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지공(券十四 至公)_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허성원 변리사 2022. 8. 6.

지공(券十四 至公)_설원(說苑) _ 유향(劉向)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가져옴.

** 本篇 天下를 다스리는 핵심적인 思想 至公無私에 있음을 闡明하여 그 중요함을 제시하였다. 역사상 至公思想을 가장 잘 체현한 帝王으로 을 들어 總論에 해당하는 제1장에 배열하였다. 요‧순 이외의 신하로서 至公의 모범이 된 사람은 伊尹 呂尙을 들었다. 다음에는 季札太王周公이 행한 至公의 사례를 열거하여 至公 典範을 보였다. 그런 다음 요‧순과 반대되는 秦 始皇齊 景公楚 共王 등의 사례를 들어 요‧순의 至公을 부각시키고 있다. 중간에는 孔子 至公思想을 연이어 3장에 칭송하여 仁聖 大德을 지녔으면서도 난세에 태어나 용납받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그 이후에는 一心爲國 申包胥 至公, 賢明 人才를 추천한 丘子趙宣子 至公, 賢才를 추천하면서 안으로 親戚을 회피하지 않고 밖으로는 怨讐도 회피하지 않은 咎犯 至公, 그리고 楚 文王令尹 子文楚 莊王 등의 至公에 관한 사례를 들었다.

 

1. 書曰:「不偏不黨,王道蕩蕩。」言至公也
彼人臣之公,治官事則不營私家,在公門則不言貨利,當公法則不阿親戚,奉公舉賢則不避仇讎
夫公生明,偏生暗,端愨生達,詐偽生塞,誠信生神,夸誕生惑,此六者,君子之所慎也

치우치지도 않고 편당하지도 않으면 王道가 끝없이 광대해진다.”

書曰:「不偏不黨,王道蕩蕩。」言至公也。古有行大公者,帝堯是也。貴為天子,富有天下,得舜而傳之,不私於其子孫也。去天下若遺,於天下猶然,況其細於天下乎?非帝堯孰能行之?孔子曰:「巍巍乎!惟天為大,惟堯則之。」易曰:「無首,吉。」此蓋人君之至公也。夫以公與天下,其德大矣。推之於此,刑之於彼,萬姓之所戴,後世之所則也。彼人臣之公,治官事則不營私家,在公門則不言貨利,當公法則不阿親戚,奉公舉賢則不避仇讎,忠於事君,仁於利下,推之以恕道,行之以不黨,伊呂是也。故顯名存於今,是之謂公。詩云:「周道如砥,其直如矢,君子所履,小人所視。」此之謂也。夫公生明,偏生暗,端愨生達,詐偽生塞,誠信生神,夸誕生惑,此六者,君子之所慎也,而禹桀之所以分也。詩云:「疾威上帝,其命多僻。」言不公也。

《書經》에 말하기를 “치우치지도 않고 편당하지도 않으면 王道가 끝없이 광대해진다.” 하였으니, 지극히 公平無私함을 말한 것이다.

고대에 크게 공평한 도리를 행한 사람이 있으니, 帝堯가 이런 사람이다. 존귀함은 天子가 되시고 부유함은 천하를 소유하셨으나 을 얻자 천하를 그에게 물려주시어 자기의 자손에게 私情을 두지 않으셨다. 천하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하였으니 천하도 이와 같이 하였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작은 것에 있어서랴! 제요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행하겠는가.

孔子높고 높구나. 오직 하늘이 가장 큰 것인데, 임금만이 본받았다.”라 하셨고, 周易에는 首領이 되지 않으면 하다.”라 하였으니, 임금의 공평함을 말한 것이다. 공평함으로 천하를 대한다면 그 이 위대할 것이다. 이를 이곳에서 미루어 행하여 저쪽에서 본받게 하면 만백성이 추대하고 후세 사람들이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저 신하된 공평한 도리로 官事를 다스리게 되면 私家의 일을 경영하지 않으며, 公門에 있게 되면 財利를 말하지 않으며, 公法을 집행하게 되면 친척을 비호하지 않으며 나라를 위하여 어진 이를 천거하게 되면 자신의 원수라도 회피하지 않아야 된다. 忠誠으로 임금을 섬기며, 仁德으로 아랫사람을 이롭게 하여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의 도리를 미루어 넓히며, 편당 짓지 않는 일을 행한 사람은 伊尹呂尙이 이런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빛나는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전하니, 이것을 공평하다 이르는 것이다.

詩經나라 가는 길이 숫돌처럼 평평하니, 그 곧기가 화살 같구나. 君子가 밟고 가는 길이고, 백성들이 우러러본다네.”라 하였으니, 이를 가리켜 이른 말이다.

공평함은 淸明함을 낳고, 치우침은 어둠을 낳으며, 단정하고 성실함은 통달함을 낳고, 속이고 거짓됨은 막힘을 낳으며, 誠信은 神明을 낳고, 과장과 허황함은 迷惑을 낳는다. 이 여섯 가지는 군자가 삼가야 할 일이니, 大禹夏桀이 나뉘는 이유이다시경포학한 上帝邪僻한 명령이 많구나.” 하였으니, 공평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2. 爾殺吾君,吾受爾國,則吾與爾為共篡也。爾殺吾兄,吾又殺汝,則是昆弟父子相殺無已時也。

<네가 나의 임금을 죽였는데 내가 네 나라를 받으면 나와 네가 함께 왕위를 찬탈한 것이 되고, 네가 나의 형을 죽였는데 내가 또 너를 죽이면 이는 兄弟와 父子가 서로 죽이는 일이 끝날 때가 없게 된다.>

吳王壽夢有四子,長曰謁,次曰餘祭,次曰夷昧,次曰季札,號曰:延陵季子。最賢,三兄皆知之。於是王壽夢薨,謁以位讓季子,季子終不肯當,謁乃為約曰:「季子賢,使國及季子,則吳可以興。」乃兄弟相繼,飲食必祝曰:「使吾早死,令國及季子。」謁死,餘祭立;餘祭死,夷昧立;夷昧死,次及季子。季子時使行不在。庶兄僚曰:「我亦兄也。」乃自立為吳王。季子使還,復事如故。謁子光曰:「以吾父之意,則國當歸季子,以繼嗣之法,則我適也,當代之君,僚何為也?」乃使專諸刺僚殺之,以位讓季子,季子曰:「爾殺吾君,吾受爾國,則吾與爾為共篡也。爾殺吾兄,吾又殺汝,則是昆弟父子相殺無已時也。」卒去之延陵,終身不入吳。君子以其不殺為仁,以其不取國為義。夫不以國私身,捐千乘而不恨,棄尊位而無忿,可以庶幾矣。

吳王 壽夢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은 , 차남은 餘祭, 삼남은 夷昧, 사남은 季札이다. 延陵季子라 불렀는데, 그중에 가장 현명하여 세 이 모두 이를 알았다이때 오왕 수몽이 죽자, 알이 王位季子에게 사양하였으나 계자는 끝까지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알은 마침내 아우들과 약속하였다. “계자가 현명하니, 나라가 계자에게 전해지면 오나라가 흥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兄弟들이 서로 왕위를 계승해 밥을 먹을 적마다 기도하였다. “나를 빨리 죽게 하여 나라가 계자에게 전해지게 해주소서.”

