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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설원(說苑)_유향(劉向)

봉사(券十二 奉使)_설원(說苑) _ 유향(劉向)

by 허성원 변리사 2022. 8. 6.

** 역문은 동양고전DB에서 가져옴.

** 奉使는 임금의 명을 받아 외국에 出使하여 원만하게 使命을 완수한 일을 蒐輯 이다. 外交 使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의 이익을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에 이익이 되고, 君主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외교를 펼치되 외교 현안에 대한 應變은 전적으로 사신이 결정하여 민첩하게 대처해야 하는 事例를 보이고 있다.
사신은 죽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또는 견디기 어려운 치욕을 당할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는 늠름한 용기와 굴욕을 참아내는 강인한 의지를 갖춰야 할 德目으로 제시하고 있다.
本篇에 제시한 외교의 중요한 방법은, 외교에 관한 禮節을 중시할 것, 상대의 短點을 거론하지 말 것, 넓은 지식을 갖추고 침착해야 하며 口辯이 있어야 할 것 등인데, 이것을 갖춰야 使命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

 

1. 詩無通詁,易無通吉,春秋無通義

春秋之辭有相反者四,既曰:「大夫無遂事。」不得擅生事矣。又曰:「出境可以安社稷,利國家者則專之可也。」既曰:「大夫以君命出,進退在大夫」矣,又曰:「以君命出,聞喪徐行而不反」者,何也?曰:「此義者各止其科,不轉移也。不得擅生事者,謂平生常經也;專之可也者,謂救危除患也;進退在大夫者,謂將帥用兵也;徐行而不反者,謂出使道聞君親之喪也。公子子結擅生事,春秋不非,以為救莊公危也。公子遂擅生事,春秋譏之,以為僖公無危事也。故君有危而不專救,是不忠也。若無危而擅生事,是不臣也。傳曰:『詩無通詁,易無通吉,春秋無通義。』此之謂也。」

春秋의 문장에는 뜻이 서로 반대되는 부분이 네 군데가 있다. 이미 大夫는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없다.” 하였으니, 이는 제 마음대로 일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국경을 나갔을 때 社稷을 안정시킬 수 있고, 국가를 이롭게 할 수 있으면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였다이미 대부는 임금의 명으로 出使하였을 때 進退는 대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라 말하고, 임금의 명으로 出使했을 때 喪事를 들으면 천천히 가되 돌아오지 않는다.”라 하였으니, 무엇 때문인가그 문제는 이렇다. 이 네 가지는 각기 그 항목에만 해당하는 뜻이 있어서 다른 데에 바꾸어 적용할 수 없다.

제 마음대로 일을 낼 수 없다.’는 것은 평상적인 일반 원칙을 말하고,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을 하고 환난을 제거함을 말하며, ‘進退大夫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은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 지휘함을 말하고, ‘천천히 가되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出使하였다가 도중에 부모의 을 들은 경우를 말한다.

公子 結이 제멋대로 일을 내었을 때 춘추에서 비난하지 않은 것은 莊公을 위험에서 구한 일이기 때문이고, 公子 遂가 제멋대로 일을 일으켰을 때 춘추에서 비난한 것은 僖公이 위험에 처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임금에게 위험한 일이 있는데도 자신만의 판단으로 구하지 않으면 이는 不忠이고, 임금에게 위험한 일이 없는데도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면 이는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詩經》은 확정되어 변하지 않는 해석이 없고, 《周易》은 확정되어 변하지 않는 吉한 卦가 없으며, 《春秋》는 확정되어 변하지 않는 의리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른 말이다.

2. 柱之不可書

趙王遣使者之楚,方鼓瑟而遣之,誡之曰:「必如吾言。」使者曰:「王之鼓瑟,未嘗悲若此也!」王曰:「宮商固方調矣!」使者曰:「調則何不書其柱耶?」王曰:「天有燥濕,絃有緩急,宮商移徙不可知,是以不書。」使者曰:「明君之使人也,任之以事,不制以辭,遇吉則賀之,凶則弔之。今楚、趙相去,千有餘里,吉凶憂患,不可豫知,猶柱之不可書也。詩云:『莘莘征夫,每懷靡及。』」

趙王使者를 파견하여 나라로 가게 할 적에, 막 비파를 연주하여 전송하며 경계하였다. “가거든 반드시 내가 말한 것과 같이 하시오.” 사자가 말했다. “왕의 비파 연주가 일찍이 이렇게 슬픈 적이 없었습니다.” 조왕이 말했다. “의 음조가 방금 잘 조율되어서 그렇다오.” 사자가 말했다. “조율이 잘 되었다면 어찌 그 기러기발에 기록해두지 않습니까?” 조왕이 말했다. “天氣는 건조할 때도 있고 습기가 많을 때도 있으며, 은 느슨할 때도 있고 팽팽할 때도 있어서 궁상의 음조 변화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록해두지 못하는 것이라오.”

사자가 말했다. “현명한 임금은 사자를 파견할 적에 중요한 일을 맡기되 말에 제한을 두지 아니하여 한 일을 만나면 축하하고 한 일을 만나면 위문하였습니다. 지금 나라와 나라의 거리는 천여 리나 됩니다. 吉凶憂患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기러기발에 기록해두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詩經사신 가는 많고 많은 사람들, 使命을 완수하지 못할까 걱정한다오.’라 하였습니다.”

3. 為人臣無忘盡忠而得死者

楚莊王舉兵伐宋,宋告急,晉景公欲發兵救宋,伯宗諫曰:「天方開楚,未可伐也。」乃求壯士,得霍人解揚,字子虎,往命宋毋降,道過鄭,鄭新與楚親,乃執解揚而獻之楚。楚王厚賜,與約,使反其言,令宋趣降,三要,解揚乃許。於是楚乘揚以樓車,令呼宋使降,遂倍楚約而致其晉君命曰:「晉方悉國兵以救宋,宋雖急,慎毋降楚,晉今至矣。」楚莊王大怒,將烹之,解揚曰:「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受吾君命以出,雖死無二。」王曰:「汝之許我,已而倍之,其信安在?」解揚曰:「死以許王,欲以成吾君命,臣不恨也。」顧謂楚君曰:「為人臣無忘盡忠而得死者。」楚王諸弟皆諫王赦之。於是莊公卒赦解揚而歸之。晉爵之為上卿。故後世言霍虎。

楚 莊王이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토벌하자 송나라가 나라에위급함을 알리니, 晉 景公이 군대를 출동시켜 송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伯宗하였다. “하늘이 지금 한창 나라의 國運을 열어주고 있으니, 토벌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壯士를 구하여 땅 사람 解揚을 얻으니, 그의 子虎이다. 나라는 그를 보내어송나라에 가서 초나라에 항복하지 말라고 명을 전하게 하였다. 해양이 가는 길에 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정나라는 초나라와 새로 친한 사이가 되어 곧 해양을 사로잡아 초나라에 바쳤다.

