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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말로(Cui Malo)! 누가 가장 불리한가?

by 허성원 변리사 2020. 4. 18.


2차 대전 때의 사진 한 장이 있다병사들이 서로 간격을 두고 멀찍이 떨어져 이동하고 있고그 중 한 병사는 당나귀를 업었다왜 업었을까당나귀를 너무도 아껴서일까그건 아니다그들이 지나가는 곳은 지뢰밭이다누가 지뢰를 밟으면 전 부대에 치명적이다당나귀는 네 발을 가졌으니 더 위험하다중요한 수송수단이라 버리고 갈 수 없으니 선발된 한 병사가 부득이 업은 것이다.

우리의 사회나 조직에는 어디나 '당나귀'가 있다조직의 안전을 심대히 위협하지만 버리거나 피할 수 없는 짐이다반드시 조직 내 누군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떠맡아야 한다대체로 조직의 리더나 강한 사람이 맡지만 때로는 오히려 약한 사람이 덤터기 쓰기도 한다. ‘당나귀를 잘 피하는 사람도 있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환경의 사람도 있다그리고 당나귀에 따라서는 너무 무겁거나 별나게 요동을 쳐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유독 약한 자의 등만 골라서 업히려는 고약한 녀석도 있다사람이 당나귀를 감당하지 못하면 낭패다그곳은 지뢰밭이다.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당나귀와 같다. ‘코로나 당나귀가 운없는 사람들의 등에 올라탔고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사람들이 늘어났다그들의 등에서 내린 당나귀들이 세계의 지뢰밭을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돌아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미국 시카고에서는 사망자의 72%가 흑인이라고 한다흑인의 인구 대비 사망자가 과도히 높다(미국의 흑인 비율은 약 13%, 시카고는 약 30%). 전염병과 같은 대환란은 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치명적이다약자는 강자보다 훨씬 더 많이 뛰고 만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도 초기에 특정 종교단체 때문에 된통 애를 먹었었다그 종교단체의 추종자들이 비난이나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알고 보면 그들도 허황된 교리에 기대어 소속감과 삶의 위안을 찾고자 했던 그저 소외된 약자들이었다.

세상은 무수한 인간 고리들로 이어진 사슬과 같다강한 고리도 있고 약한 고리도 있다전쟁이나 질병과 같은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지기 마련이다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남은 고리가 제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 개별 존재나 전체 사슬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지금 대혼란을 겪고 있는 이 세계의 모습이 바로 약한 고리들이 곳곳에서 이미 끊어져버린 사슬과 같다.

기업 환경도 마찬가지이다산업구조는 개별 기업들의 고리로 이루어진 '가치 사슬'이다대환란이 가져온 '불경기 당나귀'는 가장 취약한 기업의 등에 올라타 그들의 진행이나 생존을 버겁게 한다일부 기업이 감당하지 못한 당나귀는 국가 경제의 지뢰밭을 마구 나돌아다닐 것이다이미 당나귀에 굴복한 기업이 많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대환란의 시기에는 사람이든 기업이든 약한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사회의 가치 사슬이 유지되도록 보살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가장 취약한지 혹은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지 찾아야 한다범죄 용의자를 찾을 때에는 그 범죄로 인해 '누구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확인한다이를 라틴어로 '쿠이 보노(Cui bono)'라 한다그러나 환란의 시기에는 그 반대의 주체인 약자 혹은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이를 '쿠이 보노'에 상대되는 개념의 라틴어로 쿠이 말로(Cui Malo)’라 부르기로 하자.

쿠이 말로즉 '누가 가장 불리한가?'를 묻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기초 조건이다모두가 힘들 때 가장 불리한 처지의 사람을 우선적으로 따뜻이 배려하는 것이다이것이 맥시민(Maximin) 혹은 최소수혜자 배려의 원칙'이다이 원칙은 타이밍이 생명이다그들이 쓰러지기 전에 찾아서보듬고 보살피며 힘을 보태어 짐을 덜어야 한다더 지체할 수 없다지금 함께 살펴보자쿠이 말로


(2020.4.20. 경남신문 '경남시론')



댓글1

  • 이동욱 2020.04.21 13:52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요. 이 어려운 시기에 보다 힘든 처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배려한다는 것은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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