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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기행(史記紀行) 제2편 _ 20170915

by 허성원 변리사 2019. 12. 1.
[사기기행]

#4

- 아침에 김영수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마천의 후손들은 사마천이 처형(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답니다) 당한 후 성씨를 바꾸어 살고 있답니다. 동씨와 풍씨. 각각 '사'자와 '마'자에 획을 추가한 것입니다. 司 -> 同, 馬 -> 馮.

- 사마천의 묘와 사당에 왔습니다.
묘와 사당으로 가는 길에는 사기의 12본기 내용을 담은 거대한 조형물들이 좌우 양측에 건축되어 있고, 중앙에는 사마천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동상은 높이 12m, 무게 26톤(52만근)의 청동제입니다. 사기의 12본기와 총 글자 수 52만자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동상 앞에 우리를 환영하는 한성시의 현수막을 두 아가씨가 들고 있습니다.

- 저런 새 조형물들을 보면서.. 중국은 새로운 유물(?)을 끝없이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조형물들이 언젠가는 몇십년 몇백년 지나면 역사적인 유품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여러 역대 황제들의 묘는 손대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존할 것은 철저히 미발굴 상태로 두고, 새로운 것은 계속 만들어냅니다.
이를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창조한다)이라 해석해도 될라나..

- 사마천 묘에서 내려다보면, 중국 정부가 사마천을 얼마나 비중있게 생각하고 띄우려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로를 끌어들여 유람선 뱃길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 사마천의 묘입니다. 시신을 묻은 게 아니라 의관을 묻은 곳입니다.
궁형을 당했기 때문에 선조들과 함께 묻히지 못했답니다.
묘의 위에는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수령이 1700년이라는군요.
이 나무는 여기에 기도하면 장원 급제한다는 영험이 있습니다.
이 사진에라도 기도하면 상당한 효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집안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Believe or not!
그 효험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뭐 손해볼 거 없으니 함 빌어보시지요~~
- 모택동의 지시로 설치한 기념비입니다. 사마천의 탄생과 아픔, 업적 등을 짧지만 명쾌하게 쓴 명문장이라고 합니다.
한문 잘 아시는 분들은 해석을 좀..
- 사마천묘 가까이의 화장실에도 멋진 글이 붙어있습니다.
"욕구하되 만족을 모르면 그 욕구한 것을 잃게 되고,
가지되 멈출 줄 모르면 그 가진 바를 잃게 된다."

欲而不知足(욕이부지족) 失其所以欲(실기소이욕)
有而不知止(유이부지지) 失其所以有(실기소이유)

이 말은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睡·蔡澤列傳)에 나온다.

범수(范睡)는 진소양왕 때의 재상. 원교근공 정책을 유세하여 재상이 된 후 이를 시행하여 진나라를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채택(蔡澤)은 연나라 출신으로서 범수를 찾아와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조언한다.

"군의 공이 극에 달하여(君之功極矣)있습니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으면(如是而不退), 상군, 백기, 오기, 대부 문종과 같이 될 것입니다"(則商君, 白公, 吳起、大夫種是也)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높이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오르되 내려올 줄 모르고, 펼치되 굽힐 줄 모르며, 나아가되 스스로 돌아올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원컨데 군께서는 부디 이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亢龍有悔(항룡유회) 此言(차언) 上而不能下(상이불능하) 信而不能詘(신이불능굴) 往而不能自返者也(왕이불능자반자야) 願君孰計之(원군숙계지)"


[사기기행]

#5

- 한성은 인구 서울의 3배 정도 되는 면적에 약 50만명이 사는 매우 작은(?) 도시이다.
이 시골에 중국의 3대 고대 건축에 속한다는 문묘(文廟)가 있다. 문묘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
문묘는 송대에 건설되어 원, 명, 청을 지나며 중건되거나 개축되어 송, 원, 명, 청의 문화가 모두 반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는 당최 구분해낼 수가 없다.

- 1500년 된 측백나무. 여기에 학운을 빌면 영험하게 듣는다고 한다. 나도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놈이 좀 덜 놀고 공부를 제대로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빌었다.


- 문묘 내에는 유교 성현들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도교 사당에 해당하는 성황묘와 장사(상인)의 신으로 모셔진 관우의 관제묘도 있다.
관우가 장사 혹은 상인의 신으로 받들여지는 것은 의리와 신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장사의 핵심 가치는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가르친다.

- 문묘 앞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네들이 있다.
근데 장기알이 엄청 크다. 작은 호떡 사이즈.. ㅎ..

