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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춘추]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다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다
_ 여씨춘추



활을 잃어버린 형(荊)나라 사람이
활은 찾으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것은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무엇 하러 찾겠는가?"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형나라'라는 말을 빼는 것이 좋겠다."
노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사람'이라는 말도 빼는 것이 좋겠다."

荊人有遺弓者, 而不肯索, 曰
"荊人遺之, 荊人得之, 又何索焉?'
孔子聞之曰 "去其'荊'而可矣."
老聃聞之曰 "去其'人'而可矣."
_ 呂氏春秋 孟春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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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에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니 노자의 말은 결국 '공(公)'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천지는 위대하다. 
낳아도 자식이라 하지 않고, 이루어도 소유하지 않는다.
만물이 모두 그 은덕을 입고, 그 이로움을 얻지만,
그 유래한 바를 모른다.
이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덕이리라.

故老聃則至公矣.
天地大矣, 生而弗子, 成而弗有,
萬物皆被其澤, 得其利, 而莫知其所由始.
此三皇, 五帝之德也.

'공(公)'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모두의 것, 즉 자연 혹은 우주의 것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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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사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크기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소유'가 자기 '개인'의 범주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형나라 사람은 '나라'라는 비교적 큰 공동체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는 공동체 소속원 각자가 소유한 가치를 함께 나누고 지키기에, 그는 비록 활을 잃어버렸지만,그 활이 공동체 속에 존재하고 공동체의 누군가가 주울 수 있다면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공자는 나라를 초월한 '인간 세계'라는 더 큰 범주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활'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유용함의 가치로 평가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역시 동일한 인간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인간이 가질 수 있고, 그 유용한 가치는 다른 인간에 의해 변함없이 유지되고 발휘될 수 있다, 그러기에 한 개인이 잃었다고 하여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세계 내에서 윤리와 도덕을 확산시켜 그에 기초한 인간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 세계를 잘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나라'와 '인간' 모두를 버리라고 한다. 만물은 자연(우주)에서 나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활은 사람이 잃어버렸어도 여전히 자연 속에 있다. 그것이 나온 곳이고 다시 되돌아갈 곳인 자연에 있으니, 활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달라진 점이 없다. 그러니 잃어도 잃은 것이 아니며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이 우주 자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고사는 굳이 그릇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누구나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통상의 인간은 개인의 소유에 집착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리더 등은 집단의 이익을 강조한다. 공자나 노자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철학적 세계관에 걸맞는 소유관을 보여줄 뿐이다. 누구도 잘못되지 않다. 각자에게 옳은 다양한 소유관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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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불유(生而不有) _ 도덕경 제5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