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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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제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제사에 참례하신다. 그렇게 참례하시고 나서 올라 오신 김에 며칠 머물다 가시면 좋을텐데, 아무래도 서울 집이 편치 않으신지 대체로 파제 날에 바로 내려가신다. 하지만 여름에 사흘 간격을 두고 있는 제사 때에는 부득이 며칠을 지내ㅅ히게 된다. 

작년에 그 제사 때 올라 오시는 데 모시러 갔더니 가져오신 여행용 가방이 평소보다 묵직하다. 보통 거의 빈 가방을 가지고 오셔서, 그 가방에 참례하지 못한 동생 식구들이 음복할 수 있도록 제사 음식을 담아 가져가신다. 이 묵직한 게 뭔지 궁금하다.

- 뭐가 들었는데 이렇게 무겁습니꺼?

"컴퓨터다"

- 컴퓨터를 뭣하러 가져오셨습니꺼? 여기도 좋은 거 있는데예.

"그걸로는 주식거래 못한다. 이걸로만 된다."

아하~ 인증서가 깔려 있어서 그러시는거다.
아버지께서 주식 거래를 해오신게 근 20년은 된 듯하다. 그렇다 하도 70세 전후에 주식을 시작하신 거다. 그러다 컴퓨터를 한 대 설치해달라고 해서 몇년 전에 노트북을 한 대 설치해드렸더니, 상당 시간을 주식거래에 매달리셨다. 간혹 대화를 나누다 보면 투자하신 개별 기업들의 내역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계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모든 개미 투자자가 그렇듯 별 재미는 못보셨다. 가끔 주식 때문에 화를 내시는 것을 보면 때로는 적잖은 손해를 보기도 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그 어떤 활동보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적당히 무리하지 않고 하시라고만 잔소리하여 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아흔에 이른 노인네가 컴퓨터로 직접 주식거래를 하신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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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시절을 살아온 분들이 다 그렇듯 교육을 정규적으로 받아보시지 않으셨다. 일제 시대에 국민학교를 9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월반으로 들어가 3년 정도 다닌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사사하였고, 할머니가 아버지 7살 때 돌아가셔서 그 후 진례의 외가에 가서 외삼촌이 붙여주신 독선생으로부터 국민학교 과정을 과외로 배운 뒤에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학습 능력은 대단하신듯하다. 워낙 여러번 자랑을 하셨기에 훤히 외우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전쟁 중에 입대를 하셨는데, 고향 사람의 도움으로 운전병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운전병은 보병에 비해 생존율이 높았다고 한다. 거기다 보직을 잘받아서, 화천 지역에서 고지에 보급품을 올려보내는 케이블카 운전을 하게 되어 더욱 안전하고 끗발 좋은 군대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정비병 교육생으로 발탁되었고, 거기서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허박사'라는 별칭을 받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육해공군 정비병 대회에 선수로 발탁되신 듯하다. 그 교육과 시합을 위해 고향인 김해 공병학교에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으니, 대단한 군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3군 전체에서 1등을 하셨고, 그 부상으로 손목시계가 주어졌는데, 인솔 장교에게 빼앗아 가버린 것을 지금도 분하게 여기신다.

아버지는 이 자랑을 종종 하셨다. 너무 자랑스러워 하시기에, 어릴 때는 가끔 못믿겠다는 듯이 어깃장을 놓아보기도 했었다. 상장이나 증거가 있느냐, 누가 증언해줄 수 있느냐는 둥..

아버지의 이 자랑은 내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비록 증거도 증언도 없지만, 나라도 여기에 기록해두어야 언젠가 누군가는 아버지의 그 대단한 자랑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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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학습능력은 정말 대단하셨던 것 같다.
주식거래를 70세가 넘어서 시작하셨고, 컴퓨터를 다루시는 것도 80세가 훨씬 넘어서 배우셨다. 최근까지 경매물건을 경락받으신다고 여기저기 다니시곤 한다. 그외에도 새로이 뭔가를 시작하거나 배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셨다. 새로운 농사 기법을 적용하거나 평생 다루어본 적이 없는 작물을 심어 갖은 고생을 다하기도 했다. 요즘 내 친구들이 자주 쓰는 꼰대어 '이 나이에..'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배움과 도전을 멈출 때 비로소 늙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 번도 늙어보시지 않으셨다. 지금도 웬간해서는 아들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걸음이 불편하고 숨이 차도 손수 다니시며 일을 챙기신다.  