알이 죽자 여제가 즉위하였고, 여제가 죽자 이매가 즉위하였으며, 이매가 죽은 뒤 차례가 계자에게 이르렀다. 그런데 당시에 계자는 다른 나라에 使臣으로 나가 나라 안에 있지 않았다. 그때 庶兄僚(요)가 말했다. “나도 형이다.”그러고는 곧 스스로 즉위하여 오왕이 되었다. 계자는 사신 갔던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예전의 형들을 섬겼던 것처럼 오왕 요를 섬겼다.

알의 아들 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의 뜻에 의하면 나라가 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왕위를 계승하는 법도에 의하면 내가 嫡子이니, 대신 임금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요가 어찌 왕이 되겠는가?” 이에 곧 專諸를 시켜 요를 찔러 죽이고 왕위를 계자에게 양보하였다.

계자가 말했다. 네가 나의 임금을 죽였는데 내가 네 나라를 받으면 나와 네가 함께 왕위를 찬탈한 것이 되고, 네가 나의 형을 죽였는데 내가 또 너를 죽이면 이는 兄弟와 父子가 서로 죽이는 일이 끝날 때가 없게 된다.” 그러고는 마침내 오나라 國都를 떠나 延陵에 가서 죽을 때까지 國都에 들어가지 않았다. 君子는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은 仁에 부합하는 행위가 되고, 나라를 차지하지 않은 것은 義에 부합하는 행위가 된다고 여겼다.

국가를 이용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여 千乘 제후국을 버리고도 서운하게 여기지 않고, 존귀한 지위를 버리고도 분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공평한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3. 不私其身惟民,足用保民,蓋所以去國之義也,是謂至公耳。

諸侯之義死社稷,大王委國而去,何也?夫聖人不欲強暴侵陵百姓,故使諸侯死國守其民。大王有至仁之恩,不忍戰百姓,故事勳育戎氏以犬馬珍幣,而伐不止。問其所欲者,土地也。於是屬其群臣耆老,而告之曰:「土地者,所以養人也,不以所以養而害其慈也,吾將去之。」遂居岐山之下。邠人負幼扶老從之,如歸父母。三遷而民五倍其初者,皆興仁義趣上之事。君子守國安民,非特鬥兵罷殺士眾而已。不私其身惟民,足用保民,蓋所以去國之義也,是謂至公耳。

諸侯義理社稷을 위해 죽어야 되는데, 太王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은 무엇 때문인가聖人强暴한 세력으로 하여금 백성을 침해하여 욕을 보이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후가 나라를 위해 죽음으로써 그 백성을 지키게 한 것이다태왕은 지극히 어진 恩德이 있어서 차마 백성을 데리고 전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犬馬와 진기한 예물을 가지고 勳育戎氏를 섬겼으나 훈육과 융씨의 침공이 그치지 않았다. 태왕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土地였다.

이에 태왕이 群臣과 원로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토지는 사람을 養育하는 것이오. 사람을 양육하는 토지를 가지고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되니, 나는 장차 이곳을 떠나겠소.” 그러고는 마침내 岐山 아래에 가서 살았다땅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노인을 부축하면서 태왕을 따라 마치 부모를 따라가는 것과 같았다. 거처를 세 번 옮겨서 백성이 처음보다 다섯 배로 늘어난 것은 백성들이 모두 仁義에 흥기하여 (太王)의 일에 달려온 것이다.

君子가 국가를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단지 전쟁을 하여 병사와 백성을 피곤하게 하고 죽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사사롭게 위하지 않고 백성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보호하는 데 달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太王이 나라를 버리고 떠난 뜻이니, 이를 至公이라 한다.

4. 予一人兼有天下,辟就百姓,敢無中土乎?使予有罪,則四方伐之,無難得也

<나 한 사람이 천하를 모두 소유하여 백성을 가까이하여 다스리는데, 어찌 천하의 중앙에 땅을 잡지 않으랴! 만일 나에게 죄가 있으면 사방에서 나를 토벌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辛櫟見魯穆公曰:「周公不如太公之賢也。」穆公曰:「子何以言之?」辛櫟對曰:「周公擇地而封曲阜;太公擇地而封營丘,爵士等,其地不若營丘之美,人民不如營丘之眾。不徒若是,營丘又有天固。」穆公心慚,不能應也。辛櫟趨而出。南宮邊子入,穆公具以辛櫟之言語南宮邊子。南宮邊子曰:「昔周成王之卜居成周也。其命龜曰:『予一人兼有天下,辟就百姓,敢無中土乎?使予有罪,則四方伐之,無難得也。』周公卜居曲阜,其命龜曰:『作邑乎山之陽,賢則茂昌,不賢則速亡。』季孫行父之戒其子也,曰:『吾欲室之俠於兩社之間也。使吾後世有不能事上者,使其替之益速。』如是則曰:『賢則茂昌,不賢則速亡。』安在擇地而封哉?或示有天固也。辛櫟之言小人也,子無復道也。」

辛櫟魯 穆公을 뵙고 말했다. “周公太公의 현명함만 못합니다.” 목공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시오?” 신력이 대답했다. “주공은 曲阜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봉해졌고, 태공은 營丘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봉해졌습니다. 爵位封地는 똑같지만 곡부 땅은 영구보다 비옥하지 못하고, 곡부의 백성은 영구보다 많지 않습니다. 단지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영구는 또 天然險固한 땅입니다.” 