楚王은 해양에게 후한 상을 내리며 나라 임금의 말을 반대로 전하여 송나라가 빨리 초나라에 항복하게 할 것을 강요하였다. 초왕이 세 번 요구하자 해양은 마침내 허락하였다이에 초나라는 해양을 樓車에 태우고 송나라에 항복하도록 소리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는 초나라와의 약속을 배반하고 진 경공이 명한 말을 전하였다. “진나라가 이제 온 나라의 군대를 파견하여 송나라를 구원하려고 하니 송나라는 위급하더라도 부디 초나라에 항복하지 말라. 진나라의 구원병이 바로 도착할 것이다.”

초 장왕이 크게 노하여 해양을 잡아다가삶아 죽이려 하자 해양이 말했다. “임금이 명령을 制定하는 것을 라 하고, 신하가 그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이라 합니다. 저는 우리 임금의 명을 받고 出使하였으니, 죽더라도 두 마음을 지닐 수 없습니다.” 초왕이 말했다. “너는 나의 요구를 허락했다가 이윽고 배반하였으니, 이 어디에 있는가.” 해양이 말했다. “왕의 요구를 허락한 것은 우리 임금의 명을 완수하려는 것이었으니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楚軍을 돌아보면서 말했다.남의 신하가 되어서 충성을 다하다가 죽는 사람을 잊지 말라.” 초왕의 여러 아우들이 모두 나서 초왕에게 사면할 것을 간하니, 이에 초 장왕은 마침내 해양을 사면하여 돌려보내었다. 진나라는 해양에게 벼슬을 주어 上卿으로 삼았다. 그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를 霍虎라고 불렀다.

4. 含怒未發,厲於天。士無怒即已,一怒伏尸二人,流血五步

秦王以五百里地易鄢陵,鄢陵君辭而不受,使唐且謝秦王。秦王曰:「秦破韓滅魏,鄢陵君獨以五十里地存者,吾豈畏其威哉?吾多其義耳。今寡人以十倍之地易之,鄢陵君辭而不受,是輕寡人也。」唐且避席對曰:「非如此也。夫不以利害為趣者,鄢陵君也。夫鄢陵君受地於先君而守之。雖復千里不得當,豈獨五百里哉?」秦王忿然作色,怒曰:「公亦曾見天子之怒乎?」唐且曰:「王臣未曾見也。」秦王曰:「天子一怒,伏尸百萬,流血千里。」唐且曰:「大王亦嘗見夫布衣韋帶之士怒乎?」秦王曰:「布衣韋帶之士怒也,解冠徒跣,以頸顙地耳,何難知者。」唐且曰:「此乃匹夫愚人之怒耳,非布衣韋帶之士怒也。夫專諸刺王僚,彗星襲月,奔星晝出;要離刺王子慶忌,蒼隼擊於臺上;聶政刺韓王之季父,白虹貫日,此三人皆布衣韋帶之士怒矣。與臣將四士,含怒未發,厲於天。士無怒即已,一怒伏尸二人,流血五步。」即案匕首起視秦王曰:「今將是矣。」秦王變色長跪曰:「先生就坐,寡人喻矣。秦破韓滅魏,鄢陵獨以五十里地存者,徒用先生之故耳。」

秦王500리의 땅을 가지고 鄢陵과 바꾸자고 하였는데, 鄢陵君은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면서 唐且를 보내 진왕에게 사과하도록 하였다진왕이 말했다. “나라는 나라를 격파하고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언릉군만 50리의 땅을 가지고 생존한 것은 내가 어찌 그 위세를 두려워해서겠는가. 내가 그 道義를 훌륭하게 여겨 멸망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寡人이 열 배의 땅을 가지고 바꾸자고 하는데 언릉군이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니, 이는 과인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에 당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利害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은 언릉군입니다. 언릉군이 先君에게 땅을 받아 지키고 있으니, 다시 천 리의 땅을 가지고 바꾸자 하더라도 합당하지 않을 텐데, 어찌 단지 500리의 땅이겠습니까.”

진왕이 벌컥 성을 내어 안색이 변하면서 분노하여 말했다. “도 일찍이 天子가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당저가 말했다. “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진왕이 말했다. “천자가 한 번 분노하면 백만 명의 시체가 땅바닥에 엎어지고 천 리까지 피가 흐르게 된다.” 당저가 말했다. “께서도 일찍이 베옷에 가죽띠를 맨 勇士가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진왕이 말했다.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하면 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땅바닥에 찧을 뿐이니, 어찌 알기가 어렵겠는가.”

당저가 말했다. “이는 곧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남자가 분노한 모습일 뿐이고,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專諸王僚를 찔러 죽일 적에 살별의 광채가 달빛을 가리고 流星이 낮에 나타났으며, 要離王子 慶忌를 찔러 죽일 적에 푸른 새매가 높은 누대에 들이쳤고, 聶政韓王季父를 찔러 죽일 적에 흰 무지개가 태양을 가로질렀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한 모습이니, 신과 함께 앞으로 네 사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용사가 분노한 마음을 품고 아직 성을 내지 않았을 때 좋지 않은 징조가 하늘에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용사가 분노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분노하면 두 명의 시체가 땅바닥에 엎어지고 다섯 걸음까지 피가 흐릅니다.”

그러고는 즉시 비수를 잡고 일어나 진왕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이렇게 하겠습니다.” 진왕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허리를 세우고 꿇어앉으며 말했다. “선생은 자리에 앉으시오. 과인은 알게 되었소. 진나라가 한나라를 격파하고 위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언릉군만 50리의 땅을 가지고 생존한 것은 단지 선생을 등용했기 때문이구려!”

5. 齊攻魯。子貢見哀公,請求救於吳

齊攻魯。子貢見哀公,請求救於吳。公曰:「奚先君寶之用?」子貢曰:「使吳責寶而與我師,是不可恃也。」於是以楊幹麻筋之弓六往。子貢謂吳王曰:「齊為無道,欲使周公之後不血食,且魯賦五百,邾賦三百,不識以此益齊,吳之利與?非與?」吳王懼,乃興師救魯。諸侯曰:「齊伐周公之後,而吳救之。」遂朝於吳。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니, 子貢이 魯 哀公을 뵙고 吳나라에 구원을 구하자고 요청하였다. 哀公이 말했다. “어찌 先君이 남겨주신 보물을 써서 구원을 요청하려는 게요?” 그러자 子貢이 말했다. “가령 나라가 우리의 보물을 요구하면서 우리 군대를 돕겠다고 하더라도 이를 꼭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楊木과 고라니의 힘줄로 만든 좋은 활 여섯 벌을 가지고 나라에 갔다.

子貢吳王에게 말했다. “나라가 無道하여 周公의 후예로 하여금 血食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장차 나라의 兵賦 500나라의 兵賦 300나라에 더 보태준다면 나라에 유리할지 불리할지 모르겠습니다.”듣고 난 吳王은 두려워하여 곧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구원하였다제후들이 듣고는 나라가 周公의 후예를 토벌하려 하자 나라가 구원하였다.” 하고는 마침내 나라에 朝見하였다.

