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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 #57 리더의 시간

by 허성원 변리사 2022. 1. 16.

리더의 시간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여름날 소를 먹이다 냇물에 미역을 감으러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모래를 갓 채취해낸 깊은 웅덩이였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바닥 경사를 따라 미끌려 들어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버둥대며 자맥질을 해댔다. 곱다시 물귀신이 될 판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 옆 동네의 형이 나를 발견하고 뛰어들어 구해준 것이다. 사람이 드문 외진 그곳을 하필 딱 그때 그 형이 지나가며 발견하다니. 너무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고, 그 타이밍이 내 목숨을 살렸다. 그 덕분에 나는 반세기 이상을 더 살아오고 있다.

그런 절묘한 타이밍을 그리스신화에서는 카이로스 신의 시간이라 한다. 그와 상대되는 개념이 크로노스 신의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시계가 가리키는 물리적인 시간으로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객관적, 정량적으로 흘러가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누군가에게 다가온 결정적인 순간이나 기회를 의미한다. 잠깐 스쳐가는 아주 적은 비가 사막의 꽃을 피우는 단비가 되기도 하고, 우연한 발견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발명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결정적인 타이밍 즉 기회가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 ‘그때’이다.

카이로스의 ‘그때’는 기업 등 조직에게도 수시로 도래하여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는 요란스레 고적대를 앞세워 오지 않는다. 조짐을 깊이 숨기고 은밀하면서도 신속히 지나간다. 오직 통찰력이 뛰어난 리더만이 그때를 지혜롭게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통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 대응한 적절하고도 신속한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역시 타이밍의 변수다. 그래서 카이로스의 시간은 복합적이다. 주어진 기회, 절묘한 통찰, 시의적절한 실행으로 이루어진 3단계의 카이로스가 일사불란하게 가동되어야만 비로소 효험이 발휘된다.

그래서 리더는 시간의 창조자이다. 통찰과 행동의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카이로스는 다름 아닌 리더 자신이기 때문이다. 카이로스가 된 리더는 통찰과 실행 중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아니 된다. 통찰하되 실행이 없으면 이룸이 없고, 통찰 없이 실행만 있으면 위태롭다. 통찰은 리더 개인의 덕목이지만, 실행은 조직의 역량이다. 모든 가용 자원을 적시에 조화롭게 활용하여 실행하는 것이 리더의 리더십이다. 그 활용 능력에 의해 리더십이 증명된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 모두 해결하겠다면 이미 리더라 불리지 못한다.

'높이 올라가서 손짓하면 팔이 길어지지 않아도 멀리서 볼 수 있다. 바람을 타고 소리를 지르면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아도 잘 들릴 수 있다. 수레와 말을 빌리면 걸음이 빠르지 않아도 천리에 이를 수 있다. 배와 노를 빌리면 수영을 잘하지 못하여도 강을 건널 수 있다. 군자는 날 때부터 남다르지 않다. 만물의 도움을 잘 빌려올 뿐이다.'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팔 길이가 길고 목소리가 크고 빨리 달리고 헤엄을 잘 치는 등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은 남다르지 않아도 좋다. 만물의 도움을 잘 빌려올 수 있어야만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교룡이 승천하려면 구름과 비를 만나야 한다(蛟龍得雲雨). 카이로스의 ‘그때’를 마주한 리더도 구름과 비를 제때 만나야만 승천할 수 있다. 그것은 기술, 인력, 자금, 마케팅 등의 자원이다. 적절한 자원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히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자원을 빌려와 구비하고 투입 타이밍을 결정하여 추진하는 리더의 결단과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칫 머뭇거리면 귀하디귀한 ‘그때’는 흘러간 강물이 되어버린다. 특히 인력, 자금 등과 같이 외부에서 공급되는 대부분의 필수 자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약간의 타이밍만 어긋나도 순식간에 날아가버려 다시는 끌어모으지 못한다. 조직원의 열정도 쉬이 식는다. 식어버린 열정은 다시 데우기 힘들다.

‘리더의 위대함은 그들의 권능에서가 아니라 남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_ 존 맥스웰).’ 리더는 모든 자원에 적절한 권능을 부여하고 분배한다. 힘들여 개발한 기술이 선봉장으로 앞서나가는 권능을 갖는다. 하지만 그 기술에 비즈니스의 생명을 불어넣는 여러 사람과 자금의 권능에도 충분히 무게를 실어야한다. 기술, 인력, 자금보다 더 엄중한 권능을 가진 자원이 있다. 바로 리더의 시간이다. 그것은 비즈니스의 생명을 관장하는 타이밍 즉 카이로스의 시간으로서, 오직 리더만이 그것을 창조하고 집행할 수 있다.

 

 

BC 4 세기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에 의해 만들어진 대리석 부조. 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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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그 고마운 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이가 서너살 정도는 위일 거라 여겨지고, 대충 어느 동네에 산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어릴 때는 가끔 길가다 부딪치기도 했지만 그때는 쑥쓰러워 고맙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그 고마움의 무게를 알게 되고 그 뜻을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통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아마 객지로 나간 듯하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그 동네를 하릴없이 돌아다녀본 적도 있다. 그 동네에 살던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내가 가진 정보가 너무 적어서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요즘도 그 동네를 지날 때면 혹시 지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다. 참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생전에 꼭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다.

 

**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
Chronos was quantitative, the time we count with our watches and clocks, physical, chronological time by which we are surrounded. Kairos is a special time, qualitative time, opportunity, the moment in experiencing God together. It's becoming part of God's history i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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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가서 손짓하면,
팔이 길어지지 않아도 멀리서 볼 수 있다.
바람을 타고 소리를 지르면,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아도 잘 들릴 수 있다.
수레와 말을 빌리면, 걸음이 빠르지 않아도, 천리에 이를 수 있다.
배와 노를 빌리면, 수영을 잘하지 못하여도, 강을 건널 수 있다.
군자는 날 때부터 남다르지 않다. 만물의 도움을 잘 빌려올 뿐이

登高而招(등고이초臂非加長也(비비가장야而見者遠(이견자원)
順風而呼(순풍이호聲非加疾也(성비가질야而聞者彰(이문자창)
假輿馬者(가여마자非利足也(비리족야而致千里(이치천리)
假舟檝 者(가주즙자非能水也(비능수야而絕 江河(이절강하)
君子生非異也(군자생비이야善假於物也(선가어물야)
_ 荀子(순자) 勸學(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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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 (교룡득운우 종비지중물)
교룡(이무기)이 구름과 비를 만나면 연못 속에 머물지 않는다. _ 삼국지 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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