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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脫出)하지 말고 탈입(脫入)을 하라

by 허성원 변리사 2020. 7. 20.

탈출(脫出)하지 말고 탈입(脫入)을 하라

 

'쇼생크 탈출'은 주인공 앤디의 탈옥을 다룬 영화이다.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사는 앤디의 수감 중에 겪는 희망과 절망, 우정, 복수 및 탈옥 등을 잘 그려낸 걸작이다. 앤디는 조그만 조각용 손망치로 벽에 굴을 뚫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감쪽같이 탈출한다. 감옥을 벗어나 빗속에서 양팔을 들어 만세 부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는 친구 레드에게 멕시코의 지와타네호에 가서 삶을 끝내고 싶다고 말하곤 했고, 결국 그곳에 정착한다.

이 영화에는 2명의 다른 출감자가 있다. 수감생활 50년의 브룩스와 40년의 레드이다. 이들은 가석방 결정에 따라 감옥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끝내 브룩스는 목을 매어 삶을 마감하고, 레드는 친구 앤디가 있는 곳으로 간다.

구속에서 벗어나도 갈 곳이 없는 사람은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목적이 없는 자유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피해 다시 구속으로 되돌아간다. 에리히 프롬은 이 현상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 하고, 이런 오류를 겪지 않으려면, '~으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가 아닌 '~으로의 도피(Escape to)'를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벗어남에 주목한 '~으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탈출(脫出)'이라고 한다면, 목적지를 향한 '~으로의 도피(Escape to)''탈입(脫入)'이라 부르고 싶다. 앤디는 '탈입'하였다. 그는 그저 감옥을 벗어나기만을 원하지 않고, 아름다운 지와타네호에서의 여생을 꿈꾸었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19년의 수감 기간 내내 끈질기게 굴을 파서 결국 그곳에 이르렀다.

모든 리더는 언제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지금 처한 상황이 나쁘면 그렇기에 떠나려 하고, 상황이 좋더라도 더 나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떠나려한다. 그것이 리더의 숙명이고 최소한의 덕목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리더는 없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부단히 새로운 곳으로 이끌기에 리더라 불리는 것이다. 현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동력은 대체로 불만스런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리더는 언제나 상황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비판적 인식은 통상 '불평'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며칠 전 참석한 중소기업 CEO모임에서도 서로 앞다투어 비즈니스 현실에 대한 온갖 '불평'을 털어놓는다. 어디서나 빈번히 듣는 내용들이다. 최저 임금, 52시간, 노조, 세무조사, 상속세, 코로나 등등. 누구나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은 이슈들이다. 그런데 현실 '불만'에 기초한 사고 프레임은 거의 공허하고 부정적이다. 불평을 공유하면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저 벗어남에 주목하는 단순한 '탈출(脫出)'의 프레임으로서, 아무런 해결책도 가야 할 곳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탈출 프레임의 위험성은 거듭할수록 그 부정적인 이슈에 스스로를 더욱 깊이 매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실제에는 '탈출'의 프레임에만 매몰되어 허우적대는 리더는 없다. 그런 리더는 이미 살아남아 있지 않다. 다들 '탈출''탈입'이 혼재된 복합 프레임 속에서 사고한다. 리더들은 때론 탈출 프레임 속에서 걱정하고 절망하며 좌절하기도 하고, 때론 탈입 프레임에서 창조하고 희망하며 과감히 행동하기도 한다. 다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탈입 프레임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성장을 보장하기 위한 다음 먹을거리, 혁신, 핵심역량의 전환 등과 같은 그들이 가야할 곳에 주목한다. ‘탈입에 강한 기업만이 더 건강하고 더 강한 생존력을 발휘하며 성장한다. 그래서 비즈니스 환경이 힘들어지면 어떤 기업이 더 강력한 비전으로 무장한 진정한 탈입의 기업인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두 가지 기업으로 나뉜다. 변화하는 기업과 사라지는 기업으로.

탈출이 아닌 탈입을 하라. 아름다운 지와타네호를 가슴에 보듬고 거침없이 그곳으로 향하라. 그리하여 사라지지 말라.


<2020.7.27. 경남신문 경남시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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