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잡는 기술(도룡지기)

 


전국시대에 주평만(朱泙漫)이란 자는 

지리익(支離益)에게서 용을 도축하는 기술을 배웠다. 

천금이나 되는 가산을 탕진하여 3년 만에 그 재주를 이어받았지만 

용이 없으니 그 재주를 쓸 곳이 없었다 _ 장자 열어구편

 




용을 잡는 기술 즉 도룡지기(屠龍之技)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허황된 것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누가 그 따위 쓸데없는 것을 익히고 보유할까 싶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고 또 그에 대해 특허를 받고자 노력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특허 분야에서 발견되는 가장 대표적인 도룡지기 발명은 애초 실현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기술이다. 내가 잘아는 아마추어 발명가 한 분은 국가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고만 발생하면 그 해결책(?)을 들고 와서 특허출원을 의뢰하곤 하셨다. 예를 들면, 헬리콥터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을 때는 헬리콥터에 낙하산을 부착하는 아이디어를, 배가 전복되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을 때는 배의 전복을 예방하기 위해 선체 측면으로 돌출되는 날개를 붙이자는 아이디어를 가져오신다. 원체 전문지식이 부족한 데다 오로지 열정과 직관만으로 솔루션을 생각해 내니 아이디어들의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실현을 위해서는 상당한 다른 기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 분이 오실 때마다 기술의 실현성이 없음을 설득하여 출원을 하지않도록 말리는 데 진담깨나 흘렸었다. 

그래도 이런 분들의 기술은 순진한 편이다. 그나마 현실의 문제에 기초하였으므로 근본적으로 터무니 없는 도룡지기라고 말하긴 어렵다.

 

특허출원 검색사이트에서 이리저리 찾아보면 정말 황당한 발명들을 상당 수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이 있으신 분은 KIPRIS.or.kr 등에 들어가서 그저 발명의 명칭에 ‘우주’라고 입력해보시라. 아마 그 제목만 보아도 쓸모나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발명들을 여럿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주 왕복선 궤도진입시 육안식별법”, “우주에너지 방사 구조물”, “가상(싸이버) 우주, 세계, 천당, 지옥의 운영, 기획, 존재”, “우주반지” 등등.. 얼마 전에는 달표면에 광고를 표시하는 기술에 대해 미국에 특허출원되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 발명들 중에서도 특히 “크니우주망원경(KNY Cosmos Telescope)”과 같은 발명은 그 스케일이 너무도 엄청난 도룡지기이다. 이 발명은 태양을 중심으로 직경 3억km의 지구 공전궤도를 따라 무수히 많은 전파렌즈를 형성하는 전파망원경군을 배치하고, 이 전파망원경들로부터의 전파를 태양중심 원뿔형의 뿔끝에서 모으는 중앙통제 우주스테이션을 마련한다. 가만히 그 대단한 스케일을 상상해 보시라. 이 기술이 언젠가는 실현가능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특허권의 존속기간(출원일로부터 20년) 내에는 우리 인류의 우주항공적 지원기술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도룡지기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고대로부터 끊이지 않고 개발되고 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기술, 영구기관이 그것이다. 영구기관은 상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전문가들마저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그 오묘한 유혹에 자칫 속아넘어가고 만다. 이들은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에 위배된 발명으로서, 외부 에너지의 공급 없이 지속적으로 일을 하거나 비가역적 자연법칙에 거스르는 장치이다.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런 꿈의 기계를 개발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검색해보면 발명의 명칭에 ‘영구기관’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발명만 해도 수십건 발견되며, 영구기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출원되어 있는 영구기관 발명은 그 몇 배는 될 것이다.

 

영구기관과 유사한 도룡지기 발명으로서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한 발명이 있다. 예를 들면 ‘기’, ‘염력’, ‘피라미드’, ‘파동’, ‘귀신’ 혹은 ‘영혼’ 등과 같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거나 검증할 수 없는 에너지나 현상 등에 관계되는 발명이 이에 속한다. 이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발명이 매년 특허 출원되고 있다.


이러한 실현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도룡지기들은 대체로 특별한 정신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관계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류의 발명은 대개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며 개인적으로 약간의 경제적 손실은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비즈니스나 경제활동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비즈니스 활동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도룡지기이다. 