목공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껴 대답하지 못하였다. 신력이 종종걸음으로 나가고 南宮邊子가 들어오니, 목공은 신력이 한 말을 빠짐없이 남궁변자에게 말해주었다이에 남궁변자가 말했다.

옛날 周 成王이 점을 쳐서 成周에 터를 잡을 때 거북 등딱지에게 말하기를 ‘나 한 사람이 천하를 모두 소유하여 백성을 가까이하여 다스리는데, 어찌 천하의 중앙에 땅을 잡지 않으랴! 만일 나에게 죄가 있으면 사방에서 나를 토벌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 하셨습니다주공이 점을 쳐서 곡부에 터를 잡을 때 거북 등딱지에게 말하기를 ‘산의 남쪽에 도읍을 만들려고 하니, 임금이 현명하면 나라가 창성하고, 임금이 현명하지 않으면 빨리 망하리라.’ 하셨습니다季孫行父가 그 자식에게 경계하기를 ‘나는 집을 周社와 亳社 사이에 지으려고 하니, 만일 나의 後世에 임금을 잘 섬기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더욱 빨리 消滅되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다면 임금이 현명하면 나라가 창성하고, 임금이 현명하지 않으면 빨리 망하리라.’라는 말씀이 어찌 땅을 선택하여 봉하는 데 있겠으며, 혹은 천연의 험고함을 제시한 것이겠습니까? 신력의 말은 小人이 하는 말이니, 군주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5. 「天下官,則讓賢是也;天下家,則世繼是也。故五帝以天下為官,三王以天下為家。

<천하를 공유[]로 여기시면 어진 이에게 선양하는 것이 옳고, 천하를 사유[]로 여기시면 자손에게 세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때문에 오제는 천하를 공유로 여겼고, 삼왕은 천하를 사유로 여겼습니다.”>

秦始皇帝既吞天下,乃召群臣而議曰:「古者五帝禪賢,三王世繼,孰是?將為之。」博士七十人未對。鮑白令之對曰:「天下官,則讓賢是也;天下家,則世繼是也。故五帝以天下為官,三王以天下為家。」秦始皇帝仰天而歎曰:「吾德出于五帝,吾將官天下,誰可使代我後者。」鮑白令之對曰:「陛下行桀紂之道,欲為五帝之禪,非陛下所能行也。」秦始皇帝大怒曰:「令之前,若何以言我行桀紂之道也。趣說之,不解則死。」令之對曰:「臣請說之,陛下築臺干雲,宮殿五里,建千石之鐘,萬石之,婦女連百,倡優累千,興作驪山宮室至雍,相繼不絕,所以自奉者,殫天下,竭民力,偏駮自私,不能以及人,陛下所謂自營僅存之主也。何暇比德五帝,欲官天下哉?」始皇闇然無以應之,面有慚色。久之,曰:「令之之言,乃令眾醜我。」遂罷謀,無禪意也。

秦 始皇帝가 이미 천하를 병탄하고 마침내 群臣들을 불러서 의논하여 말했다. “예전에 五帝는 어진 이에게 禪讓하였고 三王은 자손에게 세습하였으니, 어떤 방법이 옳은가? 나도 옳은 방법을 따라서 하겠다.” 博士 70인이 대답하지 못했는데, 鮑白令之가 대답했다.

천하를 공유[官]로 여기시면 어진 이에게 선양하는 것이 옳고, 천하를 사유[家]로 여기시면 자손에게 세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때문에 오제는 천하를 공유로 여겼고, 삼왕은 천하를 사유로 여겼습니다.”

진시황제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여 말했다. “나의 은 오제보다 뛰어나니 나는 천하를 공유하려고 하는데, 누가 나의 뒤를 계승할 만한 사람인가?” 포백영지가 대답했다. “陛下는 桀‧紂의 道를 행하시고 오제처럼 선양을 하려고 하시니, 폐하께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진 시황제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영지는 앞으로 나오라. 너는 무엇을 가지고 내가 걸주의 도를 행했다고 말하느냐? 빨리 이유를 말하라. 해명하지 못하면 너를 죽일 것이다.”

영지가 대답했다. “이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 지은 누대는 구름에 닿을 듯이 높고, 궁전은 5리에 걸쳐져 있으며, 무게가 1이나 되는 을 세우고, 1만 석이나 되는 악기의 틀을 세웠습니다. 後宮1백 명에 이르고, 배우는 수천 명이나 되며, 驪山에 궁실을 지어 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이는 자신을 봉양하기 위해 천하의 財力을 탕진하고 백성의 힘을 고갈시켜 자신만을 위하는 데 치우쳐서 백성들에게는 은덕이 미치지 않는 행위입니다. 폐하는 이른바 자신만을 영위하여 겨우 보존하는 군주입니다. 어느 겨를에 오제의 덕에 견주어 천하를 공유하고자 하십니까?”

시황이 이 말을 듣고는 묵묵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있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영지의 말은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추하게 여기게 하는구나!” 그러고는 마침내 그 계획을 중지하여 천하를 선양할 뜻이 없었다.

(* '天下官/天下家'는 기업의 승계 철학과 매우 닮았다.)

6. 顧臣願有請於君,由君之意,自樂之心,推而與百姓同之,則何殣之有?

임금의 마음에 근거하여 스스로 즐기시려는 마음을 미루어 백성과 함께 즐기시면 어찌 굶어죽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齊景公嘗賞賜及後宮,文繡被臺榭,菽粟食鳧鴈。出而見殣,謂晏子曰:「此何為而死?」晏子對曰:「此餧而死。」公曰:「嘻!寡人之無德也,何甚矣!」晏子對曰:「君之德著而彰,何為無德也?」景公曰:「何謂也?」對曰:「君之德及後宮與臺榭,君之玩物,衣以文繡,君之鳧鴈,食以菽粟,君之營內自樂,延及後宮之族,何為其無德也?顧臣願有請於君,由君之意,自樂之心,推而與百姓同之,則何殣之有?君不推此而苟營內好私,使財貨偏有所聚,菽粟幣帛腐於囷府,惠不遍加于百姓,公心不周乎國,則桀紂之所以亡也。夫士民之所以叛,由偏之也。君如察臣嬰之言,推君之盛德,公布之於天下,則湯武可為也,一殣何足恤哉?」

