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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73 파블로프의 개

by 허성원 변리사 2022. 6. 17.

파블로프의 개

 

오카다 다카시의 '심리 조작의 비밀'을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의 심리를 지배, 조종 혹은 조작하는 여러 기법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심리 조작은 주로 사이비 종교, 불법 다단계, 테러리스트 조직, 전체주의 국가 등에서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기 위한 부정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그 원리를 잘 이해하면 마케팅이나 교육, 자기계발 등의 분야에서 효과적이고 응용될 여지가 있다.

심리 조작은 크게 두 가지의 방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무의식에 작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최면이나 암시를 이용하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소위 행동심리학이라 불리는 비교적 근대에 개발된 방법이다. 이는 행동에 작용을 가하여 즉 당근과 채찍을 이용하여 원하는 대로 행동과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이는 기존의 가치관과 인격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정착시키기 때문에, 바로 세뇌와 직결된다. 이러한 행동심리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다. 파블로프의 연구는 구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을 위한 사상 개조에 활용되었다. 여기서는 파블로프의 실험에 대해 정리해본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은,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벨을 울리는 루틴을 반복하면, 나중에 벨소리만 듣고도 개는 침을 흘리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개의 반응을 조건반사라 한다. 벨소리는 애초 먹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조건 형성이 이루어지면 개의 뇌가 생리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 상태 조절에도 그대로 응용된다. 오래 경험한 특정 신호나 제스처가 마음에 영향을 미쳐 안정 혹은 흥분시키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조건반사는 그에 익숙해지면 특정의 신호가 있을 때 그에 따라 일어날 일이 예측가능하기에, 심리적 안정제로서 활용될 수도 있다. 

조건반사는 워낙 유명하지만, 그 후속 실험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먼저 역설적 단계의 실험이 있다. 조건 형성된 개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다. 벨을 울리고도 먹이를 주지 않거나 먹이를 주고도 벨을 울리지 않는 등 일관성 없이 다루면 개는 벨소리와 먹이의 관계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개들은 벨소리를 듣고도 반응을 하지 않기도 하고, 작은 벨 소리에는 크게 반응하면서 큰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 등 반응이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이전의 규칙을 믿을 수 없는 혼란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혼란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기존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예측대로 이루어지면 마음이 편안하지만, 일어날 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면 불안감이 높아진다. 

실제 세뇌에서도 조건 형성에 의해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만들어두었다가, 조건 형성을 무너뜨려 예측 불가한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심한 불안감과 긴장에 휩싸이게 되고, 그 불안한 상태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타협하고 상대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 그래서 이 역설적 단계는 세뇌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결정적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뇌에 이용하기에 불충분하였다. 다음의 초역설적 단계가 필요했다.

초역설적 단계는 파블로프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1924년 레닌그라드에 대홍수가 덮쳤을 때, 파블로프의 실험실도 물에 잠겨 우리에 갇힌 실험용 개들이 익사 직전에 겨우 구조되었다. 구조된 개들은 조건 형성이 되어 있었음에도 벨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몸에 배어있던 조건반사가 지워진 것이다. 극한의 충격적인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 개들에게 다시 조건 형성을 조작하자 조건반사가 생겨났다. 이로써 세뇌의 이론이 온전히 파악된 것이다. 개든 사람이든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기존의 정신적 프로그램 즉 가치관이 완전히 삭제되거나 해제된다. 거기에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가치관을 주입하면 쉽게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바로 세뇌의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극한 상황'이 있어야 기존 가치관이 지워진다는 점이다. 즉 극한 상황이 없으면 가치관의 변화도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극한의 고행을 통해 해탈을 추구한다. 해탈은 결국 세뇌의 일종인 셈이다. 그러니 가혹한 시련을 만났다면 나의 잘못된 가치관을 지워줄 지우개가 강림하였다고 여기며 영접하면 되겠다.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시키는 화로와 망치이다(橫逆困窮 是煅煉豪傑的一副爐錘 _ 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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