- 문묘 부근은 잘 조성된 상업 거리이다. 밤에는 조명과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다양한 조명 볼거리를 보여주고, 공연도 여기저기서 벌어진다고 한다.
이런 조그만 변방의 작은 소도시에까지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중국이 이룬 경제적 부흥 및 풍요와 그것을 활용한 문화 정책의 추진 성과가 피부로 느껴진다.
[사기기행]

#6

병마용갱은 재작년에 왔을 때 충분히 돌아봤기 때문에, 일행들이 그쪽으로 가는 동안 나는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마침 고대 중산국 유물이 특별 전시되고 있다.
중산국은 열국지에서 가끔 등장하는 나라. 북쪽 오랑캐인 적족이 세운 나라이기에 사기 등 중국 역사서에서는 직접적으로 그 나라의 역사가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전시에서도 '신비왕국 고대 중산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중산국은 조나라와 연나라 사이에 끼어있어 조나라의 침공을 자주 받다가 끝내 호복기사를 도입한 조무량왕에 의해 멸망했다. 조나라 뿐만 아니라 위나라와 제나라의 공격도 적잖이 받았었다.

열국지에서는 중산국 출신 악의의 활약이 매우 재미있다. 악의는 중산국이 멸망한 후 연나라로 가서 연합군을 아끌고 제나라를 거의 멸망 시킬 상황까지 갈 정도로 크게 활약한 명장이다. 뒤에 모함을 받아 조나라로 넘어간다.
채색도기 전시관에서 본 예쁜 부장품..

- 진나라의 병차(兵車)와 온량거는 청동으로 제조되었다.
아직 철기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때였다.
사진의 병차와 온량거는 정확히 2분의1로 재현한 것이다.
온량거는 진시황이 전국을 순례할 때 타는 마차인데 냉온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고 한다. 진시왕은 마지막 순례 중에 이 온량거에서 죽는다.
마지막의 도표는 마차에 사용된 부품들의 성분 함량이다.
청동 부품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성분의 청동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부품의 특성 즉 요구되는 강도, 내마모성 등에 따라 함량을 달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조 등 성형기술도 현대의 기술에 비추어 보아도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고 한다.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청동검의 날이 당시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인을 확인해보니 검의 표면에 니켈 크롬 도금이 처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도금은 금속이온의 정전기를 이용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기가 있어야 한다. 당시에 전기는 없었을텐데, 어떤 대체 방법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청동기 시대를 생각하니 이런 격언이 떠오른다.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졌기 때문에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격변의 시기에 잘 새겨들을만한 말이다.
또 달리 생각하면..
"청동기 시대는 구리가 없어서 늦게 온 것이 아니다."
변화가 이미 가까이 와있어도 인지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직 석기시대인 셈이다.
[사기기행]

#7

장한가 공연을 보았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공연이 없어 보질 못했었다. 겨울에 왔었는데..추워지면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물위에서 무대를 수면 위아래로 출몰시켜 가며 공연을 하고 분수도 많이 활용한다. 공연자들이 물에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추울 땐 불가능하다.

장한가는 원래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의 로맨스 이야기를 다룬 백거이의 시 제목이다. 그 시의 내용을 기초로 그들이 단꿈을 꾸었던 화청궁 내 화청지에서 공연이 열리는데, 그 스케일이 방대하다. 그리고 온갖 기교를 다 부리고 많은 인력이 동원된다. 관중도 수천명.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사진과 짧은 동영상도 몇 개 첨부.

공연의 거대함과 화려함에 비해 감동은 좀 떨어지는 편.
공연자들은 예술이 아닌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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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뒤에 보이는 산의 이름이 여산이다.
여산은 또 다른 경국지색과 관계가 있다.

포사의 웃음을 얻기 위해 주유왕이 봉화로 장난을 쳤던 곳이 바로 이 여산 봉화대이다. 주유왕은 포사를 무척 아꼈으나 그녀는 웃을 줄 몰랐다. 그녀를 웃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는데.. 비단 찢기가 약간 효과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그 효력이 얼마 가지 않았고, 그 다음에 채택된 방법이 봉화 올리기였다. 여산 꼭대기에서 봉화를 올리면 외적의 침략이 있는 것으로 알고 주변의 제후들이 군사를 달려왔다. 하지만 곧 속은 것을 안 제후들은 크게 실망하며 되돌아갔고, 이 장면이 포사를 크게 웃게 만들었다. 이 놀이는 여러번 반복되어 포사를 그 만큼 웃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정작 북쪽의 오랑캐가 진짜 쳐들어왔을 때에는 가짜 봉화에 여러번 속았던 제후들이 오지 않아 나라가 완전히 짓밟히고 왕은 죽게 된다.
이를 계기로 주나라는 낙양으로 천도하여 동주시대가 시작된다.

이렇게 보면.. 이 여산에는 특별한 기운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참 기구한 운명이다.
여기에서 포사와 양귀비가 약 1500년의 시간을 넘어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양귀비로부터 약 1400년 지나 지금 수많은 미희들이 춤을 추고 불을 밝혀 산이 조용히 지낼 틈을 갖지 못한다.
산도 여난을 겪는다.

- 당현종과 양귀비 이야기 및 장한가 공연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를 보면 간단히 잘 기록되어 있다.

- 백거이의 장한가는 이런 내용입니디.
화장실에 붙어 있는 표어.
대충 이런 뜻.
"한 발 조금 더 앞으로 나가면, 문명은 크게 한 발 더 진보한다."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소변기에 바싹 다가가서 볼 일을 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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