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기술2009.02.19 11:14

 

개미사회의 조직과 협동

개미사회의 조직과 협동
최 재천 /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누구일까? 유전적으로 본다면 단연코 침팬지다. 분자유전학적 분석에 의하면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한다. 자연계를 통틀어 우리 둘 만큼이나 가까운 사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가 공동조상으로부터 분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5백만 년 전의 일이다. 5백만 년이란 시간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지구의 역사인 46억 년을 하루로 환산한다면 1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짧은 시간이다.

이러한 역사적 또는 유전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침팬지와 우리가 모습이나 행동에 있어서 흡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침팬지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군주를 중심으로 조직된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가축을 기르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이른바 분업제도가 고도로 발달한 것도 아니다. 대규모의 전쟁을 일으키거나 대량학살의 만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며 전쟁에서 납치한 포로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착취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 모든 ‘인간적인’ 일들이 개미사회에서는 다 벌어진다. 이처럼 개미는 외모로 보면 물론 우리와 엄청나게 다른 동물이지만 사회 구조와 행동으로 보면 놀랄 만큼 비슷한 동물이다.

현대 기계문명 사회의 주인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인간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세계를 떠나 저 자연 속으로 한 발짝만 들어서면 그곳의 지배자는 작은 곤충들, 그 중에서도 단연 개미다. 1970년대 중반 독일의 생태학자들은 남미의 아마존 지역 열대림에 서식하는 모든 동물들을 거대한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잰다고 가정하고 표본 추출 방법을 통해 그들의 생물중량을 측정하여 학계에 보고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개체 수준에서 비교하면 사람의 평균 체중의 백만 분의 1도 채 안 되는 개미와 흰개미들이 전체 동물중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각각의 개체로 보면 정말 하잘것없는 존재들이지만 워낙 수적으로 성공한 동물들이라 다 모아 놓으면 표범이나 맥 같은 큰 짐승들보다도 생태적으로 훨씬 더 우점종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곤충은 줄잡아 75만 종 정도이다. 그 가운데 개미는 약 9천 5백 종에 이르고 벌이나 흰개미 등 이른바 사회성 곤충을 통틀어 보면 1만 3천 5백 종에 달한다. 이는 전체 곤충 종 수의 겨우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생물중량으로 따져보면 압도적으로 우세한 곤충군이다. 영국의 어느 곤충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상에 현존하는 총 곤충의 수는 줄잡아 1백경(京)쯤 된다. 그 중 개미를 전체의 약 1%로만 잡아도 그 수는 무려 1경 마리나 된다. 일개미 한 마리의 평균 체중을 대략 1~5밀리그램으로 계산해 보면 전 세계에 분포하는 개미의 무게는 인류집단 전체의 무게와 맞먹는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만큼이나 성공한 동물도 거의 없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저 광활한 자연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는 곤충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개미들이다. 그런데 두 세계, 즉 기계문명세계와 자연생태계의 두 지배자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하는 짓거리가 비슷한지 그저 놀랄 뿐이다. 하나는 무척추동물이고 다른 하나는 척추동물로 엄청나게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건만 그들이 풀어낸 삶의 해답들은 신기할 만큼 흡사하다. 마치 서로 답안지를 베낀 것처럼. 이런 개미를 연구하여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는 일이 값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미제국의 경제 및 경영

개미 경제의 기본 단위는 군락(colony)이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개미 기업이 채택한 경영방식은 철저한 분업제도이다. 개미사회가 성취한 분업 중에서 사회학적으로 볼 때 가장 신기한 것은 바로 이른바 ‘번식 분업’이다. 여왕개미는 평생 오로지 알을 낳는 일에만 전념하고 일개미들은 그런 여왕을 도와 군락의 번식에 필요한 모든 제반 업무를 담당한다. 번식이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일개미들이 채택한 ‘작업 분업’은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고도로 조직적인 기업들의 공장 경영을 방불케 한다.