6. 太子起拜,受賜發篋,視衣盡顛倒

魏文侯封太子擊於中山,三年,使不往來,舍人趙倉唐進稱曰:「為人子,三年不聞父問,不可謂孝。為人父,三年不問子,不可謂慈。君何不遣人使大國乎?」太子曰:「願之久矣。未得可使者。」倉唐曰:「臣願奉使,侯何嗜好?」太子曰:「侯嗜晨鳧,好北犬。」於是乃遣倉唐北犬,奉晨鳧,獻於文侯。倉唐至,上謁曰:「孽子擊之使者,不敢當大夫之朝,請以燕閒,奉晨鳧,敬獻庖廚,北犬,敬上涓人。」文侯悅曰:「擊愛我,知吾所嗜,知吾所好。」召倉唐而見之,曰:「擊無恙乎?」倉唐曰:「唯唯。」如是者三,乃曰:「君出太子而封之國君,名之,非禮也。」文侯怵然為之變容。問曰:「子之君無恙乎?」倉唐曰:「臣來時,拜送書於庭。」文侯顧指左右曰:「子之君,長孰與是?」倉唐曰:「禮,擬人必於其倫,諸侯毋偶,無所擬之。」曰:「長大孰與寡人。」倉唐曰:「君賜之外府之裘,則能勝之,賜之斥帶,則不更其造。」文侯曰:「子之君何業?」倉唐曰:「業詩。」文侯曰:「於詩何好?」倉唐曰:「好晨風、黍離。」文侯自讀晨風曰:「彼晨風,鬱彼北林,未見君子,憂心欽欽,如何如何,忘我實多。」文侯曰:「子之君以我忘之乎?」倉唐曰:「不敢,時思耳。」文侯復讀黍離曰:「彼黍離離,彼稷之苗,行邁靡靡,中心搖搖,知我者謂我心憂,不知我者謂我何求?悠悠蒼天,此何人哉?」文侯曰:「子之君怨乎?」倉唐曰:「不敢,時思耳。」文侯於是遣倉唐賜太子衣一襲,敕倉唐以雞鳴時至。太子起拜,受賜發篋,視衣盡顛倒。太子曰:「趣早駕,君侯召擊也。」倉唐曰:「臣來時不受命。」太子曰:「君侯賜擊衣,不以為寒也,欲召擊,無誰與謀,故敕子以雞鳴時至,詩曰:『東方未明,顛倒衣裳,顛之倒之,自公召之。』」遂西至謁。文侯大喜,乃置酒而稱曰:「夫遠賢而近所愛,非社稷之長策也。」乃出少子摯,封中山,而復太子擊。故曰:「欲知其子,視其友;欲知其君,視其所使。」趙倉唐一使而文侯為慈父,而擊為孝子。太子乃稱:「詩曰:『 鳳凰于飛,噦噦其羽,亦集爰止,藹藹王多吉士,維君子使,媚于天子。』舍人之謂也。」

魏 文侯太子 擊中山國하고 3년 동안 使者가 왕래하지 않았다. 舍人 趙倉唐이 태자에게 나아가 말했다. “아들이 되어서 3년 동안 부친의 안부를 듣지 못한다면 라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가 되어서 3년 동안 자식의 소식을 묻지 않는다면 자애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主君께서는 어찌 사람을 파견하여 大國에 사자를 보내지 않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기를 원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보낼 만한 사자를 찾지 못했다오.” 그러자 倉唐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명을 받들어 사자로 가기를 원합니다. 君侯께서는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시는지요?” 태자가 말했다. “君侯께서는 晨鳧의 요리를 즐기시고 北犬을 좋아하시지요.”이리하여 창당을 파견하여 北犬을 끌고 晨鳧를 받들고 가서 文侯에게 바치게 하였다.

창당이 도착하여 문후에게 알현하기를 청하였다. “庶子 擊의 사자는 감히 大夫들의 조정 반열에 들 수 없기에 한가히 계실 때를 얻어 晨鳧를 받들어 삼가 庖廚에 바치고 北犬을 끌어다가 삼가 涓人에게 바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문후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격이 나를 사랑하여 내가 즐기는 것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구나.” 그런 다음 창당을 불러 만나고는 말했다. “격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가?”

창당은 대답하였다. “예예.”이와 같이 세 차례 문답한 뒤에 창당이 마침내 말했다. “임금께서 태자를 내보내 나라에 봉하시고 임금께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에 맞지 않습니다.” 문후는 당황하여 안색을 고치고 물었다. “그대의 주군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가?” 창당은 말했다. “제가 이곳으로 올 때 뜰에서 절하며 편지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문후가 측근들을 돌아보고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이 중에서 누구와 키가 같은가?”

창당은 말했다. “에 사람을 견줄 적에는 반드시 그의 신분에 맞게 해야 됩니다. 제후는 그에 필적할 짝이 없으니, 견줄 수가 없습니다.” 문후는 말했다. “그의 키는 寡人과 견주어 어떤가?” 창당은 대답했다. “임금께서 하사하신 바깥 창고의 갖옷을 충분히 입을 수 있고, 하사하신 띠를 고쳐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컸습니다.”

문후는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무엇을 학습하는가?” 창당은 대답했다. “詩經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다시 물었다. “詩經에서 무슨 를 좋아하는가?” 창당은 대답했다. “晨風黍離을 좋아합니다.” 문후가 스스로 신풍장을 읽었다. “저 빨리 나는 신풍이여, 저 울창한 북쪽 숲속을 나네. 君子를 만나지 못했기에 근심하는 마음 서글퍼라.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 참으로 나를 많이 잊었구나.” 문후가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나를 잊었는가?” 창당이 말했다. “감히 잊지 못하여 때때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다시 서리장을 읽었다. “저 기장들 늘어져 있는데, 저 피의 싹들은 자라고 있구나. 길을 가는 일 더디고 더디어, 내 마음 마구 울렁이누나. 나를 아는 사람은 내 마음 근심에 싸였다고 말하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하네. 아득히 먼 푸른 하늘이여, 이 어떤 사람인가.” 문후가 또 물었다. “그대의 주군은 나를 원망하는가?” 창당이 대답하였다. “감히 원망하지 못하여 때때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이에 창당을 보내면서 태자에게 옷 한 벌을 하사하고 닭이 울 무렵에 그곳에 도착하도록 당부하였다. 태자가 문후의 선물을 맞이하여 절하여 받고 상자를 열어 옷을 보니 모두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이것을 본 태자는 말했다. “서둘러 수레를 준비하라. 君侯께서 나를 부르신다.” 이에 창당은 말했다. “제가 올 때 그런 명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자는 설명했다. “군후께서 나에게 옷을 하사하신 것은 추위를 막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를 부르려는 것은 함께 일을 의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에게 닭이 울 무렵에 당도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詩經동방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었구나. 거꾸로 뒤집어 입었으니, 군후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라네.’ 하였네.”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문후를 뵈니, 문후가 크게 기뻐하여 酒宴을 베풀면서 말했다. “어진 이를 멀리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만 친근히 하는 것은 社稷의 좋은 계책이 아니다.” 그러고는 작은 아들 를 내보내 중산국에 하고 태자 격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알려고 하면 그와 사귀는 벗을 보고, 그의 임금을 알려고 하면 그가 보낸 使者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조창당이 한번 사자로 가서 문후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고 태자 은 효자가 되었다. 태자는 곧 를 읊어 칭송하였다. “봉황이 날아오름이여, 날개 소리 퍼덕이더니, 그칠 데에 내려앉았네. 王室吉士가 많고 많으니, 君子가 사신 가서, 천자께 사랑을 받았네.” 이는 사인 조창당 같은 사람을 이른 것이다.