齊 景公이 일찍이 하사하는 後宮에게까지 내리고, 樓臺를 수놓은 비단으로 감쌌으며, 오리와 거위에게 콩과 조 같은 곡식을 먹였다. 제 경공이 출행하였다가 굶어죽은 사람을 보고 晏子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죽었소?” 안자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굶어서 죽었습니다.” 경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 寡人이 없음이 어찌 이렇게 심하단 말이오?”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의 덕이 밝게 드러났는데, 어찌 덕이 없다고 하십니까?” 경공이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의 덕이 후궁과 누대에까지 미쳐서 임금께서 玩賞하는 물건은 수놓은 비단을 입혔고 임금의 오리와 거위에게는 콩과 조 같은 곡식을 먹입니다. 임금께서는 宮內에서 향락을 영위하여 후궁의 족속들에게까지 미쳤는데, 어찌 덕이 없다고 하십니까다만 은 임금께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임금의 마음에 근거하여 스스로 즐기시려는 마음을 미루어 백성과 함께 즐기시면 어찌 굶어죽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이 마음을 미루지 않고 만일 궁내에서 개인적인 향락만을 영위하여 財貨가 한쪽에만 치우치게 모이고 콩조 같은 곡식과 幣帛 같은 재물이 창고에서 썩고 있는데도, 은덕이 백성들에게 두루 미치지 않고 공평한 마음이 모든 나라에 두루 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가 망하게 된 까닭입니다백성들이 배반하는 까닭은 임금의 마음이 한쪽에만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임금께서 만일 저의 말을 살피시어 임금의 盛德을 미루어 공평한 마음을 천하에 펴신다면 湯王武王 같은 제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굶어죽은 사람 하나를 어찌 근심하겠습니까?”

7. 人遺弓,人得之而已,何必楚也!

楚共王出獵而遺其弓,左右請求之,共王曰:「止,楚人遺弓,楚人得之,又何求焉?」仲尼聞之,曰:「惜乎其不大,亦曰:『人遺弓,人得之而已,何必楚也!』」仲尼所謂大公也。

楚 共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활을 잃어버렸는데 좌우의 신하들이 찾겠다고 하자, 공왕이 말했다. “그만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었으면 초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어찌 다시 찾겠느냐.”

仲尼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였다. “애석하구나. 그의 공평한 마음이 크지 못함이여! 그저 ‘사람이 활을 잃었으면 사람이 주우면 그뿐이다.’라고 해야지, 어찌 굳이 초나라 사람에 국한하는가.”孔子는 이른바 크게 공평하여 치우침이 없는 사람이다.

8. 觀近臣以其所為之主,觀遠臣以其所主

萬章問曰:「孔子於衛主雍睢,於齊主寺人脊環,有諸?」孟子曰:「否!不然。好事者為之也。於衛主顏讎由,彌子之妻與子路之妻,兄弟也。彌子謂子路曰:『孔子主我,衛卿可得也。』子路以告。孔子曰:『有命。』孔子進之以禮,退之以義,得之不得曰有命,而主雍睢與寺人脊環,是無命也。孔子不說於魯衛,將適宋,遭桓司馬,將要而殺之,微服過宋,是孔子嘗阨,主司城貞子,為陳侯周臣。吾聞之,觀近臣以其所為之主,觀遠臣以其所主,如孔子主雍睢與寺人脊環,何以為孔子乎?」

萬章이 물었다. “孔子께서 나라에서는 雍雎를 주인으로 삼았고, 나라에서는 寺人 脊環을 주인으로 삼았다고 하니,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孟子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낸 말이다. 위나라에서는 顔讐由를 주인으로 삼으셨는데, 彌子의 아내는 子路의 아내와 자매간이었다미자가 자로에게 공자가 나를 주인으로 삼으면 위나라의 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기에 자로가 이 말을 하자, 공자는 벼슬을 얻고 못 얻고는天命이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공자는 로써 나아가며 로써 물러나시고 얻고 얻지 못함에 천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옹저와 시인 척환을 주인으로 삼았다면, 이는 천명이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나라와 나라에서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어 나라로 가려고 할 적에 桓司馬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살해하려는 일을 만나서 微服으로 나라를 지나가셨다. 이때 공자는 위급한 처지를 당하셨는데, 陳侯 周의 신하가 된 司城貞子를 주인으로 삼으셨다

나는 듣자니 ‘近臣을 살펴보려면 그가 어떤 사람의 주인이 되었는가를 보고, 遠臣(遠方에서 온 신하)을 살펴보려면 그가 어떤 사람을 주인으로 삼았는가를 본다.’라고 하였으니, 만일 공자가 옹저와 시인 척환을 주인으로 삼았다면 어떻게 공자가 되겠느냐?”

9. 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夫子行說七十諸侯無定處,意欲使天下之民各得其所,而道不行。退而修春秋,采毫毛之善,貶纖介之惡,人事浹,王道備,精和聖制,上通於天而麟至,此天之知夫子也。於是喟然而歎曰:「天以至明為不可蔽乎?日何為而食也?地以至安為不可危乎?地何為而動?」天地尚有動蔽,是故賢聖說於世而不得行其道,故災異並作也。夫子曰:「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孔子께서 70이나 되는 諸侯들에게 다니며 유세하시느라 일정한 처소가 없었던 것은 천하의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나 春秋修撰하시어 털끝처럼 작은 도 채택하시고 실낱같은 작은 貶下하시니, 人事融合하고 王道는 완비되었으며, 성인이 제정한 제도를 정밀하게 조화하여 위로 하늘에 통하여 麒麟이 나타났다. 이는 하늘이 공자를 알아준 것이다.

이에 공자께서 길게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가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日食이 있는가? 땅은 지극히 안전하여 위험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땅에는 어찌하여 지진이 일어나는가? 이 때문에 天地도 오히려 지진과 가려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현이 세상에 유세하되 그 도를 실현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災害와 異變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로 人事를 배워 위로 天理를 통달할 뿐이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10. 而有用我者,則吾其為東周乎!

만일 나를 등용하는 군주가 있으면, 나는 周나라의 도를 동방에 부흥시킬 것이다.”

孔子生於亂世,莫之能容也。故言行於君,澤加於民,然後仕。言不行於君,澤不加於民則處。孔子懷天覆之心,挾仁聖之德,憫時俗之汙泥,傷紀綱之廢壞,服重歷遠,周流應聘,乃俟幸施道以子百姓,而當世諸侯莫能任用,是以德積而不肆,大道屈而不伸,海內不蒙其化,群生不被其恩,故喟然而歎曰:「而有用我者,則吾其為東周乎!」故孔子行說,非欲私身,運德於一城,將欲舒之於天下,而建之於群生者耳。

孔子亂世에 탄생하시어 받아들여 重用한 군주가 없었다. 그 때문에 건의한 말이 군주에게 채용되고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면 그런 뒤에 벼슬하셨고, 건의한 말이 군주에게 채용되지 못하고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면 은퇴하여 나가지 않으셨다.