개미들이 벌이는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 지금도 몇몇 오지에서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사냥을 하기도 하고 동물들의 시체를 수거하거나 온갖 종류의 식물성 음식을 거둬들이는 개미들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6천만년 전부터 거대한 지하 버섯농장을 경영하는 일명 잎꾼개미들도 있다. 인류의 농업 역사가 불과 1만년 정도인데 비하면 엄청난 전통을 지닌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다. 그런가 하면 진딧물 등 온갖 곤충들을 포식동물들로부터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단물을 제공받는 낙농개미들도 있다. 식물을 초식곤충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식물이 제공하는 영양분을 취하는 이른바 보디가드 산업을 영위하는 개미들도 있을 정도로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경제 활동이 개미 사회에서도 벌어진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경우 개미 기업은 한 마리의 여왕개미에 의해 세워진다. 혼인비행을 마치고 새 살림을 차린 여왕개미는 자그마한 단칸방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먹지도 않고 오로지 자식 키우기에 전념한다. 쓸데없이 먹이를 구하려 외출을 하는 위험한 일은 아예 피하고 몸 속에 축적했던 지방과 이젠 쓸모 없게 된 날개 근육을 분해하여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첫 일개미들을 키운다. 제한된 자원이 동나기 전에 충분한 병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외부로부터 식량을 수확해올 수 있는 충분한 숫자의 일개미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왕국은 한번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멸망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여왕개미가 첫 일개미들을 키우는 과정은 외부와의 유통이 철저하게 단절된 이른바 ‘폐쇄경제’ 체제에서 이뤄진다. 주어진 환경에서 정해진 자본을 가지고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해내는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자본을 늘리거나 공정과정을 단축시키는 한 방법으로 여왕개미들은 때로 합작투자를 하기도 한다. 여러 마리의 여왕개미들이 한 방에서 함께 살림을 시작한다. 연합제국을 형성하는 여왕들은 알을 낳는 일에서부터 그 알들이 부화한 후 애벌레들을 키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새 제국을 건설하는 전 과정에 걸쳐 협동을 아끼지 않는다. 이 같은 여왕들간의 합종연횡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신생국가들 간의 경쟁이 특별히 심한 지역에서 비교적 빈번하게 발생한다.

여러 여왕들이 힘을 합칠수록 자본도 그만큼 증가하고 새끼를 돌볼 일손도 많아지는 까닭에 이들 합작회사들은 개인회사에 비해 훨씬 빨리 일꾼들을 키워낸다. 이 같은 합작은 대부분 같은 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필자가 중미의 코스타리카 열대림 속에서 연구한 아즈텍개미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종 사이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국경을 초월하여 이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이른바 ‘다국적기업’과도 같은 것이다.

일개미들이 굴문을 뚫고 외부세계로 나가 자원을 끌어들이기 시작하면 개미사회의 경제체제는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 바뀌게 된다. 이제부터는 언제 얼마나 많은 일꾼들을 투입하여 어떤 일들을 어떻게 능률적으로 해내는가가 승패를 좌우한다. 일정하게 책정된 예산이나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단계에 이른다. 최근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인 기업의 구조와 규모를 찾아내려는 기업구조조정(business restructuring)에 관한 연구가 한창인데 개미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왔다. 재벌을 비롯한 국내 많은 기업들은 물론 정부부처들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즈음에 개미 사회가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개미제국의 사회구조와 정치체제

현재 대부분의 인류 집단이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인데 비해 개미들은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다. 개미는 적어도 약 8천만년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그들의 체제를 실험해왔다. 인류의 역사가 기껏해야 5백만 년 정도인데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실험을 거친 그들이다.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혁명에서 찾는다면 그 역사가 불과 2백년 남짓이고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실험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념이 인간사회에서는 실패했으나 개미사회에서는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개미사회는 흔히 여왕을 중심으로 이룩된 하나의 국가로 비유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사회는 나라라기보다는 가족이다. 남의 집으로부터 납치되어 노예가 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일개미들은 한 여왕의 몸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가 딸만 많이 낳아 같이 사는 딸부잣집인 셈이다. 아들은 가끔 낳아 출가외인을 만들고 딸들만 데리고 살림을 꾸린다. 아들들은 태어나서 집에 있는 동안 빗자루 한번 드는 법도 없고 사냥 한번 다녀오는 일도 없이 오로지 장가갈 날만 기다리는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면 영락없는 놈팡이들이다. 그러나 딸들은 다르다. 평생을 시집도 가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신다.