아버지의 이 덕목의 유전자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 삶은 그 유전자에 빚진 바 크다. 그리고 내가 아들에게 꼭 물려주어야 할 빚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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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지적재산권보호2018.12.21 12:59

특허를 이용하여 가지급금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솔깃한 안내를 기업 경영자 여러분들은 최근에 여러 군데에서 받아보셨을테고, 이미 이용하셨거나 혹은 믿음이 가지 않아 망설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질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일종의 경영 편법에 해당하기에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은 자제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고 계시기에, 제가 받은 질문 내용 중, 경영자들이 꼭 알아두셔야 할 중요한 사항 몇 가지를 짚어드리겠습니다

첫째, 과연 유용한가?

네. 제대로 처리하기만 한다면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특허는 재산권입니다.
부동산이나 유체동산과 동일하게 경제적인 교환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가지급금 해결 뿐만 아니라, 잉여이익금의 인출, 현물출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상속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허는 거래금액의 60%(2019년부터)가 필요경비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기타소득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거래(매매, 출자, 상속) 시 발생되는 세금이 매우 낮기 때문에 어떤 방법보다도 유리합니다.
게다가, 특허는 아이디어만 잘 만들어내면 얼마든지 새로운 창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처럼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 있는 재산권은 특허 등 지식재산권뿐입니다.


둘째, 어떻게 진행하는가?

- 대표이사의 특허 취득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특허를 취득한 다음, 그 특허를 회사에 넘기거나 라이센싱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대표이사가 반드시 특허를 취득하여야 하는데, 그 방법은 대표이사가 발명을 하고 그 발명에 대해 특허출원 및 등록 절차를 밟는 것이지요. 혹은 타인의 특허를 매입하여도 좋습니다.

- 대표이사의 직무발명
대표이사가 발명을 하고 그 발명에 대해 회사가 특허를 받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대표이사는 회사로부터 직무발명 보상을 받을 권리가 생깁니다.
그 보상금으로 가지급금을 상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작년부터 좀 안좋아졌습니다. 면세 범위가 300만원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금액을 초과하면 근로소득세와 같이 세율이 높아집니다.

- 대표이사의 특허를 회사에 이전 혹은 라이센싱.
특허를 이전하거나 라이센싱을 하면 특허 대금이나 로열티를 받게 됩니다. 그 금액으로 가지급금을 상계하거나 잉여이익금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 현물출자
대표이사가 가진 특허를 가치평가하여 현물출자를 할 수 있습니다.
현금이나 부동산을 출자하여 유상증자하는 경우와 동일합니다.
유상증자를 하면 자본금이 늘어나게 되어, 전체적인 재무구조가 좋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 상속
피상속자에게 특허를 양도(양도세가 매우 적습니다)하고, 그 특허를 현물출자하면 회사의 지분을 쉽게 양도할 수 있지요. 말많은 '가업 승계' 문제도 특허를 이용하면 합법적 및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셋째,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가?

