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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87 이맘때면 창원대로를 달려보라

by 허성원 변리사 2022. 11. 2.

이맘때면 창원대로를 달려보라

 

가을이 금세 깊어간다. 이맘때쯤이면 창원대로를 달려봄직하다. 해가 어중간히 무학산을 넘으려 할 때가 좋다. 서북 방향으로 가며 좌우의 가로수를 보라. 근 40리에 걸쳐 반듯하게 뚫린 창원대로 변에, 차도 쪽으로는 석양에 불그레 물든 벚나무가 있고 그 바깥쪽에는 호위병처럼 지키고 선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하여 있다.

조성된 지 반세기 가까이 된 이 가로수의 멋진 조합을 구상한 분에게 찬사를 보낸다. 앞쪽의 벚나무는 발랄하다. 봄이 오면 화사한 꽃을 피워 만물의 생동을 노래하고 가을이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어 한번 더 꽃을 피운다. 그 뒤의 키 큰 메타세쿼이아는 엄히 훈련된 병사처럼 변화가 단조롭다. 근엄하게 서서 단지 잎의 색만 푸르다가 파스텔 톤의 갈색을 거쳐 더 붉게 변해가고 한겨울에 잎이 다소 줄어들 뿐이다.

벚나무는 제멋대로 뻗어 자란다. 개구진 아이들처럼 가지 하나도 고르고 곧게 뻗는 법이 없다. 몸통 옆구리도 울퉁불퉁 부풀거나 뒤틀리고 때론 속을 훤히 내다보이기까지 하며, 잎사귀조차도 색깔, 모양이 같은 놈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는 벌레 먹은 모습조차도 제각각이다. 이에 반해 메타세쿼이아는 완고한 근육질의 뿌리를 바탕으로 조금도 옆 눈을 돌리지 않고 거침없이 똑바로 올라가며 벌레조차 범접하지 못한다. 저 지독한 결벽은 누가 가르친 것일까. 한갓 초목에 불과한 저 존재들이 어찌하여 저토록 꼬장꼬장하게 제 지조와 근본을 지키려 드는가.

이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나무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서로 시간차를 두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한 해 동안 다양한 풍광을 조화롭게 연출한다. 높음과 낮음, 곧음과 굽음, 바름과 뒤틀림, 우직함과 발랄함, 강함과 부드러움, 담백함과 화려함, 동질성과 다양성.. 서로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극단의 다름이 아무 일없는 듯 평화롭게 어우러진다. 저 어우러짐, 저 어울림, 저 하나됨이 경이롭다. 이런 단풍드는 가을에는 더욱 가상하다.

다양성의 어우러짐이 없는 직장 환경을 일찍이 경험한 적이 있다. 독립하기 전에 다녔던 한 곳은 실무자들 대부분이 그 사무소의 오너가 나온 대학의 동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특정 동아리 출신이 많아 서로 형아우를 칭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들과 동료가 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또 한 곳은 특정 지방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지방색 강한 그 지역의 언어가 사무소 내의 표준어였다. 언어적 문화적 이질감으로 인해 끝내 그들과 제대로 어울려 보지도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겉돌다 그곳을 떠났다. 조직 구성원의 획일성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리고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귀한 가치인지를 절실히 체감했다.

조직의 다양성은 공기나 물과 같은 것이다. 조직의 생존과 성장의 필수요건이다. 그래서 내 사무소를 열 때 출신 지역, 대학, 남녀비율, 연령 등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생각의 다양성은 더 엄중한 것이었다. 경영자인 나의 생각을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소속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도, 누군가가 내 생각에 반대 의견을 내며 저항할 때 금세 마음이 불편해지는 나의 소심함은 더 큰 문제였다. 그럴 때 스티븐 코비의 말을 상기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생각이라면 한 사람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이유는 당신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다름의 가치를 존중한다."

'군자는 어울리되 같지 않고, 소인은 같되 어울리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_ 論語 子路篇).' 군자는 서로 뚜렷이 다름에도 조화롭게 화합하지만, 소인은 서로 동일한 듯하여도 조화와 화합은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조화는 곧 하나됨이며, 하나됨은 곧 힘이 커지는 것이며, 힘이 커지는 것은 곧 강함이며, 강함은 곧 이기는 것이다(和則一 一則多力 多力則彊 彊則勝物 _ 荀子 王制篇).'라고 한다. 조직은 반드시 다름이 존재하고 존중되어야 하며, 그 다름이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져야만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화는 군자만이 이룰 수 있고 소인들의 집단은 불가하다.

이들 가르침으로 보면, 창원대로변의 가로수들은 지극한 군자의 풍모를 가진 셈이다. 갈등, 혐오, 증오, 편 가르기에 연일 수고하고 지친 자들이여. 이 계절에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창원대로에 나가보라. 그곳에서 가로수 군자들이 가르치는 조화의 아름다움과 그 하나 됨의 힘을 온 가슴으로 배워보시라.

산업단지공단에서 도청 방향으로 내려다본 장면. 창원대로는 사진 하단에 가로방향으로 뻗어있다.
출근길에 주워온 벚나무 단풍잎들.. 다양성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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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火有氣而無生,草木有生而無知,禽獸有知而無義,人有氣、有生、有知,亦且有義,故最為天下貴也。力不若牛,走不若馬,而牛馬為用,何也?曰:人能群,彼不能群也。人何以能群?曰:分。分何以能行?曰:義。故義以分則和,和則一,一則多力,多力則彊,彊則勝物。_ 荀子 王制篇

물과 불은 기(氣)가 있으나 삶이 없고, 초목은 삶이 있으나 앎이 없고, 금수(禽獸)는 앎이 있으나 옳음(義)이 없다. 사람은 기(氣)가 있고 삶이 있고 앎이 있으며, 또 거기다 옳음(義)까지 있기에 천하에서 가장 고귀하다.
힘은 소만 못하고 달리기는 말보다 못하면서, 사람이 소나 말을 부리는 것은 어찌 그런가? 그것은 사람은 무리를 이룰 수 있지만, 그들은 무리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능히 무리를 이루는가? 그것은 '나눔(分)'이다. 나눔은 무엇으로 능히 이루는가? 그것은 옳음(義)이다. 그러므로 옳음으로 나눔을 이루면 조화롭게 된다. 조화는 곧 하나됨이며, 하나됨은 곧 큰 힘을 이루며, 큰 힘은 곧 강함이며, 강함은 곧 이기는 것이다." _ 순자 왕제편

 

두 사람이 동일한 생각이라면 한 사람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내 생각과 같은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이유는 당신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은 그 다름을 인정하여 받아들이고 축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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