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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보호/특허의도

[허성원 변리사 칼럼] #58 화씨지벽(和氏之璧)

by 허성원 변리사 2022. 1. 22.

화씨지벽(和氏之璧)

 

특허는 기술의 땅이다. 특허권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술의 독점 영역이다. 특허가 없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관용 기술만을 쓰거나 남에게서 빌려 써야 한다. 농경시대의 유랑민이나 소작농과 같다. 그래서 기업은 고유의 특허를 보유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발명을 창출하고 특허출원을 한다.

땅은 넓어야 한다. 특허의 권리 범위는 시장지배력의 크기이다. 가능한 한 넓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발명, 출원 및 심사 과정에서 각 관계자들이 기술적, 법률적 및 전략적으로 깊이 고심한다. 특허청 심사관은 심사과정에서 근접한 기술자료를 제시하면서 발명의 신규성과 진보성을 부정하며 몇 차례 특허를 거절한다. 그러면 출원인은 부득이 권리범위를 잘라내어 줄여가며 심사관의 거절에 대응한다. 그런 과정에 특허의 권리범위는 현저히 쪼그라드는 게 예사다. 그런 특허 절차는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의 고사와 닮았다.

초(楚)나라 사람 화씨(和氏)는 초산에서 옥돌을 발견하여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하게 하였더니 그냥 돌이라 했다. 여왕은 자신을 속이려 했다고 하여 화씨의 왼쪽 발을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을 감정시켜 또 돌이라고 하자 자기를 속이려 한 화씨의 오른쪽 발을 잘랐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였다.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눈물이 다해 피가 흘렀다. 문왕이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었다. “천하에 월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어찌 너만 그리 슬피 우느냐?” “저는 발 잘렸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니 이를 서러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문왕은 사람을 시켜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귀한 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보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화씨는 결국 세 왕을 거치고 나서야 자신의 벽옥에 대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두 발을 잃었다. 특허도 심사를 두세 번 거치면서 그 권리범위가 점차 잘려나간다. 게다가 고등법원 및 대법원에까지 가서 특허 가부를 다투기도 한다. 시련이 영웅을 만들 듯, 큰 가치를 창출하는 특허도 화씨지벽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러 난관을 거치며 귀한 재화로 다듬어진다. 귀한 재화가 되면 탐내는 사람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다. 그 소문을 들은 이웃 강대국인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그것을 탐내어, 성 15개와 화씨지벽과 맞바꾸자고 제안하였다. 진나라는 필시 벽옥만 취하고 성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강국의 요구를 무작정 거부할 수도 없다. 신하 인상여(藺相如)가 성을 받아오지 못하면 벽옥이라도 온전하게 되가지고 오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다. 벽옥을 받아든 진소양왕은 우려한 대로 성을 내줄 뜻이 없었다. 인상여는 벽옥의 하자를 거론하며 되돌려 받고서는, 왕이 닷새 동안 목욕재계한 뒤 예를 다하여야만 벽옥을 바치겠다고 하자, 진소양왕은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랐다. 그 사이에 인상여는 벽옥을 조나라로 보내버려 벽옥은 온전히 되돌아갔다(完璧帰趙). 그런데 그 후 조나라는 그 진나라의 혹독한 핍박을 받아내어야 했다.

우수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은 항상 큰 기업으로부터 기술탈취의 위험에 직면한다. 그에 저항하면 큰 핍박이 따른다. 부당히 기술을 뺏기지 않으려면 인상여의 대응과 같은 지혜롭고 용의주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보호 조치는 역시 대세적 권리인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따라서는 특허로서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 존재한다. 그런 기술에 대해서는 적어도 영업비밀 등 다양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 적절히 대비해두어야만 낭패스런 상황을 겪지 않는다. 선과 악이 혼동되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뺏은 자에게는 뺏은 선이 있고 잃은 자에게는 잃은 어리석음이 있을 뿐이다.

기술이나 특허는 기업에게 있어 벽옥처럼 귀한 재화이다. 하지만 기술의 가치는 그 기술을 만들어낸 창조 능력에 앞설 수 없다. 그리고 그 창조 능력에도 결코 뒤질 수 없는 가치가 둘 있다. 하나는 창조된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 강력한 권리로 만드는 전략과 노력이며, 다른 하나는 그 귀한 기술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지켜내는 지혜와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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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사람 화씨(和氏)는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발견하여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하게 하였더니, 그냥 돌이라 했다. 여왕은 화씨가 자신을 속이려 했다고 하여 그의 왼쪽 발을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을 감정시켜보니 역시 돌이라고 하였다. 무왕 역시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그의 오른쪽 발을 잘랐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였다.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눈물이 다해 피가 흘렀다. 문왕이 그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었다. “천하에 월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너는 어찌 그리 슬피 우는냐?”

