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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산다는 것(Tracing)

by 허성원 변리사 2022. 6. 12.

독일의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 프롤로그

- 나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일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며 성공만을 욕망하는 마음과 양립하기 어렵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존엄'의 문제다. 

- 이 책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행해 나아갈 것인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인간답게 해줄, 우리를 성장하게 해줄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한 지식이나 깨달은 사실은 두뇌의 감성적인 영역을 활성화시켜 우리를 깨우고 움직인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그 순간 이후로 당신은 결코 이전에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 

- 타인과의 공존이 어려우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세생의 일들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힘만으로는 변화를 일으키기가 힘들수록, 한 사회의 불안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불안의 시대, 방향을 잃고 의지할 곳을 찾아 헤메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시대가 어렵다 보니,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무언가 아는 체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언제든 믿고 따를 모양새다. 이는 곧 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불안감의 현상이다. 이럴 때 나타나는 것이 노련한 데마고그(Demagogue, 대중에게 과대한 공약을 내세운 선동으로 권력을 획득, 유지, 강화하는 정치가. 아돌프 히틀러가 선동 정치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다. 간편한 해결책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자신을 지도자로 선택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이를 과학 용어로는 '단순화(Reduction of Complexity)'라고 한다.

- 새로운 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은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복잡성 감소, 즉 단순화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양 무리나 물소 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다양한 단순화 전략을 가지고 있다. .. TV를 본다든지 쇼핑을 한다든지.. 의식적으로  다른 일에 열광하고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의 삶을 단순하고, 통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방법들이다. 

- 인간은 동물과 달리 문제를 단순화하는 능력이 훨씬 다양하고 고차원적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처리해야 할 세상 모든 일에 유연하게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인간 뇌의 특성 때문이다. 이 단순화의 특성은 두뇌의 순기능을 위한 결정적인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인간이 찾아낸 해결책이 모두 장기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거나, 문제를 외면하고 가상세계로 잠수를 타며,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인간 사회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계속해서 장애를 만날 것이고 그때마다 문제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 인간의 두뇌가 제 아무리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두뇌는 혼란이 가중될수록 이를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혼란 상태의 뇌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사실 뇌는 휴식 상태에 일을 때도, 그러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엎드려 누워 있을 때조차 인체가 저장하고 있는 제1에너지원인 포도당의 약 20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다.
.. 이렇게 모든 것이 엉켜버린 우리의 뇌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그때무터 우리의 뇌는 혼란을 줄이고,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정상화할 방법을 찾게 된다. 바로 뇌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 사고 체계에 질서를 되찾는 노력은 그 자체로 단순화를 위한 작업이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이다.

- 그렇다면 인간 사회 내부의 질서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환 에너지를 일시적이 아닌, 장기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은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 어쩐지 우리는 방향을 잃은 듯하다. 물론 인간은 뇌 구조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길을 잃게 되어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노는 생각과 감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뉴런의 연결 패턴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한 개인으로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잇인지를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뇌에 뿌리를 내린 뉴런의 연결 패턴을 토대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특정 행동을 하거나 우리의 태도를 통제할 때 방향을 잡게 된다.

-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내가 당신과 함께 찾고 싶은 것은 일종의 내면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형성하게 되는 내면의 나침반. 외부로부터 주어지고, 밀려드는 여러 요구로부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나침반. 다른 사람에 의해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유혹과 약속으로부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태도로부터 본재 자신의 모습을 지켜줄 나침반.

- 결국 이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적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여 우리 뇌를 무질서의 상태로부터 지켜주고, 그것을 통해 장기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주는 표상, 바로 그 표상을 일컫는 단어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오래 전 잊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 단어. 바로 '존엄'이다.

- 존엄은 내면에 확신으로 깊게 뿌리 박혀 한 사람에게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부여하며 그 고유의 인간됨이 퍙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드는 관념이다. 

- 이책의 핵심 명제는 이렇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 1장 잃어버린 존엄을 생각하다

- 지금까지 환경과 교육, 의학과 과학기술이 만든 현대인의 삶이 우리를 어떤 결과로 몰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문제를 개성하려던 그들의 노력은 과연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만약 지금까지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리집 정원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렇게 자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답을 얻었다.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내면의 나침반. 바로 존엄이 그 답이다.

