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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

by 허성원 변리사 2021. 9. 12.

온고이지신,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

 

임금이 말하기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하니, 이유경이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초학자(初學者)는 이렇게 보는 수가 많은데, 대개 옛 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정조 12월의 경연(經筵)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온다. 소싯적에는 선전관 이유경의 해석과 같이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옛 것과 새 것을 고루 익혀 신구 지식에 대한 균형을 잘 이루어야만 남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정조는, 그런 해석은 초보자들이나 하는 말이고, ‘옛 것을 익히다 보면 그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느 해석이든 썩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스승 노릇할 사람이라면 당연히 옛 것을 익혔을 것이며, 그 과정에 새로운 깨달음이야 항차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굳이 그것을 공자께서 스승이 될 조건으로 엄히 규정하여둘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온고이지신을 들여다보면 옛 고()’자가 아닌 까닭 고()’가 사용되어 있다. ‘까닭 고()’옛 것의 뜻으로 많이 쓰이기는 한다. 이를 옛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자의대로 '까닭'으로 해석해보자. 그러면 이렇게 풀 수 있다.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결과의 원인이고 이유이며, 나타난 현상의 원리이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원인, 원리, 근원은 많은 경우 당면한 사안의 파악이나 해결을 위한 열쇠가 된다. 노자가 말하는 '()'나 이기론(理氣論)에서의 '()'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까닭‘Why()’이니, 이는 ’How(어떻게)'‘What(무엇)’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Why'(이유)의 규명은 존재나 행위의 근원적 의미를 파악하는 의미 중심적 접근방법이지만, 'How'(절차)'What'(결과)은 방법 혹은 결과 중심적 접근방법이다. ‘Why’를 추구하는 소위 근원적 사고는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How'적 사고는 그 손가락을 지켜볼 뿐이고, 'What'적 사고는 그저 달을 바라본다.

(Why)'를 추구하는 근원적 사고 방법은 모든 창의력의 출발점이다. ‘?’라는 의문이 없는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기존 지식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런 도전을 위해 지식을 습득 및 정제하여 하달식, 주입식 지식 전달을 거부하고 상향적, 파괴적 지식을 창조한다. 그리고 ?’는 문제 해결의 수단이다. 미국 제퍼슨 기념관이나 도요타가 다섯 번의 ?‘(5Why?)라는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는 존재나 행위의 이유 내지는 의미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가치관이나 비전에 연결된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사람이 남의 스승이 될 리 없고, 비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가나 기업이 민심을 얻을 리 없다. 스티븐 코비는 "이유(why)를 가진 자는 어떤 목표(what)나 어떤 수단(how)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지도자의 공통점은 'WHY'를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이와 같이 새로운 해석에 따른 온고이지신은 세상을 보는 사고의 프레임을 원리 중심적, 의미 중심적으로 설정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에 '서명의 방이 있다.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장식된 네 벽면은 신학, 법학, 철학, 예술에 관한 주제가 각각 그려져 있다. 철학을 주제로 한 동쪽 벽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을 모아놓은 소위 '아테네 학당'이 있다. 그 위의 천장화에는 가운데의 여신이 'NATURALIS'(자연)'MORALIS'(도덕)라는 이름의 책을 들고 있고, 양측의 천사는 'CAUSARUM'(원인, 이유)'COGNITIO'(인식, 지식)이라는 글자판을 각각 들고 있다. 'CAUSARUM COGNITIO''인과의 인식까닭에 대한 깨달음'이다. 바로 까닭 고()’로 해석한 온고이지신을 가리치는 말이 아닌가. 동서양의 철학이 이처럼 공명하고 있다.

'까닭'을 익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溫故而知新). 그러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可以爲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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