7. 不可伐也。其憂在上;其樂在下

楚莊王欲伐晉,使豚尹觀焉。反曰:「不可伐也。其憂在上;其樂在下。且賢臣在焉,曰沈駒。」明年,又使豚尹觀,反曰:「可矣。初之賢人死矣。諂諛多在君之廬者,其君好樂而無禮;其下危處以怨上。上下離心,興師伐之,其民必反。」莊王從之,果如其言矣。

楚 莊王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여 豚尹을 파견해 나라의 정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돈윤이 돌아와 말했다. “진나라는 토벌할 수가 없습니다. 윗사람은 백성의 삶을 걱정하고 아랫사람은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沈駒라는 賢臣이 보좌하고 있습니다.”

이듬해에 또 돈윤을 파견하여 진나라의 정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는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토벌해도 되겠습니다. 당초의 현신은 죽었고, 임금의 거처에는 아첨하는 무리가 많으며, 임금은 향락을 즐기면서 가 없고, 아래 백성들은 위험에 빠져 살면서 윗사람을 원망하여 上下가 단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면 그 백성들이 반드시 먼저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莊王이 그의 말을 따랐는데, 정말 그의 말과 같았다

8. 乞火不得不望其炮矣

梁王贅其群臣而議其過,任座進諫曰:「主君國廣以大,民堅而眾,國中無賢人辯士,奈何?」王曰:「寡人國小以狹,民弱臣少,寡人獨治之,安所用賢人辯士乎?」任座曰:「不然,昔者齊無故起兵攻魯,魯君患之,召其相曰:『為之奈何?』相對曰:『夫柳下惠少好學,長而嘉智,主君試召使於齊。』魯君曰:『吾千乘之主也,身自使於齊,齊不聽。夫柳下惠特布衣韋帶之士也,使之又何益乎?』相對曰:『臣聞之,乞火不得不望其炮矣。今使柳下惠於齊,縱不解於齊兵,終不愈益攻於魯矣。』魯君乃曰:『然乎?』相即使人召柳下惠來。入門,袪衣不趨。魯君避席而立,曰:『寡人所謂飢而求黍稷,渴而穿井者,未嘗能以觀喜見子。今國事急,百姓恐懼,願藉子大夫使齊。』柳下惠曰:『諾。』乃東見齊侯。齊侯曰:『魯君將懼乎?』柳下惠曰:『臣君不懼。』齊侯忿然怒曰:『吾望而魯城,芒若類失亡國,百姓發屋伐木以救城郭,吾視若魯君類吾國。子曰不懼,何也?』柳下惠曰:『臣之君所以不懼者,以其先人出周,封於魯,君之先君亦出周,封於齊,相與出周南門,刳羊而約曰:「自後子孫敢有相攻者,令其罪若此刳羊矣。」臣之君固以刳羊不懼矣,不然,百姓非不急也。』齊侯乃解兵三百里。夫柳下惠特布衣韋帶之士,至解齊,釋魯之難,奈何無賢士聖人乎?」

梁王群臣을 모아놓고 자기의 잘못을 비평하게 하자, 任座諫言을 올렸다. “主君의 나라는 넓고도 크며 백성은 굳세고 많은데, 나라 안에 어진 이와 말 잘하는 이가 없으니, 어찌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寡人의 나라는 작고 좁으며 백성은 나약하고 적어서 寡人이 혼자 다스리는데, 어진 이와 말 잘하는 이를 어디에 쓴단 말이오?”

임좌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 나라가 아무 까닭 없이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침공하자 魯君이 근심하여 그의 재상을 불러 어쩌면 좋겠소?’ 하고 물었습니다이에 재상은 柳下惠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훌륭한 지혜가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한번 불러서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십시오.’라고 건의하였습니다그러자 노군이 말했습니다. ‘나는 千乘의 임금이오. 내 친히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더라도 제나라는 나의 설득을 따르지 않을 텐데, 저 유하혜는 단지 베옷에 가죽띠를 띤 선비일 뿐이오. 그를 사신으로 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재상이 대답하였습니다. ‘은 듣자니, 불씨를 구하여 얻지 못하면 불을 지피는 일을 바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유하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낸다면 제나라 군대의 포위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끝내 노나라를 더욱 맹렬히 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군이 마침내 그렇겠군요.’ 하자, 재상은 즉시 사람을 보내 유하혜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유하혜가 문으로 들어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는 종종걸음을 하지 않으니, 노군이 자리를 피하여 일어나 말했습니다. ‘과인은 이른바 배가 고파야 곡식을 찾고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사람이오. 일찍이 즐겁고 기쁜 일로 그대를 만나지 않았는데, 지금 나랏일이 위급하여 백성이 두려워하고 있소. 그대 大夫의 역량을 빌려 나라에 사신으로 가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그러자 유하혜는 좋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동쪽으로 가서 齊侯를 만났습니다齊侯노군은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자, 유하혜는 신의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제후가 벌컥 성을 내며 물었습니다. ‘내가 노나라 을 바라보니, 아득하여 마치 멸망하는 나라와 같아서 백성들이 집을 헐고 나무를 베어다가 성곽을 修築하고 있었소. 나는 노군을 우리나라의 백성처럼 여기는데, 그대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유하혜가 대답했습니다. ‘신의 임금께서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그의 선조가 나라 宗室에서 나와 노나라에 봉해졌고, 君主(齊侯)先君도 주나라 宗室에서 나와 제나라에 봉해졌기 때문입니다. 함께 주나라 都城南門을 나올 적에 을 잡아 盟約하여 지금부터 이후로 자손 중에 감히 서로 공격하는 자가 있으면 이 양을 죽이는 것과 같은 죄를 받게 할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의 임금은 본래 양을 잡아 맹서한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성들이 다급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후는 곧 포위를 풀고 300리 밖으로 후퇴하였습니다. 유하혜는 단지 베옷에 가죽띠를 띤 선비였을 뿐인데 제나라의 포위를 풀어 노나라의 危難을 해결하였으니, 어찌 賢士聖人이 없겠습니까.”

