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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77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by 허성원 변리사 2022. 8. 8.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201212월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 크로스컨트리 대회 결승 라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두를 달리던 케냐 선수 아벨 무타이가 결승점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멈췄다. 결승점을 통과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2위로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선수는 상황을 알아챘다. 그래서 무타이에게 더 달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무타이는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에 페르난데스는 그를 뒤에서 결승선까지 밀어주었다. 그리하여 무타이가 우승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한 리포터가 물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셨어요?' 페르난데스는 "내 꿈은 우리가 우리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이 승리하도록 밀어주는 그런 모습의 공동체 삶을 언젠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지만, 그 절호의 우승 기회를 가벼이 버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리포터는 '왜 케냐 선수가 승리하게 해주었죠?'라고 다시 물었다. 페르난데스가 답했다. "내가 그를 이기게 해준 게 아닙니다. 그는 이기게 되어있었어요. 그 경주는 이미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리포터는 집요했다. '그런데 당신이 이길 수 있었잖아요?' 페르난데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기면 뭐가 좋아지나요? 우승 메달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가슴 서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아들이 살면서 도덕적으로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하자. 그때 과연 이 애비를 머릿속에 떠올릴까. 그리고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까. ~ 그때 나라는 존재가 과연 내 아들에게 맑은 거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 수없이 많은 어리석고 부끄러운 내 삶의 얼룩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런 비루한 삶의 행적이, 지금도 위태로운 나의 설익은 가치관이, 아들의 결정적 선택에 도덕적 기준이 된다면, 그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어쩌란 말인가.

최근 전도유망한 한 어린 골퍼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친 뉴스가 있었다. 19세의 그녀는 장타력을 기초로 국내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고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며칠 가지 못했다. 그 한 달 전의 다른 경기에서 있었던 부정행위가 밝혀진 것이다. 러프에 들어간 티샷 공을 찾아 경기를 진행했는데, 그게 자신의 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린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시 혹은 그 후 조속히 바로잡았더라면 벌타나 작은 징계로 넘어갔을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 달 이상 은폐하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문제는 부모와 코치도 진작부터 알았던 듯한데도 누구도 서둘러 바로잡으러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결국 한 인재의 골프 운명과 그 가족의 평화가 백척간두에 서있다.

이 가여운 골퍼의 처신은 페르난데스의 태도와 어떻게 다른가. 양심, 도덕, 인격, 품위 등과 같은 추상적인 언어는 일단 제쳐두고, 그로 인해 당사자가 감내해야할 내적 갈등만을 생각해보자. 극심한 고통의 지옥과 평온한 행복의 천당과 같은 차이일 것이고, 그만큼 각자가 소모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도 다를 것이다. 이를 독일의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는 그의 저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가만히 쉴 때도 가용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며, 정신 고통이나 감정 변화가 있으면 그 소비가 급증한다. 그러면 뇌는 무질서 즉 엔트로피의 증가를 줄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뇌가 선택하는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바로 양심과 도덕에 따라 옳은 행동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양심에 반한 행동이 가져오는 극심한 내적 갈등의 상황과 양심에 따를 때의 평화로운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게랄트 휘터는 엔트로피 증가를 최소로 하기 위해 양심에 따라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존엄'이라 부른다. 그런 존엄이 반복되면, 존엄은 무의식에 정착되어 그 사람의 내적표상 즉 가치관으로 확립된다. 그렇게 정착된 '존엄'은 영원히 버리지 못한다. 대개의 삶의 상황에서 가장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처신 방법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의 존엄은 엄마의 생각이었다. 존엄한 엄마의 생각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옳은 행동을 결정하게 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는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그 가여운 골퍼는 안타깝게도 아직 그 존엄을 체득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눈앞의 욕심에 흔들렸다. 게랄트 휘터는 말한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케냐의 아벨 무타이와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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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존엄을 알까?
나는 아들의 내적표상을 존엄하게 하는 데 얼마나 어떤 기여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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