제가 아는 몇 회사들이 아래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진행하여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 배임
회사의 업무와 관련되는 발명을 대표자 개인의 이름으로 특허 취득하면 배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자도 회사의 종업원에 해당하며,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3자로부터 매입한 특허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법인 전환하기 전에 보유하였던 특허인 경우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 이해관계인
회사에 다른 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면 신중하게 진행하여야 합니다. 이해관계인 때문에 진행이 왜곡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 과도한 가치평가
특허의 가치를 과도히 높게 책정할 경우, 세무 당국의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특허 1건을 20억 이상으로 평가받아 처리하였던 저희 고객 중 한 회사도 한동안 문제가 되어 애를 먹었습니다.
큰 금액은 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특허의 수를 늘려서 단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과도한 비용
특허의 취득과 가치평가 등에는 당연히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너무 과도하다면 도리어 다른 부담으로 전환되는 꼴이 되겠지요. 제가 지켜본 많은 컨설팅 기관들이 과도한 댓가(보험 가입 등)로 기업을 곤란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저희 신원특허에 연락주시면 안전하고 경제적인 길을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4차산업혁명의 파도, 막을 것인가, 즐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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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어느 날 울산 시내에서 행사를 마치고 울산역으로 가서 고속철로 서울로 복귀하는 동선이 예정되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택시가 파업이다. 난감하였다. 부득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디서 타고 얼마나 걸리는지 퇴근한 직원에게 연락하여 체크하느라 행사 내내 신경을 써야했다.

택시의 파업은 공유차 카풀의 등장에 생업의 위협을 느낀 택시 기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때문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응당한 이유가 있다. 카풀은 택시업계에 치명적인 변수가 될 것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그들의 삶의 길인 도로를 막고 그들의 밥줄인 승객의 발을 묶고,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을 던지며, 이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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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초 증기기관과 방직기계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과거의 수공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숙련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깍이게 되었다. 특히 영국 직물공업지대인 노팅엄에서 노동자들은 실업과 생활고의 원인이 기계의 탓이라 주장하며 방직기 등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을 러다이트(Luddite Movement) 운동이라 부른다. 노동자들의 절박한 이 생존의 운동은 안타깝게도 정부가 자본가들에 의한 가혹한 탄압에 의해 오래지 않아 진압되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는 항상 그에 대한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할 때에도 그러했다. 자동차라는 괴물을 만난 기존의 마차산업과 마부들의 저항은 무척이나 거세었다. 그들은 직물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큰 조직력을 가지고 영국 정부와 의회를 압박하여,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s, 1865년 제정, 1896년 폐지)라는 희안한 법을 제정하게 하였다. 

적기조례는 자동차의 속도를 시속 6.4km이하로 제한하고, 최소한 3명의 승무원이 있어야 하며, 특히 그 중에서 조수는 자동차의 60야드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걸어가며 마차의 통행을 보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터무니 없는 법은 30년간 유지되면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유럽에서 가장 뒤처지게 만들었다.

택시업계의 저항은 이 시대의 러다이트 운동이고, 이 시대의 적기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과 적기조례를 설명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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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의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카풀'은 '공유경제'의 한 모습이다. '공유경제'는 소유한 자와 필요로 하는 자를 연결하여 양측 모두에게 소유의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이다. 카카오택시 카풀은 택시업계의 저항으로 서비스를 중단하였지만, '타다', '그린카', '쏘카' 등의 카풀 혹은 카셰어링 서비스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유경제'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과 '한계비용 제로의 시대' 등에서 산업혁명에 따른 '한계비용 저감'과 '탈중앙화'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귀결될 경제 시스템이 될 것으로 강조하였다. 실제로 공유차량 시스템을 제공한 우버는 그 기업가치가 135조원으로서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에 이어 미국 스타트업의 2, 3위를 차지하는 기업가치 수십조원의 에어비앤비와 위워크도 모두 '공유' 시스템 회사이다. 에어비앤비는 숙소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서 방 한 칸 소유하고 있지 않은 호텔업이며, 위워크는 사무실 공간 한평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무실 임대회사이다. 이들 공유시스템 회사들의 폭발적 성장은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이처럼 4차산업혁명의 궁극적 모습은 필경 공유경제로 귀결될 것이다. 그것은 거센 파도와 같다. 그 파도는 누구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수많은 산업이 토종 업종 보호, 골목 상권 보호 등을 부르짓으며 저항하다가 결국은 장렬히 사라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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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2월5일은 기억해두어야 할 중요한 날이다.
'자율운전 택시'가 세계 최초로 운행을 개시한 날이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시에서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근 10년간 약 800만마일을 실주행 테스트하며 공들인 자율운전차로 실제 상업적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자율운전차 시대를 연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자율운전 택시는 미국에서부터 서서히 확산되어 어느날 우리 생활에까지 퍼질 것이고,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우리 삶에 익숙한 표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들어올까? 이제 그 날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자율운전차도 4차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구성요소이다. 이 자율운전차 역시 공유경제와 함께 택시업계에는 저항할 수 없는 파도가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율운전차에는 운전자가 필요없다. 