공자는 하늘이 만물을 덮어주는 것과 같은 마음을 품으셨고, 仁慈하고 슬기로운 德을 지니셨으며, 時俗이 진흙처럼 혼탁함을 안타깝게 여기셨고, 紀綱이 무너진 것을 상심하셨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먼 길을 가고 천하를 周遊하면서 초빙에 응하시어 행여라도 도를 행하여 백성을 사랑하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신 것인데, 당시의 제후들 중에 重用하는 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덕을 쌓았으나 펴지 못하고 큰 도는 눌려 伸張되지 못하여 천하 사람들은 그 德化를 받지 못하고 뭇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입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길게 탄식하시며 말씀하였다. 만일 나를 등용하는 군주가 있으면, 나는 周나라의 도를 동방에 부흥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천하를 다니며 유세하신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려는 것이 아니라, 城邑에서 德化를 운용하여 장차 천하에 널리 펼치고, 뭇 백성들에게 덕화가 심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1. 死傷未收而棄之,不惠也。不待期而迫人於險,無勇也,請待。

秦晉戰交敵,秦使人謂晉將軍曰:「三軍之士皆未息,明日請復戰。」臾駢曰:「使者目動而言肆,懼我,將遁矣,迫之河,必敗之。」趙盾曰:「死傷未收而棄之,不惠也。不待期而迫人於險,無勇也,請待。」秦人夜遁。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벌여 交戰할 때, 나라가 사람을 파견하여 나라 장군에게 말하게 하였다. “三軍의 군사들이 모두 싸우느라 쉬지 못하였으니, 내일 다시 싸우기를 바란다.” 臾騈이 말했다. “使者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말이 침착하지 않으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장차 달아나려는 것이니, 黃河로 몰아붙이면 반드시 패배시킬 것입니다.”

趙盾이 말했다. 죽고 부상한 우리 군사를 거두지 않고 버리는 것은 은혜롭지 못한 행위이고, 약속한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대를 험한 곳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용기가 없는 행위이니, 기다리고자 하노라.” 나라 군대가 밤에 도주하였다.

12. 雖然,子亡之,我存之,於是乎觀楚一存一亡也
功成受賜,是賣勇也

<자네가 초나라를 멸망시킨다면 나는 초나라를 보존할 것이네.” 이리하여 사람들은 초나라가 한 번 보존되고 한 번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功을 이루고 나서 賞을 받는다면 이는 용기를 파는 행위입니다.>

子胥將之吳,辭其友申包胥曰:「後三年,楚不亡,吾不見子矣!」申包胥曰:「子其勉之!吾未可以助子,助子是伐宗廟也;止子是無以為友。雖然,子亡之,我存之,於是乎觀楚一存一亡也。」後三年,吳師伐楚,昭王出走,申包胥不受命西見秦伯曰:「吳無道,兵強人眾,將征天下,始於楚,寡君出走,居雲夢,使下臣告急。」哀公曰:「諾,吾固將圖之。」申包胥不罷朝,立於秦庭,晝夜哭,七日七夜不絕聲。哀公曰:「有臣如此,可不救乎?」興師救楚,吳人聞之,引兵而還,昭王反,復欲封申包胥,申包胥辭曰:「救亡非為名也,功成受賜,是賣勇也。」辭不受,遂退隱,終身不見。詩云:「凡民有喪,匍匐救之。」

伍子胥나라로 가려고 할 적에 그의 벗 申包胥와 작별하면서 말했다. “3년 뒤에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나는 자네와 만나지 않을 것이네.” 신포서가 말했다. “자네는 힘쓰시게. 나는 자네를 도울 수가 없네. 자네를 돕는다면 이는 바로 우리 宗廟(國家)를 토벌하는 것이요, 자네를 저지하면 이는 벗의 도리가 아니네. 그렇지만 자네가 초나라를 멸망시킨다면 나는 초나라를 보존할 것이네.” 이리하여 사람들은 초나라가 한 번 보존되고 한 번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3년이 지난 뒤에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를 토벌하니, 楚 昭王國都에서 도망쳤다.

신포서가 소왕의 명을 받지 못하고 서쪽으로 가서 秦伯(哀公)을 뵙고 말했다. “오나라는 無道하고 군대가 강성하며 인구가 많아 천하를 정복하려 하면서 우리 초나라에서부터 시작하니, 우리 임금께서 국도에서 도망쳐 雲夢에 머물면서 下臣을 보내 위급한 상황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秦 哀公이 말했다. “좋소. 내가 본디 고려하려던 일이오.” 신포서가 조정을 떠나지 않고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울어서 7일 밤낮 동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애공이 말했다. “이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 구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에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구원하니, 오나라 사람이 이를 듣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소왕이 국도에 돌아와 復位한 다음 신포서에게 爵位를 봉하려고 하자, 신포서가 사양하며 말했다. “나라의 危亡을 구한 것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功을 이루고 나서 賞을 받는다면 이는 용기를 파는 행위입니다.” 그러고는 사양하여 받지 않고 마침내 은거하여 일생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詩經사람이 喪事가 있을 때, 엉금엉금 기어가 힘을 다해 구원했노라.” 하였다.

