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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세상살이/지혜로운삶

우리는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_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by 허성원 변리사 2021. 7. 28.

(플라톤의 '국가' 제1권 말미 부분의 대화이다.
옳음(정의)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정의(義)를 두고 토론한 다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지를 논증한다.
그 논지를 요약해본다.)

 

1. 
<정의로운 자는 지혜롭다>

어떤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자 혹은 훌륭한 자는,
우수한 의사나 뛰어난 음악가처럼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지혜롭다.

지혜를 가진 우수한 자와 그렇지 못한 열등한 자가 있다고 하면,
어느 쪽이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여 이기려고 덤벼들겠는가?
아마도 무지하거나 열등한 자일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류의 사람들을 앞지르려 하지 않을 것인 반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그 반대의 행동을 취하며,
자신이 더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려 애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자는 지혜롭고 현명한 자를 닮았고,
정의롭지 못한 자는 지혜롭지 못한 자를 닮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자는 지혜롭고 현명하지만,
정의롭지 못한 자는 무지하고 열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불의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트라시마코스는 불의가 정의보다 더 크고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의가 불의보다 더 지혜롭고 더 높은 덕이며,
불의가 분열과 증오를 부르는 한편, 정의는 우애와 협조를 부른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군대, 도둑 혹은 강도들이든 어떤 집단이
불의의 뜻을 품고 자신들이 가진 강한 힘을 이용하여 나쁜 일을 저지르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들이 불의의 뜻을 가지고 분열과 증오로 서로를 해친다고 하면, 
그들이 가진 본래의 힘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좋은 집단이든 나쁜 집단이든, 불의가 개입되면 불화를 조성하여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불의는 각 개인 및 집단과 대립되며, 물론 정의와도 대립되는 것이다.

신들도 정의의 편이다
그렇기에 불의한 자는 신들의 적이 될 것이고,
정의로운 자는 신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정의로운 자는 불의한 자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밖에 없다.
지혜든 덕이든, 그리고 어떤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뜻을 모아 행동을 통일하는 데에서도.
그러니 불의한 자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그것으로 행동을 관철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악인들이라면 그들 집단은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테니까.  

3.
<정의로운 삶이 행복하고 이득이다>

눈 없이 사물을 볼 수 있고, 귀 없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보고 듣는 것은 귀의 기능이며,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기능이 있다.
그 사물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기능을 그 사물의 '덕'이라 부른다.
그러니 눈에는 눈의 덕이 있고 귀에는 귀의 덕이 있다.
눈과 귀가 그 덕을 잃으면, 즉 악덕에 물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사람의 정신도 고유의 기능이 있다.
인간의 삶은 정신의 기능에 의지하며, 정신에도 그 나름의 '덕'이 있다.
훌륭한 덕의 정신이 있는가 하면 고유한 기능을 상실한 악덕의 정신도 있다.

훌륭한 덕의 정신을 가진 사람과 악덕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삶이 어떠하겠는가?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잘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행복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행할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익한 것이니, 불의에 빠진 삶이 정의로운 삶보다 결코 이득일 리가 없다.

 

**
소크라테스의 논리 전개 방법과 유사한 사례.

신이 악도 창조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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