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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

마르시아스 예찬 (2/2)

by 허성원 변리사 2021. 4. 13.

마르시아스 예찬 (2/2)

 

[* 아폴론에게 가혹한 형벌을 받는 마르시아스는 이 시대에도 널려있다. 그들은 기업인, 창업가와 같은 리더들이다. 이들은 어쩌다 아테나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던져버린 아울로스를 주워, 그것으로 열심히 역량을 갈고 닦아 더 높고 더 빛나는 경지에 도전한다. 그 도전은 항상 실패를 수반하고, 그 형벌은 언제나 산채로 자신의 가죽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며, 함께 애를 쓴 동료들의 눈물이 그의 고통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가 흘린 피와 동료의 눈물이 이룬 강은 수많은 미래의 마르시아스를 키우는 젖줄이 된다.]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론 by Antonio Corradini (1658–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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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스의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많은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조각 작품 소재가 되어 왔다. 마르시아스와 아폴론의 승부를 그린 그림은 고대의 토기를 장식하는 표면 그림에서 많이 발견되고, 마르시아스가 아폴론에 의해 살가죽이 벗겨지는 장면은 르네상스 이후의 화가들에 의해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Giovanni Bilivert (Firenze 1584 - 1644)>

<Balthasar Permoser(1651~1732)>

<Filippo Lauri, 17c>

<Jusepe de Ribera (1591-1652)>

 

<라파엘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서명의 방 천장화>

<이스탄물 유적지 박물관>

 

<티치아노, 1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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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스의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여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과 그에 대한 신의 준엄한 형벌로서 규정한다. 그래서 베짜기 기술로 아테나에게 도전한 아라크네, 지혜로 신들을 농락한 시지프스 등의 사례와 같은 반열에 두고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시아스의 이야기는 신에게 도전하여 응징 당한다는 점에서는 아라크네나 시지프스의 사례와 공통점이 있지만, 그 계기와 결말에서 다른 면이 있고, 그래서 그 가르침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그 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
우선 아테나가 만든 '아울로스'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아테나가 왜 그것을 인간세계에 버렸을까?

아울로스는 아테나가 신들의 연회에서 연회의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창조한 것이다. 즉 다른 신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신들은 아울로스가 내는 음악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지만, 그것을 직접 연주하고 싶지는 않다. 연주하는 모습에서 품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아울로스는 조화의 상징이다. 높고 낮은 두 가지 음을 동시에 내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출한다.
상이한 두 가지의 조화, 즉 신성과 야만, 이성과 감성, 베품과 욕망, 겸손과 오만.. 승리와 패배 등 상호 양립하기 힘든 다양한 가치가 함께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는 항상 복잡한 가치 속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신은 그런 덕목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테나는 자신이 만든 아울로스가 신에게보다는 인간에게 더 적합하다고 여겨, 인간 세상에 버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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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테나가 버린 아울로스는 인간이 아닌 마르시아스가 줍게 되었다.  
마르시아스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속성을 가진 사티로스로서, 인간에 비해 야만과 감정, 욕망에 더욱 가까운 생명체이다.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에 있는 존재로서, 신의 속성과 동물의 속성을 동시에 구비한다. 그래서 사랑, 헌신과 같은 신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동물적인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타인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고, 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기꺼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적 특성이 강한 마르시아스는 자신이 익힌 연주 실력을 다른 존재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용하였다.
마르시아스의 아울로스 연주는 양립하기 어려운 대립적 가치들을 혼동시키기도 하였다. 이성과 감성이 구분되지 못하고, 절제와 오만이 섞이며, 선과 악의 차이가 모호해지는 등 가치의 동질성과 이중성이 서로의 경계에서 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결국 그 호승심과 오만, 개인적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고 결국 마르시아스는  음악의 신에게 도전한다.

그 결과는 살갗이 벗겨지는 끔찍한 고통이다.

 

Athena and Marsyas: the discovery of the aulos in an imaginative recreation of a lost bronze by Myron (Botanic Garden, Copenhagen)

 

 

Marsyas and Apollo, Paestan red-figure lekanis C4th B.C., Musée du Louvre

 

 

*

이러한 마르시아스의 이야기를 수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그들의 작품 소재로 써왔다. 티치아노, 라파엘로, 애니쉬 카푸어 등등..
예술가들은 왜 마르시아스의 끔찍한 이야기에 끌릴까 ? 아마도 예술가들은 마르시아스처럼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거나 신과 겨루고 싶은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의 재능이 그 정도 경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 껍질이 벗겨지는 형벌도 감수할 수 있다는 유혹은 다들 받아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테는 '신곡' 속에서 다름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아폴론이여,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마르시아스를

그 사지의 덮개 속에서 벗겨 냈을 때처럼

그대의 영감을 불어 넣어 주소서"

(신곡 천국 제 1곡 19-21)

 

 

이 단테의 문구에 따르면, 아풀론은 마르시아스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마르시아스의 재능을 질투하여 그를 파멸시킨 옹졸한 신이 아니라, 기존 껍질을 벗기고 새로운 예술가로서의 경지로 다시 태어나게 도와준 것이다. 그 경지는 신의 영역이었을까.

 

인간의 오만은 늘 그곳 즉 신의 경지를 노린다. 그 경지에 이르는 길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재탄생의 통증을 수반한다. 

어찌 보면 성공을 경험한 대부분의 인간은 다들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적어도 자신만의 분야에서 이미 신의 경지를 누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리는 신의 경지는 무엇인가?

 

 

 

 

Torment of MarsyasLouvre Museum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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