머잖아 '택시기사'라는 직업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택시 업계에게 있어서는, '공유경제'의 파도를 멀미를 일으키는 파랑 정도로 본다면, '자율운전차'의 파도는 쓰나미에 비견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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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참 묘한 산업 영역이다. 누가 의도하여 이런 판을 일부러 짜지는 않았겠지만, 관계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정부, 택시회사, 택시기사, 승객 모두 불만이 가득하다.
거기다 작금의 4차산업혁명이라는 시대 변화마저 이 산업에 우호적이지 못하다. 이 시대 변화가 그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으로 인해 모두가 다시 불편해진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불만의 무한사이클을 생성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택시업계의 불만 사이클을 해소하는 방책은 그 사이클의 내부에서는 결코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파도가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택시산업을 직접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것은 '카풀'이지만, 정작 그 본질은 '4차산업혁명'이다. 지금 저들은 '4차산업혁명'과 대적하고자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게임일까? 속도를 아주 조금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그들의 저항이 택시의 대안으로서 공유차량의 조기 등장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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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멈추게 할 수 없다.
거대한 파도가 닥치면, 누군가는 파도에 휩싸여 사라지고, 누군가는 파도에 올라 서핑을 타며 즐길 것이다.

파도는 막지 못한다.
하지만 그 파도를 즐길 수는 있다.
파도를 즐기려면 서핑을 배워야 한다.

그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 서핑을 배워야 할 때라고.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아들의 고장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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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 기숙사를 나오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학교로 데리러 갔다. 고등학교 시절 근 3년을 오로지 거기서 지냈으니 이사 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미리 조금씩 갖다 날라서 많이 줄어있긴 했지만 아직도 남은 짐이 제법 있다고 한다.

3학년들이 있는 층에 올라가보니 먼저 나간 애들의 버린 짐(나중에 정리해서 후배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이 산더미 같다. 교복 등 옷이 대부분이고, 책, 선풍기, 스탠드, 청소용 밀대 등 다양하다. 집에 가져가서 그대로 잘 쓸 수 있을텐데 요즘 애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른다고 혀를 차며 아들 방으로 갔다. 큰 여행용 가방 2개에 쓰던 물건이 가득 차있고, 이불 보따리와 잡동사니를 담은 작지 않은 상자와 바구니 너댓 개, 거기다 의자가 두 개나 된다. 승용차에 다 실어질지 걱정이 된다. 

아들이 의자 하나는 버리고 가자고 한다. 버리자는 의자를 보니 입학할 때 단체로 구입한 듀오백형 의자이다. 동일한 모델을 사무실에서도 쓰고 있는데, 허리받침이 있어 오래 앉아 있어도 자세를 바르게 유지할 수 있어 좋다. 얼핏 보니 역시 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다. 등받이의 잡아주는 나사 빠져 달아나 등받이가 덜렁거리고, 시트에는 뭘 쏟았는지 지저분하다. 차에 실을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니 정말 버리고 가야 하나 싶다. 

그런데 나사가 없는 것은 구해서 채우면 되고, 더러운 것은 씻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건이 아직 쓸만한데 버리는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아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물건을 어찌 가벼이 쓰레기로 버릴 수가 있나. 집사람도 집이나 사무실에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웬간하면 그러자고 아들 편을 들었지만, 일단 실어보자고 우겨서 애를 써보았다. 근데 아무리 요령을 부려보아도 다른 물건은 다 실렸는데 딱 그 의자 하나가 들어가질 못한다. 그 와중에 손가락은 어딘가에 걸려서 피가 흐르고 있다. 식구들의 짜증스런 표정이 눈으로 보지않아도 바늘로 찌르듯 느껴진다.