13. 久固祿位者,貪也;不進賢達能者,誣也;不讓以位者,不廉也;不能三者,不忠也。

楚令尹虞丘子復於莊王曰:「臣聞奉公行法,可以得榮,能淺行薄,無望上位,不名仁智,無求顯榮,才之所不著,無當其處。臣為令尹十年矣,國不加治,獄訟不息,處士不升,淫禍不討,久踐高位,妨群賢路,尸祿素餐,貪欲無饜,臣之罪當稽於理,臣竊選國俊下里之士孫叔敖,秀羸多能,其性無欲,君舉而授之政,則國可使治而士民可使附。」莊王曰:「子輔寡人,寡人得以長於中國,令行於絕域,遂霸諸侯,非子如何?」虞丘子曰:「久固祿位者,貪也;不進賢達能者,誣也;不讓以位者,不廉也;不能三者,不忠也。為人臣不忠,君王又何以為忠?臣願固辭。」莊王從之,賜虞子采地三百,號曰「國老」,以孫叔敖為令尹。少焉,虞丘子家干法,孫叔敖執而戮之。虞丘子喜,入見於王曰:「臣言孫叔敖果可使持國政,奉國法而不黨,施刑戮而不骫,可謂公平。」莊王曰:「夫子之賜也已!」

나라 令尹 虞丘子莊王에게 고하여 말했다. “은 들으니, 공적인 일을 奉行하고 법을 살펴 집행하면 영광을 얻을 수 있고, 재능이 보잘것없고 행실이 천박하면 높은 지위를 바랄 수 없으며, 仁愛智慧가 있다고 이름이 나지 않으면 영화롭고 높은 지위를 구하지 못하고, 재주가 남보다 드러나지 않으면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신이 영윤이 된 지 10년이 되었건만, 나라는 더 잘 다스려지지 않고 獄訟이 그치지 않았으며, 處士는 등용되지 못하고 큰 禍亂을 응징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높은 벼슬을 차고 앉아서 많은 賢人의 진출하는 길을 방해하며 일은 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서 녹봉을 받아먹어 만족할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니, 신의 죄는 응당 법에 따라 처벌하여야 합니다신은 삼가 시골에 사는 국가의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그 이름을 孫叔敖라고 합니다. 그는 수려하고 가냘프며 천성은 욕심이 없으니, 임금께서 그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시면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할 수 있고 백성들을 친근히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왕이 말했다. “그대가 寡人을 보필하였기 때문에 과인이 中原에서 어른 노릇을 하고 명령이 먼 지역에까지 시행되어 마침내 제후의 霸者가 되었으니, 그대가 아니면 이를 어떻게 이루었겠소?”

우구자가 말했다. “오랫동안 녹봉과 벼슬을 차지함은 탐욕이요, 현인과 재능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지 않음은 속임[誣]이며, 현인에게 벼슬을 양보하지 않음은 청렴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하지 못하면 충성스럽지 못한 행위입니다. 신하가 되어서 不忠을 행하고 있는데, 君王께서는 어찌 충성스럽다고 여기십니까? 신은 굳이 사직하기를 원합니다.”

장왕은 그의 뜻을 따라 우구자에게 300采邑을 주고 國老라 호칭하였다. 그러고는 손숙오를 영윤으로 삼았다. 얼마 안 되어 우구자의 집안 사람이 법을 범하니, 손숙오가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우구자가 기뻐하면서 궁중에 들어가 장왕을 뵙고 말했다. “신이 천거한 손숙오는 정말 國政을 주관하게 할 만합니다. 國法奉行하여 私黨에 치우치지 않고 刑戮을 시행하면서 왜곡함이 없으니, 公平하다고 이를 만합니다.”장왕이 말했다. “이는 모두 그대 덕분이오.”

14. 其為人不黨,治眾不亂,臨死不恐

趙宣子言韓獻子於晉侯曰:「其為人不黨,治眾不亂,臨死不恐。」晉侯以為中軍尉。河曲之役,趙宣子之車干行,韓獻子戮其僕,人皆曰:「韓獻子必死矣,其主朝昇之,而暮戮其僕,誰能待之!」役罷,趙宣子觴大夫,爵三行曰:「二三子可以賀我。」二三子曰:「不知所賀。」宣子曰:「我言韓厥於君,言之而不當,必受其刑。今吾車失次而戮之僕,可謂不黨矣。是吾言當也。」二三子再拜稽首曰:「不惟晉國適享之,乃唐叔是賴之,敢不再拜稽首乎?」

趙宣子韓獻子晉侯에게 추천하면서 말했다. “그의 사람됨은 私黨을 만들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다스리되 어지럽지 않으며, 죽음에 임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진후가 한헌자를 中軍尉로 삼았다. 河曲의 전쟁에서 조선자의 수레가 군대의 행렬을 침범하자, 한헌자가 조선자의 마부를 죽였다.

이를 본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한헌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의 주인이 아침에 자기를 추천해주었는데, 저녁에 그의 마부를 죽였으니, 누가 참고 기다리겠는가?” 전쟁이 끝나고 조선자가 大夫들에게 술자리를 베풀었다술이 세 순배에 이르렀을 때 조선자가 말했다. “그대들은 나에게 축하를 해야 할 것이오.” 대부들이 말하였다. “축하해야 할 일이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자가 말했다. “내가 韓厥을 임금께 추천할 때 내가 한 말이 맞지 않으면 반드시 해당하는 형벌을 받겠다 하였소. 그런데 지금 내 수레가 행렬을 침범하자 마부를 죽였으니, 私黨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오. 이는 내가 한 말이 맞은 것이오.” 대부들이 再拜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단지 나라만 복을 누릴 뿐 아니라 바로 唐叔도 이 사람을 의뢰할 것이니, 감히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습니까?”

15. 君問可為守者,非問臣之讎也。

晉文公問於咎犯曰:「誰可使為西河守者?」咎犯對曰:「虞子羔可也。」公曰:「非汝之讎也?」對曰:「君問可為守者,非問臣之讎也。」羔見咎犯而謝之曰:「幸赦臣之過,薦之於君,得為西河守。」咎犯曰:「薦子者公也,怨子者私也,吾不以私事害公事,子其去矣,顧吾射子也!」

晉 文公咎犯에게 물었다. “누가 西河太守로 임명할 만한가요?” 구범이 대답했다. “虞子羔를 임명할 만합니다.” 문공이 말했다. “우자고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 

구범이 대답했다. “임금께서 태수로 임명할 만한 사람을 물었지, 臣의 원수를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자고가 구범을 만나 사과하며 말했다. “감사하게도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임금께 추천해주시어 서하태수가 되었습니다.” 구범이 말했다. “그대를 추천한 것은 公的인 일이고, 그대를 원망하는 것은 私的인 일이오. 나는 사적인 일을 가지고 공적인 의리를 해치지 않으니, 그대는 그만 가시오. 돌아보면 내 그대를 쏘아 죽이겠소.”