- 생명의 다양성을 파괴하거나, 인간 내면의 다양성, 즉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이 생각하는 존엄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돌아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제2장 존엄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존엄'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최초의 인물로 역사학자들은 로마의 국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를 꼽는다. '의무론'에서 키케로는 인간을 특징짓는 것이 '숭고한 태도'와 우월한 태도' 그리고 '존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선한 것과 옳은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인간의 정신은 학습과 사고를 통해 성장한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인간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하며,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 이처럼 한 개인의 인격에 대한 중세의 정의는 극도로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것이었다. 다른 동식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창조되었고 감정을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사고는 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자 노예와 같은 존재이며, 누가 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권리를 가진 이들의 손아귀에 놓인 존재이다. 재물, 욕심, 교만, 고활, 정의와 온유 앞에 깨어 있을 것을 강요받으며,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 개인이 아닌 모두를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추구하던 인간 중심의 삶과 사고방식을 재고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 좀성에 대한 연설'을 통해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지위를 짐승의 수준으로 낮출지, 혹은 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칸트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존재, 즉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식물이나 동물, 땅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쓸모는 있으나, 특별할 것은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식물과 다르지 않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칸트는 이에 대해 인간이 본능에 구속되지 않는 '도덕적 자율성'을 가질 때 다른 생명체와 구분이 되며, 도덕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있다고 하였다. 칸트는 말한다.
"인간은, 모든 지성적인 존재는 수단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너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라."

-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의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에도 존엄성은 상처를 입는다.
"자신을 벌레로 여기는 사람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다"고 칸트는 말한다.

-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목적의 왕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격 아니면 존엄성,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가진다. 가격을 가진 것은 동일한 가격을 가진 대용물로 대치될 수 있다. 그에 반해 모든 가격을 넘어서는 것, 대용물을 허락하지 아않는 것은 좀엄성을 가진다."

- 아마도 프랑스혁명의 세계관에소 영향을 받았을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은 타인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 또한 그러한 기대를 받음으로써 모든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그 자체로 존엄하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한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안에 인간의 존엄함이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유용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아닌 다른 이 세상의 모든 생명,. 모든 사물들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가격에도 자기 자신을 팔아넘길 수 없듯 모든 인간은 (이로써 자기 평가의 의무와 충돌한다.) 타인에 대한 가치 평가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인간은 인류가 가진 존엄성을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타인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이스라엘 예술가 예후다 베이컨(Yehuda Bacon)은 아버지가 가스실에서 살해당하고, 남은 가족과는 강제 수용소로 뿔뿔이 흩으며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용소의 참혹은 현실 속에서도 그는 "다 알고 있었"고 말한다.

"다 알고 있었다. 저들이 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안에는, 저들이 결코 죽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유태계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다. 그는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인간은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유태인 수용소에서 직접 경험하며 이를 '죽엄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남겼다. 

"결코 앗아갈 수 없는 정신적인 자유가 마지막 호흡의 순간에까지도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유의미하게 만들어갈 방법을 찾게 만들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뺏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_ 빅토르 프랭클

 

- 1948년 UN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이 채택되었다. ..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공포 정치로 인한 치욕을 겪으며, 인류가 비로소 존엄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이어지는 제2조는 이렇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눈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인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 지역, 비자치 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 대한민국은 헌번 제2장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 1962년 헌범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처음으로 규정.

- 이렇게 인간의 존엄은 한 사람의 평생을 이끄는 이정표이자 반드시 보호해야할 가치가 된 것이다.

- 특정 사회에서의 발전이 사회적 기피현상과 불안, 문제를 불러올 때,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자기 이해를 필요로 한다. 
..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처할 책임, 질서 속에 공존해야할 의무를 위임받기 위해 자기 이해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 이 새로운 자기 이해, 즉 새로운 나침반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 속에 있다고 보았다.

- 더 이상 '과거의 질서', 즉 지금까지 이어져온 위계질서의 구조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성을 제시해줄 구조 없이 인류가 나아갈 수는 없다. 현대사회가 빠진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개인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질서와 원칙을 함께 만드는 것. 모든 인간에게는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줄 내면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나침반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인식하고, 개인의 삶을, 그리고 타인과 의 공존을 만들어나가도록 우리를 이끌 것이다.

- 모든 문명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른다. 더는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 또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세대를 넘어 진화를 이어갈 이들에게 있다. 이는 태초부터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능력이자 잠재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에 기인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뇌 구조와 그 기능 방식에 답이 있다.

 

** 제3장 지극히 인간다운 뇌

- '뇌 가소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배움이 가능한, 인간의 거대한 학습능력의 토대가 되는 뇌의 성질을 말한다.
.. 인류 문명은 인간이 가진 학습능력과 이를 통해 얻는 발견의 기쁨, 창조의 즐거움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 만약 인간이 파괴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을 찾아 그곳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럴 리 없다. 지금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한, 그 행성 또한 머지않아 지구처럼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가치관을 유지하며 지금처럼 살아갈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다.