9. 吾不起中國故王此,使我居中國,何遽不若漢。

陸賈從高祖定天下,名為有口辯士,居左右,常使諸侯,及高祖時,中國初定,尉佗平南越,因王之,高祖使陸賈賜尉佗印,為南越王。陸生至,尉佗椎結箕踞見陸生。陸生因說佗曰:「足下中國人,親戚昆弟墳墓在真定。今足下棄反天性,捐冠帶,欲以區區之越,與天子抗衡為敵國,禍且及身矣。且夫秦失其政,諸侯豪傑並起,惟漢王先入關,據咸陽,項籍倍約,自立為西楚霸王,諸侯皆屬,可謂至彊。然漢王起巴蜀,鞭笞天下,劫諸侯,遂誅項羽,滅之。五年之間,海內平定,此非人力,天之所建也。天子聞君王王南越,不助天下誅暴逆,將相欲移兵而誅王,天子憐百姓新勞苦,且休之,遣臣授君王印,剖符通使,君王宜郊迎,北面稱臣,乃欲以新造未集之越,屈彊於此,漢誠聞之,掘燒君王先人冢墓,夷種宗族,使一偏將將十萬眾臨越,越則殺王以降漢,如反覆手耳。」於是尉佗乃蹶然起坐,謝陸生曰:「居蠻夷中久,殊失禮義。」因問陸生曰:「我孰與蕭何、曹參、韓信賢?」陸生曰:「王似賢。」復問:「我孰與皇帝賢?」陸生曰:「皇帝起豐沛,討暴秦,誅強楚,為天下興利除害,繼五帝三王之業,統理中國,中國之人以億計,地方萬里,居天下之膏腴,人眾車輿,萬物殷富,政由一家,自天地剖判,未嘗有也。今王眾不過數十萬,皆蠻夷,踦𨄅山海之間,譬若漢一郡,何可乃比於漢王?」尉佗大笑曰:「吾不起中國故王此,使我居中國,何遽不若漢。」乃大悅陸生,與留飲數月。曰:「越中無足與語,至生來,令我日聞所不聞。」賜陸生橐中裝,直千金,佗送亦千金。陸生拜尉佗為南越王,令稱臣,奉漢約。歸報,高祖大悅,拜為太中大夫。

陸賈漢 高祖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니, 말재주가 있는 辯士로 이름이 났다. 그리하여 황제의 측근에 있으면서 항상 제후에게 사신으로 나갔다. 高祖 때에 이르러 중국이 처음 안정되었을 때 尉佗南越을 평정하고 그대로 이라 일컬으니, 고조가 육가를 파견하여 위타에게 國王印章下賜하여 남월왕으로 삼았다육가가 남월에 도착하니, 위타가 몽둥이 모양으로 상투를 틀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육가를 접견하였다. 육가가 이 틈에 위타를 설득하였다.

그대는 중국 사람이니, 친척형제조상은 무덤이 眞定에 있소. 그런데 지금 그대는 天性을 위배하며 冠帶를 던져버리고 보잘것없는 남월을 가지고 天子에 대항하여 대등한 국가가 되려고 하니, 재앙이 장차 자신에게 닥칠 것이오. 또한 나라가 정치를 잘못하여 황폐해지자 제후와 호걸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나 오직 漢王께서 남보다 먼저 關中에 들어가 咸陽을 차지하였소. 그런데 項籍이 약속을 위반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西楚霸王이 되어 제후들을 모두 귀속시켰으니, 가장 강대하다고 말할 만하였소.

그러나 한왕께서 巴蜀에서 起兵하여 천하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제후들을 위협하여 마침내 項羽를 멸망시켰소. 5년 사이에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나라를 세워준 것이오. 천자께서는 君王이 남월에게 왕이라 일컬으면서 천하 사람을 도와 포악하고 반역하는 사람을 誅殺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으셨소.  장수와 재상들이 군대를 파견하여 군왕을 주살하려고 하였으나, 천자께서는 백성들이 새로 노고하는 것을 가엾게 여기시어 우선 휴식하게 하시고, 저를 파견하시어 군왕의 인장을 주어 符信을 나누고 使節을 교류하게 하시었소. 군왕은 의당 교외에 나와 사신을 영접하여 북쪽을 향해 신하를 일컬어야 하는데, 새로 건국하여 안정되지 못한 남월을 가지고 이곳에서 강경하고 거만하게 굴면서 남에게 굽히려 하지 않고 있소한나라 조정이 참으로 이런 사실을 들으면 군왕의 조상 무덤을 파내어 불태우며 종족을 전부 멸하고 副將 한 명을 파견하여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월을 토벌하게 할 것이오. 그러면 남월 사람들은 군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할 것이오.” 이에 위타는 벌떡 일어나 앉아 육가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오랑캐 속에서 오래 살아 자못 예의를 잃었소.”

그러고는 이어 육가에게 물었다. “나와 蕭何曹參韓信을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육가가 대답했다. “군왕이 더 나은 듯합니다.” 위타가 다시 물었다. “나와 황제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육가가 대답했다.

황제는 豐沛에서 기병하시어 포악한 진나라를 토벌하시고, 강력한 초나라를 誅滅하시어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이익을 일으키고 해를 제거하시며, 五帝三王功業을 계승하시어 중국을 통치하셨소. 중국의 인구는 억만 명으로 헤아리고 땅은 사방 만 리나 됩니다천하의 비옥한 곳에 처하여 인구가 많고 수레를 타고 다니며, 온갖 물산이 매우 풍부하고 정치가 한 집에서 나오니, 천지가 개벽한 이후로 일찍이 이보다 성대한 적이 없었소. 지금 군왕의 백성은 수십만 명에 지나지 않고 모두 미개한 蠻夷로서 험준한 산과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비유하면 漢나라의 郡 하나와 같은데, 어떻게 漢王과 견준단 말이오.”

위타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중국에서 기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왕 노릇하지만, 만일 중국에 있었다면 어찌 한왕보다 못하겠소.마침내 육가를 크게 좋아하여 몇 달간 머물게 하고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하였다위타가 말했다. “남월 지방에는 함께 談論할 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선생이 오게 되어 나에게 날마다 듣지 못했던 말을 듣게 해주었소.”

그러고는 육가에게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을 자루 안에 가득 넣어서 주고 따로 또 천금을 보내주었다. 육가는 위타를 임명하여 남월왕으로 삼아 한나라에 대해 신하를 일컫게 하고 한나라와의 약속을 받들어 지키게 하였다. 육가가 한나라에 돌아가 결과를 보고하자, 고조가 크게 기뻐하여 육가를 太中大夫에 임명하였다.

10. 冠雖弊,宜加其上;履雖新,宜居其下

晉楚之君相與為好會於宛丘之上。宋使人往之。晉、楚大夫曰:「趣以見天子禮見於吾君,我為見子焉。」使者曰:「冠雖弊,宜加其上;履雖新,宜居其下;周室雖微,諸侯未之能易也。師升宋城,猶不更臣之服也。」揖而去之,諸大夫瞿然,遂以諸侯之禮見之。

나라와 나라 임금이 서로 友好를 맺기 위하여 宛丘에서 會盟할 때 나라가 사람을 파견하여 그곳에 가게 하였다진나라와 초나라의 大夫가 말했다. “그대가 속히 천자를 朝見하는 예로 우리 임금을 뵙는다면 우리들이 그대를 위해 우리 임금을 뵙게 해주겠소.”

나라 使臣이 말했다. 冠은 낡아 해어졌어도 당연히 머리 위에 쓰는 것이고, 신은 새것이라도 당연히 발밑에 신는 것입니다. 나라 王室이 아무리 衰微해졌더라도 諸侯가 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오. 당신들의 군대가 우리 나라 都城의 성벽에 올라오더라도 나는 그래도 나의 복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오.”

그러고는 을 하고 떠나가버렸다. 여러 大夫들이 놀라서 바라보고 마침내 諸侯의 예로 뵙게 하였다.