개미사회를 관찰하다 보면 <동물농장>의 작가 오웰(George Orwell)의 또 다른 소설 <1984>를 떠올리게 된다. 숨막히게 조직적인 구조 속에서 제가끔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는 사회. 인간사회에선 소설로나 가능한 것이 개미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군락의 안정과 복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심지어는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어머니인 여왕으로 하여금 군락 내의 모든 번식을 할 수 있게끔 돕는 극도의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이룩된 사회. 이처럼 개미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바로 일개미들의 이타주의적 자기희생정신이다.

생물의 궁극적인 존재의 이유는 두 말할 나위 없이 번식이다. 그 어느 숭고한 이념도 화려한 명성도 번식을 돕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없다. 일개미들의 번식 희생이 풀기 어려운 숙제로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을 괴롭힌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다. 개미사회 중에도 가끔 여왕이 없이 일개미들끼리 나라를 꾸리는 경우가 있다. 지도자가 없는 오합지졸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여왕이 없는 나라에는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번식할 수 있는 권리를 놓고 늘 서로 다투기 바쁘다. 어느 인간 집단이건 지도자 없이 지내기 어려운 까닭이 개미사회를 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여왕이 통치하는 개미제국에서는 번식 분업이 확실하게 일어난다. 대부분의 경우 번식은 오로지 여왕의 몫이고 일개미들은 여왕이 보다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이 국가 전체로 볼 때 훨씬 생산적이고 일개미 개체로 볼 때에도 유전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진화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갈등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개미사회에도 번식의 권리를 둘러싸고 늘 암투가 벌어진다.

필자는 십여 년 전 이 같은 개미제국의 사회적 갈등에 관하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 발표된 개미에 관한 논문들을 전부 읽어본 결과 매우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개미사회의 갈등은 그 골이 매우 깊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로는 여왕이 죽으면 일개미들이 알을 낳기 시작하는 법이지만 때로는 여왕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변방에 숨어서 알을 낳아 자식을 기르는 일개미들이 있다. 만일 여왕이 그 사실을 발견하면 즉시 달려가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한다. 이 같은 갈등이 너무 심각해져 아예 여왕은 딸만 낳고 일개미들은 아들을 낳기로 합의를 본 개미제국들도 있다.

감사원의 기능과 조금 흡사한 일이 있어 한 가지 소개하려 한다. 유전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경우 일개미들은 여왕이 홀로 알을 낳아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런 사회적 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를 항상 감시하고 저지하는 행동을 보인다. 다른 일개미들이 번식을 시작하면 그만큼 군락 전체의 유전관계가 낮아지기 때문에 일개미들이 알을 낳는 행위에 대한 감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꿀벌사회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개미사회에서도 몇몇 사례들이 보고되어 있다.



개미제국의 문화

고도로 발달한 분업제도를 바탕으로 한 경제체제도 여왕의 통치하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체제도 모두 언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특별히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개미는 후각으로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한다. 대부분의 곤충들이 그렇듯이 개미의 언어도 기본적으로 화학언어다. 화학언어는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예를 들어 잎꾼개미의 냄새길 페로몬은 독침샘에서 분비되는데 얼마나 민감한지 1 mg만 가지면 지구를 세 바퀴나 돌 수 있을 만큼 긴 냄새길을 만들 수 있다.