- 그렇다면 개인의 신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실패'다. 지금까지의 인생관과 그에 따른 자아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깊은 고통을 겪고 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옳고 타당하다고 여겼던 이상과 신념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고, 나아가 더 포괄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설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패는 그 고통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 그래서 그 고통을 허용하지 않거나 모른척 해버리고 만다.

- 실패보다 더 효과적이고, 한 개인이 형성한 이상과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낯선 신념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한 타인을 만나면서 자아상과 세계관을 확장하고, 비로소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 자신의 세상과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실패의 고통, 그리고 타자와의 만남에서 낯선 신념을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사고방식과 이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 이는 인류 역사를 관통해온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리고 지난 세기,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하나의 신념을 밀어붙이려는 전체주의적 통치는 힘을 잃었다. 전쟁과 억압을 통해 전체주의적 세계관과 자아상을 주입시키려는 끔찍한 시도들도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수많은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행위를 영원히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른 수원지에서 흘러나온 시내와 강이 마침내 서로 만나 하나의 거대한 대양을 이루듯, 인류의 역사는 서로 다른 사회 속에서 형성된 자아상과 세계관이 서로 만나고 확장하는 가운데 이어져왔다.

- 출신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역사에 따른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차이를 뛰어넘어, 아니 더 나아가 그 차이 덕분에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관념.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로도, 윤리 혹은 도덕적 가치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자의 경험만이 서로 다른 개인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통의 관념이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지극히 인간다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 공동체를 조직하는 데에는 특정 수준 이상으로 복합적이면서도 학습능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뇌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한 가지에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 제4장 사회적 뇌, 존엄을 배우다

- 우리 인간이 존엄한 인생에 대한 신념, 표상을 형성하고, 그를 토대로 각자의 인생과 삶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은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 열역학 제2법칙과 관련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이란, 에너지가 자연의 모든 현상에 고르게 분배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질서를 만드러내는 자기 조직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를 낮춰야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고, 자기 조직화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생존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부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이 적을수록, 조직의 해체를 극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 근본적으로 우리 뇌가 하는 일은 혈액을 통해 공급되는 포도당과 산소 형태의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한정적이고, 그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 위해 작업 방식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 뇌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살아 있는 조직이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다. 모든 생명체는 내부적인 질서를 세워 해당 시스템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휴면 상태, 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에도 이미 가용 가능한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기를 시작했다거나,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생겨 갈등 상황에 처했다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비량은 급격하게 치솟는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이와 같은 일들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러한 상황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감정의 변화'다. 그리고 감정 변화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몸에까지 영향을 주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이는 외의 입장에서 매우 불편한 현상이다. 우리가 가급적 이와 같은 상황들을 피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우리의 뇌는 스스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뇌의 내부 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 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해결책을 찾으면 뇌의 혼란 상태는 안정화되며 비로소 에너지 소비를 낮출 수 있게 된다.
해결책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효과가 있는 방법은 뇌 기능의 원리이기도 한 '단순화' 작업이다. 이는 우리 몸의 다양한 단일 행동과 반응을 조화롭게 조정하기 위한 상위의 패턴을 형성하고, 자동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如是我解**  이반 페르난데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어기는 짓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는 곧 고통이 되었다. 내재된 양심과 부모나 학교에서 배운 교육 내용에 반하는 것이기에 내적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갈등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하지만 때론 양심에 따라 행동을 하고 나면 마음은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를 누리게 된다. 뇌는 고통이 없고 에너지 소비가 적은 쪽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면 양심에 따른 옳은 행동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뇌 활동의 상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굳이 고민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이 자동적으로 표출되게 된다. 그런 선택을 위한 상황이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상위 패턴의 가치관이 저절로 호출되어 실행되는 것이다.)

- 이처럼 우리의 뇌는 수많은 단일 움직임들을 조정할 목적으로 상위의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조정한다. 우리가 '사고방식', '태도'라 일컫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개인이 지닌 삶의 태도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해온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이 사고방식과 태도는 우리의 전두엽에 복잡한 구조로 얽히고 설켜 뿌리를 내린 채, 우리가 무엇을 말하며,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관심한지, 다시 말해 우리 각자에게 중요하고 흥미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한 환경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이와 같은 태도 역시 자동으로 나타나는 뇌의 여러 반응 가운데 하나\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매번 그에 적합하고 현명한 행동 패턴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일관된 행동으로 이끄는 태도를 지니는 편이 에너지 소비가 적기 때문이다.

