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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통곡헌기(慟哭軒記) _ 허균

by 허성원 변리사 2022. 8. 13.

통곡헌기(慟哭軒記) _ 허균

 

내 조카 ‘친(親)’이 그의 서실을 짓고 편액을 ‘통곡헌(慟哭軒)’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인간 세상에 즐거워할 만한 일이 매우 많은데, 어찌하여 울음[哭]으로 서실의 편액을 하였다는 말인가? 하물며 통곡이란 것은 부모를 여읜 자식이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부녀자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기를 싫어하는데 그대만 오직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를 범하여 거처에다 걸어놓은 것은 어째서인가?”

라고 허니, 친이 말하기를,

“나는 시속이 좋아하는 바를 거슬린 사람이다. 시류(時流: 시대의 풍조나 경향)가 기쁨을 좋아하므로 나는 슬픔을 좋아하고, 세속이 흔쾌해하므로 나는 근심스러워한다. 부귀나 영화까지도 세상이 기뻐해하는 바이지만 나는 내 몸을 더럽히는 것인 양 버리며, 오직 천하고 빈한하고 검약한 것을 본받아 이에 처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항상 세상이 가장 싫어하는 바를 택하면 곧 통곡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으로써 내 집의 편액으로 삼은 것이다.” 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비웃던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통곡하는데도 역시 도(道)가 있습니다. 대개 사람의 칠정(七情) 중에서 쉽게 움직이고 감발(感發: 감동하여 분발함)하는 것으로는 슬픔만한 것이 없습니다. 슬픔이 일면 반드시 곡을 하는데, 슬픔이 일어나는 것에도 역시 여러 가지 단서가 있지요. 그러므로 시사(時事: 당시의 여러 가지 일)를 행할 수 없는 것에 상심(傷心)하여 통곡하는 사람으로는 가태부(賈太傅)요, 흰 실이 그 바탕(사랑)을 잃은 것을 슬퍼하여 곡을 한 사람은 묵적(墨翟)이요, 갈림길이 동서로 나뉜 것을 싫어하여 운 사람은 양주(楊朱)요, 길이 막혀서 운 사람은 완보병(阮步兵)이었으며, 운명이 불우함을 슬퍼하여 스스로를 세상 밖으로 추방하여 정에 부쳐 운 사람은 당구(唐衢)입니다. 이들은 모두 품은 생각이 있어서 운 것이지 이별에 상심(傷心)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고, 하찮은 일로 아녀자들의 곡을 본받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시대는 (앞선)여러 사람의 시대에 비해서 더욱 말세(末世)지요, 나랏일은 날로 그릇되고, 선비들의 행실도 날로 야박해져 벗을 사귐에도 배치(背馳: 서로 반대되어 어긋남)되는 것이 길이 갈리는 것보다 더 심하며, 어진 선비가 곤액(困厄: 딱하고 어려운 사정과 재앙)을 당하는 것도 길이 막힌 것뿐이 아니어서, 모두 인간 세상 밖으로 달아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몇 사람의 군자로 하여금 이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장차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 팽함(彭咸)이나 굴대부(屈大夫)처럼 돌을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으려고(죽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조카)‘친’이 곡(哭)으로써 서실의 편액을 한 것도 역시 이것에서 나온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의 통곡을 비웃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다.”

라고 하니, 비웃는 자들이 깨우치고 물러갔으므로, 이에 (통곡헌)기(記)를 지어 뭇 의심을 풀게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곡헌기(慟哭軒記)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양현승,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

 

余猶子親者構其室。扁曰慟哭軒。人皆大笑之曰。世間可樂之事甚多矣。何以哭爲室扁耶。況哭者。非喪之子則失恩婦也。人甚惡聞其聲。子獨犯人忌而揭其居。何哉。親曰。余背時嗜而違俗好者。時嗜懽。故吾好悲。俗則欣欣。故吾且戚戚。至於富貴榮耀世所喜者。則吾棄之若浼。唯視賤貧窮約而處之。必欲事事而違之。常擇世之所最惡者。則無踰於哭。故吾以額吾之軒也。余聞而諗諸笑者曰。

夫哭亦有道矣。蓋人之七情。易動而感發者。無哀若也。哀至則必哭。而哀之來者亦多端。故傷時事之不可爲而慟哭者。賈大傅也。悲素絲之失其質而哭者。墨翟也。厭岐路之東西而哭者。楊朱也。途窮而哭者。阮步兵也。悲時命之不偶。自放於人外而寓情於哭者。唐衢也。之數子者。皆有懷而哭。非傷離抱屈而屑屑效兒女子之哭者

今之時。比數子之時。又加末矣。國事日非。士行日偸。交朋之背馳。有甚於路岐之分。而賢士之厄困者。不啻於途窮。皆有遁去人外之計。若使數君者子目擊斯時。則未知當作何如懷。而將慟哭之不暇。皆欲抱石懷沙。如彭咸,屈大夫也。親室之扁以哭。亦出乎玆。諸君毋笑其哭可也。笑者喩而退。因爲之記。以釋群疑。
_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 중 통곡헌기(慟哭軒記)

https://blog.naver.com/qlsdlwkao/222713196194

 

통곡헌기(慟哭軒記) -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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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곡장론(好哭場論) _ 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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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賈太傅 :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 가의(賈誼)이다. 20세에 박사(博士)가 되었고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를 지냈는데, 33세에 죽었다그가 양 회왕의 태부(梁懷王太傅)로 있을 때에 일종의 시국광구책(時局匡救策)인 치안책(治安策)을 문제에게 상소하였다. 그 상소의 첫머리에서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데 지금의 사세가 통곡할 만한 것이 하나요눈물 흘릴 만한 것이 둘이요길이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입니다. 그외 이치에 반하고 도리를 해치는 것은 두루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賈誼 上疏曰臣竊惟今之事勢可爲痛哭者一可爲流涕 者二可爲長太息者六 若其他背理而傷道者難徧以疏擧”라는 글이 매우 유명하다.

https://blog.naver.com/havfun48/222502343257

* 비염소사(悲染素絲) 혹은 묵비사염(墨悲絲染)
묵자(墨子, 묵적墨翟, BC 479년경 ~ BC 381년경)이 흰실이 물드는 것을 슬퍼하다. 흰 실은 검은 색이든 붉은 색이든 무엇으로나 물들일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성품도 처한 상황에 따라 착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고, 한 번 물들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묵자를 이를 슬퍼하였다.

* 노기(路岐, 갈림길), 읍기양주(泣岐楊朱)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양자(楊子; 楊朱, B.C.440~B.C.360)가 갈림길을 보고 통곡을 했는데, 그 이유는 남으로도 또 북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고 한다.
어느 한 쪽 길에 들어서고 나면 다른 길로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슬퍼한 것이다.
양주읍기(楊朱泣岐) 또는 양주읍기로(楊朱泣岐路)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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