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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나폴리와 운조루(20.10.10)

by 허성원 변리사 2022. 10. 13.

나폴리와 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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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나폴리는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항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여행기를 보니 필자는 그렇게 끔찍한 도시를 일찌기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혹평을 하고 있다. 도시 전체의 무질서와 어수선함에 더하여 때로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와 냄새 때문이다. 거기다 치안상태가 취약하여 세계적인 솜씨를 가진 소매치기들과 거의 강도 수준에 달하는 날치기는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곳인데도 어찌하여 나폴리가 세계 3대 미항(美港)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까?

그건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나폴리 항구가 아름다운 것은 뱃사람의 시각에서나 그렇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에게 좋은 항구는 큰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것이면 된다. 수심이 깊고 암초가 없어야 하며, 파도도 너무 높지 않아야만 뱃사람들에게 최고의 항구다.
그런 관점에서 나폴리는 뱃사람들에게 충분히 아름답다.

거기다 나폴리는 바다에서 바라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지어진 빈민들의 집들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뱃사람들의 향수 가득한 정서를 적셔주며, 특히 밤에는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폴리는 양면성을 가진다.
뱃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을, 주민이나 관광객에게는 불편과 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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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10.10) 지리산 산사(山寺) 답사를 다녀왔다.

창원대학교 박물관 팀과 함께 하동의 쌍계사를 거쳐 구례의 연곡사, 화엄사 및 천은사를 거치는 비교적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들 사찰을 돌며 이윤상 박물관장님의 해박한 해설을 들었다. 이름만 들었던 남도의 명찰들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되는 귀한 경험이었다. 무척 좋았고 감사하다.

연곡사에서 화엄사로 가는 도중에 운조루()에 잠시 들렀다. 운조루는 구례 지역에 있는 유명한 전통 주택으로서 대단한 명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이름에 구름과 새가 들어 있으니, 푸른 창천을 자유로이 떠다니며 노닐고자 했던 당시 그 집 주인의 풍취를 엿볼 수 있다. 

고택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 집의 생기가 느껴진다. 집 구석구석의 구조에서 어릴 때 살던 집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는 참 아름다운 저택이다. 거기다 집 주인이 문화 류(柳)씨라고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문화 류씨이니 절로 더 관심이 간다. 

안내 기록에 따르면,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집으로서, 'ㄷ'자형 안채와 '丁'자형 사랑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경북 지방의 가옥 구조라고 한다. 

이 집이 특별한 것은 무엇보다도 풍수적으로 대단한 명당에 지어진 집이라는 점이다. 구례 오미리에 세 가지 명당 즉 금환락지(,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 금구몰니(, 금거북이 진흙에 묻힌 자리) 및 오보교취(, 다섯가지 보물이 쌓인 자리)가 있는데, 이 세 명당이 이 운조루에 모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집들도 다들 자기 집터가 그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고 주장하고 있단다. 

여하튼 집앞에 훤히 펼쳐져 있는 너른 들판, 병풍처럼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뒷산, 대문 바로 앞을 힘차게 흘러 지나가는 작은 시냇물 등을 보면 풍수에 무지한 내 눈에도 명당임이 틀림 없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대문에 들기 전에 있는 제법 큰 연지와 그 가운데의 작은 섬, 섬 위의 한 그루 소나무는 옛 양반 집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호사이고, 대문 양측에 일직선으로 서있는 행랑채도 한 때 떵떠어렸을 가세가 짐작된다.

안채에 들어가 보니 장독대를 보니 지금도 장을 담그고 있다. 마루 앞에는 물을 담아두는 돌로 만든 물드무와 확이 보이고, 그 옆에 큼직한 맷돌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구경거리로 놓아둔 듯하다. 대청 마루와 기둥은 세월의 주름살이 깊게 파여있고 모서리는 많이 깍여나가 있다. 이런 마루에서는 걸레질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

방문이나 창문도 창호지 문이다. 이 문들은 종이 한 장으로 안팍을 구획한다. 옛날 집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저깟 종이 한 꺼풀로 한겨울 한기를 막지는 못한다. 둘러봐도 냉난방을 위해 개량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으니, 여기 사시는 분들의 생활은 대단히 궁박하고 불편할 거라는 걱정이 든다.

