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읽은책2019.07.14 13:06

박경리의 '일본산고(日本散考)' 중에서


오늘 아침에 박경리 선생(음력 1926년 10월 28일 - 2008년 5월 5일)의 일본산고(日本散考)를 전자책으로 사서 읽어보고 있다. 이 책은 선생이 돌아가신 후 일본에 관한 미발표 원고들을 모아 2013년에 발간된 것이다.

이 책의 제3부에서는, 일본의 우파 역사학자인 '다나카 아키라'가 1990년 8.15에 즈음하여 발표한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이 먼저 실려있다. 이 글은 '통속민주주의의 성행', '타자에게 얽메이는 한국인', '반일도 대중화 시대로', '사죄는 마음의 문제' 등의 소제목으로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비판하였다. 다나카의 글에 대한 박경리 선생의 반박이 이어진다. 선생은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실랄하게 반박하였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옮겨본다.
(이 분의 글 어조는 베껴쓰는 훈련을 해보기에 참 좋은 대상이라, 캡처한 글 부분을 일부러 타이핑하여 입력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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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는 어부의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농부는 농부의 말로, 제각기 환걍과 지적 수준에 따라 자기 견해를 표명한다.
하기는 우리 민족 전부가 겸손하고 고상하고 객관적이고 했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하다 해서 함구령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학자의 독점물이 아니며 사람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역사에 동참해온 것만큼 알 권리, 말할 권리는 있다.
설령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우쭐해서 (일본에 대해) 과잉 표현을 좀 했다 하자. 그들의 천진한 자랑 때문에 일본의 땅 한 치 손실을 보았는가, 금화(金貨) 한 닢이 없어졌는가, 왜 그렇게 못 견뎌 할까. 그 같은 자랑조차 피해로 받아들이는 그들이고 보면 우리 한국의 천문학적 물심양면의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안이 벙벙해진다.



- 다소 GNP가 높아졌다 해서 벼락부자의 천박한 속성을 드러내는 행위라든가, 자랑스러움을 간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장 찬란한 올림픽을 치렀다는 우월감 따위는 깊이 경계해야 하리라 생각했다.
신(神)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한 고정관념 때문에 유대족은 그 우월감, 배타성으로 하여 오랜 세월 타민족으로부터 소외되고 박해받았고, 게르만 제일주의 나치스는 류 최대의 범죄를 남기고 붕괴했으며, 신국(神國)으로 망상한 일본 역시 최초의 원자탄 세례를 받았다.
자비(自卑)하는 것이 비천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월감의 과시도 비천한 것이며 해악적(害惡的) 요소인 것이다.
간혹 가다가 듣기도 하고 지면에서 보기도 하는 일등국민(一等國民)이라는 말은 본래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시작된 일본의 유치한 용어였었다. 나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역겨워 견딜 수 없었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일등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적에 나랏일이 걱정스럽기도 했었다.


거칠 것 없이 남의 팔다리 잘라놓고 뼈 마디마디 다 분질러놓고 제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피 한 방울 흐르는 것을 보는 순간 새파랗게 질리면서 “아파! 아파!” 하고 울부짖는 형국이다. 맙소사, 이런 정도를 못 견디어 하는 증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건대, “한
시절 전만 해도 조선인은 우리 앞에 우마(牛馬)나 다름없는 존재 아니었나. 이제 와서 제법 사람 노릇 한다. 도저히 보아줄 수 없군.” 그런 불쾌감도 있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에게서 문화를 조금씩 빌려 갔었던 무지하고 가난했던 왕사(往事, 지난일)로 하여 사무쳐 있던 열등감 탓은 아닐까. 한국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신이 나서 발 벗고 나서서 떠들어대지만 좋은 것에 대해서는, 특히 문화 면에서는 애써 못 본 척 냉담하고 기분 나빠하고 깔아뭉개려 하는 일본의 심사는 어제 그제의 일이 아니었다. 그 집요함을 도처에서, 사사건건 우리는 보아왔다.


“지각 있는 사람은 함부로 그런 말 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자. 자가당착도 이 정도면…… 미안한 얘기지만 그가 팔푼이가 아니라면 그는 우리를 팔푼이로 보았는가. 이보시오, 지각이 있어서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요? 함부로 말을 했다면 목이 남아 있었을까? 하기는 우리 민족 전부가 지각이 있었지. 살아남기 위하여. 지금은 총독도 없고 말단 주재소의 순사도 없다. 우리를 겨누는 총칼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어째서 일본을 성토하면 안 되는가.


-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 곰배상 :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접대상)



-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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