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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83 생업인가 직업인가 소명인가

by 허성원 변리사 2022. 9. 23.

생업인가 직업인가 소명인가

 

지난 번 칼럼 '조용한 사직'을 본 지인들로부터 반론이 있었다. 그 칼럼에서 '조용한 사직'이 추구하는 소극적인 업무태도는 자신의 ‘일의 의미’를 스스로 버리거나 박탈하며 자해적으로 자존을 파괴하는 노릇이라 했었다. 반론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 꾸역꾸역 직장을 다니고 있고, 우리도 다들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먹고사니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으며, 그것을 넘어 고상한 '일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되묻고 싶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17세기 런던 대화제가 있은 후 당시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에게 성 바오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일이 맡겨졌다. 어느 날 크리스토퍼 렌이 현장을 지나다 벽돌을 쌓는 세 벽돌공을 보았다. 그들이 각자 쌓은 벽의 높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그래서 먼저 가장 낮게 쌓은 벽돌공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그가 대답했다. "저는 벽돌공입니다. 이 벽돌을 쌓아 가족들을 먹여 살립니다." 두 번째 벽돌공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저는 건축업자입니다. 여기에 벽을 건축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가장 높이 쌓은 세 번째 벽돌공도 같은 질문에 대답했다. "저는 성당을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 전능하신 하느님에게 바칠 위대한 대성당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벽돌공 이야기는 조직의 목적, 비전, 가치, 미션 등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세 벽돌공에게 있어 일하는 목적 혹은 의미가 각기 다르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텔로스(Telos)'라 불렀다. 텔로스는 모든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일의 목적이나 본질 혹은 의미를 뜻한다. 텔로스에 따라 일에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거기서 얻는 만족도와 성과에서도 큰 차이가 있게 된다. 예일대의 에이미 브레즈니브스키 교수는 그 태도에 따라 일의 의미를 셋으로 구분하였다. 밥벌이 즉 생업(Job), 직업(Career) 및 소명(召命, Calling)이다. 이에 따르면, 첫 번째 벽돌공의 벽돌 쌓기는 생업이고, 두 번째에게는 직업이며, 세 번째에게는 고결한 소명이 된다.

생업의 관점에서 일은 가족의 생계나 개인의 취미를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 동안 수동적 소극적으로 수행하며, 자신이 한 일로부터는 만족이나 보람을 기대하지도 얻지도 못한다.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부류에 해당할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일은 성공이나 출세의 동기가 된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욕망의 사다리이다. 일은 그들의 희망이나 보람이지만, 때로는 좌절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

'소명'의 경지가 되면 일은 그 사람의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그 일은 사람의 삶과 일체가 되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이룬다. 보상보다는 그 의미와 가치에 주목하며, 항상 가슴 설레는 동기를 제공하니, 업의 만족도도 가장 높다. 이러한 소명 의식은 대체로 종교인에게 어울리지만, 비즈니스나 공공분야 등에서 큰 성취나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생업, 직업 혹은 소명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결정짓는 것은 일을 대하는 개인의 가치관 즉 텔로스이다. 그런데 그것은 평생 불변의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변화한다. 대체로 젊은 시절엔 생업에 가깝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직업과 소명의 경지로 진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자의 "서른 살에 바로 서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라는 말로 설명을 도울 수 있겠다. 청년은 생업을 얻어 주어진 일을 시작하며 경제 주체로서 바로 선다. 그렇게 일하며 경험이 넉넉히 쌓이면 자신에게 적절한 일을 선택하여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직업인으로서 흔들림이 없게 된다. 그러다 더욱 오랜 경륜을 쌓으면 자신의 일에 대한 천명 즉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 시절에 일을 생업으로 여기는 태도는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도 생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노년에 되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나 소명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욕망을 이루기 위해 직업의 차원에서 분투하고 있다면, 더욱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귀하는 소명을 찾았는가.

 

Dr. Amy Wrzesniewski, professor at Yale School of Management and expert on work identity, has identified three levels of work satisfaction: job, career or calling.
"만약 청소부로서 소명을 부여 받았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 그렇게 거리를 청소하라. 그렇게 도로 청소를 훌륭히 해내면, 천지 만물이 숨을 고르며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위대한 청소부가 여기 살았었노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_ 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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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_ 論語 爲政篇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바로 서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고, 예순 살에 이 되어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에 따라도 법도에서 어긋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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