극도의 합리와 효율을 추구하여야 하는 기업들이 귀중한 인적, 경제적 역량을 쏟아 도룡지기를 추구하고 취득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도룡지기는 단순히 자원의 낭비에 그치지 않고 역량을 분산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의 존립과 지속가능성을 심각히 위협할 수 있다. 모든 경영자들은 현재 기업 활동의 리스크를 헷지하고 미래의 먹을거리 찾기 위해 새로운 사업 꺼리에 항상 목말라 한다. 그런 갈증의 틈을 비합리 비효율의 조급한 의욕이 파고들어 도룡지기에 투자를 하게 된다. 특히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분별력이 부족하고 거기다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필터링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기업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도룡지기는 대체로 자신의 역량이나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 기술이다. 대부분 시대의 유행에 따라 자신의 역량과는 거리가 먼 풍력, 태양광, LED, 바이오 등 대체에너지나 미래산업에 관련하여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도전은 아릅답다. 기술적 전문성이나 전문 인력도 없고 현재나 미래의 비즈니스 내지 비전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 막연히 의욕만 가지고 CEO의 적흥적 판단이나 타인의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무모하게 추진한다. 그렇게 시작한 많은 기업들의 기술을 보면, 뭐라 말해주기가 민망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무지하고 유치하여 한 눈에 도룡지기임이 뻔히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도전에는 우선 제대로 잘 훈련된 팀을 확실히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해당 기술분야에 대해 기술환경분석, 리버스엔지니어링, 벤치마킹 등을 통해 충분히 학습을 하고 그렇게 습득된 단단한 지식 기반 위에 추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나마 덜 위태롭다. 하지만 어떤 영역이든 이미 선발업체는 존재한다. 그 선발업체들은 이미 상당한 핵심역량과 전문 능력 및 경험을 갖추고 훨씬 더 치열하게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을 극복할 수 있는 필살기를 구축하지 않는 한 제대로 기를 써볼 수 없을 것이다.


회사의 역량이 부족한 때에는 제3자의 기술을 차용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도 한다. 이 역시 기업의 변신을 추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CEO의 직관에 따르거나 소수의 제3자의 낙관적 권유를 액면 그대로 믿고 진행한다. 해당 제품의 시장성 및 기술경쟁력, 가치의 평가, 계약의 적정성 등 다양한 체크포인트에 대해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여도, 실행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충분한 검토 없이 남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눈을 가리고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이 스스로를 망친다.  실제로 한물간 평범한 기술이나 별 경제성 없는 기술에 대해 과도한 인수가격을 지불하여, 그 매몰비용이 아까워 계속 나아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 있는가 하면, 계약이 부적절하여 그 실시에 이미 큰 손해를 보아 뒤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데도 거기다 기술료와 로열티를 꼬박꼬박 곱다시 물어야 하는 속쓰린 상황도 보았다. 

 

중소기업의 도룡지기 중 특히 부담이 큰 것에는 해외 특허출원이 있다. 많은 발명자나 기업은 자신들의 기술이나 특허에 대해 적든 많든 다소 과대망상적 자부심을 갖는다. 그래서 국내출원을 하고 나서 당연하다는 듯이 국제출원 등을 통해 해외 출원을 진행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해외출원은 대상 국가의 수에 따라 비용이 비례적으로 증가하고 심사의 진행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큰 비용이 수반된다. 1개 국가 당 대체로 등록받기까지 평균적으로 7~800만원은 소요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특허가 되더라도 매년 연차료가 만만치 않게 든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특허를 받아놓고 이를 실효적으로 잘 활용하는 경우는 경험상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특허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그저 장식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도룡지기인 것이다.

 

기업이 도룡지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당연히 내외부의 전문가를 잘 이용하여 신중히 결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의 주관을 잘 지켜주는 튼튼한 맨탈이다. 물이 깊다고 신령스러워지는 게 아니고 용이 살고 있어야만 신령스런 물이 된다(水不在深 有龍則靈). 마찬가지로 기업이 크다고 강하지 않다. 내부에 튼튼한 용을 키우고 있어야만 강한 기업이 된다. 기업의 용은 기업의 비전이라 불린다. 용은 특히 모든 뜻을 이루게 해주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다. 비전은 기업의 소속원 모두의 가슴 속에 공통으로 깃들어 있어, 자신들이 왜(why) 존재하며 무엇(what)이 되기를 추구하고 어떻게(how)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를 공유하는 잘 정리된 정체성이다. 비전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다면, 쓸모없는 도룡지기가 그 비전에 부합할 리가 없고, 경영자의 독단이나 외부 사람의 유혹에 말려들 틈이 없다. 비전이 강한 기업은 전 소속원들이 철저히 비전을 공유하며, 그 비전의 수행을 위한 역량의 구축에 매진하고, 구축한 역량에 기초하여 목표달성을 위한 잘 짜여진 전략에 따라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공략한다.

혹시 지금 보유하고 있거나 새로이 관심을 끄는 기술이나 특허가 도룡지기인지 아닌지 궁금한가? 그러면 그것들을 회사의 비전으로 비추어 보라. 회사의 비전에 부합하면 그것은 귀사의 핵심역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전에 어긋나 있다면 그건 필경 모두 폐기하거나 관심을 접어야할 도룡지기이다.


용을 잡으려 들지 말라. 내부의 용을 키워라!

Posted by 허성원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