-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사고방식과 태도 역시 우리 뇌에 뿌리를 내린 상위 행동 패턴에 따라 조정되고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또한 유년기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자아상'이라고 펴현한다. 이와 동시에 한 사람이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지, 어떠한 삶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를 과학적으로 일관성(Consistency)이라고 한다. 이는 비단 인간의 뇌뿐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모든 시스템, 즉 모든 세포와 생태계, 모든 인간 사회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일관성은 모든 존재가 마찰 없이 최대한 잘 어우러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관성이 유지되면 내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행동의 지표가 되어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아상을 형성하여 복잡성을 줄이는 것, 이는 우리 뇌가 가진 본연의 능력이다. 이는 결코 관심이 있거나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사치스러운 정신적 능력이 아니다

- 우리가 지금까지 파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인간 스스로가 책임져야할 잘못된 발전의 과정을 바로잡을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니, 열역학 제2법칙의 이론을 토대로 본다면, 인간이 가진 개방성과 자유라는 고유의 특성에 기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일치의 상태들을 진화와 학습, 능력 개발을 통해 일관성의 상태로 변화시키고,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매일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방해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우리 뇌를 불일치의 상태로 몰아넣는 일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결코 안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해결책을 찾으면 불일치 상태는 다시 일관성의 상태를 되찾는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다른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중요한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코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얻는 경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분명 한 개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으며, 개인의 잠재력을 단계적으로 펼쳐나가는 데 기여하는 만남들이 있다. 동시에 고통스럽고 부담이 되는 만남도 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만남은 당연히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때로는 긍정적이고, 또 때로는 부정적인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내적 표상을 만든다. 공존에서 오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맞어야 하며 어떤 모습으로 인간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에 대한 신념이 생기는 것이다.
이 관념이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될 때, 우리 뇌에는 특별한 내적 표상이 만들어진다. 바로 존엄이라는 표상이다.

 

** 제5장 본능에 새겨진 존엄성을 찾아서

- 갓 태어난 망아지..
특정한 행동을 활성화하는 것을 우리는 '욕구'라고 부른다. 새끼 망아지가 일어서고 젖을 먹고 뛰어다니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욕구는 일반적으로 출생 과정에서의 고통이 지나간 후, 순차적으로 깨어난다.
.. 욕구가 없다면 망아지는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진짜 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가운데 단 한 가지도 생성하거나 확장하고 완성하고 배울 수도 없다.

- 인간의 경우도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결정적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신경망이 없다. 그러므로 말처럼 욕구가 정해진 행동 패턴을 활성화시키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무언가가 불편하면 울 수 있고, 버둥거리면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혹은 하고자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한 아기는 일어서서 걷거나 말을 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읽고 쓰고 계산을 하지도 못한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가 신경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어도,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고 시범을 보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뇌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려면 스스로 시도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여러 경험들을 직접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는 경험이다. 소나 다람쥐, 원숭이와의 관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사실 이는 인간이 가진 커다란 약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맞고 멸시받으며 자란 아이가 자신의 남은 삶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끝내 만나지 못한다면, 오롯이 자신의 경험에 확신을 가진 채 서로 속이고 학대하고 멸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의 주관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감정은 이후 내면의 추진 시스템이 되어 타인과의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초가 된다.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행동, 교육기관의 양육자와 교사들의 행동, 회사 경영진으로서, 혹은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으로서의 행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망아지들은 이와 같은 문제에 시달리지 않는다. 뇌 자체가 애초부터 '말답게' 형성되어 있어서, 어떻게 해도 종국에는 전형적인 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처음부터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줄 장치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그 인간다움을 찾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잘못을 저지르고 헤메는지는 인류 역사를 수놓은 그 수많은 끔찍한 행위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 제6장 타인의 존엄을 지켜야 하는 까닭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타인의 목적과 목표, 기대와 평가, 지시와 지도, 더 나아가 전략과 명령의 대상이 되는 경험. 그것은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주체성과 존엄성에 위협을 가한다. 이는 매우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받을 때, 그것은 애정과 소속감뿐 아니라 주체성과 자유를 원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무너뜨린다. 놀랍게도 이러한 환경에 처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활성화되는 곳과 같은 여역이다. 말 그대로 뇌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이다. 결코 장기적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에, 아이들은 그 고통을 멈춰줄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가장 쉬운 해결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바로 상대가 했던 그대로 타인을 바라보고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애정과 소속감을 행한 기본 욕구를 억누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본보기가 되는 성인과의 관계를 존엄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꿔놓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존엄성까지 해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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