포기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지. 아버지가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들에게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지. 

그 참에 아들이 의자의 일부를 분리했다. 그리고 두 의자의 다리와 다리를 서로 얽어서 포개 보았더니 차의 뒷좌석 한쪽에 절묘하게 실어진다. 그 옆자리는 좌석도 좁고, 다리도 내려 놓을 수 없어 적잖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그런대로 참고 앉아갈 수는 있겠다. 그렇게 고장난 의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은 거 잘 한 거 같지?"
오는 길에 아들에게 슬쩍 물으니, 아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춘추전국시대 2대 패자(覇者)인 진문공(晉文公)은 19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정권을 잡는다. 그 오랜 고난의 망명 생활은 호언, 조쇠, 개자추, 위주, 선진 등과 같은 여러 충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 이제 황하를 건너기만 하면 진나라 땅이다. 호숙(壺叔)이 그동안 망명생활에서 쓰던 낡고 망가진 물건들을 일일이 배에 싣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진문공은 껄껄 웃으며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내가 오늘 진나라로 들어가면 진수성찬을 마음껏 먹을텐데, 이따위 쓰레기같은 물건들은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
吾今日入晉為君, 玉食一方, 要這些殘敝之物何用?" 喝教拋棄於岸, 不留一些)

그 말을 들은 호언(狐偃)은 진문공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이 세 가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신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신하는 군주를 존귀하게 하고 어진 신하는 군주를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신이 불초하여 공자를 오록에서 곤경에 빠트렸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조나라와 위나라의 군주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공자께서 취한 틈을 타 제나라 성을 빠져나와서 공자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지난 번에는 공자께서 나그네로 떠도는 중이라 감히 물러나겠다고 아뢰지 못하였으나, 이제 진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은 수년간 분주히 돌아다녔기에 넋이 놀라 끊어질 지경이고, 심력도 또한 다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그릇이나 깨진 사발과 같아 다시 상에 올릴 수 없고, 해진 돗자리나 구멍난 가림막과 같아서 다시 펼 수가 없습니다

신이 머물러도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신이 떠나도 전혀 잃는 바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臣聞 '聖臣能使其君尊賢臣能使其君安.' 今臣不肖使公子困於五鹿一罪也受曹衛二君之慢二罪也乘醉出公子於齊城致觸公子之怒三罪也向以公子尚在羈旅臣不敢辭今入晉矣臣奔走數年驚魂幾絕心力並耗譬之餘籩殘豆不可再陳敝席破帷不可再設留臣無益去臣無損臣是以求去耳!")

이 말을 들은 진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고, 호숙에게 일러 버렸던 물건들을 다시 싣게 하였다.


**
부귀하게 되었다고 빈천하던 시절의 물건을 가벼이 여긴다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호언(狐偃)은 그 점을 우려하여 진문공에게 에둘러 간언하였고, 진문공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고 반성한 것이다.

비슷한 가르침으로 이런 말이 있다.

交 忘(빈천지교 불가망)
妻 堂(조강지처 불하당)

가난하고 천하였을 때의 교우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어려움을 함께 한 아내는
결코 내보내어서는 아니된다.
_ 후한서(書) 송홍전(傳)


**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진 것에 자족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을
성공이라 하고
가진 것을 원하는 것을
행복이라 한다
_ 데일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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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성원 변리사
분류없음2018.12.06 13:54

상산(常山)의 뱀 솔연(率然)


병력을 잘 다룬다는 것은
마치 솔연(率然)과 같이 하는 것이다.
솔연(率然)이라는 것은 상산(常山)에 사는 뱀으로,
그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그 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달려든다.

善用兵者(선용병자) 譬如率然(비여솔연) 率然者(솔연자) 常山之蛇也(상산지사야) 擊其首則尾至(격기수즉미지) 擊其尾則首至(격기미즉수지) 擊其中則首尾俱至(격기중즉수미구지) _ 孫子 '九地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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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솔연((率然))과 같은 조직을 만드는가?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