16. 討有罪而橫奪,非所以禁暴也;恃力虐老,非所以教幼也;愛子棄法,非所以保國也;私二子、滅三行,非所以從政也,丈人舍之矣

楚文王伐鄧,使王子革王子靈共捃菜,二子出採,見老丈人載畚,乞焉,不與,搏而奪之。王聞之,令皆拘二子,將殺之。大夫辭曰:「取畚信有罪,然殺之非其罪也,君若何殺之?」言卒,丈人造軍而言曰:「鄧為無道,故伐之,今君公之子搏而奪吾畚,無道甚於鄧。」呼天而號,君聞之,群臣恐,君見之曰:「討有罪而橫奪,非所以禁暴也;恃力虐老,非所以教幼也;愛子棄法,非所以保國也;私二子、滅三行,非所以從政也,丈人舍之矣。」謝之軍門之外耳。

楚 文王나라를 토벌할 적에 王子 革王子 靈을 보내 나물을 뜯어 오게 하였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서 나물을 뜯다가 어떤 노인이 나물 바구니를 이고 가는 것을 보고는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노인이 주지 않자 그들은 노인을 때리고 바구니를 빼앗아버렸다.

문왕이 이 일을 듣고 두 公子를 모두 구속해 오게 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大夫들이 나서서 해명하여 말했다. “바구니를 빼앗은 일은 참으로 죄가 있으나, 죽이는 것은 지은 죄에 맞는 형벌이 아닙니다. 임금께서는 어찌 죽이려 하십니까?”

대부들이 말을 막 마쳤을 때, 노인이 軍營에 와서 말했다. “등나라가 無道하기 때문에 토벌하려는 것인데, 지금 임금의 公子들이 나를 때리면서 나물 바구니를 빼앗았습니다. 이는 무도한 행위가 등나라보다 더 심합니다.”그러고는 하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문왕이 이 말을 들었고, 여러 신하들은 두려워하였다.

문왕이 그 노인을 만나 말했다. 죄 있는 사람을 토벌하면서 함부로 남의 물건을 빼앗으면 포악한 행위를 금지할 수가 없고, 자기의 힘을 믿고 노인을 학대하면 어린 사람을 가르칠 수가 없으며, 자식을 사랑하여 법을 폐기하면 나라를 保衛할 수가 없고, 두 자식을 偏愛하여 이 세 가지 도리를 잃으면 政事를 처리할 수가 없는 것이오. 노인은 그만 너그럽게 용서하시오. 두 자식을 軍門 밖에서 처형하여 사죄하겠소.”

17. 子文之族,犯國法程,廷理釋之,子文不聽,恤顧怨萌,方正公平

楚令尹子文之族有干法者,廷理拘之,聞其令尹之族也而釋之。子文召廷理而責之曰:「凡立廷理者將以司犯王令而察觸國法也。夫直士持法,柔而不撓;剛而不折。今棄法而背令而釋犯法者,是為理不端,懷心不公也。豈吾營私之意也,何廷理之駮於法也!吾在上位以率士民,士民或怨,而吾不能免之於法。今吾族犯法甚明,而使廷理因緣吾心而釋之,是吾不公之心,明著於國也。執一國之柄而以私聞,與吾生不以義,不若吾死也。遂致其族人於廷理曰:「不是刑也,吾將死!」廷理懼,遂刑其族人。成王聞之,不及履而至于子文之室曰:「寡人幼少,置理失其人,以違夫子之意。」於是黜廷理而尊子文,使及內政。國人聞之,曰:「若令尹之公也,吾黨何憂乎?」乃相與作歌曰:「子文之族,犯國法程,廷理釋之,子文不聽,恤顧怨萌,方正公平。」

나라 令尹 子文의 친족 중에 을 위반한 사람이 있어서 廷理가 구속하였다가 그가 영윤의 친족이란 말을 듣고 석방하였다그러자 자문이 정리를 불러 꾸짖어 말했다.

정리라는 관직을 둔 것은 王命을 위반하는 사람을 규찰하고 國法을 거스르는 자를 살피게 하려는 것이오. 정직한 사람은 법을 집행함에 부드러워도 휘어지지 않고 강하여도 부러지지 않게 해야 하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법률을 폐기하고 왕명을 위배하여 법률을 범한 사람을 석방하였으니, 이는 獄官 노릇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마음가짐이 공정하지 못한 것이오. 어찌 내가 私情을 도모하려는 뜻을 두겠으며, 어찌 정리로서 법 집행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오.

나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통솔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혹 원망하더라도 나는 법 집행을 면제할 수 없소. 지금 내 친족이 법을 범한 정황이 매우 분명한데, 내 마음에 영합하려는 정리가 석방하게 둔다면, 이는 나의 공정하지 못한 마음을 온 나라에 밝게 드러내는 것이오. 한 나라의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불공정하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으니, 내가 정의롭지 못하게 사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오.” 그러고는 마침내 그의 친족을 정리에게 오게 하여 말했다. “이 사람을 형벌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 정리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 친족을 형벌하였다.

楚 成王이 이 사실을 듣고 미처 신도 신지 못하고 자문의 집에 와서 말했다. “寡人이 어려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도를 잃어 그대의 뜻을 어겼구려!” 이에 정리를 축출하고 자문의 지위를 높여서 內政까지 다스리게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말했다. “영윤처럼 공정하다면 우리들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그러고는 서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자문의 친족이 나라의 법을 어겼는데, 정리가 석방하였으나 자문은 인가하지 않고, 원망하는 백성을 애석하게 여겼으니, 方正하고 公平하다네.”

18. 故能立法從令尊敬社稷者,社稷之臣也,安可以加誅?

楚莊王有茅門者法曰:「群臣大夫諸公子入朝,馬蹄蹂霤者斬其輈而戮其御。」太子入朝,馬蹄蹂霤。廷理斬其輈而戮其御。太子大怒,入為王泣曰:「為我誅廷理。」王曰:「法者所以敬宗廟,尊社稷,故能立法從令尊敬社稷者,社稷之臣也,安可以加誅?夫犯法廢令,不尊敬社稷,是臣棄君,下陵上也。臣棄君則主失威,下陵上則上位危,社稷不守,吾何以遺子?」太子乃還走避舍,再拜請死。

楚 莊王茅門에 관한 이 있어서 그 법을 이렇게 정하였다. “群臣大夫와 여러 公子들이 入朝할 적에 말발굽이 처마 아래의 낙숫물 떨어지는 곳을 밟는 자는 그 수레끌채를 잘라버리고 그 마부를 죽일 것이다.”

太子가 입조하다가 말발굽이 처마 아래의 낙숫물 떨어지는 곳을 밟으니, 廷理가 그 수레끌채를 자르고 그 마부를 죽였다태자가 크게 노하여 궁중에 들어가 장왕에게 울면서 말했다. “저를 위해 정리를 죽여주십시오.”