11. 意而安之,願假冠以見,意如不安,願無變國俗。

越使諸發執一枝梅遺梁王,梁王之臣曰「韓子」,顧謂左右曰:「惡有以一枝梅,以遺列國之君者乎?請為二三日慚之。」出謂諸發曰:「大王有命,客冠則以禮見,不冠則否。」諸發曰:「彼越亦天子之封也。不得冀、兗之州,乃處海垂之際,屏外蕃以為居,而蛟龍又與我爭焉。是以剪髮文身,爛然成章以像龍子者,將避水神也。今大國其命冠則見以禮,不冠則否。假令大國之使,時過弊邑,弊邑之君亦有命矣。曰:『客必剪髮文身,然後見之。』於大國何如?意而安之,願假冠以見,意如不安,願無變國俗。」梁王聞之,披衣出,以見諸發。令逐韓子。詩曰:「維君子使,媚于天子。」若此之謂也。

나라가 諸發을 파견하여 매화 한 가지를 가지고 가서 梁王에게 드리게 하였다. 韓子라는 양왕의 신하가 주위에 있는 관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어찌 매화 한 가지를 諸侯國의 군주에게 드리는 경우가 있는가? 내가 그대들을 위해 그를 부끄럽게 하겠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제발에게 말했다. “우리 대왕께서 손님이 을 썼거든 예의를 갖추어 만나고, 관을 쓰지 않았거든 만나지 말라.’ 하셨소.”

제발이 말했다. “저희 월나라도 天子께서 해준 나라입니다. 冀州兗州 같은 中原을 얻지 못하고 바닷가 일대에 위치하여 外族들을 몰아내고 거주하는데 蛟龍이 또 우리와 살 곳을 다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머리를 짧게 깎고 文身하여 현란한 색채를 칠해 의 아들 형상을 모방하는 것은 水神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大國의 임금께서 관을 썼으면 예의를 갖추어 만나고 관을 쓰지 않았으면 만나지 말라고 명하였다 하니, 가령 대국의 사신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임금께서도 손님이 반드시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한 다음에야 만나라.’고 명한다면 대국은 어떻겠습니까. 만일 이것이 마음에 편안하다면 관을 빌려 쓰고 만나기를 바라지만, 만일 이것이 마음에 편안하지 않다면 나라의 풍속을 바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양왕이 이 말을 듣고 옷을 걸치고 나와서 제발을 접견하고 한자를 추방하게 하였다. 詩經君子가 사신 가서, 천자께 사랑을 받았네.”라 하였으니, 이와 같은 사람을 이른 말이다.

12. 臣受命弊邑之君,將使於吳王之所,不佞而迷惑入于天子之朝,敢問吳王惡乎存?

晏子使吳,吳王謂行人曰:「吾聞晏嬰蓋北方之辯於辭,習於禮者也,命儐者:客見則稱天子。」明日,晏子有事,行人曰:「天子請見。」晏子憱然者三,曰:「臣受命弊邑之君,將使於吳王之所,不佞而迷惑入于天子之朝,敢問吳王惡乎存?」然後吳王曰:「夫差請見。」見以諸侯之禮。

晏子나라에 사신 가니, 吳王行人에게 말했다. “내가 듣건대, 晏嬰은 북방의 말을 잘하고 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손님을 영접하는 관리에게 말했다. “손님을 만나거든 天子가 만나기를 요청한다.’라고 말하라.”이튿날 안자가 일이 있어 오왕을 만나려 하자, 행인이 말했다. “천자께서 만나기를 요청합니다.”

안자는 세 차례 안색이 변하더니 말했다. “臣이 우리 임금의 명을 받고 오왕이 있는 곳에 사신 가려다가 불민하고 미혹되어 천자의 조정으로 잘못 들어왔습니다. 오왕은 어디에 계시는지 감히 묻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오왕이 夫差는 만나기를 요청합니다.” 하고는 제후의 예절로 안자를 만났다.

13. 今日吾譏晏子也,猶裸而訾高橛者。

晏子使吳,吳王曰:「寡人得寄僻陋蠻夷之鄉,希見教君子之行,請私而毋為罪!」晏子憱然避位矣。王曰:「吾聞齊君蓋賊以慢,野以暴,吾子容焉,何甚也?」晏子逡巡而對曰:「臣聞之,微事不通,麤事不能者必勞;大事不得,小事不為者必貧;大者不能致人,小者不能至人之門者必困,此臣之所以仕也。如臣豈能以道食人者哉?」晏子出。王笑曰:「今日吾譏晏子也,猶裸而訾高橛者。

晏子나라에 사신 갔는데, 吳王이 말했다. “寡人이 궁벽한 蠻夷의 지역에 살아서 君子의 품행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 적으니, 나의 사정을 이해하여 탓하지 마시오.” 안자는 안색이 변하면서 자리에서 비켜 일어났다오왕이 말했다. “내가 들으니 나라 임금은 포학하고 오만하며 거칠고 殘暴하다는데, 그대는 어찌 그리 지나치게 용인하는 것이오?”

안자는 몇 걸음 물러나면서 대답하였다. “신은 들으니, 정미한 일에 통하지 못하고 간략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고달프고, 큰일을 제대로 못하고 작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가난하며, 벼슬이 높은데 인재를 초치하지 못하고 벼슬이 낮은데 남의 집에 가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곤경에 처한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이 벼슬하는 까닭입니다. 신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도덕을 가지고 남의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안자가 밖으로 나가니, 오왕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내가 안자를 비난한 일은 마치 옷을 완전히 벗은 사람이 옷을 높이 걷어 올린 사람을 꾸짖는 것과 같구나.”

14. 賜人主前者,瓜桃不削,橘柚不剖

景公使晏子使於楚。楚王進橘置削。晏子不剖而并食之。楚王曰:「橘當去剖。」晏子對曰:「臣聞之,賜人主前者,瓜桃不削,橘柚不剖。今萬乘無教,臣不敢剖,然臣非不知也。」

齊 景公晏子를 파견하여 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楚王이 귤을 올리게 하면서 귤을 쪼개는 칼도 함께 두었으나 안자는 귤을 쪼개지 않고 껍질째 함께 먹었다초왕이 말했다. “귤은 당연히 껍질을 벗기고 쪼개어 먹는 것이오.”

