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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허성원 변리사 칼럼] #45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by 허성원 변리사 2021. 9. 25.

백래시, 시대 변화의 행진곡

 

걸음이 불편한 노인이 앞서 걷고 있다. 길 폭이 어중간하여 지나치지 않고 뒤따라 천천히 걷는데, 한 젊은이가 나를 툭 치며 빠르게 지나쳐 가서는 노인도 스치며 지나간다. 그때 노인이 적잖이 휘청이다 겨우 바로 선다. 젊음에 추월당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기성세대의 모습, 이 사회의 백래시 현상을 연상케 한다.

'백래시(backlash)'는 기계 전문가들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다. 기어와 같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기계요소는 운동을 전달하기 위해 구동측과 피동측이 서로 접촉하는 곳이 있다. 그 접촉점의 반대편에는 약간의 여유 틈새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틈새가 없으면 양측이 서로 꽉 끼여 움직일 수 없다. 양측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그 틈새가 바로 '백래시'.

구동측과 피동측이 제 기능을 지키면 한 쪽 방향으로 접촉이 유지되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역할이 서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오르막을 오를 때는 구동기어가 피동기어에 구동력을 제공하지만, 내리막에서는 중력의 작용으로 오히려 피동기어가 구동기어에 역방향의 힘을 작용하게 된다. 이같이 구동과 피동의 역할이 전환되면 백래시가 문제를 일으킨다. 그 틈새 간격만큼 순간적으로 동력전달이 중지되고,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양측은 충격적으로 부딪힌다. 이때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고 파손까지 일어날 수 있어 백래시는 가능한 한 작은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정리하면, 백래시는 이끄는 쪽과 이끌리는 쪽 사이를 구분하는 단절된 틈새로서, 서로의 움직임을 허용하기 위한 반드시 존재하여야 하며, 역할 변경 등 흐름의 변화가 생길 때 소음이나 파괴의 원인이 되니, 가능한한 최소로 유지되도록 면밀히 관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백래시'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자주 등장한다. 사회는 경제적, 사상적 혹은 정치적으로 나름의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에는 흐름의 에너지를 제공하여 이끄는 구동측과 그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피동측이 있기 마련이며, 그 사이에는 서로를 구분하는 갭이 존재한다. 그 갭이 사회적 '백래시'. 이에 의해 갑을 관계, 노사 관계, 빈부 격차, 정치성향 등이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된다.

백래시가 문제되는 것은 사회적 변화가 급격히 일어날 때다. 주도 세력의 힘이 약화되거나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증폭될 때, 그동안 이끌려가던 집단이 변화를 주도하는 입장으로 앞서 나서게 된다. 구동과 피동이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이 때 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백래시 소음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흑인 인권, 페미니즘 등이 대두되면,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반사적으로 나타나 변화를 거부하고 반발하여, 시끄러운 소음이 생겨난다.

백래시 소음은 모든 변화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결국 사회는 변화하고, 우리는 그 변화를 부득이 받아들여 적응하거나 고맙게 누리며 살아간다. '야간통금 폐지하면 안보가 불안하다', '두발 자유화는 교육을 파괴시킨다', '5일제로 나라 경제가 망한다' 등 한때 요란했던 그 백래시들은 이제 기억에서조차 아련하다. 최근에는 '군대의 휴대전화 허용, 군대가 개판된다', '52시간제가 제조 기업들의 탈한국을 조장한다', '선거 연령 18세로 낮추면 고3 교실이 정치판이 된다', '탈원전 탓' 등의 백래시가 요란하다. 이들 대부분은 머지않아 추억 속의 소리로 사라질 것이다.

가정의 백래시도 집집마다 소란을 일으킨다. 커가는 자녀들을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통제하려는 부모의 잔소리가 바로 백래시 소음이다. 기업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핵심역량의 변화를 앞서 추진하려 하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 세력의 백래시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백래시는 기업의 시대 적응적 변신을 방해하여 결국 그 존립을 위협한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수많은 백래시 잡음을 듣고 성가시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친 변화에 저항하며 자신의 백래시 잡음을 스스로 생성하여 보태기도 한다. 그렇게 역사는 온갖 백래시 소음을 흘러간 헛소리로 만들어버리며, 사회 모습을 새로이 구축해가는 것이다.

그러니 백래시는 그저 시끄럽기만한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앞서 일러주는 고적대의 행진곡이다.

 

기어의 백래시

 

 

 

 

*
'백래시'는 낚시에서도 사용된다. 릴을 던져 낚시줄을 풀 때, 낚시줄을 감고 있는 스풀의 회전 속도가 줄이 풀려나가는 속도보다 더 빨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과속으로 회전하는 스풀에 이미 풀려나간 낚시줄이 오히려 역방향으로 감겨버려 줄이 엉망으로 꼬이게 된다. 이를 낚시에서 '백래시'라 부른다.
연날리기 할 때에도 마찬가지의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연이 바람을 타고 상승할 때 얼레의 가속도를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백래시'가 발생하여 실을 망쳐버릴 수 있다.

댓글1

  • 우광 2021.10.04 15:52

    사회의 파열음들을 그것이 그저 기어가 삐걱거리는 백색소음으로만 들린다면 그것은 단지 오만과 독선에서 출발한 사회적 중이염이 불러온 환청같은 이명현상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사에 일정한 선이라는게 어딘가는 존재한다고 보는데 말같지도 않은 래디컬한 주장들을 선진으로 또 선각으로 포장하는 늙은이들이 부쩍이나 늘어나 있더군요. 그닥 견고하지도 못한 두께의 흙더미로 어설프게 살해한 과거의 시신을 황급히 덮어놓고 곁에서 새어나오는 냄새를 세상이 바뀐 향기쯤으로 인식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환각이나 환청이 사람을 편케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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