모든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변화에는 항상 저항이 따른다.

그런데 전통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도 고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전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투쟁한다.

이 집에서는 과거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사는 그 사람들의 고통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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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다가 의외의 장면을 보았다.

들어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일행 꽁무니를 뒤따르느라 몰랐는데, 나오면서 보니 아흔을 바라볼듯한 할머니 한 분이 앞주머니를 차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아내가 말해준다. 그 분이 이 집의 종부라고.

입장객 1인당 천원씩을 현금으로 받아 앞주머니에 넣고 계신다. 그 분이 앉아 있는 옆에는 검은 색의 액체가 든 페트병들이 세워져 있다. 어떤 분이 말을 붙이길래 옆에서 들어보니, 이 집에서 만든 간장인데 내장객들에게 팔려고 내놓으신 것이다. 

하~ 종부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한 가문의 전통을 오로지 물려받아 실행하고 그것을 흐트림 없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평생 한 몸을 희생하며 안채를 꼬장꼬장하게 지키는 그런 모습이 아니던가. 대쪽 같은 자존심과 서릿발 같은 사명감이 그 분들의 삶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아니던가.

금환락지(), 금구몰니(), 오보교취(聚)의 명당에 터를 닦아 근 350년 동안 가운을 이어온 이 집의 종부가 앞주머니를 차고 천원 짜리 입장료를 받으며 간장을 팔고 계신 모습은 적잖은 안타까움과 함께 뒷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남의 집안 사정을 어찌 속속들이 다 알겠는가.
먹고 살아야 하는 원초적 인간의 숙명 앞에서 체면이고 뭐고를 따지고 가리고 할 게 있겠나.
과거의 유물을 지켜야 하는 불편과 고통에 찬 안채의 살림 환경이 그 앞주머니와 간장에 겹쳐져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입장료와 간장이 비천한 것이어서가 아니다.
세상에 너무도 잘 알려진 대단한 명당이라는 무게, 수백년을 이어온 벌문한 집안이라는 무게, 그런 집안의 종부라는 무게를 생각하면,
그 노인이 입벌이를 위해 당장 챙겨야 하는 입장료와 간장이 너무 가볍고 슬프기에 아타까워 속이 상하는 것이다.

허무하다.
천하의 금환락지 명당도 그 발복이 다하면,
350년 벌문한 가문의 명예도 종부의 체통도 지켜주지 못하거늘.

이렇게 멋진 집을 날아갈 듯 앉힐 때는,
그 명당의 기운이 크게 발복할 것을 욕망하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 욕망과 믿음이 있었다면
언젠가 그 기운이 다하여 후손이 쇠락할 것임도 알아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후손에게 집을 남겨줄 때
경계와 절제의 가르침도 함께 남겨주어야 했을텐데..

지혜의 한계인가, 인력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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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운조루와 나폴리는 닮았다.

둘 다 구경꾼들에게는 너무도 아름답고 부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 구경을 하려 든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삶의 무게일 수 있다.
보이는 삶과 누리는 삶 사이의 큰 괴리이다.
그러니 남의 삶을 스쳐 지나가며 가벼이 보고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니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각자 자신의 삶의 무게에 허덕이며 살더라도,
타인들에게는 나폴리나 운조루와 같은 곳에서 그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운조루 정침과 사랑채
운조루에서 본 하늘
<운조루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버드뷰 사진>

 

운조루 집 앞의 연못. 한 때의 영화가 엿보인다.
안채에 있는 맷돌과 돌확

 

운조루 앞의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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