안자가 대답했다. “신은 들으니 임금의 앞에서 하사받은 경우, 오이나 복숭아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귤이나 유자[柚]는 쪼개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萬乘의 군주께서 명령을 하시지 않으니, 신은 감히 쪼갤 수 없거니와,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신이 귤을 쪼개어 먹는다는 것을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15. 江南有橘,齊王使人取之而樹之於江北,生不為橘,乃為枳

晏子將使荊,荊王聞之,謂左右曰:「晏子賢人也,今方來,欲辱之,何以也?」左右對曰:「為其來也,臣請縛一人過王而行。」於是荊王與晏子立語。有縛一人,過王而行。王曰:「何為者也?」對曰:「齊人也。」王曰:「何坐?」曰:「坐盜。」王曰:「齊人固盜乎?」晏子反顧之曰:「江南有橘,齊王使人取之而樹之於江北,生不為橘,乃為枳,所以然者何?其土地使之然也。今齊人居齊不盜,來之荊而盜,得無土地使之然乎?」荊王曰:「吾欲傷子而反自中也。」

晏子()나라로 사신 가려고 할 때, 楚王이 이 소식을 듣고 측근의 신하에게 말했다. “안자는 賢人이다. 지금 막 온다고 하니, 그에게 모욕을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측근의 신하가 대답했다. “그가 왔을 적에 신이 한 사람을 결박하여 대왕의 앞을 지나가겠습니다. 그때 왕께서 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으시면, 신은 나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겠습니다. 왕께서 또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고 물으시면, 신은 절도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대답하겠습니다.이리하여 초왕과 안자가 서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사람을 결박하여 왕의 앞을 지나가자, 초왕이 물었다. “이는 어떤 사람인가?” 측근의 신하가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입니다.” 초왕이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가?” 측근의 신하가 대답했다. “절도죄를 지었습니다.” 초왕이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본래 도둑질을 잘하는가?”

안자가 머리를 돌려 바라보면서 말했다. “長江 남쪽에 귤나무가 있어서 齊王이 사람을 보내 그것을 가져다가 장강 북쪽에 심었는데, 생장하여 귤이 되지 않고 마침내 탱자가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그곳의 토질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서 살 때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다가 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였으니, 나라의 땅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왕이 말했다. “내가 그대를 망신 주려고 하다가 도리어 내 자신이 망신을 당했구려.”

16. 使至狗國者從狗門入。今臣使楚,不當從此門

晏子使楚。晏子短,楚人為小門於大門之側而延晏子。晏子不入,曰:「使至狗國者從狗門入。今臣使楚,不當從此門。」儐者更從大門入見楚王。王曰:「齊無人耶?」晏子對曰:「齊之臨淄三百閭,張袂成帷,揮汗成雨。比肩繼踵而在,何為無人?」王曰:「然則何為使子?」晏子對曰:「齊命使各有所主。其賢者使賢主,不肖者使不肖主。嬰最不肖,故宜使楚耳。」

晏子나라에 사신을 갔는데, 안자의 키가 작았다. 초나라 사람이 대문 곁에 작은 문을 만들어 그리로 안자를 맞아들이려 하였다안자는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狗國에 사신으로 간 사람은 개가 드나드는 문을 따라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오. 지금 나는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이 문을 따라 들어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儐者가 다시 인도하여 대문을 따라 들어오게 하였다.

안자가 楚王을 뵙자, 초왕이 물었다. “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안자가 대답했다. “제나라 臨淄에는 300가 있으니, 사람들이 소매를 펼치면 장막을 이루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을 뿌리면 비를 이루며, 어깨와 어깨가 서로 부딪고 발꿈치와 발꿈치가 서로 닿을 정도로 많이 살고 있는데, 어찌 사람이 없겠습니까.”

초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를 사신으로 파견한 것이오?” 

안자가 대답했다. “제나라는 사신을 임명할 적에 각각 주체로 삼는 대상이 있으니, 현명한 사람은 현명한 군주에게 사신으로 가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군주에게 사신으로 갑니다. 저 嬰은 가장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이 당연합니다.”

17. 且使死者而無知也,又何釁於鐘,死者而有知也,吾豈錯秦相楚哉?

秦、楚轂兵,秦王使人使楚,楚王使人戲之曰:「子來亦卜之乎?」對曰:「然!」「卜之謂何?」對曰:「吉。」楚人曰:「噫!甚矣!子之國無良龜也。王方殺子以釁鐘,其吉如何?」使者曰:「秦、楚轂兵,吾王使我先窺我死而不還,則吾王知警戒,整齊兵以備楚,是吾所謂吉也。且使死者而無知也,又何釁於鐘,死者而有知也,吾豈錯秦相楚哉?我將使楚之鐘鼓無聲,鐘鼓無聲則將無以整齊其士卒而理君軍。夫殺人之使,絕人之謀,非古之通議也。子大夫試熟計之。」使者以報楚王。楚王赦之。此之謂「造命」。

나라와 나라가 交戰할 때, 秦王이 사람을 파견하여 초나라에 사신을 보냈다초왕이 사람을 보내 진나라 사신을 희롱하여 말했다. “그대가 사신으로 올 때 점을 쳐보았소?” 사신이 대답했다. “그렇소.” 다시 물었다. “점을 친 결과가 어떠하였소?” 사신이 대답했다. “하였소.” 초나라 사람이 말했다. “, 심하구나. 그대의 나라에 좋은 거북이 없음이여! 우리 왕께서 그대를 죽여 釁鍾(흔종, 희생으로 삼음)을 하려고 하는데, 그 점이 어떻게 길하다는 것이오.”

사자가 말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교전할 적에 우리 왕께서 나를 파견하여 먼저 敵情을 살펴보게 하였소. 그러니 내가 여기서 죽어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왕께서 경계해야 함을 알아채셔서 군대를 정돈하여 초나라를 방비할 것이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길하다는 것이오가령 내가 죽어서 지각이 없다면 또 흔종을 한들 어떻겠으며, 내가 죽어서 지각이 있다면 내 어찌 진나라를 버려두고 초나라를 돕겠소. 나는 장차 초나라의 鐘鼓를 소리가 나지 않게 할 것이니, 종고 소리가 나지 않으면 장차 사졸들을 정돈하여 군주의 군대를 다스릴 방도가 없을 것이오. 남의 사신을 죽이고 남의 계책을 단절하는 것은 옛날의 통용되는 의론이 아니니, 그대 大夫는 자세히 고려하시오.”

초나라의 使者가 이 말을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이 진나라의 사신을 사면하였으니, 이를 造命이라 하는 것이다.

奉使18. 當此之時,則梧之大何如乎?
<그때에는 오동나무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楚使使聘於齊,齊王饗之梧宮。使者曰:「大哉梧乎!」王曰:「江海之魚吞舟,大國之樹必巨,使何怪焉!」使者曰:「昔燕攻齊,遵雒路,渡濟橋,焚雍門,擊齊左而虛其右,王歜絕頸而死於杜山;公孫差格死於龍門,飲馬乎淄、澠,定獲乎琅邪,王與太后奔于莒,逃於城陽之山,當此之時,則梧之大何如乎?」王曰:「陳先生對之。」陳子曰:「臣不如刁勃。」王曰:「刁先生應之。」刁勃曰:「使者問梧之年耶?昔者荊平王為無道,加諸申氏,殺子胥父與及兄。子胥被髮乞食於吳。闔廬以為將相。三年,將吳兵復讎乎楚,戰勝乎柏舉,級頭百萬,囊瓦奔鄭,王保於隨。引師入郢,軍雲行乎郢之都。子胥親射宮門,掘平王冢,笞其墳,數其罪。曰:『吾先人無罪而子殺之。』士卒人加百焉,然後止。當若此時,梧可以為其●矣。」

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나라에 聘問하자, 齊王梧宮에서 잔치를 베풀어 사신을 접대하였다使者가 말했다. “크기도 하구나. 오동나무여!” 제왕이 말했다. “長江漢水의 물고기는 커서 배를 삼키고, 큰 나라의 나무는 당연히 거대한 것인데 사자는 어찌 괴이하게 여기는가?”

