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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81 모호함의 미학

by 허성원 변리사 2022. 9. 12.

모호함의 미학

 

변리사 초보 시절에 근무했던 로펌의 대표 변리사는 호남 출신이셨는데, 종종 내 자리에 어슬렁거리며 와서는 "허변, 거시기 그거 거시기 했남?"이라고 묻곤 했다. 처음엔 '무슨 사건을 말씀하시는지요?'라고 되묻기도 하고, 이슈가 되었던 사건을 떠올려 그 진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기도 했다. 얼마 지나고 나서 그 말은 정말 뭔가 궁금하여 묻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별일 없는가?' '잘 돌아가는가?' 정도의 가벼운 인사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깨달음 이후 내 대답은 단순해졌다. 여유롭게 '네~ 거시기는 거시기합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의자왕은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계백에게 말한다. "계백아, 니가 거시기 혀야겄다." 이에 계백은 "거시기하려면 일찍 자야쟈."라고 답하며 금세 일어선다. 군더더기 말이 필요 없는 극도의 하드보일드식 소통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거시기'의 위력이다. 거시기는 이처럼 상대도 알고 나도 아는 명백한 것을 뜻하기도 하고, 앞의 예에서처럼 명시적으로 언급하기 곤란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막연한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명백함과 모호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요상한 말이다. 그 의미를 명확히 특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유보할 수 있기에, 필요에 따라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한 용도로 유용하게 쓰인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라는 다소 경쾌하면서도 감미로운 음률의 노래가 있다. 쿠바 출신의 오스왈도 페레즈가 작곡한 볼레로(라틴계 스페인어) 곡으로서 미국의 재즈 가수 냇 킹 콜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의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노래도 매혹적이다. 이 노래는 영화 화양연화에도 삽입되었다. 두 주인공이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하지 못하는 뜨거운 속마음과 그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를 절묘하게 묘사해주었다. 가사는 이렇다.

"항상 그대에게 묻지요. 언제, 어떻게, 어디서.. 그대는 언제나 내게 대답하지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 많은 날들이 이처럼 흘러가 나는 절망에 빠져버려도, 그대는, 그대는 언제나 대답하지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 그대는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요.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세요. 제발 얼마나 더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이 이처럼 흘러가, 나는 절망에 빠져버려도, 그대는, 그대는 대답하지요.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는 '아마도'로 번역된다. 노래의 맥락을 보면 오히려 '거시기'로 대체하는 게 훨씬 적절해 보인다. 사랑 고백을 받은 어린 아가씨의 심정이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아리따운 아가씨가 수줍어 손가락을 깨물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거시기.. 저.. 거시기..'를 읊조리며 연인의 애를 태우는 모습이 그려진다. '거시기'는 그런 온갖 복잡한 심경과 감정을 아우른 모호함의 절정이다. 그런 모호한 말을 들은 남자는 그 사랑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필시 더 움쩍할 수 없이 갇혀버릴 것 같다. 모호함의 미학이다.

장자 제물론에 견백지매(堅白之昧, ‘굳은 흰 돌의 모호함’)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다. 제나라 궤변론자인 공손용(公孫龍)은 '굳고 흰 돌(堅白石)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굳음은 촉감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고, 흰색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굳음과 흰색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니, 돌을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되며, 굳은 돌과 흰 돌 둘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수많은 기준으로 정의되어야 하니, 더욱 혼란스럽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명백히 할 수 없는 것을 명백히 하려 하면, '굳은 흰 돌의 모호함'에 빠지고 만다(非所明而明之 故以堅白之昧終)."고 하였다. 장자의 지적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어찌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단정할 수 있겠는가. 어떤 존재나 상황이든 그들은 온갖 수많은 물질적, 역사적, 공간적, 정서적 요소들이 조합되고 때론 상충하며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한 관점에 따라 가벼이 특정해버리면 다른 관점에서는 그것을 부정하는 그른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명료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오히려 모호함의 덫에 빠지고 만다는 가르침이다.

세상 만물과 만사는 모호함을 피할 수 없다. 아니 모호함 그 자체이다. 정녕 그렇기에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모호함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거시기’라는 언어의 절묘함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거시기는 거시기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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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보첼리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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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중 냇 킹 콜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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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백지매(堅白之昧)>

명백히 할 수 없는 것을 명백히 하려 하면, '굳은 흰 돌의 모호함(堅白之昧)'에 빠지고 만다.
非所明而明之 故以堅白之昧終 _
莊子 齊物論

공손용(公孫龍)

"‘백마비마론’은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공손용의 저서 『공손용자』 「백마론」에서 전해지는 명제이다. 공손용은 이름[명()]과 실재[실()]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인간 인식의 상대성과 제한성을 강조하였으며, 명실()의 불일치를 극복하여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명실합일의 정치사상을 전개하였는데, ‘백마비마론’은 이러한 실천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명제들이다.
공손용은 ‘백마비마론’에 앞서 ‘지물론()’과 ‘견백론()’을 제시하였다. ‘지물론’에서는 사물[]과 그것을 지시하는 개념[]은 구분되고, “만물은 지()가 아닌 것이 없다()”며 인간의 인식이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지시하는 개념을 통해서 구성된다고 밝혔다.
‘견백론’에서는 “하얗고 단단한 돌은 손으로 만질 때에는 하얗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눈으로 볼 때에는 단단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하얗다는 개념과 단단하다는 개념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견백동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인간의 인식은 경험적 감각 기관에 따라 제한되므로 결국 물() 자체의 전체 속성을 이해할 수는 없으며 그렇기에 기준과 층위에 따라 개념을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 비유적 표현이다.
‘백마비마론’도 이러한 ‘지물론’과 ‘견백론’의 연장에서 나타난다. 공손용은 백마는 빛깔을 가리키는 개념이고 말은 형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므로 백마는 백마이지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빛깔을 가리키는 개념과 형체를 가리키는 개념은 엄격히 구분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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