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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가? 항우를 깨우지 마라

by 허성원 변리사 2020. 5. 28.

부러운가? 항우를 깨우지 마라

 

초패왕 항우는 일찍이 진시황이 회계산을 유람하는 모습을 보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저 자의 자리를 뺏어 대신 차지하리라!”(彼可取而代也!). 한고조 유방도 함양에서 부역하는 동안 진시황의 행차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도 행차를 보면서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오호라! 대장부라면 응당 저렇게 되어야지!”(嗟乎 大丈夫當如此也!). 초한쟁패의 맞수인 두 영웅은 모두 진시황을 부러워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적잖은 차이가 있다.

진시황의 자리를 빼앗아 대신 차지하겠다는 항우의 말은 얼핏 보면 그의 기세처럼 거침없는 대장부의 호방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논리이고, 상대의 성취에 대해 아무런 존중이 없다. 그저 탈취의 대상일 뿐이다. 탈취는 남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의 과실을 일거에 취득하는 무임승차의 행위로서, 이 세상에 어떤 새로운 가치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저 타인의 성취만을 파괴시키며, 소유 주체만 바뀌는 제로썸의 비즈니스이다.

그에 반해 유방은 진시황을 이상적인 대장부의 모습으로 본다. 진시황의 성취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를 롤모델로 삼아 그로부터 배워 그와 같이 될 수 있기를 원한다. 이 때 부러움은 새로운 성취를 위한 동기부여 에너지가 된다.

이처럼 유방의 부러움은 '창조적 에너지'이지만, 항우의 부러움은 비생산적인 '파괴적 에너지'이다. 창조적 부러움은 겸손과 존중에 기초하여 희망적 에너지를 창출하고, 배움과 노력의 행동을 유발한다. 그러나 파괴적 부러움은 시기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우울감과 분노의 정서로 발전하였다가, 탈취라는 패도적 행동으로 귀결된다. 파괴적 부러움의 목표는 탈취이지만, 창조적 부러움의 목표는 새로운 성취'이다. 이러한 부러움의 의미 차이가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갈랐다. 항우는 잠시 진시황의 자리를 대신해보았을 뿐이었지만, 유방은 4백년 한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부러움은 지금도 이 시대의 영웅들인 기업인들의 심장을 가동하는 에너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항우와 유방을 닮아 있다. 그들의 내부에 항우와 유방이 항상 혼재한다. 평소에는 대체로 존중, 희망, 창조의 유방식 경영을 수행한다. 그러다 가끔 주변의 누군가가 놀라운 성취를 이루면 시기심이 발동하려 한다. 시기심이 커지면 우울, 분노, 파괴의 항우적 성향이 나타난다. 시기심은 내부의 항우를 깨운다.

'파괴적 부러움' 즉 시기심으로 인한 다툼을 종종 본다. 동료 연구원들 간에 기술이전 보상금을 두고 다투고, 서로 잘 협력하던 친구 중 한 쪽이 큰 성공을 거두자 다른 쪽이 설득력 낮은 이유를 들어 끈질기게 시비를 건다. 그 다툼들의 바탕이 시기심임을 알만한 사람은 누구나 안다. 시기심은 상대가 가까울수록 더욱 세게 발동하여 탈취 욕구를 자극한다. 탈취 욕구는 금전에 한하지 않고 상대의 성취감, 행복 혹은 평온에까지 미친다.

더 비난받을 '파괴적 부러움'은 기술 탈취이다. 경쟁기업이 오랫동안 인력과 자금을 들여 힘들게 이룬 기술적 성취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통상은 핵심 인력을 한둘 빼내 가지만, 심한 경우에는 연구 부서를 통째로 끌어가기도 한다. 단번에 타인의 성취를 빼앗아 주인노릇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항우 방식의 부러움 해결법이다. 영업비밀 보호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어 많은 기업들이 효과적인 구제를 받고 있지만, 내부 시스템의 미비로 적절히 그 보호를 누리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아직 많다.

시기심은 먼저 자신을 파괴한 다음 상대를 괴롭힌다. 마치 타인을 죽이고자 하면서 자신이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다. 옆집 감이 부럽다면 담을 넘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내 마당에 감나무를 심을 일이다. 그것이 항우를 잠재우는 창조적 부러움 해소 방법이다. 귀하의 부러움은 항우의 것인가, 유방의 것인가?



댓글3

  • 이동욱 2020.06.08 12:47

    부러움이 야기하는 두 가지 결과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네요.
    답글

  • 김의수 2020.06.29 09:48

    첫번째 교훈은 위에 댓글 주신 분과 동의.
    두번째 교훈은,
    역시 이런 식의 해석은 대표적인 '아전인수'라는 점.
    우선은 과연 항우와 유방이 저런 의미로 저런 말들을 그것도 표현 그대로 했을까 하는 점,
    즉 후대의 관점에 따라 전해지는 말 자체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
    적어도 꿈보다 해몽이라고,
    최후의 승자 유방의 관점에서 그 결과를 놓고 내리는 후대의 전형적인 해석이라고 봅니다.
    이런 식의 끌어대기식 교훈으로는
    지식의 향연 내지는 인문학의 인사이트를 가지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저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니 살짝 유감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과감히 이런 부정적인(?) 댓글을 올리는 이유는
    블로그 주인분의 직접글이 아닌 신문 사설이 그 내용이어서이므로
    너무 불쾌히 생각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답글

    • 감사합니다.
      고전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해석의 다양성은 하나의 사실을 두고 많은 가르침을 파생시킬 수 있지요.

      이 글은 역사적인 사실을 규명하거나 승자를 합리화하기보다는
      리더들의 언어에서 포착되는 숨은 의미와 그로 인한 운명의 변화를 다소 억지스럽게 엮어본 시도였습니다.

      나보다 성공한 타인을 보았을 때,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요.
      그 감정을 두 가지 갈래를 끌어놓고 이야기꺼리를 만든 것이라 여겨주십시오.

      신문 글은 제가 쓴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