사자가 말했다. “옛날에 나라가 나라를 공격할 적에 雒水 가의 길을 따라 進軍하여 濟水의 다리를 건너고 雍門을 불태우고서 제나라의 왼쪽 지역을 습격하여 오른쪽 지역을 텅 비게 하니, 王歜杜山에서 목이 잘려 죽었고 公孫差龍門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연나라 군대가 淄水澠水에서 말에 물을 먹이고 琅邪에서 승리를 획득하니 왕과 太后로 달아나 城陽의 산중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때에는 오동나무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제왕이 말했다. “선생이 이 말에 대답하시오.” 陳子가 말했다. “신은 刁㪍만 못합니다.” 제왕이 말했다. “조선생이 대답하시오.” 조발이 말했다.

사자는 오동나무의 나이를 물으셨소? 옛날에 楚 平王이 무도하여 申氏에게 몹쓸 짓을 하여 伍子胥의 아버지와 그 형을 죽였소. 오자서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라에서 밥을 빌어먹었는데, 吳王 闔閭將帥宰相으로 삼았지요3년이 지난 뒤에 오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에 복수하여 柏擧에서 싸워 승리하니, 백만 명의 머리를 베었고 대장 囊瓦나라로 달아났으며, 초왕은 나라로 달아나 목숨을 보존하였소. 오자서가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수도인 으로 들어가니 오나라 군대가 郢都에 구름처럼 모였소. 오자서는 직접 초나라의 宮門에 사격하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무덤의 시체에 매질을 하고 그의 죄를 열거하여 나의 先人은 아무 죄가 없는데 그대가 죽였다.’ 하고는 사졸들을 불러 사람마다 백 번씩 때리게 하고 그만두었소. 이때에는 오동나무의 크기가 활의 줌통을 만들 만했을 것이오.

19. 故發二使,見三謀伐者蔡也。
<두 사람의 사신을 파견하여 자기 나라를 토벌할 수 있는 세 가지 빌미를 제공한 것은 채나라이다.>

蔡使師強、王堅使於楚。楚王聞之,曰:「人名多章章者,獨為師強王堅乎?」趣見之,無以次,視其人狀,疑其名而醜其聲,又惡其形。楚王大怒曰:「今蔡無人乎?國可伐也。有人不遣乎?國可伐也。端以此誡寡人乎?國可伐也。」故發二使,見三謀伐者蔡也。

나라가 師强王堅을 파견하여 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楚王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사람의 이름에는 분명하고 아름다운 것이 많은데, 유독 군대가 강하고[師强]’ ‘왕이 굳세다[王堅]’는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빨리 접견하여 머물게 하지 말라.” 접견하여 그들의 모습을 보니 성명은 의혹되고 말하는 소리는 추하고 또 얼굴은 혐오스럽게 생겼다.

초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지금 채나라에는 사람이 없는가? 그 나라를 토벌할 만하구나. 사람이 있는데도 일부러 보내지 않았는가? 그 나라를 토벌할 만하구나. 다만 이 두 사람을 시켜 寡人을 떠본 것인가? 그 나라를 토벌할 만하구나.” 이 때문에 두 사람의 사신을 파견하여 자기 나라를 토벌할 수 있는 세 가지 빌미를 제공한 것은 채나라이다.

20. 今蘧伯玉為相,史佐焉,孔子為客,子貢使令於君前甚聽

趙簡子將襲衛,使史黯往視之,期以一月六日而後反。簡子曰:「何其久也?」黯曰:「謀利而得害,由不察也。今蘧伯玉為相,史佐焉,孔子為客,子貢使令於君前甚聽。易曰:『渙其群,元吉。』渙者賢也,群者象也,元者吉之始也。渙其群,元吉者,其佐多賢矣。」簡子按兵而不動耳。

趙簡子나라를 습격하려고 할 적에, 史黯을 파견하여 먼저 가서 정황을 살펴보게 하면서 한 달로 기간을 정했었는데, 6개월 뒤에 돌아왔다簡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오래 걸렸소?”

사암이 말했다. 이익을 도모했다가 손해를 얻는 것은 자세히 살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위나라는 蘧伯玉이 재상이 되고 史鰌가 보좌하며, 孔子는 賓客이 되고 子貢은 衛君의 앞에서 지령을 수행하여 그의 말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周易그 무리를 흩어버린지라 크게 하다.’ 하였으니, 흩어버린 것은 어진 이이고, 무리는 여러 사람이며, 은 길한 시초입니다. 그러니 그 무리를 흩어버린지라 크게 하다.’는 것은 보좌하는 사람 중에 어진 이가 많다는 뜻입니다.” 간자가 군사를 주둔시키고 출동하지 않았다.

21. 徒獻空籠

魏文侯使舍人毋擇,獻鵠於齊侯。毋擇行道失之。徒獻空籠,見齊侯曰:「寡君使臣毋擇獻鵠,道飢渴,臣出而飲食之,而鵠飛沖天,遂不復反。念思非無錢以買鵠也,惡有為其君使,輕易其弊者乎?念思非不能拔劍刎頭,腐肉暴骨於中野也,為吾君貴鵠而賤士也。念思非敢走陳、蔡之間也,惡絕兩君之使,故不敢愛身逃死,來獻空籠,唯主君斧質之誅。」齊侯大悅曰:「寡人今者得茲言,三賢於鵠遠矣。寡人有都郊地百里,願獻於大夫以為湯沐邑。」毋擇對曰:「惡有為其君使而輕易其弊,而利諸侯之地乎?」遂出不反。

魏 文侯舍人 毋擇을 파견하여 齊侯에게 고니를 바치게 하였다. 무택이 길을 가는 중에 고니를 놓쳐버리고 다만 빈 새장만 바치고는 제후를 뵙고 말했다. “우리 임금께서 신 무택을 보내어 고니를 바치게 하셨는데, 도중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하기에 신이 새장에서 꺼내어 물을 마시게 하고 모이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고니가 하늘 높이 날아가 끝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돈이 없어서 고니를 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임금이 보내는 사신이 되어서 그 폐백을 소홀히 하여 바꿀 수 있겠습니까생각건대, 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찌르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육체가 썩어서 해골이 들판에 나뒹군다면 우리 임금이 고니를 중시하고 사람을 천시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생각건대, 감히 나라와 나라 사이로 달아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두 나라 사신의 왕래를 단절시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 때문에 감히 몸을 아껴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와서 빈 새장을 바치오니, 오직 主君이 내리는 斧鑕을 따르겠습니다.”

제후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寡人이 지금 이 세 마디의 말을 들으니, 고니를 얻은 것보다 훨씬 낫구려. 과인이 都城 교외에 사방 백 리 되는 땅이 있으니, 이를 大夫에게 주어 湯沐邑으로 삼게 하려고 하오.”

무택이 대답했다. “어찌 임금의 사신이 되어 가벼이 그 폐백을 바꾸고 諸侯의 땅을 私利로 챙기겠습니까.마침내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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