개미의 페로몬 중 어떤 것들은 또 대단히 휘발성이 강해 화학 경보로도 안성맞춤이다. 침입자를 발견하면 즉시 경보 페로몬을 분비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동료 일개미들이 사건 현장으로 집결하여 침입자를 완전히 포위한 후 다리와 더듬이를 겨냥하여 공격을 시작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침입자는 사극 영화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극형인 능지처참을 당한다. 세 쌍의 다리들과 한 쌍의 더듬이 모두가 팔방으로 찢기는 참사를 면치 못한다.

몇 년 전 우리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개미’에서는 인간들이 개미들의 언어를 터득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과연 인간과 개미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실제로 올 것인가? 다른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이 그렇듯이 ‘개미’가 그리고 있는 세상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방적이기는 하나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냄새길을 그리는데 쓰는 페로몬을 추출하여 우리가 인공적으로 길을 만들면 개미들은 우리가 오라는 곳으로 온다. 이제 남은 일은 개미들이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터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뿐이다.

개미 사회에는 그들의 화학언어를 모방하여 자기 이득을 취하는 동물들이 있는 반면, 그들의 언어를 배우도록 강요 당하는 경우도 있다. 어려서 남의 나라로 끌려온 후 화학적 세뇌를 받아 평생 자기 나라인 줄로만 알고 일만 하는 노예개미들이 그 예다. 많은 종의 개미들이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주로 사막지대에 사는 꿀단지개미의 경우 전통적인 토너멘트 의식을 통해 상대 군락이 엄청나게 약세임을 파악하면 급기야는 상대의 굴 속까지 밀고 들어가 여왕개미를 죽인 후 어린 일개미들과 유충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는다. 그런데 꿀단지개미처럼 같은 종 내에서 노예를 만드는 예는 사실상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른 종의 개미들의 유충들을 납치해와 노예로 삼는다. 인간 사회에 비유하면 전자의 경우는 노예제도라 할 것이나 후자는 사실 인간이 소나 말 등을 가축으로 삼은 것과 흡사하다.



알면 사랑한다

개미는 이 지구에 우리보다 훨씬 먼저 출현했고 아마 큰 일이 없는 한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만일 인류가 멸종한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구조물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생물계 전체로 볼 때 거의 틀림없이 좋은 방향으로 일어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것을 애도할 생물은 아마 바퀴벌레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개미가 사라진다면 지구생태계의 존속마저 위협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개미는 어느 정도 훼손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동물이기는 하나 그들의 동반자인 식물과 동물들이 사라지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다. 환경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떠밀려 있다. 조금만 더 잘 살게 되었을 때 고려하지 하고 미루다 보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환경을 정화하고 보전하는 일은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다음 세대가 아닌 바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필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개미 이야기는 필자가 가장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언젠가 우리 꼬마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의 요청으로 아이들에게 개미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필자에게 앞을 다퉈 많은 질문들을 퍼부었다. 강연이 끝난 후 필자는 우리 꼬마와 함께 뒷산에서 채집한 개미 군락을 그들의 교실에 설치해 주었다. 개미 슬라이드만 보고도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던 아이가 강연이 끝난 후 개미 군락을 설치할 때 돕기를 자청했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후 전해 받은 그 선생님의 편지에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시간씩 개미집을 들여다보며 밖에서 놀다가도 개미를 발견하면 신발로 밟아 죽이던 예전과는 달리 모두 배를 땅에 깔고 개미가 냄새길을 그리는 걸 관찰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 유럽의 사상가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지만 아는 것은 곧 사랑이기도 하다. 알아야 사랑한다. 어설프게 알기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미워한다. 상대를 완전하게 알고 이해하면 반드시 사랑하게 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를 해치는 일이란 하라고 해도 못한다. 개천가에 버려진 비닐봉투나 깡통들을 줍도록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만으로는 근본적인 자연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을 알기 위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하고 그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일반 대중, 특히 다음 세대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자연보전에는 전혀 약이 되지 않는 속담이다.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