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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게스의 반지 _ 플라톤의 '국가'

by 허성원 변리사 2019. 8. 24.

귀게스의 반지(Gygis anulus)
_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 '정의'를 주제로 론하는 동안에 예로 들어 언급한 이야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리디아에 귀게스(Gygis)라는
목동이 있었지요.
어느 날 양을 돌보던 중 천둥 번개가 치고 나니 땅이 갈라졌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보니,
문이 달리 청동 말이 있었고, 그 안에는 큰 시신이 누워 있었습니다.
시신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기에,

그는 그 반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반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반지를 한 쪽으로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보이지 않다가,
반대로 돌리면 다시 보이게 되는 것입니
다.
여러 번 시도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요.
그는 그 반지의 능력을 이용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비를 겁탈하고
끝내 왕도 죽이고는
왕궁의 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
다.

_ 플라톤 국가 제2권




**

글라우콘이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꺼낸 취지는, 힘을 가진 자는 아무리 선량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정의를 지키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하기 위한 것이다.
남다른 힘이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탐욕을 자제하거나 이기심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위의 이야기에 이어, 글라우콘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귀게스의 능력을 가진 반지가 하나 더 있다고 하고,
그걸 선량한 사람이 가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떻게 되었을까요?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서 탐욕을 자제하고 이기심을 누를까요?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 사람은 시장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여인의 침대에 남몰래 들어갈 겁니다.
이러한 일은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저지를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자발적으로 정의를 지킬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

글라우콘의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명색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들으니 가슴 뜨끔하다.


"정말 나쁜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여야 합니다.
특히 선장이나 의사와 같은 사람을 가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항상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즉시 바로 잡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정한 짓을 저질러도 들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잘 속이기에 근거도 남기지 않고 꼬리도 잡히지 않으며,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주 나쁜 짓을 해도 방어 능력이 있으니 항상 좋은 평판을 유지합니다.
부정이 폭로되어도 교묘하게 변명하고,
인력이나 자금 동원 능력도 충분해서 항상 자신을 지켜냅니다."


"그리하여, 현명한 삶이란
선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세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나쁜 사람들의 삶은 매우 순탄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선량한 자라는 평판을 받기 때문에 국가를 지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도 있으며,
불의에 대해 거리낌이 없으므로 온갖 사리사욕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재산이 있으니 선심을 써서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고,
맘에 들지 않는 자를 쉽게 제거하기도 합니다.
신들에게 풍족한 재물을 바치고 찬양할 수 있으니
선량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사람의 삶과 나쁜 사람의 삶의 차이입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 선생님.
신의 차원에서나 인간의 차원에서나
나쁜 사람의 삶이 착한 사람의 삶보다 낫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글라우콘의 주장은 정치 권력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정치 권력자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능력 즉 '귀게스의 반지'의 힘을 일반 국민들을 위해 써야만 한다. 그것이 정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이용하여 진정 선량한 사람들보다 훨씬 선량한 것처럼 보이도록 행세하면서, 자신이 가진 힘을 국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쓴다. 그렇게 만든 
재산으로 친구를 많이 만들고, 맘에 들지 않는 자는 쉽게 제거하며, 신들에게 풍족한 재물을 바쳐 선량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신에게 가까이 간다고 비판한다.

그런 위선의 사람은 반드시 전문가이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교묘히 가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라우콘은 그런 전문가의 예로서 선장이나 의사를 들고 있다.

글라우콘의 말처럼, 현대의 전문가들은 '귀게스의 반지'의 효엄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특유의 지식과 능력('귀게스의 반지'의 효엄)으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힘쓰고 자신의 잘못은 교묘히 가려서 항상 좋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행세한다.

전문가들이 가진 '귀게스의 반지'는 그 능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귀한 가치이다. 전문직은 그 귀한 가치를 많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도록 예정된 사람들로서, 그들의 존재 이유는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공과 행복을 돕는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귀게스의 반지'를 가지고 있다. 이 반지의 힘을 남용하는 행위를 갑질이라 부른다.

오늘도 우리의 이목을 교란시키고 있다. '귀게스의 반지'의 효력을 남용하는 사람, 새로이 '귀게스의 반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 어느 쪽 '귀게스의 반지'를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그들의 이전투구..

우리 각자가 끼고 있는 '귀게스의 반지'의 의미를 진중히 되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

글라우콘은 '권력'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귀게스의 반지'를 예로 들었다. 권력은 궁극적으로 탐욕으로 귀결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링컨도 그런 말을 하였다.

역경은 대체로 잘 견뎌낸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권력을 주어보라.



**

권력을 갖는다는 건, 작게 보면 '완장을 차는 것'과 같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교련복에 완장만 차면 갑자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친구가 한둘쯤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완장이 '귀게스의 반지'였다.


윤흥길의 작품 중에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시골 동네에서 밥만 축내던 건달 임종술이가 어느 날 양어장 관리를 맡게 된다. 그 임무의 표식으로 완장을 차게 되는데.. 완장에 부여된 싸구려 권력에 도취되어 과도히 남용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끝장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임종술은 완장을 팔에 차고 저수지를 바라보며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오늘부터 이게 다 내 저수지여,
내 손안에 있단 말이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땅이란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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