장왕이 말했다. “법은 宗廟를 공경하고 社稷(國家)尊崇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확립하고 禁令을 준수하며 사직을 존경하는 사람은 사직을 위하는 良臣인데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느냐? 그런데 법을 위반하고 금령을 폐기하는 것은 사직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신하가 임금을 버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버리면 임금은 권위를 잃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면 윗사람의 지위가 위험해진다. 사직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너에게 전해주겠느냐?”

태자는 몸을 돌려 서둘러 물러나 자리를 피하여, 두 번 절하고 죽을 죄로 다스려주기를 청하였다.

19. 老君在前而不踰,少君在後而不豫,是國之寶臣也。

楚莊王之時,太子車立於茅門之內,少師慶逐之,太子怒,入謁王曰:「少師慶逐臣之車。王曰:「舍之,老君在前而不踰,少君在後而不豫,是國之寶臣也。

楚 莊王 때에 太子의 수레가 茅門의 경계 안에 멈췄는데, 少師이 쫓아버렸다태자가 노하여 궁중에 들어가 장왕을 뵙고 말했다. “소사 경이 저의 수레를 쫓아버렸습니다.”

장왕이 말했다. “그냥 두어라. 老君내가 앞에 있는데도 법을 어기지 않았고 젊은 태자 네가 뒤에 있는데도 머뭇거리지 않았으니, 이 사람은 나라의 보물 같은 신하이다.”

 

20. 虧君之義,復父之讎,臣不為也

吳王闔廬為伍子胥興師復讎於楚。子胥諫曰:「諸侯不為匹夫興師,且事君猶事父也,虧君之義,復父之讎,臣不為也。」於是止。其後因事而後復其父讎也,如子胥可謂不以公事趨私矣。

吳王 闔廬伍子胥를 위해 군대를 일으켜 楚나라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하니, 오자서가 하였다. “諸侯는 한 개인을 위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또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와 같습니다. 임금의 의리를 훼손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은 저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그 일을 중지하였다.

그 뒤에 어떤 일을 통하여 오자서가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으니, 오자서 같은 사람은 公的인 일을 가지고 私的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21. 以君子之知,豈必待某子之云云,然後知所以斷獄哉?君子之敬讓也,文辭有可與人共之者,君子不獨有也。

孔子為魯司寇,聽獄必師斷,敦敦然皆立,然後君子進曰:「某子以為何若,某子以為云云。」又曰:「某子以為何若,某子曰云云。」辯矣。然後君子幾當從某子云云乎,以君子之知,豈必待某子之云云,然後知所以斷獄哉?君子之敬讓也,文辭有可與人共之者,君子不獨有也。

孔子나라의 司寇가 되시어 訟事를 판결할 적에 반드시 여러 사람들을 참여시켜서 판결하였다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 일어선 뒤에 君子(孔子)가 앞으로 나서서 말씀하였다. “아무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무개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면 또 말씀하였다. “아무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무개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게 두루 다 묻고 난 뒤에 군자가 말씀하였다. “아무래도 아무개가 말한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겠소.”

군자의 지혜로써 어찌 굳이 아무개가 의견을 말하고 난 다음에야 송사를 어떻게 판결해야 할 줄을 알았겠는가. 이는 군자의 恭敬과 謙讓의 태도인 것이다. 사람들과 공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文辭(司法文書)가 있으면 군자는 독자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22. 善為吏者樹德,不善為吏者樹怨

<관리 노릇을 잘하는 사람은 은덕을 심고, 관리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은 원한을 심는다.>

子羔為衛政,刖人之足。衛之君臣亂,子羔走郭門,郭門閉,刖者守門,曰:「於彼有缺!」子羔曰:「君子不踰。」曰:「於彼有竇。」子羔曰:「君子不遂。」曰:「於此有室。」子羔入,追者罷。子羔將去,謂刖者曰:「吾不能虧損主之法令而親刖子之足,吾在難中,此乃子之報怨時也,何故逃我?」刖者曰:「斷足固我罪也,無可奈何。君之治臣也,傾側法令,先後臣以法,欲臣之免於法也,臣知之。獄決罪定,臨當論刑,君愀然不樂,見於顏色,臣又知之。君豈私臣哉?天生仁人之心,其固然也。此臣之所以脫君也。」孔子聞之,曰:「善為吏者樹德,不善為吏者樹怨。公行之也,其子羔之謂歟?」

子羔나라의 刑獄에 관한 政事를 다스릴 적에, 법에 의거하여 어떤 사람의 발을 잘랐다. 뒤에 위나라의 君臣 사이에 발생한 內亂에 자고가 外城 門으로 달아났는데, 외성 문이 닫혀 있었다.

자고에게 발을 잘린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다가 말했다. “저쪽에 무너진 곳이 있소.” 자고가 말했다. “君子는 그런 곳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다시 말했다. “저쪽에 기어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소.” 자고가 말했다. “군자는 땅굴로 기어나가지 않는다.” 그 사람이 또 말했다. “여기에 숨을 수 있는 방이 있소.” 자고가 방에 들어가 숨으니, 추격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추격을 중지하였다.

자고가 그곳을 떠날 때 발이 잘린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임금의 법령을 훼손시킬 수 없어 직접 그대의 발을 잘랐소. 내가 지금 危難 중에 처해 있으니, 이는 곧 그대가 원한을 갚을 좋은 기회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도망치게 하는 것이오?”

발이 잘린 사람이 대답했다. “발이 잘린 것은 본디 내가 지은 죗값으로 받은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오. 당신이 나의 죄를 다스릴 적에 법조문을 떠나 죄와 벌을 반복해 대조하였지요. 이는 나를 형벌에서 면제해주려는 것이니, 저는 이를 알고 있소. 獄案을 판결하여 죄를 정하고 형벌을 결정할 적에 당신은 슬퍼하며 즐겁지 않은 마음이 顔色에 나타났으니, 저는 이를 알고 있소. 당신이 어찌 저에게 私情을 두어 그런 것이겠소天性으로 타고 난 어진 사람의 마음이 본래 그런 것이니, 이것이 제가 당신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 까닭이오.”

孔子께서 이 일을 듣고 말씀하셨다. “관리 노릇을 잘하는 사람은 은덕을 심고, 관리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은 원한을 심는다.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아마 자고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