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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칼럼

[경남시론] ‘벼리’를 놓치지 마라

by 허성원 변리사 2021. 4. 8.

벼리를 놓치지 마라

 

제문(祭文)이나 축문(祝文)은 항상 벼리 ()’ 자로부터 시작한다. 이 글자를 무수히 쓰고 들었지만 그 뜻이나 쓰인 연유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 돌연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의 훈인 벼리'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한다'라 설명되어 있다. 그물을 조작하는 밧줄이라는 말이다. 오므렸다 폈다 한다고 하니 아마도 당초에는 투망 형태의 그물에 쓰였던 모양이다.

그 뜻을 알고 보니 '벼리 유()' 자가 축문 등의 발어사(發語辭)로 쓰이게 된 연유를 대충 짐작할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인 '벼리'를 통해 제관의 정성을 축문으로 전하여, 인간과 귀신을 영적으로 잇게 하려는 정성스런 뜻이라 상정해볼 수 있겠다.

그물의 '벼리'는 사람의 통제를 그물에 전달하는 수단이다. 벼리를 적절히 다루지 못하면 그물의 본래 기능이 발휘될 수 없고, 벼리를 놓치면 그물도 잃는다. 그물은 오로지 벼리를 통해서만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니, 그물에게는 생명줄이다. 벼리를 놓치면 그 그물은 그저 물을 오염시키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라에도 그 명운을 지키는 '벼리()'가 있다고 한다. 춘추시대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명재상 관중(管仲)은 그의 저서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는 네 가지 벼리()가 있다(國有四維).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멸망한다.’

그 네 가지 '벼리'를 관중은 ()’, ‘()’, ‘()’ ()’라 하였다. ‘()’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는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는 그릇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시대가 혼란하면 네 가지 '벼리'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위태로워진다. 아니 '예의염치(禮義廉恥)'가 혼란해졌기에 시대가 위태로워진다고 해야 옳을 듯하다. 건강한 나라는 그 '벼리'들이 제대로 기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도와 옳음을 지키고 잘못을 숨기지 않으며 그릇됨에 대해 부끄러움을 안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진 위기에는 사람들의 절도가 무너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잘못을 숨기고는 뻔뻔하게 나서는 사람 즉 파렴치(破廉恥)한 사람들이 늘어난다.

기업에게도 기업을 건강하게 지키기 필요한 벼리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관중이 언급한 네 가지 벼리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그대로 기업에도 적용해볼만하다.

기업에게 있어 ()’는 고객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고객의 믿음은 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생명줄이니, 고객의 신뢰를 놓치고 살아남을 기업은 없다.

()’는 옳음을 가리킨다. 기업에게 있어 가장 최소한의 옳음은 생존과 성장이다. 그래서 기업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끝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면서,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증명하여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지속에 실패한 기업은 선의 편에 설 수 없다.

()’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니, 위기가 닥쳤을 때 슬기롭게 관리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실수와 잘못은 피할 수 없고, 불의의 사고를 모두 예방할 수는 없으니, 위기는 숙명적으로 닥치기 마련이다. 그런 위기로 인해 존립이 흔들리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여 기업 이미지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진시키는 기업도 있다. 많은 위기관리 사례가 웅변으로 보여주듯이, 위기가 닥쳤을 때의 대응 태도가 그 기업의 정체를 정의하고 그 기업의 미래를 가름한다.

()’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 즉 기업의 윤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업의 본질이 이익의 추구임은 틀림이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이익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그 기업은 그 경영을 지속하지 못한다. 사회는 기업의 존재와 성장을 가능하게 한 기초적인 환경이기에, 그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업의 윤리로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켜주는 핵심 요소이다.

관중이 말한 바와 같이, 기업도 그 벼리가 하나씩 더 끊어질 때마다 기울어지고, 위태로워지고, 뒤집히고, 끝내는 망하고 만다. 네 개의 벼리가 모두 끊어져 망한 기업은 죽은 기업이니 다시 세울 수 없다. 일부가 끊어지면 통제를 잃은 연과 같이 흔들릴 것이다. 그나마 남은 벼리를 잘 써서, 기울면 바로 잡고, 위태로우면 안정시키고, 뒤집히면 바로 세울 기회는 있다. 하지만 그 회복은 지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탄력적인 복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선 벼리들을 든든히 잘 구축하라. 그리고 그 벼리들이 하나라도 놓치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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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이 삼천 코라도 벼리가 으뜸이다"
"그물이 열 자라도 벼리가 으뜸이다"

이런 속담들을 보면, '벼리'는 뼈대, 줄기, 핵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담의 가르침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없으면 오합지졸에 불과하고,
물건의 경우에도, 물건이 많이 있어도 정작 필요하거나 가치있는 것이 없으면 허섭쓰레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일을 하였어도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벼리 없는 짓을 한 것이다.
글이나 말에 있어서도, 아무리 방대하고 화려하게 늘어놓더라도 논지가 불분명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핵심 메시지가 없다면 '벼리'가 없다 할 것이다.

대화가 만연해질 때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벼리'가 무엇이오?"
"누가 '벼리'를 정리해서 말해주세요."
등으로 말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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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網在綱有條不紊(약망재강유조불문) _ 서경(書經)
'그물은 벼리가 있기에 많은 그물코들이 있어도 얽히지 않는다.'

조직이든 사물이든,
중심이 되는 존재가 제 역할을 잘 지키면 전체적으로 혼란없이 일사문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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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有四維, 一維絶則傾, 二維絶則危, 三維絶則覆, 四維絶則滅. 傾可正也, 危可安也, 覆可起也. 滅不可復錯也. 何謂四維. 一曰禮 二曰義 三曰廉 四曰恥. 禮不踰節, 義不自進, 廉不蔽惡, 恥不從枉. 故不踰節, 則上位安; 不自進, 則民無巧詐; 不蔽惡; 則行自全; 不從枉, 則邪事不生. _ '管子' 牧民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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