주행하는 좁은 공간에 갖혀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 거울은 그런 이용자의 정서적 불편을 해소해주는 너무도 절묘한 탈출구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보는 방법을 바꾸면 그 대상은 다른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의 뭔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을 보는 방법을 바꾸면 된다. 


**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방대한 지식과 비범한 통찰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히 보는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세상 만물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대상은 전혀 다른 객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은 비범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위대한 사람은 평범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

(
Small minds are concerned with the extraordinary,
great minds with the ordinary.)



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가?

눈으로 볼(視) 것인가,
머리로 살필(觀) 것인가,
가슴으로 헤아릴(察) 것인가?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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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9.04.19 14:19


 



* 2019년 4월10일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한 강의 동영상입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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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을 청치 말고 갓을 짓어라


*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니 덕과 실력을 쌓으라는 뜻이다'라고만 대충 말씀해주셨다.

나름 혼자 생각으로, '범을 청하지 말고, 숲을 짙게 하라'라는 뜻이리라고 짐작만 했었다. '갓'은 '가지'에서 왔을 것 같고, '가지'는 '숲'을 이루는 것이니까 궁극적으로 숲을 가리킨다고 여겼다.

매사 따지기를 좋아하는 결벽증 증세가 있었던 내 성격 탓에, 주위 친구들과 잘 다투었고, 남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포용하는 능력이 많이 모자랐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덕이 부족하다고 항상 느끼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부족한 덕을 보충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가르침을 주셨을 것이다. 

*
그런데 얼마 전에 " ‘산’에게 잡아먹혀 사라져 버린 우리 토박이말 ‘뫼’와 ‘갓’과 ‘재’" 관한 글을 보고,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정확히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 해석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먼저, '갓'의 의미는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조림하여 가꾸는 뫼'이다. 김수언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갓’은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거나 보를 막을 적에 쓰려고 일부러 나무를 가꾸는 뫼를 뜻한다. ‘갓’은 나무를 써야 할 때가 아니면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오가면서 늘 지키면서 가꾼다. ‘갓’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일부러 ‘갓지기’를 세워 그에게 맡겨서 지키게 한다. ‘갓’은 소리로나 글자로나 머리에 쓰는 ‘갓’과 헷갈리니까 ‘묏갓’이라 하다가 요즘 국어사전에는 아주 ‘멧갓’으로 올려놓았다. "


그리고 '짓어라'는 '짓다'의 명령형이다. '짓다'는 '집을 짓다', '약을 짓다', '글을 짓다'처럼 무언가를 새로이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범'은 호랑이를 가리키고, '청치 말고'는 '청하지 말고'의 뜻이니, 범에게 오라고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따라서, 범을 청치 말고 갓을 짓어라'를 제대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범을 오라고 부르지 말고,
숲을 만들어라"

숲이 만들어지면 초식동물부터 작은 육식 동물이 모여들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니, 최상위 포식자인 범이 자연스레 찾아들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딱 필요한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멋진 아우 장천 김성태에게 여러장 써달라고 부탁하여,
주위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

이 말씀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도리불언하자성혜(蹊)와 같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맛을 찾아 오는 사람들 때문에 나무 아래에 절로 길이 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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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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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단단한 표주박은 쓸모가 없다.
_ 한비자 외저설 좌상


제나라에 전중(田仲)이라는 거사(居士)가 있었다. 송나라 사람 굴곡(屈穀)이 그를 만나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남들과 서로 의지하며 먹고 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표주박 기르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기른 표주박은 단단하기가 돌과 같고 두꺼워서 구멍이 뚫리지 않습니다.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전중이 대답했다. 
"무릇 표주박이라는 것은 뭔가를 담을 수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인데, 두껍고 구멍이 뚫리지 않는다면, 갈라서 물건을 담을 수 없으니 내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굴곡이 말했다.
"그렇지요. 저도 그걸 버리려 합니다."

지금 전중이 남들과 서로 의지하여 먹고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나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니, 단단한 표주박과 다를 바가 없다 할 것이다.


齊有居士田仲者, 宋人屈穀見之, 曰 穀聞先生之義, 不恃人而食。今穀有樹瓠之道, 堅如石, 厚而無竅, 獻之。 仲曰 夫瓠所貴者, 謂其可以盛也。今厚而無竅, 則不可以剖以盛物 而任重如堅石, 則不可以剖而以斟。吾無以瓠爲也。 曰 然, 穀將弃之。 今田仲不恃人而食, 亦無益人之國, 亦堅瓠之類也。_ 韓非子 外儲說左上


남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혼자만의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은, 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통로가 없으니 구멍이 뚫리지 않는 표주박과 같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없어 쓸모가 없다. 그리고 공기의 소통이 없으니 결국은 내부로부터 썩어서 소멸되고 말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기술, 경쟁 기업의 특허 등을 배우려하지 않는 기업은 구멍이 뚫리지 않고 두께가 두꺼운 표주박과 같다. 세계적으로 연간 2백만건 이상의 특허가 새로이 공개된다. 이들 특허 중에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업무영역에 속한 것들이 적잖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의 대다수 연구원들은 그런 무상의 귀한 공개 기술 자료를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그런 연구원들은 오로지 자신이 배운 역량만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며 제품을 개발한다. 세상의 기술과 소통하지 않은 기술로 만든 제품이 과연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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