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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인생삼락(人生三樂) _ 상촌(象村) 신흠(申欽)

by 허성원 변리사 2022. 8. 13.

인생삼락(人生三樂) 

 

문을 닫고 마음 가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 맞는 객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 드는 곳를 찾는 것.
이게 바로 인생의 세 즐거움이라.

閉門閱會心書(폐문열회심서) 開門迎會心客(개문영회심객)
出門尋會心境(출문심회심경) 此乃人間三樂(차내인간삼락)
_ 상촌(象村) 신흠(申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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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모티브로 하여 인생의 즐거움 세 가지를 나누어 말한다.
매우 재미있는 관점이다.

문을 닫으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린다. 
책과 사색을 즐기기 좋다.
지혜를 충전하는 즐거움이다.

둘째는 문을 열어 객을 맞는다.
곧 마음이 통하는 벗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셋째는 문 즉 집을 나서 마음에 드는 좋은 경치의 산하를 찾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 최고의 즐거움 세 가지는,
지혜, 벗, 자연과 각각 함께 하는 즐거움이다.
가히 삼위일체형 인생삼락이라 할 만하다.

 

**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 명조~인조) ​은 누구인가?

선조 때 4대 문장가 월상계택(月象谿澤) 중 한 사람으로서, 선조가 영창대군을 부탁한 유교칠신의 한 사람 (박동량, 서성, 신흠, 유영경, 한응인, 한준겸, 허성). 광해군 때 파직 후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 영의정까지 오름.

(* 월상계택(月象谿澤) : 月沙 이정구(李廷龜), 象村 신흠(申欽), 谿谷 장유(張維), 澤堂 이식(李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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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잘 알려져있는 이 시도 상촌 신흠의 작품이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늘 품고 있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한 평생 춰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그 본질을 남기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거듭난다 

 

후반 두 구절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4개월 전에 휘호로 써서 독립운동가 손정채의 딸 승월에게 주었다. 이 글은 백범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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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象村) 신흠(申欽)의 한시, 시조 등 모음..

山村(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세라
柴扉(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 리 뉘 이시리
밤즁만 一片明月(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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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隱 李穡의 군자삼락

君子有三樂。自家及天下。俯仰旣無歉。保此神明舍。愧怍無從生。聲名遍夷夏。悅親兄弟和。英才盡陶冶。致用竟成功。優游在朝野。謳歌終吾生。誰歟列風雅。_ 牧隱詩藁卷之十五(牧隱 李穡)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 君子有三樂
자기 집으로부터 천하에 미치네 / 自家及天下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을 제 / 俯仰旣無歉
이 착한 마음을 잘 보존만 하면 / 保此神明舍
부끄러움이 나올 데가 없을 거고 / 愧怍無從生
훌륭한 명성이 천하에 퍼지리라 / 聲名遍夷夏
부모 형제에 효도하고 화목하고 / 悅親兄弟和
천하의 영재를 모두 교육시키고 / 英才盡陶冶
재능 다하여 성공을 거둔 다음엔 / 致用竟成功
조야 사이에 한가로이 지내면서 / 優游在朝野
내 생애 다하도록 노래나 할 텐데 / 謳歌終吾生
그 누가 풍아에 내 노래 넣어 줄꼬 / 誰歟列風雅

[주] 군자(君子)가 …… 있다 :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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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의  삼락(三樂)
_
'유수종사기(游水鐘寺記)'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고,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 오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고,
나 혼자 외롭게 찾았던 곳을 마음이 맞는 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이 한 가지 즐거움이다.

나는 어린아이 때 처음 수종사(水鐘寺)에 놀러갔고, 그 후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몇몇 사람과 함께 했을 뿐 항상 쓸쓸하고 적막하게 지내다가 돌아오곤 했다.

정조 대왕이 즉위한 지 8년째 되는 해(1783년) 봄에, 내가 경학(經學)으로 진사가 되어 고향 초천(苕川, 지금의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아버지께서 "이번 길에는 초라하게 가지 말고, 벗들을 불러 함께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좌랑 목만중, 승지 오대익, 장령 윤필병, 교리 이정운 등과 함께 어울려 배를 타고 갔다. 광주 부사가 풍악패를 보내 흥취를 돋워주었다.

초천으로 돌아온 후 사흘이 지나 수종사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다시 젊은 사람 10여 명이 따라 나섰다. 연장자들은 말이나 노새를 탔고,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걸어갔다.

절에 도착하니,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가며 동남쪽 산봉우리들에 저녁놀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고 있었다. 강물 위로 반사된 햇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환하게 빛났다. 여러 벗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즐거워하는 동안, 달빛이 대낮처럼 밝게 떠올랐다. 서로 어울려 돌아다니며, 달 주변을 바라보다가 시를 지어 읊었다. 술잔이 몇 차례 돌고 나자, 나는 '사람의 세 가지 즐거움'에 대해 얘기했다. 여러 사람들이 매우 기뻐했다.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찰이다. 절에 샘이 있는데, 바위 틈 구멍에서 물이 흘러 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가 난다고 하여 수종사(水鐘寺)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幼年之所游歷,壯而至則一樂也,窮約之所經過,得意而至則一樂也,孤行獨往之地,攜嘉賓挈好友而至則一樂也。余昔童丱時,始游水鍾,閒嘗再游,爲讀書也,每數人爲伴,蕭條寂寞而反。乾隆癸卯春,余以經義爲進士,將歸苕川。家君曰:“此行不可以草草也。徧召親友與之偕。” 於是睦佐郞 萬中ㆍ吳承旨 大益ㆍ尹掌令 弼秉ㆍ李校理 鼎運,皆來同舟,廣州尹送細樂一部以助之。旣歸 苕川之越三日,將游水鍾,少年從者亦十餘人。長者騎,或騎牛焉騎驢焉,少年皆徒行。至寺日正晡矣,東南諸峰,夕照方紅,江光日華,照映戶牖,諸公相與讙諧爲樂。至夜月色如晝,相與徘徊瞻眺,命酒賦詩。酒旣行,余爲三樂之說,以侑諸公。水鍾者,新羅古寺,寺有泉,從石竇出,落地作鍾聲,故曰‘水鍾’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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