저는 발 잘렸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거짓말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서러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화씨는 말했다. 이에 문왕은 사람을 시켜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귀한 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보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楚人和氏得玉璞楚山中,奉而獻之厲王。厲王使玉人相之。玉人曰:“石也。”王以和為誑,而刖其左足。及厲王薨,武王即位。和又奉其璞而獻之武王。武王使玉人相之。又曰:“石也。”王又以和為誑,而刖其右足。武王薨,文王即位。和乃抱其璞而哭於楚山之下,三日三夜,淚盡而繼之以血。王聞之,使人問其故,曰:“天下之刖者多矣,子奚哭之悲也?”和曰:“吾非悲刖也,悲夫寶玉而題之以石,貞士而名之以誑,此吾所以悲也。”王乃使玉人理其璞而得寶焉,遂命曰:“和氏之璧。” _ (韓非子 和氏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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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불러 인상여에게 “진왕이 15개의 성으로 과인의 벽옥과 바꾸길 원하니 주어야 하오 아니오?”라고 물었다. 인상여는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왕이 “내 벽옥만 갖고 성은 주지 않으면 어찌 하오?”라고 했다. 상여는 “진나라가 성을 가지고 벽옥을 얻으려는데 조나라가 주지 않으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습니다. 조나라가 벽옥을 주었는데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성을 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게 있습니다. 두 대책을 비교해보면 받아들여서 잘못의 책임을 진이 지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라고 했다.왕이 “누구를 사신으로 보낼 수 있겠소?”라고 하자 상여는 “왕께 사람이 없다면 신이 벽옥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나라로 들어오면 벽옥을 진나라에 두고,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이 벽옥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되가지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조왕이 이에 상여에게 벽옥을 들고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진왕은 장대()에 앉아 상여를 만났다. 상여가 벽옥을 받들어 진왕에게 올렸다. 진왕은 몹시 기뻐하며 미인과 좌우 신하들에게 돌려 보게 했고, 모두가 만세를 외쳤다. 상여가 보니 진왕은 성을 조나라에 줄 생각이 없었다. 이에 앞으로 나아가 “벽옥에 하자()가 있어 왕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했다.진왕이 벽옥을 주자 상여는 벽옥을 쥔 채 물러나 기둥에 기대어 섰는데 화가 나서 머리카락이 관을 들썩거리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는 진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벽옥을 얻고자 하시어 사신을 통해 조왕께 서신을 보내셨고, 조왕께서는 신하들을 모두 모아 상의하니 모두들 ‘진나라는 욕심이 많고 그 힘만 믿고 빈말로 벽옥을 구한다는 것이니 보상으로 주겠다는 성은 얻을 수 없다.’라며 진나라에게 벽옥을 주지 말자고 했습니다. 신은 ‘보통 사람들의 사귐에서도 서로를 속이지 않거늘 하물며 큰 나라가?’라며 ‘벽옥 하나 때문에 강한 진나라의 기쁨을 거스를 수 없다.’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조왕께서는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시고 신에게 벽옥을 받들게 하고 삼가 국서를 진나라의 조정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큰 나라의 위엄을 생각하여 경의를 나타낸 것입니다. 지금 신이 이르자 대왕께서는 신을 궁전 한편에서 접견하시면서 예절이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벽옥을 받자 미인들에게 돌려보게 하며 신을 희롱하셨습니다. 신이 보니 대왕께서는 조왕께 성읍으로 보상할 뜻이 없기에 신이 다시 벽옥을 돌려받은 것입니다. 대왕께서 기어코 신을 핍박하시겠다면 신은 벽옥과 함께 머리를 기둥에 박아 박살을 낼 것입니다!”
상여가 벽옥을 쥐고 기둥을 노려보더니 기둥에 부딪치려 했다. 진왕은 벽옥이 깨어질까 겁이 나서 거듭 사과하는 한편 담당 관리를 불러 지도를 가지고 오게 해서는 지도를 가리키면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15개 성을 조나라에게 주겠다고 했다. 상여는 진왕이 그저 거짓으로 조나라에게 성을 주려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고는 진왕에게 “화씨벽옥은 천하가 공인하는 보물입니다만 조왕께서 겁이 나서 감히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왕께서 벽옥을 보내시면서 닷새 동안 목욕재계하셨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도 당연히 닷새 동안 목욕재계한 뒤 조정에 구빈()의 예를 세워 놓으셔야만 신이 벽옥을 바칠 것입니다.”
진왕이 생각해보니 강제로는 빼앗을 수 없어서 마침내 닷새 동안의 목욕재계를 받아들이고 인상여를 광성전()에 묵게 했다. 상여는 진왕이 재계를 하더라도 성을 주겠다는 약속은 저버릴 것이라고 판단하여 바로 수행원에게 거친 옷을 입혀 벽옥을 품고 샛길로 도망쳐 벽옥을 조나라로 도로 가져가게 했다. 진왕은 닷새 동안 재계한 다음 구빈의 조정에 구빈의 예를 갖추어 조나라의 사신 인상여를 안내했다. 상여가 와서는 진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목공() 이래 20여 군주들 모두 약속을 분명하게 지킨 적이 없습니다. 신이 왕에게 속아 조나라를 저버릴 것이 정말 두려워 사람을 시켜 벽옥을 돌려보냈습니다. 아마 지금쯤 조나라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리고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니 대왕께서 보잘 것 없는 사신 한 사람만 조나라로 보내도 조나라는 즉각 벽옥을 받들고 나올 것입니다. 지금 강한 진나라가 먼저 성 15개를 떼어 조나라에 준다면 조나라가 어찌 감히 벽옥을 내놓지 않으면서 대왕께 죄를 짓겠습니까? 신이 대왕을 속인 죄 죽어 마땅한 줄 알고 있으니 끓는 솥에라도 들어갈 것입니다. 다만 대왕께서 신하들과 심사숙고 상의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진왕과 신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놀랐다. 좌우들 중 누구는 상여를 끌어내고자 했지만 진왕은 “지금 상여를 죽여도 벽옥은 끝내 얻지 못할 것이고 조나라와 진나라의 좋은 관계만 끊어질 뿐이오. 이참에 잘 대접해서 조나라로 돌려보내느니만 못할 것이오. 조왕이 벽옥 하나 때문에 진나라를 속이기야 하겠소.”라고 했다. 이에 인상여를 조정에서 접견하여 예를 잘 차려서 돌려보냈다. 상여가 돌아오자 조왕은 (상여가) 현명하게 제후들 사이에서 모욕을 당하지 않게 했다고 여겨서 상여를 상대부에 임명했다. 진나라는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았고, 조나라 역시 끝내 벽옥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염파와 인상여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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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염파와 인상여 - 한자 원문 (사기 : 열전,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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